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02
200. 고대 신격 (2)
미궁 신전.
처음에 성배에 적힌 설명을 봤을 때는 이게 대체 무슨 장소인지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거목 미궁 이벤트에 참가한 모든 신격이 모이는 자리라니.
이런 게 대체 왜 존재하고 그런 자리에 어째서 도전자가 갈 수 있다는 것인가?
그 존재 의의를 조금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굳이 생각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미궁 최종 계층으로 계층 생략이 진행되기 전에 [미궁 신전]으로 이동합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공간이 바뀌었다.
우주 같은 배경에 엄청나게 커다란 관중석이 들어선 장소로.
그리고 높이 있는 관중석에서 내려 볼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었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래서야 마치 경매장에 내놓아진 상품 같잖은가.
하지만 그에 곧장 자리를 박차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게 대체 무슨……!?
관중석으로 걸음을 옮기기엔 이미 선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정령 같은 이도 있었고, 짙은 화장을 한 광대 같은 이도 있었으며, 흡혈귀 같이 창백한 안색을 가진 이도 있었다.
척 보기에는 일관성 같은 건 없는 관중들이지만…….
진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관중석에 있는 존재들은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많은 이들이 전부 신격이라고……?
「놀이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을 바라봅니다.」
「냉철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을 바라봅…….」
「불꽃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을 바…….」
관중석에 앉은 이들이 전부 개별적인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엄청난.
그그그……!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신체에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이는 곧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신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특유의 압박감이야.’
점점 층을 오를 때마다 느껴졌던 신들의 시선이 몇 배로 강해진 느낌이라 해야 하나?
단지, 시선이 집중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크게 흔들린다.
실제로 체내에 있는 마력이 크게 흔들리며 역류하려고까지 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인간은 이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펑 터져서 죽어 버렸을 것이다.
확실하게.
“…….”
그에 나는 조용히 침음했다.
‘생각한 것 이상의 수준이야.’
본래 나는 [미궁 신전]에 그리 격 높은 신격이 많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신명 자체에서 어설프다느니 서투르다느니 하는 잡신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신격 중 대부분이 완성된 신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수준은 전투의 신에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놀랍긴 놀랍네.’
본래는 잡신들이 많았다면 사령 조각 습득을 위해서 난장판을 벌일까도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잡신들만 엄청 많은 것도 아니었네.’
그렇게 대책도 없이 움직이기에는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으므로 일단은 몸을 사려야 했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냅니다.」
「거짓된 비참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이를 갈며 크게 분노합니다.」
「서투른 관찰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조금 공포심을 느낍니다.」
「전투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강한 살의를 드러냅니다.」
물론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마는…….
신격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짓은 어리석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시스템 메시지에서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 신격들도 섣불리 움직이진 않았다.
단지…….
「숭배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자유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성장 속도에 크게 경각심을 가집니다.」
「후회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잠재 신성에 강렬한 살의를 품습니다.」
움직이진 않아도 신격들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마치 내게 경고하는 것처럼.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은 시스템 메시지의 향연도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다.
[ 조용히. ]빛의 신성을 머금은 음성이 울려 퍼진 순간.
끝도 없이 쏟아지던 시스템 메시지가 수그러들었고.
[ 이제 추태는 그만들 보이고 슬슬 정하도록 하지. 그걸 위해서 전부 [미궁 신전]에 모인 것이잖은가.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도전자 한성윤에게 과연 진실을 알 자격이 있는지 결정해 주게. ]「[미궁 신전]에 있는 신격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시작합니다.」
「도전자 한성윤은 자격 미달 상태이므로 투표 자격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도전자 한성윤에게 ‘탑의 진실’을 알 자격이 충분한지 ‘찬성’ 혹은 ‘반대’를 결정하십시오.」
상정 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
탑의 진실.
여태까지 그렇게 알고 싶어 했음에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던 정보인데…….
‘이걸 갑자기 투표로 알려 줄지 결정하겠다고?’
어째서 탑의 진실을 신격들이 이를 알려 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불어 그걸 왜 투표로 결정하는지도 말이다.
심지어 탑은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려 주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거목 미궁 같은 탑의 영향이 강한 장소에서 진실을 알려 주는 걸 허용한다고?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이는 거 같았다.
하지만…….
「투표 종료.」
「찬성 81. 반대 77.」
「도전자 한성윤이 ‘탑의 진실’에 관해서 알 자격이 충분한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투표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 이걸로 끝이군. ]그때였다.
[ 도전자 한성윤. 자부심을 가져도 좋네. 신들이 도전자를 이리 인정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니. ]빛의 신성을 머금은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서 그 음성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최상석(最上席).
수많은 신들이 늘어진 관중석과는 다르게 일곱 신격만이 앉은 자리.
그 중심에 있는 빛으로 이루어진 형체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고대 신격들은 모두 자네의 존재를 인정했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격 높은 신성에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는가? ]최상석에 자리한 이 일곱 신격은 절대로 넘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에 나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고대 신격이 뭔지도 알고 있지도 않고요.”
[ ……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겠군. 자네는 탑에 의해서 정보를 통제당하고 있었으니 알고 있는 것도 많이 없겠어. ]“…….”
