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7
026. 선점 (1)
원래 귀환해서 이루려고 했던 목표는 대부분 이뤘다.
‘오랜만에 피로도 풀었고 헌터 시험도 통과했지.’
귀환한 지 1일도 채 되지 않아서 이뤄 낸 업적에 내심 흐뭇함을 느꼈다.
이전에는 조금 무리하게 귀환한 게 아닌지, 혹은 500포인트를 낭비한 게 아닌지 찝찝했다만…….
이제는 아예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도 더 일이 잘 풀리고 있으니까.’
본래는 헌터 시험의 심사 기준점이 변경되기 전에 선점이나 해 두려고 했는데.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시련의 탑에서 가져온 아이템 덕에 매각도 한꺼번에 하게 생겼다.
순식간에 풀릴 아이템들을 고려해 보면 이렇게 하는 게 맞다.
‘이제 낮은 등급의 아이템은 당분간 헐값에 넘칠지도 모르니까.’
시련의 탑에서 머물던 도전자들이 지구로 귀환하는 시점이 문제다.
시련의 진행 특성상, 8층에 다다르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을 거다.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근처에 있는 노점에 들려서 붕어빵을 한가득 샀다.
억제하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러기 위해서 지구로 돌아온 것이니 더 참지 않기로 했다.
물론 통장에 있는 잔액을 생각하면 과소비인 게 분명하지만.
‘뭐, 어차피 원룸에 있는 아이템들을 팔면 해결될 일이고.’
굳이 거기에 연연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것저것 노점에서 먹을 걸 사서 입에 욱여넣고는 이내 원룸으로 돌아왔다.
철컥.
“……여기는 여전하네.”
나가기 전과 다름없는 원룸의 정경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분명 바깥에서는 내 인생의 궤도를 확 바꾸는 일이 벌어졌는데.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그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머문 지도 꽤 오래됐네.”
플레이어 지원 정책으로 얻게 된 주거지였는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정식으로 헌터도 됐으니 지원 정책으로 더 넓은 장소로도 집을 옮길 수 있을 터였다.
‘근데 그러면 뭘 하겠냐, 어차피 곧 탑으로 돌아갈 몸인데.’
고작 3일뿐인 귀환인 만큼 쓸데없는 짓은 자제하기로 했다.
풀썩.
“오늘은 조금 쉬어 두는 게 낫겠지.”
침대에 몸을 눕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랜만에 밀렸던 상황도 알아볼 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달라진 게 없네.’
세상이 무언가 특별하게 바뀌었다든가 하는 내용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시련의 탑’에 대해서 검색했는데도 그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도전자들은 시련의 탑에서 나오지 않은 모양.
확실히 결산판에 있던 상위권 도전자면 몰라도 하위권 도전자들은 귀환석을 구매하기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추가 돌파 보상이나 그런 것들이 없었으면 나도 나오지 못했을 테니.’
물론 며칠이 지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만…….
여유롭게 시련의 탑에서 귀환자가 나오는 걸 기다려 줄 수 있을 만큼 형편이 좋지는 않았다.
‘일단은 처분해야 하는 아이템들은 다 매각해야지.’
여태껏 잘 써 왔던 장비들이라지만 이제 교체할 시기가 다가왔다.
암살자의 망토도 그렇고 흑철 단검도 그랬다.
능력치가 상승하면서 암살자의 망토에 붙은 민첩 옵션이 적용이 안 되기 시작했고.
흑철 단검의 버프도 상점에 있는 다른 장비들과 비교하면 비효율적인 상황.
‘그럼 무슨 아이템을 팔아야 할까…….’
그렇게 곰곰이 고민한 결과, 답이 나왔다.
민첩 위주로 움직임을 구사하니 암살자의 망토는 남겨 두겠지만.
‘흑철 단검’과 ‘죽은 거목의 방패’는 팔아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특히나 죽은 거목의 방패는 이제 내 전투 스타일과는 맞지 않기도 하고.
한때 방패에서 흘러나오는 버프 효과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았던 적은 있으나 그것도 꽤 아슬아슬하다.
몸을 이리저리 굴려서 버프를 받는 것보다는 신속한 일격으로 승부를 보는 게 내 주된 전투법이니 상성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럼 결정됐네.’
내일은 헌터 전용 상점에라도 들려서 이 두 개의 아이템을 처분하면 될 것이다.
그리 판단을 내리고 나니 이제 해야 할 게 없음을 깨달았다.
분명히 쉬어야 하는 건 맞는데…….
“뭘 해야 했더라.”
애초부터 집에 있을 때도 훈련만 했기에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취미라고 해야 하는 것도 없고 말이다.
‘흠, 오랜만에 게임이라도 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은 게임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아, 차라리 탑이었으면 수련이라도 했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제 미친놈이 다 됐네.”
