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4
023. 헌터 한성윤 (3)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 백련의 사무실.
“미친 새끼, 자기가 무슨 천재라도 된 줄 아나?”
백련의 관장, 황만호는 오랜만에 짜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가 이렇게 흥분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회원비는 안 돌려줘도 되니 헌터 시험을 보게 해 달라니, 지랄하네.”
황만호는 묵묵히 수련에만 집중하던 한 남자를 떠올렸다.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 백련의 이미지를 깎아 먹던 골칫덩이로 여겼던 놈.
‘한성윤.’
능력치도, 스킬도, 고유 특성도 그 어느 것도 평범하지 않다.
운동을 좀 하는 일반인에 가까운 능력치, 그리고 습득 조건을 만족해도 스킬이 생성되지 않는 경악스러운 적성과 개방되지 않은 고유 특성을 떠올렸다.
그래, 그것도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이다.
그 어떤 플레이어도 한성윤보다 약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7년이나 수련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그러나 그 노력을 배신하는 헌터로서의 적성은 황만호에게 늘 불쾌함을 안겨 줬다.
‘머저리 새끼, 적성이 없는 걸 알면서도 왜 노력하는데.’
황만호가 보기에 한성윤이 헌터가 될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수련하는 모습이 거슬렸다.
능력치도 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고유 특성이나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노력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회원비는 싸지 않은 편이었기에 돈이나 좀 먹으려 했던 마음이 있었긴 했다만.
‘그걸 7년이나 할 줄은 몰랐지, 나도.’
독한 걸 넘어선 무언가, 광기에 다다른 집착에 황만호는 섬찟함을 느꼈을 정도.
헌터로서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저주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 광적인 집착이 좀 껄끄럽긴 했지만, 돈은 꼬박꼬박 냈기에 그렇게 몇 년을 대충 가르쳤다.
사실 제대로 가르친 것도 아니고, 적성이 없음을 깨닫고는 알아서 수련하도록 방치를 했다.
그러면 몇 달은 더 다니다가 그대로 체육관을 제 발로 나갈 거라 생각을 했기에.
그러나 한성윤은 헌터를 지망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유명인이 될 정도로 독했고.
결과적으로 황만호는 한성윤이 체육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싶어서 그를 내쫓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성윤의 광적인 수련도 거기에서 끝을 맺는 줄 알았다.
한데 한성윤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헌터 시험에 응시하게 도와주시죠.
건방졌다.
돈을 돌려달라고 한다면 절반은 곧바로 돌려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대뜸 한 말이 돌려줄 필요도 없이 시험이나 보게 해 달라는 말이라니.
‘뜬금없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고작 그딴 걸 줄은 몰랐지.’
최후의 자존심이라는 것인지 어이없는 요구였다.
헌터 시험은 응시를 신청하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틀 정도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누구든지 각성을 한 플레이어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황만호가 참관인으로 동행해도 기껏해야 필기나 면접 따위의 과정만 생략될 뿐.
‘근데 그 과정을 생략하려고 헌터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했을 리는 없고.’
추측하건대 한성윤은 자신에게 엿을 먹이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이 나왔음에도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헌터 시험을 통과하려고 하는 걸까?
‘능력치도 플레이어 중 최약체고, 스킬도 없고, 고유 특성은 개방이 안 됐는데.’
뭘 무기로 삼아서 싸울 수는 있는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때 문득 황만호의 머릿속에 한 가지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고유 특성이라도 개방했다면……?’
헌터마다 고유하게 가진다는 능력, 그걸 얻었다면 자신감이 생긴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게 뛰어나다고 해도 한성윤의 능력치는 허접했다.
‘근력이든 마력이든 아니면 다른 뭐든 간에…….’
고유 특성이 빛을 보기는커녕, 묻히기 쉬운 처참한 능력치였다.
설령 고유 특성을 얻었다고 해도 그가 그동안 뭔가를 이뤘을 리는 없었다.
대부분 헌터의 능력은 던전에 가야만 성장시킬 수 있으니까.
‘일개 헌터 지망생이 능력을 성장시킬 방법은 없지.’
게이트의 출입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근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고민할 건 없었다.
