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1
020. 귀환 (4)
쿵.
머리에 왕관을 쓴 비대한 몸집의 괴물, 고블린 킹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시련 목표, 고블린 킹을 처치하셨습니다.」
시련의 탑이 4층 시련의 목표를 달성했음을 말해 주고.
「고블린 킹의 사령을 흡수하시겠습니까?」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도 고블린 킹이 죽었음을 말해 준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담담하게 승리를 입에 담았다.
“이겼네.”
경쟁자들을 한꺼번에 홀로 상대했던 것보다는 못한 난이도였다.
고블린 킹은 나를 속박하는 고유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내 검의 궤적을 읽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강철로 된 곤봉을 휘두르며 주위의 모든 걸 파괴했지만, 그뿐이었다.
민첩은 내가 한 수 위였고, 버프를 받은 내가 모든 어그로를 끌면서 적극적으로 딜을 넣었다.
팀플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하연이 내게 버프를 준 게 전부였다.
물론 그 과정은 이 4층의 시련을 거쳐 오며 익숙해졌기에 별로 부담스럽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렇듯 무난한 승리였다.
「축하드립니다, 시련의 탑 4층을 돌파하셨습니다.」
「돌파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4 상승합니다.」
「돌파 보상으로 ‘5,5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추가 돌파 보상으로 스킬 ‘순간 가속(D)’를 획득하셨습니다.」
「추가 돌파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모든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효과가 곧바로 적용되며 몸에서 활력이 솟구쳤다.
조금이지만 몸에 축적된 피로감도 살짝 덜어진 느낌이고.
유틸리티 측면에서는 스킬이나 아이템보다 못할지 몰라도 좋은 보상이었다.
기본적으로 능력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니까.
‘좋네, 보상은.’
그만큼 많은 고생을 겪게 했던 만큼 일품인 보상이었다.
우우웅!
고블린 킹이 앉아 있던 거대한 왕좌의 앞에 포탈이 생겨났다.
그래, 이걸로 끝이다.
4층은, 경쟁의 시련은, 이렇게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
여전히 내 기분은 실뭉치처럼 꼬여서 풀릴 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죄송한데, 먼저 가 봐도 되겠습니까?”
안 어울리게 존대를 하게 된 이성훈이 내게 슬며시 물음을 던져왔다.
뭐, 4층 시련을 돌파했는데 가 봐도 되고 말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가 보세요.”
“……그,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성훈은 쭈뼛거리다가 이내 후다닥 도망치듯 포탈을 넘었다.
우우웅.
자, 이걸로 4층 초입부터 이어온 악연도 끝난 거겠지.
하지만 남은 한 명은 내 뒤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후방에서 내게 지원을 해 주던 헌터, 이하연이었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렇게 물어보니 이하연이 곧바로 대답했다.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을 하셨을 뿐이에요.”
“그런가요.”
“네,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고, 성윤 씨가 안 했다면 제가 했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무엇을 그렇게 말하는지는 뻔했다.
살인, 그리고 이성훈을 압박하는 행위 등등에 대해서 함축적으로 말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 4층에서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처럼 굴었다.
일말의 양심은 남겨 둔 채 행동했지만 그건 내가 껄끄럽기에 제한해 둔 선이었다.
시련에서 내주는 과제가 아닌 이상, 사람을 죽이기 싫었기에.
“성윤 씨는 강하세요. 플레이어였다고는 해도 바깥에서도 분명 강하셨겠죠.”
그 말에 살짝 뜨끔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오히려 탑에 들어와서 말도 안 되게 강해졌을 뿐이다.
그때 이하연이 뜬금없이 허공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
순간 뭘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도전자 이하연 님이 당신에게 친구 신청을 보냈습니다.」
커뮤니티의 기능 중 한 개였던 ‘친구 신청’이었다.
물론 쓸 일이 없었기에 관심을 꺼두고 있었는데 이게 여기에서 등장할 줄이야.
“…….”
잠깐 놀라서 말문이 닫혔다.
그걸 이하연은 받기 부담스럽다는 듯한 태도로 이해했는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 음, 받기 껄끄러우시다면 무시하셔도 돼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저한테 왜 이런 걸 보내시는 건지 해서.”
“그냥, 4층 시련도 거의 성윤 씨 힘으로 깨셨는데 아무것도 사례하지 않는 건 좀 그래서요.”
“…….”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신다면 백은 길드의 이하연을 찾아주세요.”
“음, 혹시 길드 가입 권유라면…….”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것과는 별개로 필요하신 게 있으면 와 주셨으면 해서 그래요.”
이하연이 당황하며 하는 말에 피식 웃었다.
진지한 표정만 짓고 있길래 몰랐는데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싶었다.
