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63
261. 지구 (4)
「친구 ‘백련화’님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친구 ‘백련화’의 채팅 내역에는 현재 읽지 않은 메시지 187건이 존재합니다.」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지구에 또 뭔가의 사건이 일어난 거구나.’
21층 시련의 보상으로 얻은 힘들을 사용할 기회가 왔다고.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이하연이 내게 연락하는 일은 웬만하면 없으니까.
그녀는 지구에서 강제적인 소집이 있지 않은 한에는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탑을 오르는 걸 막아야 할 정도의 일이 생긴 거겠지.’
확신까지 생긴 나는 바로 친구 목록의 채팅창을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187건의 미열람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렸다.
그것도 아주 꼼꼼히.
-백련화(17층) : 성윤 씨. 만약에 시련이 끝났다면 꼭 이 메시지들 읽어 주세요.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이하연도 어느 정도는 도전자로서 탑을 등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17층? 이하연도 같은 어려움 난이도인데 벌써 17층까지 올랐다고?’
어느새 그녀는 탑의 17층에 다다라 있었다.
물론 도전자의 실력은 고작 층수 하나로 측정할 수 없었다.
예전에 이하연이 알려 준 정보에 따르면 도전자는 층을 오르며 각각 시련의 난이도 및 성향이 달라진다고 하니까.
그러니 17층이라고 하여 그녀를 내가 17층에 오르던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이하연도 지구 차원에서는 랭커급 아닌가……?’
그녀의 층수가 가지는 최소한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과소평가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지구 차원에서는 고평가받을 수 있는 수준일 터이지.
어째서 탑을 이렇게까지 크게 오를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마는.
적어도 그녀는 지구에서의 내 파트너인 만큼 나쁜 일은 아니다.
‘지구에서 관심을 끄고 있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많았었네.’
그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어서 채팅창에 있는 메시지들을 읽어 내렸다.
-백련화(17층) : 현재 각국에 여태껏 본 적 없는 주황색의 게이트가 열렸어요. 그런데 이게 기존의 게이트와는 달라요.
-백련화(17층) : 던전 브레이크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자꾸 게이트에서 괴수들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백련화(17층) : 심지어 그것도 여태까지 본 괴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요. 하지만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에요.
게이트.
던전으로 이어지는 포탈이 각국에 열렸다는 것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설령 게이트의 색상이 주황색이라고 할지라도 그저 특수 현상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진 채팅창의 메시지를 본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백련화(17층) : 시련의 탑에서만 관측되는 괴수 중 하나인 악마가 나타났어요.
“악마라고……?”
던전에서는 나타나지도 않는 괴수인 악마의 출현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현재 지구 차원은 탑이 지정한 ‘정식 등반 차원’으로 인정받은 상황이기에 더 그랬다.
이제는 이계의 도전자들도 지구를 쉽게 노릴 수 없을 터인데…….
뭔가가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도전자들이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짊어지고, 지구 차원에 게이트를 만들 리는 없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도전자의 소행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전에 런던에 나타난 이계의 도전자가 생각이 났기에.
그때의 이계의 도전자는 지구에서 신앙을 얻어 내려 왔다고 스스로 말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에게 집약시킴으로써 심장에 신성력을 얻으려 한다고 말이다.
‘만약에 그때처럼 신성에 관련된 힘을 얻으려 하는 도전자가 있다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어쩌면 이건 신격까지 얽힌 사태일 수도 있었다.
한낱 도전자도 신앙을 얻겠답시고 지구에 왔었는데, 신격이라고 하여 다를 것이 있을 리가.
도전자든, 신격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에 눈을 찌푸린 채로 채팅창에 있는 메시지를 읽는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백련화(17층) : 한국에서만 사상자가 100만 명 가까이 발생했어요. 그리고 해외에서도 적잖은 피해를 봤고요.
-백련화(17층) : 실질적으로는 도전자들이랑 관련이 있다고 각국에서 결론을 내렸고.
-백련화(17층) : 결국, 국제 헌터 협회에서 어려움 난이도 최상위 도전자들에게 소집을 내렸어요.
이내 채팅창의 메시지가 어느덧 최근대의 것으로 내려온 순간.
-백련화(17층) : 그리고 성윤 씨도 국제 헌터 협회의 소집 대상이에요.
이어서 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백련화(17층) : 물론 맨입으로 한 소리는 아니고 국제 헌터 협회에서는 성윤 씨의 협조에 보상할 것을 약속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백련화(17층) : 성윤 씨가 소집에 응하면 바로 S급 헌터 라이센스를 취득할 수 있다고 했고.
-백련화(17층) : 스킬 숙련도 상승 물약이나, 스킬 랜덤 습득 서적 같은, 탑의 아이템들도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하네요.
-백련화(17층) : 그 이외에도 성윤 씨가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원하는 대로 보상해 줄 생각이 있다고 했어요.
왜인지는 몰라도 헌터 협회에서 큰 보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
그것도 아주 구미가 당기는 보상을 말이다.
