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10
208. 신앙 (1)
신앙 강탈.
나는 새로이 생성된 전용 스킬을 창공에 떠 있는 잿빛 구체를 바라보며 바로 발동했다.
「전용 스킬 ‘신앙 강탈’이 활성화됩니다.」
그리고…….
“아.”
느껴졌다.
신체 내부에 쌓인 신성력이 새로운 신앙을 수확하고 있는 것이.
간접적으로 신앙을 쌓을 때와는 다르게 신앙의 흐름이 선명하게 감각에 잡힌다.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고 발동한 스킬이었는데…….
그 효용성은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게 신앙이라는 건가…….’
신앙 수확 권능을 통해서 주변인의 감정을 신화 생성에 사용할 소모 자원으로 모았을 때와는 달랐다.
이전에 신앙 수확 권능을 통해서 모아온 신앙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신격의 근원으로 흘러가는 신앙을 강탈하고 있자니 심장에 깃든 신성력이 신앙에 따라서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격렬히.
‘감정이 느껴져.’
어느 감정이 신앙이 되어서 흘러오는지 확실히 드러났다.
공포, 경외, 분노, 부정, 슬픔 등등…….
대부분 끔찍한 감정이 회오리처럼 모여들어 내 심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걸 토대로 이리 많은 신앙이 모이다니.
실로 불쾌한 현상이었다.
효율을 중시하는 나라고 해도 죄 없는 이들이 고통받는 걸로 강해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창공에 떠오른 잿빛 구체는 달랐다.
이 세상에 있는 신격의 근원은 모든 이의 고통을 통해서 신격의 자리에 다가서고 있었다.
‘최대한 신앙을 빠르게 강탈해서 신격의 근원을 처리해야겠어.’
그에 조용히 눈매를 좁힌 채 살의를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전용 스킬 ‘신앙 강탈’이 외부 요인에 의한 방해로 비활성화됩니다.」
갑자기 심장으로 흘러들어오는 신앙의 공급이 팽팽해져 있던 실이 끊기듯 뚝 멈췄다.
그 원인은 시스템 메시지에 떠오른 짤막한 문구에서 읽어 낼 수 있었다.
외부 요인에 의한 방해.
그리 깊게 생각할 것 없이 신격의 근원인 잿빛 구체의 소행이다.
신앙 강탈을 멈출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 건 잿빛 구체뿐이므로 당연한 추측이었다.
“…….”
그에 나는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여러 차례 신앙 강탈을 시도했다.
띠링, 띠링, 띠링……!
하지만 신앙 강탈은 몇 번이고 1초도 되지 않아서 스킬 사용이 해제됐고.
그 탓에 이전처럼 꾸준히 신앙을 모으진 못했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는 18층 스테이지 남은 시간이 전부 소요될 때까지도 신앙 공급을 끊어 내지 못할 터.
의미 없는 짓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신앙 강탈 사용을 중단했다.
그렇지만 이걸로 알 수 있는 사실도 존재했다.
‘……신앙 강탈을 막은 건 특수한 케이스인 건가.’
잿빛 구체는 신성 혹은 권능으로 신앙 강탈을 막고 있는 게 아니었다.
샛길로 빠져나가지 않게 신앙의 흐름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밀집성을 상승시킨 것이다.
이전에는 미약한 신앙의 흐름이 몇백 개는 있어서 그중 하나를 앗았다면 이건 달랐다.
‘신앙 수급량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
기백(幾百)은 넘었던 신앙의 흐름들이 하나의 통로로 합쳐진 후.
강대해진 신앙의 응집력 탓에 신성 강탈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신앙을 모조리 하나의 통로에 몰아넣으며 생긴 현상이다.
‘한 흐름 안에 있는 신앙이 너무 많아서 서로 붙은 신앙의 응집력을 뚫어 낼 수 없어.’
해결책은 명확했다.
바로…….
세계 각지에서 잿빛 구체로 흘러들어오는 신앙의 양을 줄이는 것.
그게 정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뭘 해야 하는지 또한 이를 통해서 확실히 깨우쳤다.
‘초상 연합을 와해시키는 게 중요하겠어.’
예비 신격을 리더로 둔 테러 집단인 초상 연합을 아예 없애고, 사람들에게 고통이 아니라 희망을 선사해야만 했다.
생각을 전부 정리하니 마침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죄송한데, 저희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강도 짓을 하다가 내게 붙잡힌 카티아였다.