“길드, 상인, 헌터, 던전 등등의 알선을 해드릴 수 있어요. 저희 길드는 그런 쪽에 유능하기도 하고요. 물론 오시면 뭐든 공짜로 해드릴 거예요. 그 정도 재량은 있어요.”
영업직처럼 말을 늘어놓는 이하연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어느 정도는 구미가 당기기도 했고, 사례하겠다는데 받지 않기도 껄끄러웠으니까.
‘혹시 모르지만 나를 이용하려는 거라면, 자세하게 이것저것 알아 보고 판단해도 될 테고.’
그렇게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호의와 악의는 구분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탑에서 무사히 나가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도전자 이하연의 친구 요청이 수락되었습니다.」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에 이하연이 배시시 웃음을 띠웠다.
이전처럼 거리감이 있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 기쁘다는 듯한 미소였다.
“그럼 저도 이만 가 볼게요. 부디 무사히 8층까지 다다르시길 바랄게요.”
“예, 가 보세요. 이하연 씨도 무사히 귀환하시길 빌겠습니다.”
우우웅!
이어서 이하연마저 웃으며 포탈 너머로 사라지자 적막함이 찾아왔다.
“…….”
솔직히 내심 나는 이 탑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내게, 패배자가 되었던 내게, 다시 기회를 준 건 이 탑이었으니까.
하지만 탑은 도전자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극한까지 몰아갔다.
목숨을 위협받는 전투, 그리고 살인마저도 저지르게 했다.
‘괴수들과 벌이는 전투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적당히 한계를 자극해서 죽지만 않게 위로 올려 보내게 하는 듯한 모양새.
그래서 더 탑을 오르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고 성장감에 도취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감정에서 해방되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성장에 굶주려 있던 나는 탑의 보상에 눈이 멀었을 뿐.
시련의 탑은 정상적으로 사람을 강해지게 해 주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
도리어 그 무자비함을 겪은 후, 더 멈추고 싶지 않아졌다.
처음으로 헌터가 되고 싶다는 소망 외에도 다른 욕망이 내면에서 샘솟았다.
시련의 탑을 오르고 싶다.
강해지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시련의 탑은 ‘대격변’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괴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게이트라는 건 왜 생기는 것인지.
그런 것에 관하여 탑을 오르다 보면 이것저것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직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격변을 맞이하는 세상에서 유리한 이는 누구보다 빠르게 현 상황에 적응한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얻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무력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시련의 탑은 나에게 기회를 줬고 나는 그 기회를 꽉 붙잡기로 했다.
서로 경쟁해야 한다고 해도, 나는 더 강해지고 싶고, 시련의 탑은 그걸 이뤄 줄 수 있다.
남을 해치워야 하고, 남을 짓밟으며 올라서야만 한다고 해도…….
그게 결의를 다진 자들이라면 더 올라가는데 망설임이 덜할 거 같았다.
8층 이후부터는 타의가 아니라 자의만으로 탑을 오르게 된 이들만 남을 테니까.
그러니 일단은 첨탑에 있는 모든 사령을 흡수하기로 했다.
「고블린 킹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진후’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시언’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임상윤’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스아아앗……!
모든 표식이 소용돌이처럼 뭉쳐서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사령을 흡수해야 한다면 할 거야.’
강해지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할 것이다.
고작 그런 윤리관에 얽매이기에는 늦었으니까.
지킬 수 있는 선은 지키고, 그럴 수 없다면 최적의 효율을 낼 것이다.
‘사령을 흡수하는 건, 이쯤으로 해 둘까.’
모든 사령을 흡수한 나는 그걸 다 흡수하지 않고 포탈로 접근했다.
뭐, 보상을 확인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될 테니까.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지금은 일단 몸에 쌓인 피로나 상처들의 처리가 시급했다.
***
「5층 대기실에 입장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과 부상을 완벽하게 회복합니다.」
「회복 효과는 대기실에 상시 적용됩니다.」
역시나 익숙해진 문구들과 회복 효과가 나를 맞이해 줬다.
하지만 이어서 떠오른 메시지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문구였다.
「5층 시련의 돌파 인원이 1,000명을 넘었습니다.」
「시스템 확장이 시작됩니다.」
「도전자들의 시련 돌파에 등급이 매겨지는 시스템, ‘시련 결산’이 생성됩니다.」
「상점의 카테고리가 늘어납니다.」
「물품 상점에 새로운 물건들이 추가됩니다.」
「닉네임 변경이 가능해집니다.」
“시스템 확장이라.”
전에 들었던 것처럼 본격적으로 시스템이 확장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걸 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상이 들었다.
1층에서 샌드 골렘하고 죽을 각오로 싸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참, 강해지는 것도 빠르게 강해졌네.’
잠깐 감상에 빠졌지만, 새로이 추가된 시스템을 확인하는 건 잊지 않았다.
