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3
022. 헌터 한성윤 (2)
장비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한 후.
시련의 탑 전용 명령어를 천천히 실험해 봤다.
포인트로 구매했던 장비들을 가지고 올 수도 있었으니 명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역시 이건 안 되네.”
시련, 정보, 커뮤니티, 상점, 인벤토리 등등.
그 어떠한 명령어도 먹히지 않았기에 곧 포기했다.
‘뭐, 이게 됐으면 더 이상했겠지.’
인벤토리만 해도 그 사기성이 어마어마한데 쓸 수 있었다면 파급력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깔끔하게 미련을 접고는 이내 옷장에서 적당한 옷을 마련했다.
그렇지 않아도 땀과 피에 절어서 악취가 장난이 아닌데 더 입고 있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껏 입고 있을 수 있던 게 신기한 편이지.’
포인트를 쓸데없이 소비하지 않겠다는 일념 아래에 이뤄 낸 업적이었다.
이어서 샤워기의 물을 틀고 뜨거운 물로 온몸을 씻어 냈다.
피부에 말라붙은 핏물을 박박 문지르고 목욕용품을 이것저것 써 가며 몸을 깨끗이 했다.
그러나 그렇게 두 시간을 씻었음에도 묘한 향취가 떠나가지를 않았다.
그렇게 다 씻은 후, 머리를 수건으로 박박 문지르며 거울을 보았다.
전에는 은연중에 드러났던 근육이 폭력적으로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능력치의 변화, 그로 인해서 벌어진 신체적 성장이었다.
“흠, 이렇게 변했던 거구나.”
거울로 보지 못했기에 실감하기 어려웠는데 직접 보니 느낌이 다르다.
겉모습만 보면 숙련된 사냥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실상은 단기전투로 급격하게 성장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보기는 좋네.’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비싸지는 않은 침대라지만 대기실에 있던 침상보다는 몇 배 나은 느낌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일련의 과정만으로도 500포인트가 아깝지 않았다.
‘와,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
그저 몸을 깨끗하게 씻고 푹신한 침대에 누운 것일 뿐인데도.
몸이 느끼는 편안함은 시련의 탑에서 있을 때보다도 더 강렬했다.
이대로 누워서 잠을 청하고, 일어나서는 온갖 음식을 먹으며 나태하게 지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의 자극에 의지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채찍이든 당근이든 간에 나는 자신을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일단 필요한 것들부터 정리해 볼까.’
몸을 침대에 눕힌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천천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굳이 지구로 돌아오게 된 건 크게 세 가지의 이유에서였다.
첫째, 심리적인 피로를 지구에서 풀어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둘째,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서 회원비의 50%를 환불받기 위해서.
셋째, 헌터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고,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
‘사실상 셋째가 제일 중요하지.’
지구로 돌아온 세 번째 이유는, 헌터 시험이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고 괴수들을 사냥할 수 있는 자격.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7년간 나는 그것만을 목표로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으니까.
일단 헌터 시험을 봐두면 얻을 게 많기도 했고.
‘지금으로서는 일단 헌터 시험의 통과는 확실하겠지.’
헌터라고 했던 이들도 내 손에 꺾였고 괴수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문제는 그게 어느 등급으로 쳐 줄 수 있느냐다.
헌터 시험에서는 응시자의 등급을 매길 때, 최대 C급까지 매길 수 있다.
‘과연 어느 정도로 평가받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헌터 시험을 통과하며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정식적으로 아이템을 매각할 수 있게 되고 게이트의 출입이 자유로워진다.
그게 지구로 돌아올 만큼 중요한 안건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즉답할 수 있다.
‘시련의 탑에 소환된 건 나만이 아니야.’
플레이어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또 전문적인 헌터도 있다.
5층에 다다른 이들도 늘었으니 곧 시련의 탑에 관해서 정보가 풀릴 것이다.
그럼 그때를 위해서도 미리 헌터 시험에 응해 두는 게 좋았다.