그녀는 다친 동료들을 눈짓으로 힐끔거리며 최대한 신중히 물음을 건넸다.
고민할 문제도 아니다.
이제 물어볼 건 어느 정도 물어봤으니 이들은 말한 대로 살려 줄 심산이었다.
“알아서 하세요.”
그 말에 카티아는 진짜 살려 줄 줄은 몰랐다는 듯 말을 더듬거리며 감사를 전했다.
“아, 그,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담천우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
―후환을 남기는 짓은 하지 않는 게 나을 터다마는? 어디 가서 저놈들이 입을 열지는 모르지 않느냐.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살려 둔 겁니다.’
―……뭐?
‘어디로든 저에 대해서 말한다면 초상 연합이라는 테러 집단이 저를 찾을 수도 있잖습니까.’
―……허.
‘사령을 가질 수 없는 건 아깝지만, 어차피 수준을 보니 사령도 크게 가치는 없을 테니, 놔주는 게 더 낫습니다.’
―……낚시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군.
‘그게 제 특기 중 하나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나도 자리를 벗어나서 초상 연합을 탐색하려고 하는 때였다.
그러고 보니 카티아 일행에게 초상 연합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물론 이렇게 길거리에서 강도 짓이나 하는 이들이 많은 걸 알고 있을 거 같진 않다마는.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나는 서로 부축하며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 카티아 일행을 불렀다.
“아, 카티아 씨, 헤어지기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볼 게 있는데요.”
“……?”
“초상 연합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초, 초상 연합이요……?”
“예. 소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대충 짐작 가는 부분만 알려 주십시오.”
“어……. 초상 연합이랑 이어지는 브로커를 알고 있긴 한데요…….”
“?”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이내 다시 물었다.
“브로커?”
“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
“그럼 카티아 씨만 이리 오시죠.”
“……예?”
카티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걸 보며 나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카티아 씨는 그 브로커에게 연결을 좀 시켜 줬으면 좋겠습니다.”
설마 이런 장소에서 현지인 출신인 맛집(?) 가이드를 만나게 될 줄이야.
“한동안은 저랑 같이 다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18층 시련의 일정이 상당히 단축될 듯했다.
***
이제는 거리에 얼마 남지 않은 멀쩡한 건물 속 사무실.
푸른빛의 머리칼을 지닌 사내는 사무용 의자에 털썩 앉은 이후.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파괴의 흔적으로 얼룩진 잿빛의 정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는 몽롱한 눈빛으로 무너진 건물들을 보며 황홀감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너무 멋지구나.”
라블칸 스타르.
초상 연합의 간부 중 하나인 그는 대도시 실리딘의 제 17번 지구를 담당하는 관리자 겸 브로커였다.
그의 역할은 실로 간단했다.
실리딘의 제 17번 지구에 있는 민간인들이 공포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식량마저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제 17번 구역에서 그가 할 일은 간단했다.
브로커로서 서로 가진 걸 약탈하게 조장하고, 약탈로 얻은 현물을 식량으로 교환해 주는 것.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공포를 느끼고 초상 연합을 지배자로 인지시키는 게 그의 주된 목적이었다.
라블칸은 이 일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꼈다.
“고작 식량 하나 때문에 서로 약탈하고 공포에 질리는 꼴하고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실리딘의 제 17번 지구는 부유 계층이 사는 구역에 속했다.
식량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없었고, 사치에 관한 관심은 많았으며, 정계 및 재계에 힘이 뻗친 인물이 많이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실리딘 17번 지구에 남은 것은 고상한 척하는 상류층이 아니라, 빵 한 조각에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살인귀 천지였다.
그 처참한 몰락이 라블칸은 너무도 즐거웠다.
“아아……. 정말로 ‘그분’의 말씀대로 세상이 정말로 좋아졌어…….”
슬럼가에서 태어난 초능력자인 라블칸은 세상이 이 꼴이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는 불법 개조된 레이저 절단기 같은 잡동사니에 비견되는 대우를 받았을 터이니.
라블칸은 테이블에 올려진 와인을 잔에 따라서 들이켜곤 실실 웃어 댔다.
“크흐. ‘그분’께서 말씀하셨듯이. 강자는 역시 약자의 위에 있어야 했어.”
초상 연합의 리더로 불리는 ‘찬탈자’는 초상 연합의 구성원에게 주장했었다.