[ 어려운 개념은 아니네. 고대 신격은 말 그대로 고대부터 존재했던 신격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격 중에서도 오랫동안 힘을 쌓아 온 강대한 신격이라는 것이지. ]“그렇습니까.”
추측은 했었다.
고대 신격이라며 경악하는 것들을 보니 아마도 신격 중에서도 특별한 취급을 받는 거 같았고.
그 점을 통해서 고대 신격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격 높은 힘을 쌓았음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단지, 빛의 신성을 가진 신에게서 답을 들음으로써 추측이 확신으로 변화했을 뿐이지.
담천우에게 들은 정보에 살이 덧붙여진 느낌이다.
[ 아, 참고로 나는 고대 신격인 빛의 신이라네. 그리 인지도 있는 신은 아니라 들어본 적은 없겠지만 말일세. ]그럴 줄 알았다.
‘빛의 신성을 가지고 있으니 신명 또한 빛의 신이겠지.’
그에 고개를 끄덕이니 이내 빛의 신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다.
[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이 모인 자리이니 그대도 알고 있는 얼굴이 몇몇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 말처럼 일곱 신격 중 알고 있는 얼굴이 둘이나 있었다.
바로…….
[ 후후. 벌써 나를 잊은 줄 알고 섭섭할 뻔했단다. 아이야. 다치진 않은 거 같아서 다행이야. ] [ 흐하핫─! 한성윤! 시련은 재밌게 지켜봤다! 계약은 철저히 이행했더군! 보상은 곧 주겠다! ]어둠의 신 그리고 마신이었다.
로브를 푹 뒤집어쓴 어둠의 신은 조용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마신은 경박할 정도로 크게 웃음을 지으며 신나서는 최상석에 있는 테이블을 쾅쾅 쳤다.
그 외의 고대 신격들은 알고 있는 이는 없었고, 내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것 같았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입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
[ 후계자! 너 나도 알고 있잖아! 왜 나는 모르는 척하는데……! ]……뜬금없이 자기도 봐 달라며 소리치는 용신(龍神)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청량하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따라서 눈을 돌리니 미녀가 눈에 들어왔다.
파충류를 닮은 쩍 갈라진 눈동자, 머리에 달린 굽은 뿔, 목 주위에 드러난 비늘까지…….
저게 바로 용신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본래 용의 신은 거룡(巨龍)의 형상을 취한 신일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생각했던 거랑 아예 다르게 생겼잖아……?’
의외로 인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 고대 신격들과도 인연을 많이 쌓았다는 것은 알겠다마는. 회포를 푸는 건 나중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빛의 신이 곤란하다는 어조로 이내 화제를 바꾸니 고대 신격들이 조용해졌다.
[ ……치. 아직 나는 후계자랑 제대로 말도 못 나눴는데. 왜 내 차례에 이러는 거야. ]물론 용신은 조금 툴툴거리긴 했지만, 그마저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고, 이내 적막이 찾아왔다.
그에 빛의 신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 도전자 한성윤. ]“……예.”
[ 탑이 자네에게 바라는 게 뭔지 알고 있는가? ]“……신이 되는 것, 아닙니까.”
[ 그렇지. 신이 되는 것. 그게 탑이 도전자에게 바라는 것이라네. 하지만 자네 같은 탑이 선정한 후보에게는 좀 더 높은 경지를 기대하지. ]“…….”
[ 이 또한 마신에게 들어서 알고 있지 않은가. ]“……전지전능의 초월자를 바란다는 거잖습니까.”
[ 그럼 이제 묻도록 하지. 탑은 어째서 초월자를 바란다고 생각하나. ]“모릅니다. 알 수 있는 단서도 없고요. 그러니 그 때문에 제게 ‘탑의 진실’을 알려 주겠다고 의결한 것 아닙니까.”
정곡을 찌르는 말에 빛의 신은 흥미롭다는 듯 빛을 일렁이며 답했다.
[ 호오. 그래. 그것도 옳은 말이지. ……그렇다면 알려 주겠네. 탑이 초월자를 바라는 이유를. ]그리고…….
[ 탑이 초월자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일세. ]빛의 신이 말이 이어진 순간.
[ 모든 신격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살하는 것. ]나는 눈을 부릅뜬 채 경악했다.
[ 그게 탑이 자네를 성장시키는 이유라네. ]***
신적 존재 말살.
그 말을 들자마자 왜 신격들이 내게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었는지 깨달았다.
‘……한마디로 자기들을 말살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니 싹을 잘라 버리려 한 건가.’
그럴 만도 했다.
탑이 나를 초월자로 키워서 신격들을 모조리 없애 버릴 생각이니…….
절대로 탑이 목적을 이룰 수 없도록 성장 도중에 있는 나를 살해하려고 한 것이겠지.
모든 퍼즐이 착착 맞춰지는 기분이다.
‘젠장…….’
[미궁 신전]에 들어와서도 수많은 신격이 내게 적대적인 메시지를 보내온 것도 이해됐다.신격들에게 있어서 나는 잠재적인 강적으로 느껴졌을 터이므로.
경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살의까지 품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쯤 되니 이제는 머릿속에 경종이 울릴 지경이었다.
미궁 내에 있는 모든 신격이 모인 자리.
그리고 새로이 알게 된 진실에 의하면 나는 신격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 점을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
과연, 나는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