“시련 결산.”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눈앞에 화려하게 꾸며진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4층 시련 결산판」
-1위, 김승훈(SS+)
-2위, 이정훈(SS)
-3위, 닉네임변경이뭔데(SS)
-4위, 혜선아(SS-)
-5위, 뇌절의장인(SS-)
-6위, 검빨만렙(S+)
…….
…….
“직관적이네.”
1층에서도 모든 명령어가 직관적인 형태를 갖췄던 것처럼 이 결산판도 똑같았다.
제일 위에 있는 도전자의 이름을 누르니 상세 설명이 떠올랐다.
-1위, 김승훈(SS+)
-4층 시련 돌파 시간(00:34:21)
-4층 시련 돌파 과정(SSS)
-4층 시련 돌파 결과(SS-)
-4층 시련 총합 결산(SS+)
“…….”
아니, 이게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기록인 건가?
‘무슨, 아니, 어떻게 5층 시련을 34분 만에 클리어했어.’
가끔 커뮤니티의 채팅창에서 보이던 이름이었는데 생각보다도 더 강했다.
동명이인이라기에는 위화감이 많은 것도 있었고.
“이게 진짜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거겠지.”
C급이나 D급 같은 하급 헌터들로는 고개를 들어도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말하는 게 범상치 않아서 높은 등급의 헌터이리란 건 짐작했다만.
‘그게 이 정도일 줄이야.’
이어서 결산판을 쭉 둘러보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3위, 닉네임변경이뭔데(S)
본래 시련의 탑에서는 본명밖에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 지은 듯한 이름을 보니 순간적으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닉네임 변경이 가능해진다는 문구도 있었다.
나는 급하게 결산판을 제쳐놓고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이름이 적힌 부분을 보았다.
「이름 변경」
거기에 새롭게 추가된 문구를 누르니 입력창이 떠올랐다.
「사용하실 닉네임을 적어주십시오.」
이름을 변경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해야만 한다.
4층 시련처럼 정보가 유출된 상태에서는 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손해를 볼 수도 있을 테니까.
‘이성훈 같은 부류는 뒷조사할 수도 있고.’
그럼 곤란해진다.
뭘 적을지 고민했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아무렇게나 적기로 했다.
「당신의 닉네임은 이제부터 ‘사냥꾼’입니다.」
그냥 생각 없이 만들게 된 닉네임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사냥꾼이란 닉네임으로는 뭘 알아내려 해도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
뭐, 적당한 위장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휴.”
이걸로 한시름 놓았으니 이제 다시 결산판을 볼 차례다.
‘나도 결산판 순위권에 있으려나?’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기에 결산판을 차근차근 잘 읽으며 내렸다.
혹시라도 읽지 못하는 게 있을까 싶어서 꼼꼼하게.
그리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16위, 사냥꾼(A-)
-4층 시련 돌파 시간(11:14:51)
-4층 시련 돌파 과정(SS+)
-4층 시련 돌파 결과(B+)
-4층 시련 총합 결산(A-)
생각보다 더 높은 순위에 놀랐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그다음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50위권 안에 기재된 도전자는 ‘선구자’로 지정됩니다.」
「8층에 다다를 때까지 연속으로 ‘선구자’로 지정될 시, 후광을 얻을 수 있는 특혜를 얻습니다.」
「또한, 선구자로 지정된 이들은 연속해서 선구자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8층에서 혜택을 얻습니다.」
“후광?”
뒤에서 내비치는 빛, 이라는 뜻인 거 같은데.
시련의 탑이 지금껏 보여 왔던 직관적인 말과 다르게 비유적인 형태다.
‘무슨 스킬이라도 주는 건가, 아니면…….’
무언가를 더 두드러지게 해 주는 배경을 주겠다는 뜻인가?
비유적인 표현이라면 그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흠, 이거야 나중에 가면 알게 될 일이고.’
일단은 결산 순위도 봤고 닉네임 변경도 했으니 상점을 볼 차례다.
무엇을 찾아봐야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귀환석.
지구로 돌아가게 해 준다는 그 아이템이 얼마인지를 알아야 했다.
상점의 검색창을 이용하니 찾는 건 금세였다.
“…….”
하지만 귀환석의 가격을 본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귀환석(F+)」
「가격 – 500포인트」
「설명 – 시련의 탑을 벗어나서 3일 동안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갈 수 있는 아이템.」
‘……아니, 이건 너무 싸지 않나?’
일시적 귀환이라고 해도 심각하게 싼 귀환석에 말문이 막혔다.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네.”
3일이라도 지구에 갈 수 있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꽤 많은 시간을 비웠던 만큼, 처리해야 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귀환석(F+)를 구매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지구로 귀환하게 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