오랜만에 지구로 귀환해서 피로를 풀자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피로를 푸는 것보다는 탑에서 수련만 하는 게 성미에 더 맞는 거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귀환만 바라보며 시련을 견뎠던 나는 시련의 탑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그만큼 시련의 탑에 잘 적응했기에 이러는 거겠지만.
‘좀 묘하네.’
지구로 돌아오면 뭐든 마음껏 즐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밥도 먹고 군것질도 하고 나니 더 식욕은 들지 않았고 몸을 깨끗이 씻기만 해도 만족스러움은 꽉 채워졌다.
‘하긴, 탑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렇게 마음껏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
늘 수련에만 매진했고 헌터로서의 능력을 올릴 방법을 궁리했으니까.
7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몸에 각인된 생활 방식은 시련의 탑에 적응하게 되며 새롭게 바뀌었다.
남은 시간은 모두 훈련에 쏟고 닥쳐올 시련을 대비하는 것.
‘얼마나 시련의 탑에 푹 빠졌는지 알 거 같네.’
물론 그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니 별로 불만이랄 건 없었다.
‘시련의 탑을 오르면 오를수록 나는 강해지겠지.’
층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고작 4층의 보상이 이런데 앞으로는 또 어떨까 싶다.
더 시련은 위험해지는 만큼 시련의 보상도 커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알게 되는 것도 많아질 테고 탑에 대해서도 알게 될 터다.
물론 근거가 아예 없는 추측은 아니다.
‘질문권, 관리자, 그리고 시련의 보상.’
시련의 탑은 던전처럼 딱딱하게 굴지 않고 도전자들에게 꽤 후하게 굴었다.
이것저것 직관적인 명령어를 사용하게 해줬으며 궁금한 건 물어볼 수 있도록 해 뒀다는 것.
그건 더 올라갈수록 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시련의 탑에 돌아간다고 해도 질문권을 쓸 생각은 없었다.
‘8층, 적어도 거기까지는 올라가서 써야겠지.’
시스템적으로도 많은 게 추가되는 시점이라 하니 그때 쓰는 게 효율상 좋을 거다.
분명히 점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무언가 알게 되는 게 있을 것만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중간에 생각을 끊어 낸 나는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제대로 자 본 게 오래된 만큼 훈련보다는 정상적인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탑에 돌아가면 이렇게 편하게 더 자지도 못할 테니…….’
돌아온 김에 쌓인 피로는 전부 풀고 가는 게 맞을 것이다.
눈꺼풀이 서서히 닫히며 몸의 감각이 옅어진다.
막상 잠이 안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몸을 어떻게든 굴려야 할 것만 같았는데 눈을 감으니 잠이 온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탑에서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이겠지.’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잠이 오는 걸 참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동안 험난했던 시련을 거쳤던 만큼, 적절한 휴식도 필요할 테니 당연했다.
탑에 있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아주 오랜만에 겪는 깊은 수면이었다.
***
우우웅, 우우웅.
문득 머리맡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눈이 뜨였다.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며 동시에 손을 더듬거려서 스마트폰을 붙잡았다.
어쩐지 잠에 빠진 지 꽤 된 거 같더니만, 벌써 깨어날 시간이 모양.
나는 이내 푹신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AM 11:30」
“……어?”
잠깐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하고는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이 오전 11시 30분이라면…….’
잠들었을 때의 시각은 오후 8시쯤이었으니 거의 15시간을 잔 거나 다름없다.
“미친, 내가 이렇게 많이 잤다고?”
본래 탑에 들어가기 전에는 많이 자도 8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피로가 누적되어 있던 건가…….”
뚜두둑.
몸을 가볍게 이리저리 풀어주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많이 자기는 했다만 그만큼 피로도 확 풀려 있었다.
‘이제 휴식은 끝내도 되겠고, 그럼 이제 남은 건 아이템 매각인가.’
방에 가지런하게 정리된 아이템들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랫동안은 아니더라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함께 했던 장비들이다.
그런 걸 판다고 생각하니 좀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해지지.’
나중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아이템을 매각하는 게 맞았다.
시련의 탑에서 얻게 된 장비들이 뿌려지게 된다면 하위 등급의 아이템들은 전부 헐값에 팔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니 나갈 채비를 하는 건 금세였다.
몸에 축적된 피로도 다 풀었으니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눈에 띄지 않게 가방에 아이템들을 넣고 적당히 후드티에 청바지를 걸쳐 입고 원룸을 나섰다.
플레이어 지원 정책으로 마련된 주거지라 그런지 이 근방에는 헌터 협회도 있고 또한 헌터에 관련된 산업이 꽤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쓸데없이 시간을 쓰지 않고 헌터 마켓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원래라면 헌터임을 증명해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겠지만.