헌터는 정보든 뭐든 간에 일반인보다 수십 배는 우월한 위치에서 선점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의 혜택을 쓸 수 있는 기본 요건이 바로 정식 헌터라는 거고.
‘나중에는 헌터 시험에 응시자들이 넘칠 테니 지금이 적기겠지.’
확실했다.
일반인도 꽤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헌터가 될 수 있는 자들이 많다는 거니 말이다.
‘아이템 매각을 위해서라도 헌터 시험은 쳐야 해.’
일반인이 아이템을 팔 때 크게 수수료도 들고 사기도 당하지만, 헌터들은 그렇지 않다.
수수료도 적고 사기를 당하는 일도 거의 없다.
왜?
‘그 누구보다 아이템에 잘 아는 게 헌터들 본인일 테니까.’
그러니 아이템을 매각할 때도 헌터들은 대우부터 달랐다.
반면 내가 지금 헌터 지망생이라며 가져갈 시,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설령 다행스럽게도 뒤통수를 맞지 않아도 수수료 부담이 강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헌터 라이센스는 필요했다.
‘헌터 시험은 일단은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게 먼저겠고…….’
이어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꼬르륵.
“……그렇네, 이것도 해결해야지.”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헛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제 육포 같은 거로 배를 때울 시기는 지났지.
몸도 깨끗해졌으니 이제 더 밖에 나가는 걸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오면 먹으려고 했던 게 있었는데, 잘됐네.”
***
치킨, 콜라, 피자, 햄버거, 곱창, 족발 등등.
시련의 탑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은 아주 많았다.
인간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식욕을 많이 느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에 관심이 쏠렸다.
물론 자제력이 있었기에 육포로 그냥저냥 배만 채웠지만…….
육포를 먹으면서도 온갖 음식을 생각했던 게 몇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간절하게 바란 음식은 없었지.’
뚝배기 안에 담긴 맑은 국물, 그리고 거기에 푹 잠긴 돼지고기를 보았다.
원룸 근처에 있는 전통이 깊은 국밥집의 돼지국밥이었다.
치킨이니 피자니 그런 것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제일이었다.
‘그런 거 먹을 바에는 뜨끈한 국밥을 먹지.’
양념을 잘 저어서 국물에 풀고 한 숟갈 떠서 먹으니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얼큰하면서도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넘어가는 순간.
“크…….”
입을 열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저절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어서 밥도 한 숟갈 퍼서 국물에 적셔 입에 넣으니 더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더 이런저런 생각은 하지 않고 국밥을 싹싹 긁어서 먹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국밥을 두 그릇 추가했고, 그제야 속이 좀 차는 거 같았다.
몸이 뜨듯해지니 노곤함이 몰려왔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지갑을 꺼내서 계산을 마쳤다.
아, 시련의 탑에 들어갔을 때 사라진 줄 알았던 지갑은 살펴보니 침대에 떨어져 있었다.
덤으로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로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던 상태였다.
배터리는 좀 부족했지만, 그런대로 쓸 수 있었기에 가지고 나왔다.
“후, 배부르다.”
배를 채우니 이제야 좀 머리가 슬슬 돌아가는 느낌이다.
흠, 이제 해야 하는 건…….
‘체육관에서 회원비를 환불받는 거겠지.’
솔직히 규모가 큰 체육관이었던 만큼, 거기에 많은 돈을 쏟았다.
돌려받지 않는 게 손해였다.
하지만 밥을 먹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아, 물론 자존심 때문에 그 돈을 돌려받기 싫다는 배부른 심보는 아니고.
‘체육관 타이틀을 쓸 수 있으면 쓰는 게 낫지 않나?’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 중에는 헌터 시험을 빠르게 볼 수 있는 혜택이 있다.
지금껏 내가 다니던 체육관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헌터 시험은 응시를 신청하면 빠르면 하루고 늦으면 이틀이 지난 뒤에야 응시할 수 있다.