「귀환석(E+)을 구매하셨습니다.」
“오랜만에 지구에 들리겠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보수를 받아 낼 수 있을까?
***
눈을 뜨니 살짝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원룸이 나를 반겼다.
먼지 쌓인 책상, 온갖 아이템들이 널브러진 혼잡한 바닥, 환기도 되지 않은 공기 등등…….
사람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음을 알리는 증거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째선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는 집처럼 느껴지지도 않을 지경이네.”
진짜로 이곳이 내가 살았던 장소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
하지만 이내 나는 그 이질감을 애써서 떨치고는 바로 스마트폰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동시에 섬세한 통제력이 마력을 전력으로 바꾸어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채웠다.
「권능 스킬 ‘마력 운용’이 활성화됩니다.」
그동안 탑을 오르며 마력 운용의 스킬 등급을 상승시킨 보람이 있었다.
이전에는 그다지 익숙지 않았던 마력의 세부적인 조작도 어렵잖게 해낼 수 있으니까.
그러고 있자니 나는 미묘하게 성장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신성에 관련되지 않은 능력들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질 틈은 없었다.
‘……지금은 지구의 상황을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해.’
그대로 나는 곧장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고는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확인했다.
[시련의 탑에서만 관측된 괴수인 ‘악마’의 출현을 국제 헌터 협회에서 “모든 것은 도전자들도 같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하여 화제가…….] [게이트 관련 학자들, “이번에 나타난 게이트는 탑이 지구에 주는 영향이 늘어나는 변화의 지점.”이라며 크나큰 변곡점이 왔음을 전하여…….] [스사노오 길드의 수장, 미치모토 사치오, “도전자들은 모두 현재 사태의 해결에 같이 힘써야 할 것.”이라며 협력 요청 권고를…….]“난리 났네.”
모든 포털사이트의 실시간검색어의 순위는 전부 현재 사태에 집중된 상황.
게이트에서 악마들이 나타나는 것, 그리고 시련의 탑에 관련된 도전자들에게 이목이 쏠려져 있었다.
그것도 과도할 정도로 말이다.
그에 나는 상황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는, 그대로 원룸에서 이하연이랑 약속을 잡은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랜만이네요. 성윤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아무도 거닐지 않은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이하연을 마주했다.
탑에서 채팅창에 메시지를 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터인데…….
설마 이렇게까지 빠르게 나타날 줄이야.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17층에 올랐더니 그만큼 실력도 상승했나.’
감각에 걸리는 이하연의 마력 수준이 심상치 않았다.
이전에 내가 17층에 있었을 때와는 비교도 힘들겠다마는…….
적어도 한 명의 도전자로서 최소한의 무력은 갖췄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정도라면 A급 헌터와도 맞붙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
하지만 감탄할 틈은 없었다.
“……22층에 도착한 것, 축하드려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없어요.”
이하연이 지쳤다는 듯 피로에 찌든 얼굴로 그리 말했기 때문이다.
그에 나는 그녀의 속내에 깃든 감정을 봤다.
초조, 곤란, 반가움, 걱정, 기대 등등…….
수많은 감정이 그녀에게서 느껴지고 있었기에,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겁니까?”
그리고.
“……맞아요. 시간이 없어요. 단지, 알려드릴 수 있는 거라고는 세계적으로 크게 안 좋은 상황이라는 것 정도네요.”
이하연은 우울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로,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전부 설명할 도리가 없네요.”
그다지 그녀에게서 상황을 전해 듣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탑이 지구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 그거 하나면 상황 설명은 충분합니다.”
“그런가요…….”
“예.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됩니다. 어차피 저도 그게 편하니까요.”
“그거, 조금은 속상한 소리긴 한데……. 적어도 지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하연은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짓더니 이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국 헌터 협회 측에서 랭커급 도전자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그곳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다음 순간.
「보조 마법 의 시전 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보조 마법 에 의하여 지정된 좌표로 이동합니다.」
어느덧 나는 어느 한 회의장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
***
회의장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마치 백 명도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듯이 컸다.
하지만 그 크기에 비해서는 회의장 내부에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인원수가 두 자릿수도 간신히 넘기겠네.’
세계 각지에 있는 도전자 중 최정예를 모았다는 걸까?
현재 회의장 내에는 이하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마력을 지닌 이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몇몇 낯이 익은 얼굴도 있었다.
바로…….
“앗……! 당신! 드디어 왔어요? 여기예요, 여기……!”
캐서린 베넷이 그랬다.
회의장의 상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캐서린 베넷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까지 흔들었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마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은 모습.
그걸 보니 왜인지 모르게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탑으로 돌아간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작게나마 메시지라도 남겨 줄 걸 그랬나…….’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성윤 씨…….”
갑자기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저한테는 약속한 것과는 다르게 말없이 탑을 오르시고, 제대로 된 연락 한 번도 하지 않으셨는데…….”
어느새 이하연이 까치발을 든 채로 내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탑에는 저렇게 친밀한 지인분이 있으셨나 보네요?”
왜인지 모르게 싸늘한 눈웃음을 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