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24
222. 등반자 (5)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바로 전투 집중 스킬을 통해서 사고를 가속시켰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려진 세상 속에서 재빠르게 생각을 이어 갔다.
‘……미치겠네. 19층 스테이지에서 내 정체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 외로 상황이 많이 골치가 아파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혈마신교의 현직 교주라는 담선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가짜라고 판단했으니까.
18층 스테이지 최종 보스인 찬탈자는 외부 개입이 있었다지만…….
이번에는 아예 외부 개입 따위는 일절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담선묵은 나를 탑에서 온 도전자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탑의 도전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은 것과는 상관없이 후계자가 아니게 됐다는 게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19층 퀘스트 스테이지의 클리어 조건 중 하나는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로 모두에게 인정받을 것’이니까.
이미 반쯤은 퀘스트 실패인 상황이라 보아도 좋았다.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현재 상황에 크게 당황합니다.」
실제로 이 퀘스트를 의뢰한 장본인마저도 이럴 줄 몰랐다는 듯 초조하게 굴었다.
‘후계자도 아니라고 밝혀졌는데 차기 교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리는 없지.’
물론 19층 시련을 대체하여 진행되는 퀘스트이므로 실패해도 페널티는 없다마는…….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 클리어 실패로 인해서 퀘스트는 다시는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그리 된다면 이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모든 보상이 공으로 돌아간다.
그에 나는 눈덩이를 굴리듯 생각을 빠르게 이어 가며 최대한 좋은 수를 떠올리기 위해서 애썼다.
그리고.
‘어쩔 수 없나.’
생각 끝에 나는 바로 반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투 집중을 해제했다.
「스킬 ‘전투 집중’이 비활성화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듯이…….
퀘스트도 어차피 성공 조건을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굳이 상대방이 거짓된 신분을 간파한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추측한 대로 저는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차기 교주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아니죠.”
성공 조건으로 붙은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 그리고 ‘혈계식에서 모두에게 무공을 인정받을 것’.
이건 전부 인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존재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기 교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 그리고 무공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없으면 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생각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면 제가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인 거잖습니까.”
19층 스테이지 내에 있는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
「업적 ‘틀을 부수는 발상’을 달성했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퀘스트의 성공 조건 중 가장 크게 방해되는 것은 바로 ‘모두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문구였다.
본래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억지로 모두에게 인정받을 생각이었다마는…….
생각보다 상황이 꼬이는 바람에 아예 후계자조차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아예 인정받는 게 불가능해진 탓이다.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길은 있었다.
바로…….
‘이 19층 스테이지에서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빼고 전부 죽이면 돼.’
부정적인 심사원들은 전부 배제하는 것이다.
이 퀘스트의 성공 조건 중 나를 차기 교주로 인정할 수 있는 소수의 인물만이 있으면 그만이다.
사람도 많으니 그 정도의 최소 조건은 만족시킬 수 있겠지.
그러니 이제는 귀찮게 주어진 컨셉에 몰입할 생각도 없었고, 나는 쌍검을 꽉 쥔 채로 눈빛을 침잠시켰다.
‘정도든 사도든 결과만 같으면 상관없지.’
물론 이게 성공할지 실패할진 몰라도 최후까진 발버둥쳐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 담선묵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웃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놀랍군. 잠시 머리를 굴리는 것 같길래 뭔지 궁금했는데. 설마 그런 생각을 했을 줄이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어서 말했다.
“어째서 자네 같은 자가 차기 교주 같은 자리에 이리 집착하는지 모르겠군.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에 자네 같은 괴물이 집착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마는.”
“어차피 말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흐음. 알겠네. 그럼 어쩔 수 없지.”
“…….”
생각 외로 담선묵은 깔끔하게 차기 교주 자리를 왜 노리는지 캐묻는 걸 그만뒀다.
그 대신에 그는 다른 쪽으로 더 흥미가 있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보다는 대체 자네가 누구인지 궁금하군.”