‘그럼 귀환하게 될 때까지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겠지.’
그러나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 다녔음을 이용한다면 그 시간은 현저히 단축된다.
체육관 관장이 응시자를 보증할 시, 귀찮은 과정은 생략하고 실기부터 보니까.
물론 실기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 못하면 곤란하겠다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급전이 필요한 문제 때문에라도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다만.
시련의 탑에서 아이템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게 밝혀진 이상, 더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헌터 시험을 통과한 후, 아이템을 바로 매각해 버리면 그만이니.
‘솔직히 체육관 관장은 꼴도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겠네.’
쓸 수 있는 게 있으면 쓰는 게 옳다.
네크로맨시도 그랬듯 쓰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건 나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탑에 돌아갈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최대한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써서라도 탑의 시련에 대비해야지.’
뚜르르, 뚜르르.
결심이 바로 선 만큼, 행동도 그만큼 빨랐다.
발신음이 몇 번 울리더니 이내 스마트폰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 백련의 관장, 황만호입니다.
썩 달갑지 않은 목소리, 그걸 들은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접니다. 기억하시겠죠, 관장님?”
-그럼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회원비 환불은 인터넷으로 신청하셔도 됐을 텐데.
말투에서 귀찮음과 은근한 멸시가 묻어나왔지만, 뭐, 상관은 없다.
“그건 됐습니다. 회원비 환불은 안 해 주셔도 됩니다.”
-……그 말, 진심이시죠? 나중에 무르시면 안 됩니다?
“무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백련 체육관을 더 이용하고 싶다는 거면, 절대로 안 됩니-
“헌터 시험에 응시하게 도와주시죠.”
순간, 정적이 짙게 깔리며 스마트폰 너머가 조용해졌다.
무슨 말을 한 것인지조차 못 알아먹었다는 듯한 반응.
하지만 곧 상황을 파악했는지 체육관 관장, 황만호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원님, 능력치 평가가 어떠셨는지 기억하시고 있으신가요?
“…….”
-회원님은 종합 능력치 평가에서 F급을 받으셨어요, 낙제점이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고유 특성도 없고, 스킬도 없는 분이 대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황만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주제를 좀 파악하고 살라고.
‘그래, 그러려고 했었지.’
사실, 그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몰라도 나는 그 어느 것도 가지지 못했던 최약체 플레이어였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예전의 얘기다.
“그래서 회원비를 드려도 못 해주시겠다, 이겁니까?”
도발에 맞대응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니 황만호가 대답했다.
-저야 뭐, 돈을 주신다면 거부할 생각은 없죠. 7,000만 원이 적은 돈인가요.
7년간 백련 체육관에 바쳐온 돈을 거들먹거리니 좀 씁쓸하기는 했다.
그만큼 시련의 탑에 들어가기 전의 나는 보잘것없었다는 거니.
여전히 비꼬는 말투이기는 했지만, 수락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 성립됐군요, 오늘 바로 헌터 시험에 응하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오늘, 오늘이라. 며칠 사이에 자신감이 붙으셨나 봐요.
황만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렇게 물음을 건네 왔다.
며칠, 그렇겠지, 황만호가 보기에는 내 모습이 헛된 자신감에 찬 것처럼 보일 터다.
고작 며칠 사이에 자신감이 늘어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가진 거라고는 독기뿐이었던 놈이 실력이라도 얻게 된 듯 구는 게 이해할 수 없었겠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다면 틀리지는 않았다.
능력치, 고유 특성, 스킬 등등.
황만호가 말했듯 기본적으로 헌터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능력들.
그 모든 게 시련의 탑을 거쳐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새로 생겨났으니까.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자만도 과신도 뭣도 아니라고.
마땅히 가져야 하는 자신감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황만호의 말에도 밀리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헌터 지망생, 한성윤이었다면…….
“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정한 헌터 한성윤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