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5
024. 헌터 한성윤 (4)
후회는 없었다.
애초부터 나는 이 단계가 제일 적절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황만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회원님, 진짜로 10단계로 하실 겁니까?”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그 난이도를 통과할 거냐고 묻는 듯한 어조였다.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한데…….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딱 이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기도 하고.
여러모로 ‘시련의 탑’이 쭉 올라가기를 도전할 만큼 매력적인지도 재차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10단계로 맞춰드릴 테니 안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김인후는 담담한 표정으로 안내를 이어 나갔다.
아예 감정이 없다는 듯이 구는 게 흡사 기계처럼 느껴졌다.
후원의 성향을 띤 게 아니면 시험이 어떻게 되든 간에 상관이 없다는 것 같기도 하고.
‘흠, 이렇게 보니 꽤 속물적이네.’
하기야 헌터 협회도 지금껏 논란이 꽤 많았으니 이 정도 비리는 가벼운 편이겠지.
저벅, 저벅.
나는 담담하게 개방된 유리문으로 발을 옮겼다.
백색의 석실, 그 안에 들어서니 이내 유리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안내음이 들려왔다.
위이잉.
「한성윤 응시자의 헌터 시험이 시작됩니다.」
「해당 시험은 최고 단계, 10단계로 최종 합격 시, 최소 D급 헌터부터 시작합니다.」
「우측에 있는 장비 중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골라 주십시오.」
「3분 후, 전방의 검은 원에서 괴수가 등장할 테니 대비해 주십시오.」
‘D급 헌터부터 시작이라, 좋네.’
본래라면 꽤 시간을 바쳐야 다다를 수 있는 등급부터 시작한다니.
시작점 중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그만큼 시험의 내용도 어렵겠지만, 나는 긴장하기보다는 기대감을 느꼈다.
뭘까, 무슨 괴수가 나오게 되는 거길래 이렇게 비장한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설마 도플갱어 정도로 강한 괴수로 나오는 건 아니겠지?’
C급에 근접하는 전투 능력을 지닌 놈을 떠올리니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3층의 일대일 전투에서 꽤 고역을 치렀기에 아직도 그 전투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도플갱어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일대일이 조건이라면 그렇겠지.’
물론 그게 네 마리 정도 된다면 좀 곤란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물리 저항이니 신체 변형이니 꽤 가진 게 많은 괴수였으니까.
하지만 돌려서 말하자면 그 수준이 아니라면 무슨 괴수든 간에 상관이 없다는 거기도 했다.
아직은 시험의 본궤도에 돌입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헌터 협회에서 구현이 가능한 등급의 괴수들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 그럼 무기부터 고르면 되겠네.’
나는 오른쪽의 벽면에 붙어 있는 장비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그나마 편한 장비를 두 개 골랐다.
「순은 길드의 양산형 철검」
「등급 : F」
「철저하게 틀에 맞춰서 제작된 검으로 제법 괜찮은 스킬로 제작되었다.」
「균형감이 좋으며 칼날이 상하는 일이 별로 없다.」
우선은 ‘양산형’이라는 수식언이 붙은 검부터 골랐다.
이것보다 좋은 물건이 없었을뿐더러 이게 제일 흑철 단검과 비슷했다.
지금은 내 원룸에 있는 흑철 단검을 떠올리면 비교하는 것도 힘들겠다만.
‘뭐, 칼날 길이는 비슷하니 됐지.’
그다음으로는 적당히 근처에 걸려 있던 방패도 왼손에 장착했다.
직사각형의 철제 방패로 본래 쓰던 목제 방패보다 못한 등급이었다.
「순은 길드의 양산형 철제 방패」
「등급 : F」
「철저하게 틀에 맞춰서 제작된 철제 방패로 제법 괜찮은 스킬로 제작되었다.」
「그나마 무거움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장점도 단점도 없다.」
시련의 탑에 들어가서 샀던 드워프의 투박한 방패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텐데.