담선묵은 마치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눈빛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어디에서 자네 같은 괴물이 나왔을까. 그것이 심히 궁금하단 말이지.”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어느 정도는 있지. 예를 들자면……. 그렇군. 자네를 차기 교주로 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네.”
“그게 무슨…….”
그에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담선묵을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고작 내 정체를 알아낸다고 후계자도 아닌데 차기 교주의 자리를 넘기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화룡안으로 판별해 보니 그는 딱히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담선묵은 후계자가 아닐지라도 차기 교주 자리를 넘겨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차기 교주를 처음 보는 타인에게 넘겨준다는 겁니까?”
“정말로 자네가 불순한 의도 없이 차기 교주직을 바란다면 그렇겠지.”
“…….”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이군.”
“……당연하잖습니까. 고작 정체 좀 안다고 차기 교주 자리를 넘긴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리 없─.”
그 말이 이어지기 직전에 담선묵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그럼 자네가 이렇게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건 이해가 되고?”
“…….”
할 말이 달리 없었다.
그의 말처럼 나도 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해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니까.
“자네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듯이, 나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뿐이네.”
담선묵은 그리 말하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차기 교주라는 쓸모없는 자리를 내주고, 자네 같은 괴물이랑 비무(比武)를 할 수 있다는 것이려나.”
“고작 그 정도의 이유로 차기 교주 자리를 넘겨준다고……?”
“그렇다만, 문제라도?”
“…….”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괴짜다.
하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생각 없는 괴짜는 아니야.’
현재 담선묵은 나를 이용할 생각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차기 교주의 자리를 스스럼없이 내주겠다고 한 것이겠지.
물론 감각 강화를 통해서 그의 겉면에 드러난 감정을 읽었으니 정확한 심상은 읽을 수 없었다.
단지, 짙은 탐욕을 느낌으로써 그러한 생각이 있다는 것 정도만을 추측하고 있을 뿐.
애초에 시련이 끝나면 볼 사이도 아니니 더 깊은 생각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아. 설마 본좌의 후예가 이런 광인 중의 광인일 줄이야. 머리가 아프군.
담천우의 개탄하는 것 같은 말에 나도 은연중에 동감했다.
확실히 제정신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귀찮게 퀘스트 실패를 걸고서 도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그 탓에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난장판을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예 조건 없이 차기 교주 자리를 주겠다는 건 아니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조건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으니 빨리 말해 주시죠.”
“그러지. 뭐,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최대한 간단한 세 가지 조건을 걸 생각이네.”
“그렇습니까.”
그에 나는 바로 담선묵이 제시할 조건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눈치챘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는 차기 교주로서의 책무를 일정 부분은 완수할 것이고.”
수많은 능력에 의해서 강화된 감각이 알려 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네에게 불순한 의도가 없음을 최대한 증명하는 것이며.”
어느새 담선묵에게서 한없이 강렬한 호승심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을 말이다.
“세 번째는 차기 교주로서 자격 증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랑 비무하는 것일세.”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받아들이겠는가?”
그는 달리 복잡한 탐욕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대에게 혈마신교의 차기 교주 자리를 주겠네.”
단지, 그는 순수하게 목숨을 건 비무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무림인답다면 무림인답다고 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이해해 줄 순 없을지언정 그럭저럭 납득하는 것 정도야 가능했다.
여태까지 본 무림인은 원래 이렇게 호승심이 강한 족속들이었으니까.
그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다음 순간.
“부디 차기 교주 자리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증명해 주게.”
콰아아아아아아!
담선묵의 신체에서 실로 압도적인 힘을 품은 핏빛 기운이 뿜어졌다.
***
혈마신공(血魔神功).
신체 재생력을 크게 늘려 주고, 혈액 지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절학 중의 절학.
이는 이전에 담천우를 통해서 배운 적이 있는 무공이었다.
