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23
221. 등반자 (4)
「혈룡검 ‘담소천’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도전자 한성윤이 승리함으로써 승천에 0.000004% 가까워졌습니다.」
혈계식.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를 결정하는 후계자 간의 목숨을 건 싸움 같은데…….
이 전투는 생각처럼 그리 수준이 높지 않았다.
혈룡검이니 어쩌니 하는 담소천은 검기도 겨우 쓸 수 있을 정도의 하수였으니까.
‘신화 으로 얻은 승천 효과도 보잘것없는 수준이네.’
그에 혀를 차며 아쉬움을 느끼고 있자니 손에 든 혈천마검이 웅웅 떨려 왔다.
―……수준 낮군. 몇 년 더 지나면 이립은 될 것 같은 놈이 고작 이 정도라니. 대체 본교는 어쩌다 이리된 것이냐.
담천우는 충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겠다는 듯 그리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혈마신교 교주 출신인 담천우는 탑을 오르며 한때는 신이 될 자격까지 습득했으니까.
그런데 그 후예라는 것들이 이리 약하다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 음, 어……. 첫 번째 비무의 승자는, 담유준 님입니다. 과, 관중들의 뜨거운 성원 부탁드리겠…… 습니다.
해설자인 중년 무인이 이내 이전처럼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서 해설을 재시작했다.
물론 그의 말처럼 관중석에서 뜨거운 성원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숨 막힐 정도의 적막만이 감돌 뿐.
심지어 나를 조롱했던 이들은 아예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입을 닫은 관중들을 보며 히죽히죽 웃습니다!」
그것이 즐거웠는지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는 웃음을 지으며 만족했다.
그다지 감흥 있는 승리는 아니다마는…….
의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가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괜찮을 듯했다.
그런데 담천우는 그렇지 않았는지 노골적으로 대리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구나.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되다만 것들이니라.
관리자 메시지마저도 짜증이 난다는 듯 투덜거린 담천우는 이내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
추측하건대 이제 더는 이 촌극을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이 19층 퀘스트 스테이지는 돌파 보상 외에 그리 많은 보상은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퀘스트를 클리어할 심산이었다.
─그, 그럼 이제 두 번째 비무를 시, 시작하겠습니다. 태산마검 담구운 후계자는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그리고 때마침 비무대로 새로운 비무 상대가 등장했다.
새로이 나타난 적은 넓적한 대검을 든 장신의 남성이었다.
마치 괴수를 생각나게 하는 체구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흥미가 솟았다.
그는 담소천처럼 붉은 눈을 번뜩이더니 내게 짙은 살기를 흩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담유준. 이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가. 천한 사생아가 감히 본교의 교주 자리를 노리는 것이더냐.”
“그래.”
“……어디에서 기연이라도 주워 먹은 것 같은데, 정말로 차기 교주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
“사술로 흉내 낸 검강 따위론 내게 흠집도 낼 수 없을 것이다.”
사술로 흉내를 낸 검강이라…….
그에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그저 미소만을 지었다.
그 한마디로 담구운의 실력을 알 수 있었기에.
그것을 끝으로 담구운은 더는 말을 하지도 않은 채 대검을 꽉 쥔 채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이제 서로 비무를 시작해 주십시…….
그리고 중년 무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비무 시작을 알린 순간이었다.
말을 끝까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담구운이 대검을 재빠르게 내리찍듯 휘둘러왔다.
대검이 가진 파괴력을 중점으로 삼아서 좀 더 무겁게 공격해 올 줄 알았는데…….
아마도 이전에 보여 준 내 검강이 신경이 쓰였는지, 내 턴을 주지 않겠다는 듯 억지로 스피드를 끌어올린 상태였다.
심지어 어느새 대검에는 촛불처럼 흔들리는 미약한 검염마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꽈아아아아앙!
「사령이 사용자에게 가해진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혈룡검 ‘담소천’의 사령이 소멸했습니다.」
「스킬 ‘충격 차단’이 활성화됩니다.」
“뭣……! 이게 무슨……?”
검염이 깃든 이 일격을 맞고도 나는 조금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시의 보호막 그리고 18층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으로 얻은 충격 스킬 차단까지…….
얼마 없는 방어 계통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하니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이 기회로 충격 차단 스킬이 쓸 만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검염으로 받는 충격일지라도 30%는 확정적으로 충격을 차단하는 건가.”
설마 법칙 중 일부를 뒤틀어 버리는 검염의 성질마저도 차단할 줄이야.
보상 상승의 전용 권한을 통해서 스킬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운 좋은 결과를 자아냈다.
사실상 이건 일정 법칙을 다루는 신성 권능에 의해서 입는 피해도 경감시켜 줄 확률이 높았다.
엄청난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써먹을 곳이 많겠어.’
하지만 새로운 힘을 만끽할 시간은 없었다.
“이, 이까짓 같잖은 눈속임을 인정할 것 같으냐……!”
그 사이에 대검을 회수한 담구운이 울부짖듯 또 일격을 내질렀으니까.
“뭔 술수를 부렸는지 몰라도 나는 속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너는 됐어.”
충격 차단 스킬의 가치도 알았으니 이제 담구운의 같잖은 공격을 받아 줄 필요는 없었다.
콰지직!
나는 바로 왼쪽 손에 든 파천검을 휘둘러서 담구운의 대검을 부서뜨렸다.
