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
001. 시련의 탑 (1)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원님. 더는 체육관에 안 나오셔도 됩니다.”
뜬금없는 퇴출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체육관 관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퇴출 사유가 도대체 뭡니까?”
“한성윤 회원님도 잘 알고 계시는 것 때문입니다.”
“…….”
“저희도 슬슬 회원님을 데리고 있기 벅차다는 거죠.”
“돈은 꼬박꼬박 내고 있고, 체육관 이용 조건도 만족하고 있습니다만.”
“그거야 그렇겠죠. 플레이어고, 헌터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그 준비 기간이 벌써 7년째라는 겁니다.”
체육관 관장이 눈매를 좁히며 나를 훑었다.
“체계적인 훈련에도 불구하고 7년의 세월 동안 회원님은 스킬이나 고유 특성을 개방한 것도 아니고, 그 흔한 능력치 상승조차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싸늘하게 내뱉어진 말이 심장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의 말대로 긴 세월 동안 내가 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킬을 개방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능력치를 올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젠장.’
심지어 그것도 플레이어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체육관에서 그런 것이다.
누구든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면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서 몇 달의 수료 기간을 거쳐서 헌터로 데뷔한다.
그러나…….
‘몇 달은커녕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
사실상, 헌터가 되지 못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불리는 헌터로서의 소양을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동요를 그대로 내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물음을 건넸다.
“……그게 퇴출 사유인 겁니까?”
“정확하게는 그 사실이 제 체육관의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는 겁니다. 그것도 꽤 많이요.”
그제야 나도 체육관 관장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7년이나 헌터도 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답습하는 저 때문에 이 체육관이 문제라는 시선을 받을까 걱정하는 거네요.”
체육관 관장은 더 말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빌어먹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회원님은 아무것도 아니잖습니까.”
“…….”
“적성도 없으신데 매달리셔 봤자 회원님이 헌터 시험은 또 어떻게 통과하실 겁니까?”
“…….”
“노력한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것 같습니까? 그럴 리가요. 헛된 노력입니다.”
“…….”
심장을 쿡쿡 찌르는 듯한 악의 가득한 말들이 귓가에 내리꽂힌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들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고 말로 반박할 수도 없었다.
고작 일반인보다 조금 더 뛰어날 뿐인 놈의 주먹이 전직 헌터였던 체육관 관장에게 먹힐 수 있느냐도 그렇고.
그 말대로 나는 헌터에는 적성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한 놈이니까.
참기 싫다, 그런데, 참아야 한다.
왜?
‘내가 약해서, 그리고 아무것도 없어서.’
지금껏 요령 있게 참아왔지만 이제 더 참아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 여기에서 끝내자고, 이제는 나도 지쳤다.
“물론 맨입으로 나가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회원님에게 받아온 회원비는 50% 정도 환불해드리겠…….”
구구절절 참 길게도 말하네.
결국에는 나를 내쫓으려고 살살 꼬드기려는 거면서.
“길게 말할 것 없고, 회원비 50% 환불이나 제대로 해 주세요. 그럼 이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체육관 관장의 옆을 지나쳐 체육관의 정문으로 향했다.
“……!”
체육관 관장이 뭐라고 하려는 게 느껴졌지만, 결국 뭐라고 하진 않았다.
붙잡아서 할 말도 없고, 얼굴을 붉혀도 손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와, 이 체육관 나보다 먼저 다니더니 결국에는 저렇게 퇴출당하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내게 불편한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일 아침부터 와서 훈련하는 게 근성은 끝내주던데…… 안타깝네.”
“안타깝기는 개뿔. 자기 주제도 모르고 저러는 건 그냥 미련한 거지.”
“아, 그것도 그런가? 하긴, 저 정도면 미련한 것도 인정.”
“근데 7년이나 훈련했는데 능력치도 안 오른 건 처음 알았네.”
동정, 멸시, 그리고 이어지는 비웃음까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저놈들은 7년 동안 나를 줄곧 멸시했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도,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도.
늘 똑같이 내가 플레이어답지 않게 무능력하다는 것을 이유로 비웃음을 보내왔다.
그때마다 내가 문자 그대로 피를 쏟으며 해 온 노력은 미련한 짓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그것도 끝이네, 망할.”
체육관 바깥으로 나온 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7년간 잠깐도 쉬지 않고 헌터가 되기 위해서 해 왔던 훈련.
“하…….”
그 끝은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
처음부터 이렇게 헌터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다.
대격변의 시절, 부모님이 던전 브레이크로 흘러넘치는 괴수들에게 집어 삼켜졌을 때부터 이렇게 됐을 뿐.