헌터 시험에서 주어지는 물건들이라고는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 시험을 봤을 때는 E급 장비들도 꽤 지급했던 거 같기에 더 그랬다.
‘10단계를 고르면 원래 이런 건가?’
헌터 시험에서 10단계를 골랐다는 사람을 못 봐서 정보도 없었다.
그게 좀 아쉬웠지만 그런 불평을 끊어 내듯 석실의 구석에서 딱딱한 기계음이 울렸다.
「시험 시작까지 30초 남았습니다.」
「대비하십시오.」
어느새 3분의 유예 시간이 다 지나갔는지 대비하라고 한다.
하지만 장비를 다 고른 시점에서 대비고 뭐고 할 건 없었다.
지금 나는 어디서 적이 오든 간에 요격할 자신이 있으니까.
‘저기에서 적이 나오는 거겠네.’
중앙에 그려진 검은 원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예전이었다면 긴장해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내가 이렇게 여유로워질 줄은 몰랐다.
고작 고블린을 상대할 때도 그랬는데 이제는 최고 단계의 시험임에도 별다른 생각이 안 든다.
‘이게 성장이라는 거겠지.’
「시험이 시작됩니다.」
「화염조(火焰鳥)를 사냥하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검은 원에서 솟구치는 화염의 잔상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헌터 협회에서 발행한 괴수 도감에서 본 적이 있는 부류였다.
‘화염조, D급 괴수네.’
상성에 따라서 상대하기 난이도가 달라지는 괴이한 놈이다.
화염을 휘감은 새라는 명칭답게 물에 약하며 마법류 공격에 내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근접 전투에 익숙한 사람은 거의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어린아이에게 막대기를 쥐게 하고 고블린을 죽이라고 하는 꼴과 다를 게 없다.
순간적으로 비상식적인 난이도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원래 10단계라는 게 이런 거겠지.’
뭐, 시작부터 D급 헌터라니 이해하기로 했다.
그때 홍염을 휘감은 화염조가 포악하게 괴성을 내질렀다.
“꾸에에에에에엑……!”
「스킬 ‘포식자의 포효’로 인하여 움직임이 25% 둔화합니다.」
마력을 담아서 외치는 울음이기에 몸이 녹슨 철처럼 뻣뻣해졌다.
물론 4층의 도전자가 보여 줬던 고유 특성 같은 절대적인 속박은 아니고.
그것보다 몇 단계 낮은 수준의 얄팍한 구속이었다.
‘차라리 물리적인 공격이었다면 편했을 텐데.’
그랬다면 ‘물리 저항’ 스킬로 효과를 약화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건 아니다.
무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묘하게 귀찮다고 해야 할까.
늪지를 걷는 것처럼 발이 느릿느릿해졌다.
의기양양하게 날개를 펄럭이는 화염조를 바라보며 잠깐 처치법을 고민했다.
정석대로라면 근접 타입은 항마력 관련 스킬로 화염조를 공략해야겠다만.
항마력과 관련된 스킬은 하나도 없었으니 내게는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새롭게 얻은 스킬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마침 속박도 걸어 주니 딱 시험해 보기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꽈드득.
새하얀 돌로 된 바닥을 짓누르며 온몸에 마력을 순환시켰다.
대뜸 스킬을 발동시켜서 몸에 악영향이 가지 않게끔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지금부터 쓰게 될 스킬은 그만큼 몸에 영향이 많이 갈지도 모르니까.
“순간 가속.”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스킬명을 입에 담는 순간, 온몸이 깃털로 화하는 듯했다.
암살자의 망토 같은 부분 강화보다 더 확실하게 체감이 되는 스킬 효과였고.
순간적인 가속의 효과를 체감한 나는 곧이어 크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주변에 돌로 된 파편이 튀며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공중으로 10m, 딱 화염조에게 일검을 먹일 수 있는 최적의 간격.
그곳에 다다른 찰나에 결판이 났음을 직감하며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고.