“건방진 놈,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구나.”
그저 그렇게 여기며 황만호는 이내 사무실에서 코트를 챙겨서 나갈 채비를 했다.
헌터 협회의 절차를 생략하려면 참관인으로서 동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변화가 있었을지는 궁금하다만, 그래 봤자지.’
애초부터 태생이 다르다.
뱀의 머리는커녕 꼬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지닌 한성윤이 뭘 할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 둘까.”
황만호는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헌터 협회의 감독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헌터 시험에 참관할 생각인데, 제가 참관하는 응시자가 최대한 빠르게 탈락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시험 조작, 유명 길드나 체육관의 관장이 애용하는 방식.
본래라면 유망주들의 합격 등급을 올려주기 위해서 사용할 때는 거액을 후원해야만 한다만.
‘연줄도 없는 헌터 지망생 한 명을 탈락시키기에는 충분하지.’
황만호는 헌터 협회에도 연줄이 있었고 그걸 이용하여 한성윤을 떨어뜨릴 셈이었다.
별로 이유랄 것도 없이 눈에 거슬렸다는 것에서 비롯된 악의였다.
적성도 뭣도 없는데 노력한다는 것에 대해서 느끼게 된 거슬림.
황만호의 악의는 그가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라면 직접적인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시기심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류의 감정이었다.
명분이 없는 추악한 악의, 그걸 황만호도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능력과 인맥, 그 어느 것도 볼품없는 플레이어 한 명을 매장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이내 준비를 끝낸 황만호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의정부시에 있는 헌터 협회, 그곳이 한성윤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도전이 될 터였다.
***
의정부시의 헌터 협회, 그 앞에 선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일 년 정도 들리지 않았던 장소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랜만에 와 보네.”
한때 부푼 꿈을 안고 헌터 협회에 온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끝이 좋지는 않았기에 입에 걸린 웃음도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필기는 잘 봤는데 실기는 낙제점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들었지.’
순위권에서도 1등을 다툴 정도로 뛰어났던 필기, 그리고 그런 필기의 압도적인 우위를 끌어내리는 실기를 본 감독관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후의 시험에서도 마찬가지로 들은 것이기도 했다.
다만, 달라진 게 있었다면 어째서 이렇게 열성적으로 시험을 보러 오냐고 묻는 것 정도.
물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더 물음을 건네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게 오래 걸렸네, 참.’
시련의 탑에서는 최대한 억제하려고 했던 감정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념을 이어갈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도착해 계셨군요, 한성윤 회원님.”
문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회색 코트, 그리고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를 한 스포츠머리의 남성.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황만호 관장님.”
헌터 시험의 전반적인 절차를 생략하게 해 줄 장본인이 등장했다.
황만호는 손등에 찬 고급 브랜드의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띠웠다.
“……하하,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건 아니지 않나요?”
“최근에 좀 기괴한 일들을 겪어서 그런가, 그렇게 느껴지네요.”
“……기괴한 일이라고요?”
“예.”
황만호는 기괴한 일들을 겪었다는 말에 의문을 표했다.
하긴, 저렇게 의문을 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째서 내가 헌터 시험에 이렇게 당당하게 응시했는지 알고 싶었을 테니.’
다만, 알려 줄 듯 안 알려 주는 게 제일 약을 올리기 좋다.
좀 옹졸한 걸 수도 있지만, 나는 황만호에게 그렇게 친절히 굴 생각이 없었다.
지금껏 이런저런 멸시를 받아온 만큼, 좋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게 심하게 옹졸하지는 않아도 악의를 그대로 수용할 만큼 큰 그릇은 아니다.
남의 악의를 그대로 수용해 줄 수 있는 그릇은 적어도 내게 없었다.
시련의 탑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였고.
황만호도 더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챘는지 한 번 입꼬리를 꿈틀거리더니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회원님, 헌터 시험에 응시하고 싶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그것만 도와주시면 돈을 돌려 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흠, 좋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흡사 뭘 하든 간에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듯한 말투였다.
“아, 그리고 제가 헌터 시험에 참관인 역을 자처해도 생략할 수 있는 건 이론 부분, 면접 같은 과정들뿐입니다. 괜찮으신 거겠죠?”