여태까지 혈천심공 권능에 덧붙이듯 사용해서 잘 써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것만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썩어도 혈마는 혈마라는 것인가. 대단하군. 혈마신공을 극성까지 익히는 미친놈은 흔치 않거늘.
현재 담선묵이 흩뿌리는 붉은 기운은 17층에서 본 천마와도 필적했다.
실제로 담천우 또한 신음을 흘리며 담선묵의 힘을 인정할 정도.
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내 권능을 발동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출력을 끌어올릴 필요성을 느낀 탓이다.
「권능 ‘혈천심공’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몸에서도 핏빛 기운이 폭주하듯 피어오른다.
마치 신체가 하나의 증기 기관이 된 것 같은 모습.
그걸 본 담선묵이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기본적인 심공이라 해도 본교의 무공을 익혔다, 라…….”
그는 붉은 눈빛을 일렁이며 기껍다는 듯 말했다.
“하하! 그렇다는 것은 자네는 본교의 교도 중 하나라는 거군! 그래, 이러면 불순한 의도는 없다는 건 증명했겠어!”
미친 소리.
애초에 진짜 담유준도 아닐진대 내가 혈계식에 참가한 것 자체가 불순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혈마신교의 다른 후계자들이 모조리 사망했으니 더더욱 그러할 터.
내게 불순한 의도가 없음을 해명하는 것은 물론 진작에 건너간 상태다.
그런데도 이리 말한다는 것은 그가 나와의 비무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담선묵은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는 듯 붉은 마력을 더 빠르게 끌어올렸다.
“그럼 이제 자네의 실력을 증명할 시간이네!”
다음 순간.
강화된 감각의 끄트머리에 담선묵의 심장에서 돌연 붉은 신성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심검(心劍)이었다.
「신화 가 활성화됩니다.」
「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4 상승합니다.」
「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현재 49,972명의 추종자가 있으므로 신성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후우웅-!
그에 나는 바로 로 신성력을 강화하고는 외부로 신성력을 방출했다.
쩌저저저저적─!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외부로 방출된 신성력이 극도의 냉기가 되어서 난무했다.
이전에 승천 효과로 얻은 신성 치환 능력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비무대가 얼어붙고, 찰나지간에 쏘아진 심검이 흔적도 없이 상쇄됐다.
신화로 강화된 신성력은 이제 심검마저도 기세로 지워 낼 정도였다.
「권능 ‘겨울의 왕’이 조건을 충족하여 자동으로 활성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증폭되며 사용자는 냉기에 일절 영향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신성에 의해서 비무대 전체에 극도의 냉기를 흘리며 권능이 추가로 활성화되었다.
어느새 신체에 차오른 활력을 느끼며 나는 바로 발을 굴렀다.
「권능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8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8]」
이어서 나는 한줄기의 돌풍이 되어서 쏘아졌고, 담선묵의 입꼬리가 더없이 크게 솟구쳤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하……!”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권능 ‘순보’가 활성화됩니다.」
「10분 동안 해당 권능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부여됩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시야 내의 원하는 지점으로 즉시 이동합니다.」
사실상 바람의 은총으로 달린 것은 페이크.
순보 발동 전조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에 가까웠다.
실제로 찰나 사이에 담선묵의 눈이 크게 떠졌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내 왼손이 그의 몸통에 닿았다.
물론 담선묵은 말도 없이 재빠르게 몸통을 틀어서 스치는 정도로 데미지를 줄였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찬탈자의 가죽 장갑(SS+) 전용 효과 ‘스킬 강제 대여’가 활성화합니다.」
「상대방이 가진 스킬 중 한 가지를 지정하여 10분 동안 해당 스킬을 빌려서 씁니다.」
「스킬 대여 대상을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랜덤으로 상대방의 스킬 중 하나가 지정됩니다.」
「스킬 ‘무형검(SS-)’을 10분 동안 상대방에게서 강제로 대여합니다.」
어차피 본론은 이쪽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