─이 시대는 인간의 가치를, 초능력자의 가치를, 강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몰상식한 시대이다.
고작 기계 따위가 인간의 목숨보다 중요한 이 세상은 잘못되어 있다고.
초능력도 없는 열등한 일반인이 초능력자를 기계보다 대우해 주지 않는 건 이상하다고.
그러니 초능력자는 단결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기계를 지우고, 세상을 한 번 원시(元始)로 돌려야 한다고.
‘정말로 옳으신 말씀이었지.’
초상 연합의 리더 ‘찬탈자’는 수많은 이능을 손에 넣은 초월자였다.
그는 실리딘 내의 많은 구역에 있는 기계들을 모조리 불능 상태로 바꾸었다.
초능력이 닿지 않은 기계는 아예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게 말이다.
물론 몇몇 지역은 ‘찬탈자’의 힘이 부족한 탓에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마는.
‘대도시 실리딘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기계가 사라질 거다.’
라블칸은 그마저도 곧 무력화되리라는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잿빛의 구체가 완성되는 날, ‘그분’께서는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어서 돌아오신다.”
초상 연합의 리더인 ‘찬탈자’는 신이 되어서 돌아오겠다고 했으니까.
이는 다른 이가 들었다면 우습다며 말했겠지만…….
초상 연합 구성원은 모두 이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제 ‘찬탈자’는 인간의 규격을 완벽히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능에 가까운 그의 힘은 신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모두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건 라블칸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디 ‘찬탈자’가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그는 맡은 바의 역할을 다할 뿐.
“기대되는군. 세상이 원시로 돌아갈 날이. 그때는 이보다 아름다운 세계가 되겠지.”
라블칸이 황홀함에 젖은 채 와인을 홀짝일 때였다.
콰아앙!
“……어?”
갑자기 사무실의 출입문이 박살 나며 사무실 내에 다른 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초상 연합의 브로커라더니. 보안 수준이 그렇게 높진 않네.”
그에 라블칸은 고개를 들어서 정면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 말씀은 하시고 가야죠! 이렇게 브로커 사무실을 부수면 어, 어떡해요!”
“생각이 있어서 이런 겁니다. 그리고 저는 안내인이 말 많은 거 싫어하는데.”
“……어, 음. 죄송합니다. 그, 그냥 조용히 있을게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라블칸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웬 연미복 차림에 쌍검을 장비한 청년을 눈에 담았다.
그 배후에 웬 여자가 있었지만, 대화 상태를 보니 어차피 중요친 않을 듯했다.
“어차피 이제부터는 이 브로커랑 대화를 나눌 테니까요.”
그에 라블칸은 눈을 잠시 깜빡이다가 이어서 얼굴을 와락 구기며 살의를 풍겼다.
“뭐냐, 너는.”
하지만 그는 라블칸의 살기를 태연히 버티며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초상 연합에 크게 관심이 있는 사람.”
“……하. 오랜만에 보는 미친놈이구만.”
라블칸의 눈에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붉은빛이 일렁였다.
“히어로 놀이에 빠진 정신병자 같은데……, 만화와는 달리 현실에는 히어로 같은 거 없어.”
그는 사무용 의자에서 일어서고는 청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손을 꽉 쥐었다.
“히어로 놀이는 오늘 이 자리에서 끝내 주마.”
그 말을 끝으로 라블칸의 손끝이 검게 물들며 서서히 그의 전신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마수화(魔獸化).
한낱 슬럼가 출신의 피지배층에 불과했던 라블칸을 초상 연합의 간부로 이끈 변형계 초능력.
그것이 발동되며 라블칸의 머리에 검은 뿔이 솟아나고, 허리에는 짐승 같은 검은 꼬리가 자라났다.
“네놈을 ‘그분’에게 바칠 제물로 삼아 주지.”
라블칸은 어느새 파충류의 그것처럼 쭉 째져진 눈빛을 번들거리며 그리 말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난 체격, 그리고 기운은 범상치 않았다.
“설마 초능력 중에는 악마로 변하는 이능도 있는 건가?”
하지만 변형계 초능력 중 최상위권 이능으로 추대받는 라블칸의 힘은…….
“대단하긴 대단한데…….”
다음 순간.
쿠우우웅……!!
「스킬 ‘만마지왕萬魔之王’이 활성화됩니다.」
“그거, 나한테는 쓸모없어.”
한성윤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왕의 힘에 억눌려져 형편없이 뭉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