그걸 위해서 체육관의 타이틀을 이용한 것이니 당연히 괜찮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연락은 제가 해 뒀으니 들어가시죠.”
그렇게 말을 마친 황만호는 저벅저벅 헌터 협회의 건물로 들어섰다.
“백련 체육관의 황만호입니다, 한성윤 응시자의 헌터 시험에 참관인으로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헌터 협회로 오며 언질을 줬던 게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말을 하니 곧 검은 정장을 입은 딱딱한 인상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시험을 맡을 감독관 김인후라고 합니다.”
본 적도 없는 얼굴, 그리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
‘참관인과 동행하는 게 좋기는 하네.’
평범한 감독관이 아니라 꽤 높은 직급의 직원이 나온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소리가 있기는 했지.’
유명한 체육관의 관장이나 특정 길드의 간부를 참관인으로 두고 시험에 응시하게 될 시, 만나게 되는 건 평범한 감독관이 아니라고.
실제로 헌터로서 최전선에 뛰어도 괜찮은 이가 감독관으로 배정된다고 말이다.
그만큼 실력 측정에 있어서 오차가 줄어들고 평가절하를 받을 일은 없다고 했다.
‘물론 그 감독관이 정확한 평가만 하려고 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 점은 다행이다.
만약에 감독관이 좋지 않아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면 찝찝했을 테니까.
김인후는 슬쩍 나를 보더니 이내 황만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참관인으로 오신 건, 후원자로서 오신 겁니까?”
김인후의 물음이 무엇인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본래 유명 길드의 간부들 같은 경우에는 유망주들의 시험에 참관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후원자라는 포지션을 잡으면 어떻게든 유망주를 밀어주겠다는 뜻이 된다.
그럼 헌터 협회는 유망주가 좀 더 실력을 발휘하기 쉬운 시험을 내준다.
물론 그건 힘 있는 놈들의 이야기고, 내게 해당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참관인으로서만 온 겁니다.”
황만호의 말에 김인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시험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김인후의 뒤를 따라가니 이내 꾸준하게 보아왔던 헌터 협회의 시험장이 나타났다.
꽤 큰 유리로 된 벽의 너머로 온통 새하얀 정사각형의 석실이 눈에 들어온다.
참관인과 감독은 여기에서 구경하고, 응시자는 저기에서 싸운다.
이전과 다를 바가 없는 익숙한 구조였다.
그제야 가만히 있던 김인후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헌터 시험의 실기에 관해서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아뇨,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있는 난이도 중 원하시는 걸 골라 주십시오.”
“…….”
이 새하얀 석실에는 원하는 괴수를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물론 마력의 장치로 구현된 것이기에 어느 정도 한계는 있다만.
‘적어도 D급 괴수까지는 무리 없이 구현할 수 있지.’
이전의 헌터 시험에서 나는 전부 1단계로 응시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등장한 고블린에게 나는 늘 패배했다.
왜?
‘약했으니까.’
고블린을 손쉽게 끝내지 못하고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싸우니 탈락으로 처리됐다.
정확하게는 목숨을 건 전투를 하기 직전에 탈락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야 응시자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우면 그때도 고블린을 이길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기는 건 헌터가 아니지.’
고작 고블린을 상대로 목숨을 걸어야 겨우 이긴다면 헌터라 할 수 없다.
사냥꾼이라는 건 언제든 사냥할 수 있는 위치를 취해야 한다고.
그러한 말을 들으며 나는 열일곱 번을 헌터 시험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시련의 탑에서 튜토리얼 시련을 진행할 때는 달랐다.
‘뭘 어떻게 해서든 간에 살아남으면 됐지.’
그 덕분에 나는 자신이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련의 탑은 악랄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도전자에게 공평하다.
내용은 악랄할지언정 그걸 이겨 내면 달콤한 보상이 돌아온다.
그 덕분에 샌드 골렘을 이겼던 나는 오크를 이기게 됐고.
더 나아가서 보다 강한 괴수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 나는 더 예전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진 후, 나는 담담하게 내린 결론을 입에 담았다.
“10단계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