그건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재앙을 겪은 다른 이들도 그랬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것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라며 미친 듯이 각성만을 바랬었다.
그래서였을까?
“플레이어로 각성하기는 했지. 각성하기는.”
근데 그 이후부터 문제였다.
뭘 해도 오르지 않는 능력치는 물론이고 ‘고유 특성’은 개방조차도 안 된 상태.
그래도 나는 플레이어로 각성한 게 천운이라며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능력이라는 것은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여기며…….
그렇게 7년을 피를 토하는 훈련을 견디며 버텨 왔다.
고유 특성의 개방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일반인은 벗어날 능력치를 원했을 뿐.
그것만 있었더라도 나는 괴수를 도륙 내며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노라 자기 위안이라도 삼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비참한 꼴을 맞이했다.
눈이 쌓인 공원의 벤치 위에서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진짜로 미련하기는 했네. 7년이라니.”
던전 브레이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나처럼은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러지 못했다.
다들 2년 정도에서 현실의 벽을 깨닫고 그대로 포기한다.
혹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아득바득 저 위까지 올라가거나.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놈이었다.
‘7년이나 노력했는데 능력치조차 상승하지 않을 줄은 몰랐지.’
피식.
스스로 떠올리고도 어이없을 정도로 처참한 결과물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열심히 했지.”
오히려 현실의 벽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아닐까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즉에 현실을 깨닫고 다른 길을 걸었겠으나 나는 아니었다.
앞으로의 삶이 막막할 정도.
하지만 이 7년 동안 키운 정신력은 그 정도로 좌절감을 느끼진 않았다.
‘적어도 삶을 포기할 정도로 나약하진 않지.’
탁……!
나는 다 마신 맥주캔을 벤치에 내려놓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생활도 청산할 겸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진짜로 열심히 했습니다. 원수도 갚고 싶었고, 괴수 놈들도 죽이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 죄송합니다, 이런 놈이 자식이라서.”
살짝 울적해지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다.
7년의 세월은 분하고 슬픈 감정마저도 옅어지게 했다.
강렬했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제는 아예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분하고 슬퍼서 잠도 못 자고 훈련했던 때가 있었는데.’
27살이 된 지금은 훈련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들지 않는다.
더 헌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렇기에 순순히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서 빠져나온 것이기도 했다.
비참하게 매달릴 바에는 여기에서 끝내 버리고 싶어서…….
적어도 스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손에 강제로 끝낼 수 있을 때 그만두려고.
하소연을 끝마친 나는 벤치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더 헌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미련은 남는다.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포기해야만 했기에 더 그랬다.
‘만약에 진짜로 내게 조금의 재능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고유 특성이라도 있었으면.’
그랬다면…….
적어도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과 함께 눈꺼풀이 차츰차츰 내려갔다.
***
잠결에 보는 컴퓨터 화면처럼 흐릿한 홀로그램 메시지가 눈가에 아른거린다.
「당신의 굳건한 의지에 ‘시련의 탑’이 찬사를 보냅니다.」
처음 흐릿한 의식 속에서 보게 된 것은 누군가의 찬사였다.
‘누구지?’
그런 생각도 들었으나 잡념을 이어갈 틈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시련의 탑’이 지구 차원의 모든 적합자를 선별해 냈습니다.」
「난이도를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하는 난이도에 따라서 보상도 커집니다.」
그 메시지를 끝으로 세 개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쉬움」 「보통」 「어려움」
홀로그램 선택지를 바라보는데도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의문보다는 그저 ‘선택’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쪽으로 오라고.
손을 내뻗는다면 결단한 것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 유혹에 나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선택지에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어려움’ 난이도를 선택하셨습니다.」
「도전자가 선택한 고행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화아악……!
금세 메시지는 촛불처럼 휙 사라지더니 몽롱했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기운에서 완벽하게 깨어난 것이다.
「잠시 후, 시련의 탑 1층에 입성합니다.」
“……?”
「도전자는 곧 있을 시련에 대비해 주십시오.」
그제야 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실하게 인지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시련의 탑 1층에 입장합니다.」
주변의 풍경은 공원 벤치에서 웬 사막으로 바뀌었고.
「곧 시련의 탑 1층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해당 시련은 특별 시련으로서 튜토리얼 과정입니다.」
「해당 시련의 주제는 ‘생존’입니다.」
「도전자가 선택한 고행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시련 돌파 보상 – 고유 특성 개방」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미치겠네.”
내 인생에 전환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