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14
212. 신앙 (5)
화려한 그림으로 꾸며진 방 내부에 싸늘한 음성이 울렸다.
-라블칸 스타르의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
커다란 원탁의 중앙 자리에 올려진 얇은 유리 형태의 영사기.
그 너머로 퇴폐적인 모습을 한 남성의 홀로그램이 떠올라 말을 이었다.
그에 원탁의 빈자리 중 하나에 앉아 있던 갈색 머리의 여성이 눈을 찌푸렸다.
“개소리지……? 라블칸 자식이 죽을 리 없잖아! 변형계 능력자 중에선 최강이었다고!”
-라그나. 안타깝긴 해도 진실이다. 라블칸 스타르의 시체는 제 17번 지구에서 확인했다.
“…….”
-잔흔을 통해서 추측한 바에 의하면 아마도 그리 많은 수 교환은 없었다. 전투 지속 시간도 길지는 않은 거 같고.
“설마……!”
-그래. 라블칸은 압도적인 차이로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것도 마수화를 쓴 상태에서 말이지.
“……라블칸 그 자식을 일대일로 때려눕힐 수 있는 강자가 존재한다고?”
그에 라그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초상 연합의 간부 중 한 명으로 누구보다 라블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라블칸은 이리 허무하게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구축계 능력자에 의해서 복원된 원자력 광선에라도 처맞은 거야……?”
-그럴 리 있나. 알다시피 ‘그분’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그 정도의 물건은 남지 않았다. ‘그분’의 힘이 뻗친 제 17구역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럼 진짜 순수하게 실력으로 패배했다고?”
-그래.
“……하. 미치겠네. 알겠어. 그렇다면 제 17구역은 혼란스럽겠네. 그쪽은 내가 수습하─.”
-아니. 수습할 것도 없다. 제 17구역은 버려야 할 테니 말이야.
“뭐?”
-라블칸을 살해한 ‘한성윤’이라는 자가 제 17구역에 대량의 식량을 풀었다. 현재 제 17구역 주민들은 그를 숭배하고 있다.
“그게 대체 무슨……?”
-그리고 최악 중 최악으로, ‘한성윤’은 라블칸을 살해한 후, 곧바로 초상 연합 본부에 있는 연합원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
그 말을 들은 라그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초상 연합 본부까지 싹 쓸어버리다니……. 아, 아무리 간부가 없어도 그렇지, 그건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 마치 ‘그분’과도 같은 힘이야. 간부들이 전부 모여도 처리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지.
“하, 하하……. 진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분’은 말씀하셨다. 공포로 얼룩진 신앙이, ‘그분’이 신격이 되게 해 줄 거라고.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잿빛 구체가 되어서 사라지셨지.
영사기 너머로 떠오른 퇴폐미를 갖춘 남성의 홀로그램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성윤’이라는 자에 의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제 17구역은 이제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성윤’을 구세주로 여기고 있으니.
그의 말에 라그나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그, 그럼 ‘그분’이 신이 된다는 것도, 설마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거야?”
-상황을 방치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 그 전에 나서야 할 터. 방심할 틈은 어디에도 없다.
“…….”
-라그나.
퇴폐적인 남성의 홀로그램이 싸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간부 전원 소집 명령을 내려라.
그리고.
-‘한성윤’을 처리하고, 그에 의해서 더럽혀진 장소에, 새로운 신앙을 채우자고.
다음 순간.
-‘그분’이 쌓으실 위대한 신화를 위해서.
퇴폐적인 남성의 홀로그램이 눈을 섬뜩하게 번뜩였다.
***
「업적 ‘숭배받는 자’를 달성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업적 ‘해방자’를 달성했습…….」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
「업적 ‘광신도의 왕’을 달…….」
「모든 능력치가 1 상…….」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설마 업적을 이렇게 많이 얻을 수 있을 줄이야.’
거목 미궁 내에서 얻은 능력치를 적용받음으로써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을 갖췄는데…….
그 엄청난 신체 능력이 몇 배는 올라가는 기분이다.
이제는 능력치 하나를 올리는 것도 정말 크게 느껴질 시점이니 그럴 만도 했다.
능력치 상승은 그리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예전과는 능력치 상승의 효율이 격이 다르겠지.’
어지간한 강자로는 네크로맨시로도 성장을 꾀하기 어려운 게 능력치이니.
업적들을 통해서 이루는 성장은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옅은 웃음을 지으며 성장을 즐기고 있자니 담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나군. 설마 이렇게 많은 업적이 달성되다니. 운도 참 기가 막힌 놈이로다.
그는 현재 상황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고작 식량 좀 나눠 준 것 가지고 이렇게 성장하다니…….
“질투는 좀 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 이렇게 날로 먹는 성장이 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냐?
“이게 왜 날로 먹는 성장입니까. 이것도 실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담천우는 아예 질렸다는 듯 입을 닫았지만, 나는 진짜로 이게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 ‘희망 전파’에 의해서 당신에 대한 희망이 급속도로 펴져 갑니다.」
이 끝없이 떠오르는 업적들은 내 스킬에 의해서 발생했으니까.
심지어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 나는 초상 연합 본부를 붕괴시키곤 그대로 다른 구역들을 전전하며 식량을 베풀고 있었다.
“무, 물이다……! 흐, 흐하하! 드, 드디어 제대로 된 물을 마실 수 있어!”
“뭐야, 이거? 배양육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고기잖아……? 이, 이런 걸 그냥 베푼다고?”