「헌터 라이센스를 증명해 주십시오.」
「헌터 한성윤, 확인되었습니다.」
헌터 라이센스를 소지하게 되었으니 이제 나도 출입 조건을 만족했다.
‘확실히 헌터들이 사용하는 곳이 그런가, 크네.’
대략 10층은 될 법한 거대한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며 느낀 감상이었다.
헌터 마켓, 사냥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취급하는 백화점.
그만큼 건물의 내부는 헌터들이라면 한 번쯤 보고 갈 만한 물품들로 가득했다.
전문적으로 수리 및 강화를 담당하는 곳도 있고 무기류를 전시해 놓은 곳도 있었다.
물론…….
‘전부 그렇게 좋은 물건들은 없네.’
대부분 F급에서 D급 사이를 오가는 어중간한 등급의 물품들로 매워져 있을 뿐.
실질적으로 내게 필요한 건 없었기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과연 헌터 마켓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금방 물품 매각소를 찾을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매장 안에 들어서니 안경을 쓴 젊은 여자 직원이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무슨 아이템을 매각하러 오셨나요?”
“음, 우연히 얻게 된 방패랑 단검을 매각하러 왔습니다.”
“방패랑 단검, 두 개군요. 등급은…….”
“D-급 한 개, 그리고 E급 한 개입니다.”
“오, 꽤 등급이 높네요.”
“운 좋게 얻을 일이 있어서요.”
그렇게 대충 둘러대니 여자도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이쪽에서 물건을 보여 주시죠.”
수수하게 꾸며진 테이블로 다가간 나는 이내 가방에서 물건을 다 꺼냈다.
흑철 단검과 죽은 거목의 방패, 총 두 개의 장비.
그걸 본 여자 직원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출했다.
“무슨 퀄리티가……, 이걸 정말로 매각하신다고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
보아하니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예, 더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아, 고위 헌터셨군요.”
이제야 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직원을 보며 나는 침묵했다.
물론 진짜 고위 헌터인 건 아니지만 분위기에 맞추기로 했다.
“음, 견적을 내 봤는데 흑철 단검은 6,500만 원이고 죽은 거목의 방패는 1억 정도에 매각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말에 나는 눈을 부릅뜨며 물음을 건넸다.
“……E급 장비라 4,000만 원 선이 제일 적절할 텐데요. 죽은 거목의 방패도 5,500만 원 정도에서 그칠 테고요.”
“아뇨, 아뇨. 그렇지 않아요. 둘 다 수준급 장비예요.”
알고 있던 정보를 말하니 여자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옵션도 많고 의외로 시스템상 표기되지 않은 기능도 있는 거 같아서요.”
“시스템상 표기되지 않은 기능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흑철 단검의 원재료나 죽은 거목의 방패에 깃든 제작 기원 같은 것들입니다.”
그제야 왜 흑철 단검과 죽은 거목의 방패가 고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흑철로 만들어졌다는 거나 광전사를 위해서 제작됐다는 설명에서 가치를 봤나 보네.’
이러한 부분에는 관련 지식이 적다 보니 간과한 요소였다.
실제로 이 업종에 종사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나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이런 것도 신경을 써야겠네.’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여자 직원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지금 이대로 파셔도 일반적인 아이템보다 더 받으실 수 있겠지만, 아이템 정보에서 보이는 것들이 꽤 쓸 만한 것들이라서요.”
“그래서 총 1억 6,500만 원이 된다는 거군요.”
“예, 맞아요. 원하시면 다른 매장에서 물어보고 오셔도 됩니다.”
“……아뇨, 됐습니다. 그냥 여기에서 처분하겠습니다.”
본래보다 더 큰 금액으로 매각할 수 있다는데 굳이 다른 곳에 갈 필요는 없었다.
호구라서 안일하게 구는 건 아니고, 다른 이유에서다.
헌터 마켓이 괜히 헌터 라이센스를 증명해야 하는 게 아니다.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는 상점과 다르게 헌터 마켓의 매장들은 전부 신뢰로 장사를 한다.
한 번 헌터가 된 이들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기도 하고.
‘특히나 나를 고위급 헌터로 오해했다면 더 그렇겠지.’
괜히 고위급 헌터를 건드려서 화를 돋게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럼 계좌를 불러주세요.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순순히 계좌를 부르니 곧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어서 계좌를 본 순간.
「1억 6,500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잔액 – 1억 7,238만 원」
모든 아이템을 처분한 금액이 통장에 들어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1억이라는 돈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며 입꼬리를 파르르 흔들렸다.
‘……이제야 좀 헌터가 된 게 실감이 나네.’
그리고 확신했다.
귀중한 포인트를 써 가며 지구로 귀환한 것은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