「파천검(破天劍)이 부수기 힘든 것을 부수어 등급이 S급(1,100/50,000)으로 성장합니다.」
의외로 대검은 내구 성능이 좋은 아이템이었는지 파천검의 등급 수치가 상승했다마는…….
그렇다고 내구성 자체가 파천검의 전진을 멈출 정도는 아니었다.
촤아악!
그대로 멈추지 않고 파천검을 움직여 이어서 담구운의 목덜미까지 베어 냈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의 죽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태산마검 ‘담구운’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도전자 한성윤이 승리함으로써 승천에 0.00009% 가까워졌습니다.」
직감했다.
“다음 차례.”
이제 곧 이 혈계식 퀘스트는 끝을 맺으리라는 것을.
***
「냉혈마도 ‘담지하’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도전자 한성윤이 승리함으로써 승천에 0.0008% 가까워졌습니다.」
「혈령검귀 ‘담목선’의 사령을 흡수했습…….」
「도전자 한성윤이 승리함으로써 승천에 0.00006% 가까워졌습…….」
「추혼권객 ‘담서진’의 사령을 흡수했…….」
「도전자 한성윤이 승리함으로써 승천에 0.00017% 가까워졌…….」
혈계식은 빠르게 진행됐다.
비무대로 올라오는 적들을 빠짐없이 쓰러뜨렸지만…….
강자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는 마주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감각에 걸리는 것으로 봐서는 이 혈마신교 내부에는 확실히 검강을 쓸 수 있는 이들이 극소수나마 있는 거 같은데…….
‘진짜배기 실력자들은 대부분 후계자가 아니라는 건가.’
혈마신교 내에서도 엄청난 입지를 가진 고수들인지 전부 높은 자리에서 비무대를 내려다볼 뿐.
그 누구도 비무대로 오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그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19층 퀘스트 스테이지 클리어에 고수와의 결전 같은 건 없어도 되니까.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도전자 한성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도전자 한성윤에게 박수를 보냅……!」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도전자 한성윤에게 박수를 보……!」
실제로 의뢰인도 현재 상황이 퍽 만족스러운지 쉬지도 않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추측하건대 이대로 간다면 틀림없이 19층은 아무런 막힘도 없이 클리어하겠지.
성공 조건은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로 인정받고, 혈계식에서 무공으로 인정받는 것이니까.
찬탈자의 가죽 장갑 그리고 여러 가지 권능들을 아직 시험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걸로 수준 높은 권능 그리고 전용 권한 하나를 챙길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이제는 남은 시간도 절반 정도로 줄었나.’
연승을 거듭해서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제한이 이렇게 눈에 띄다니.
그래도 나름대로 난이도 조정을 한답시고 19층 시련에 걸맞게 퀘스트가 조정된 것일까.
만약에 이 퀘스트를 다른 도전자가 받았다면 틀림없이 남은 시간을 전부 소모했을 터다.
퀘스트 시련은 실패해도 페널티가 없다지만, 한 번에 성공할 확률 자체가 극악인 건 확실했다.
‘스피드런을 하는 기분이네.’
물론 나는 여태까지 비무 시간을 길게 끈 적이 없으니 이 스피드런도 곧 끝나겠지만 말이다.
그에 혈계식 퀘스트의 클리어 보상을 생각하며 웃음을 짓는 순간이었다.
해설자 역할을 맡은 중년 무인이 크게 외쳤다.
─……시, 실로 압도적인 실력! 담유준 님이 다른 후계자들을 모조리 패퇴시켰습니다! 전례 없는 엄청난 업적입니다!
어느새 장내에는 술렁임이 생겨나며 전음입밀의 수법에 의해서 마력이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현재 내 연승가도를 보고 놀라서 이러는 것 같았다.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는 이 상황을 즐기듯 메시지를 띄웠지만…….
의뢰인과는 다르게 나는 조용히 눈빛을 가라앉힌 채 사태를 관망했다.
왜인지 모르게 분위기가 일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제부터 혈계식의 최종 심사는 후계자 간의 비무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다음 순간.
─이, 이제부터는 혈마신교 14대 혈마이신 담선묵 교주님께서 직접 차기 교주의 적합성을 심사합니다!
터벅, 터벅…….
절도 있는 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관중들이 일제히 일자로 길을 터 주며 그 사이로 한 백발의 미중년이 걸어왔다.
확실히 복장 자체도 엄청나게 화려하다마는…….
여태까지 본 후계자와는 다르게 그 눈에서 느껴지는 기백 자체가 아예 격이 달랐다.
그에 나는 즉각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자가 바로 이 19층 퀘스트 스테이지에서 가장 강한 자라는 것을 말이다.
“…….”
그는 어느새 비무대까지 올라오더니 뒷짐을 진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호오. 심검지경(心劍之境)까지 이르렀는가. 놀랍구나. 이 드넓은 중원에 있는 무인 중 심검지경에 도달한 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거늘.”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담선묵은 정확하게 내 경지를 파악했다.
‘아니, 이걸 바로 알아챈다고……?’
그에 나는 이내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심검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걸 알아낸 건 그가 처음이었던 탓이다.
실제로 다들 내가 심검을 다룰 줄은 몰랐다는 듯 장내는 순식간에 또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담선묵은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며 한탄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마음이 드는군.”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담유준은 검기도 쓸 줄 모르고, 사술과도 아예 인연이 없는 자식이었거든.”
다음 순간.
“검기도 사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들이 갑자기 심검지경까지 도달할 리 없잖은가?”
상정 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아들인 척하는 외부자.”
……그것도 아주 골치 아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