‘끝났네.’
쩌어어어억!
화염조의 몸뚱이가 정확하게 절반으로 깔끔하게 절단되는 순간.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안내음이 이어졌다.
「시험이 종료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응시자 한성윤 님의 최종 평가 등급은 C급입니다.」
7년, 헌터가 되기 위해서 보냈던 나날들.
그 광적인 집착의 끝에 다다른 결과는 생각보다 허무했다.
***
헌터 협회의 개별 시험장, 그 너머에 있던 한 사내가 광분했다.
쾅.
“……아니, 씨발, 이게 뭔!”
벽을 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스포츠머리의 사내는 황만호였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만년 헌터 지망생이었던 한성윤이 D급 괴수, 화염조를 죽였다.
그것도 화염조가 소환된 순간에 맞춰서 단 일격에 말이다.
가능한 일인가?
‘아니, 불가능해.’
한성윤은 플레이어 중에서도 제일 덜떨어진 존재였다.
그게 항마력과 관련된 거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낙오자였다.
그 어떤 스킬도 익히지 못했으며 고유 특성은 개방조차도 하지 못했던 허접한 플레이어.
그게 바로 한성윤, 그였으니까.
‘씨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황만호는 이내 분노를 옆에 있던 감독관 김인후에게 돌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시죠, 감독관님.”
“……놀랍군요, 이게 데뷔조차 안 했던 플레이어가 맞기는 한 겁니까?”
“시치미 떼지 말고, 대답이나 하시죠. 저놈을 10초 만에 떨어뜨리라고 했지, 제가 10초 만에 합격하게 두라고 했습니까?”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황만호의 말에 김인후는 정장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한성윤 씨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이 시험을 깰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요.”
본래는 무슨 단계를 택하든 간에 불리한 상성으로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괴수를 내줄 심산이었다.
황만호는 헌터 협회 측에 그걸 요구했고 김인후는 그걸 받아들였다.
많은 플레이어를 헌터 협회로 알선해 주고 연을 맺게 해 주는 관계였기에 현터 협회 측은 황만호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본래의 계획도 무용지물이 되게 최고 단계의 시험을 선택하고, 그걸 또 스스로의 힘으로 단숨에 박살을 낸 걸, 왜 저희에게 따집니까?”
“…….”
“심지어 상성도 안 맞는 괴수를 보냈는데도 이 꼴입니다. 슬슬 현실을 직시하시죠.”
“하, 빌어먹을. 그, 그럼 저놈은…….”
“안내음에 나왔던 것처럼 C급 헌터의 라이센스를 받을 겁니다.”
“아니, 좀 더 낮출 수는 없었던 겁니까?”
“뭘 더 어떻게 낮춥니까, 최소 D급부터 시작하는 시험에서 10초 만에 괴수를 격살했는데. 되려 D급을 줬으면 저쪽에서 항의했을 겁니다.”
“젠장.”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기에 황만호는 분노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통과하고, C급부터 헌터를 시작한다고…….’
황만호는 본래 C급에서 헌터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었다.
그는 재능도 없었을뿐더러 노력과는 연이 있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성도 없는데 광적으로 헌터에 집착하는 한성윤이 더 거슬렸다.
볼 때마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되는 불쾌함.
정말로 헌터가 되는 건 아닐까 해서 제대로 그를 가르치지도 않고 방치했던 건데.
‘빌어먹을……!’
이제는 한성윤이 진짜 헌터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시작부터 C급, 역대급 유망주의 탄생이나 다름없었고.
그만큼 한성윤의 입지는 순식간에 단단해져 갈 것이라는 건 뻔했다.
그때였다.
“안색이 안 좋으신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시험장의 유리문이 열리며 들려온 말소리에 황만호가 고개를 돌렸다.
본래라면 웃음을 지어야 했던 황만호가 얼굴을 찌푸리게 된 결정적인 원인.
“한성윤…….”
이제는 그가 웃음을 지으며 황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