“오오……! 실로 압도적인 자애로움이로다! 구원자 한성윤이시여! 부디 세상에 구원을!”
인벤토리 내에 수많은 식량을 쌓아 둔 덕분에 식량을 베푸는 게 어렵진 않았다.
대기실에서 남아도는 포인트로 구매한 식량들이었으므로 그리 아깝지도 않았고 말이다.
아, 물론 많은 구역을 전전하다 보니 식량이 부족해지긴 했다마는…….
그마저도 어렵잖게 해결하는 게 가능했다.
「스킬 ‘식량 배양’이 활성화됩니다.」
「손에 닿은 일반 식량을 마력을 소모하여 배양시킵니다.」
「스킬 ‘식수 생성’이 활성화됩니다.」
「손에 닿은 그릇에 마력을 소모하여 식수를 생성시킵니다.」
몇몇 초능력자들을 처리하며 획득한 스킬을 잘 합성하니 흥미로운 스킬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전투에 그리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이렇게라도 써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양의 인장으로 체내 신성으로 치환시켜야 했을 테니까.
‘이 스킬들이 있으면 식량도 식수도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지.’
식량 배양 및 식수 생성에 소모되는 마력이 막대했지만, 끊이지 않고 달성되는 업적들을 보니 힘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숭배의 신앙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빠르게 축적되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심장에 흘러들어오는 신앙은 부정의 감정이 아니라 긍정의 감정이 되었다.
희망, 행복, 신뢰, 안도, 감사 등등…….
수많은 감정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고, 이어서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업적 ‘신앙 정화’를 달성했습니다.」
「특수 권능 ‘신앙 정화(A+)’를 습득합니다.」
그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모든 능력치 상승 같은 보상이 아니라 이번에는 특수 권능을 습득한 탓이다.
하지만 그리 놀랍진 않았다.
탑의 목적은 진정한 초월자를 배출시키는 것이니, 조건을 만족함에 따라서 얻는 능력도 있을 터.
이내 나는 바로 신앙 정화의 힘을 확인했다.
「특수 권능 ‘신앙 정화’가 활성화됩니다.」
「도전자 한성윤에게 쏟아지는 모든 신앙을 순수 신앙으로 치환합니다.」
그리고.
“…….”
신체 내부에 쌓이는 신앙이 말 그대로 완전히 정화됐다.
그 어느 감정을 띠지도 않은 상태로.
―호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런 능력이었나. 이건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서 득실의 기준점이 갈리겠어.
아마도 신앙 정화의 권능은 신앙에 깃든 감정을 아예 제거하는 능력 같은데…….
“그러게요. 모든 신앙에 무턱대고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긍정의 감정을 띤 숭배의 신앙을 정화시키는 건 그리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신앙 정화라는 것은 신앙을 가장 무채색에 가깝게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긍정적인 신앙까지 무채색으로 되돌린다니?
이득일 수 없었다.
신앙 정화 권능은 긍정적인 신앙에는 독을 흩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전용 스킬 ‘신앙 강탈’이 활성화됩니다.」
부정의 감정을 담은 신앙에 이 권능을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신앙 강탈로 획득한 신앙을 모조리 정화하니 확실히 괜찮은 것 같았다.
‘이제는 신앙 강탈도 강제로 끊기지 않으니, 이대로 신앙을 독차지할 수도 있겠어.’
이제 18층 스테이지의 시련이 끝을 맺으려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추측하건대 이대로 잿빛 구체에 흘러가는 신앙을 남김없이 강탈한 후에 신격의 근원을 없애면 시련은 클리어될 터.
그렇지만 나는 이내 신앙을 갈취하는 걸 그만뒀다.
「전용 스킬 ‘신앙 강탈’이 비활성화됩니다.」
신격의 근원인 잿빛 구체를 이대로 처리해도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신격의 근원이 신앙을 토대로 완연한 신격이 된 후에 승리를 거머쥔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잿빛 구체를 바로 처리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일 터.
그러므로 나는 신앙 강탈로 잿빛 구체의 성장을 아예 틀어막을 생각은 없었다.
설령 신격의 본체를 상대하더라도 나는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 가 활성화됩니다.」
「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11 상승합니다.」
「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현재 2,172명의 추종자가 있으므로 신성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18층 스테이지 내에 있는 사람들을 추종자로 삼으며 엄청나게 강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승천 효과로 신격 또한 상당히 상승했다.
이제는 완연한 신격도 어느 정도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터.
남은 초상 연합의 간부들을 처리한 후에는 틀림없이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초상 연합의 잔재를 전부 없애고, 더더욱 많은 신앙을 모아야 해.’
그에 결의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드드드……!
“?”
돌연 땅바닥이 흔들리며 거리의 광장에서 힘의 파장이 느껴졌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잠시였다.
파아앙!
거리의 광장에서 얕은 충격파가 터지며 검은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
광장에 나타난 검은 슈트를 입은 11명의 초능력자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굳이 정보 열람 권한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설마 초상 연합의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일 줄이야.”
초상 연합 간부 12인 중 11인이 같이 나타난 것이다.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초상 연합 간부들이 나타나리라는 건 추측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나는 곳곳에 조금씩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새삼 궁금함을 느낄 뿐이었다.
‘초상 연합 간부들을 살해하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신앙이 얼마나 더 강해지려나.’
18층 스테이지 내에 있는 신앙을 어디까지 부풀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