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77
275. 철혈의 군주 (3)
「특수 계약 시련 를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1년」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내에 신격에 의한 세계 멸망을 막아 낼 것」
「시련 실패 조건 – 도전자의 죽음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철혈의 군주의 감정에 의해서 보상의 수준이 결정될 것」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깊이를 가늠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힘이 몸을 집어삼킨 순간.
어느새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 들어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에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감탄해야 했다.
‘이게 탑의 힘인 건가…….’
그럴 만도 했다.
신격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탑의 힘을 거부할 수 없다니…….
이제야 탑이 신격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수많은 신격이 탑을 증오하고 있음에도 없애진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탑이 신격을 전부 죽이겠다고 할 만도 했나.’
시련의 탑은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고대 신격이라 할지라도 탑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터다.
그러니 어둠의 신이나, 마신 같은 이들도 탑을 박살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탑이 고대 신격을 존중할 정도는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답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탑과의 격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이대로 영영 도달하지 못할 수준도 아니야.’
고대 신격의 경지에 도달하면 탑의 힘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아주 확실히 말이다.
적어도 고대 신격들이 탑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길이 멀긴 해도 그 끝을 볼 수 없다곤 할 수 없었다.
어차피 힘이야 시간이 지나면 쌓이는 거니까.
‘성장을 더 빠르게 할 필요는 있겠어.’
그에 나는 힘에 대한 갈망을 짙게 느끼며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럴 만도 했다.
어느새 검은색으로 점철된 세상에 색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밝아지는 정경에 나는 문득 철혈의 군주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철혈의 군주에게는 작별 인사할 틈도 없었네.’
그녀의 비원을 이루려 이곳에 왔긴 했지만,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그래도 작별 인사 정도는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그리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특수 계약 시련 의 세계 조성을 완료했습니다.」
이내 세계의 조성을 마쳤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 순간.
순식간에 몸에 걸친 장비들이 모조리 색을 잃고 흐려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마치 이제부터는 아이템들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듯이.
실제로…….
「일부 장비의 착용이 제한되어 인벤토리로 전송됩니다.」
「도전자 한성윤은 시련의 특수성에 적합하지 않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각각 700으로 고정되며 이는 시련이 끝날 때까지 변화하지 않습니다.」
「※단, 영구적인 능력치의 상승이 아니라 일시적인 능력치의 상승은 적용됩니다.」
「※단, 시련 내에서 습득한 성장형 능력치는 시련이 끝나고 나서 재정산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이게 일종의 페널티임을 알았다.
‘장비 착용 제한.’
탑을 오르며 예전에 한 번 겪어 본 전적이 있는 제약 중 하나.
하지만 이전에 겪은 제약과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도 페널티의 수준이 다르다는 거겠지.
여태까지 수많은 일을 겪으며 얻은 아이템이 전부 사라졌다.
그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장비만이 아니라 모든 능력치도 700으로 고정됐어.’
갑자기 모든 능력치의 수준이 크게 하락하게 되었다.
대충 따지자면 통상 상태의 능력치의 절반 정도 되는 수준.
그렇기에 나는 몸에 엄청난 탈력감이 깃드는 걸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그다지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네.’
그럴 만도 했다.
갑자기 모든 능력치의 수치가 절반 이하로 쭉 내려갔으니까.
아마도 이 아래로 내려갔다면 심장에 깃든 신성이나, 마력 회로에 내재된 마력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뚱이가 터졌을 터.
한마디로 모든 능력치를 최소 수치에 맞췄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능력치를 내려야 할 정도의 시련인가.’
그리고…….
「배역 선정 완료.」
「도전자 한성윤에게 북부 전선의 의 배역이 배정됩니다.」
「순차대로 시련을 진행하여 시련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십시오.」
다음 순간.
“이건…….”
세상이 빛을 완전히 되찾자마자 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갑자기 허름한 군용 막사에서 시작한 것도 모자라 입고 있는 옷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업적 ‘제국 군대 입대’를 달성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이건 대체 뭐야?”
어느새 나는 군인과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
갑자기 바뀐 복장, 그리고 업적의 달성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그리고 이전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상기할 수 있었다.
─배역 선정 완료.
─도전자 한성윤에게 북부 전선의 의 배역이 배정됩니다.
─순차대로 시련을 진행하여 시련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십시오.
‘그때 배역을 선정했다고 한 게 이거였나 보네.’
설마 비원의 시련에서 맡는 배역이 군인일 줄이야…….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상황이기에 조금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을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시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온 것이다.
땡땡땡─!
그에 바로 허름한 막사를 벗어나니 마력에 의해서 확산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 기습이다─! 악신의 어리석은 종들이 나타났다─! 전원 전투 진형을 갖추고 집결해라!
마치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 같은 음성.
그렇게 울려 퍼지는 음성에서 나는 바로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곳은 생각한 대로 군대 같은 곳이며, 현재는 악신을 상대로 분투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뭘 해야 하는지도 빠르게 눈치챘다.
‘일단은 이곳에 들이닥치는 악신의 종들을 해치우라는 거구나.’
간단했다.
설령 아이템 및 능력치의 제한이 있다고 해도 사태의 해결은 그리 어렵진 않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얻은 힘은 고작 이 정도로 흔들릴 수준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게 쉽게 느껴지진 않았다.
“시련의 보상은 철혈의 군주의 감정에 따라서 바뀐다고 했었지.”
시련의 클리어 조건은 악신을 해치우고 세계의 멸망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시련 보상의 수준의 기준점은 시련의 클리어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시련 보상은 철혈의 군주의 감정이 어떤지에 따라서 결정되기에.
그렇다면 일단은 이곳에 철혈의 군주가 재현됐는지, 그리고 있다면 어느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철혈의 군주에게 호감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몰리는 곳이 있으니, 그쪽에 가면 대충 상황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생각한 대로 있었네.”
이내 기감에 잡히는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목적지에 도달한 순간.
어느새 나는 선두에 서 있는 은발의 미녀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틀림없었다.
“제군들, 듣거라─!”
철혈의 군주.
“그대들은 제국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다! 그러니 추악한 신을 섬기는 광신도들에게 겁먹을 것 없다!”
한때는 탑을 올랐던 도전자이자 이제는 나와의 계약을 맺은 관리자가…….
“출진하여 적들을 모조리 섬멸하라─!”
탑의 도전자가 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이곳에 재현되어 있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눈 깜짝할 사이에 군사들의 사기가 팍팍 오르더니 함성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군인들의 불안정했던 감정들이 흐름에 따라서 바뀌었다.
마치 노래의 소리를 키움으로써 잡음을 없애는 것 같은 모습.
실제로도 비슷한 원리였다.
‘적어도 승산이 없어지기 전까진 잡음은 그리 크지 않겠어.’
하지만 그다지 흥미롭진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모인 이들의 수준이라고 해도 높은 수준이 아닌 탓이다.
각각 개인 간의 편차치도 크고 간혹 보다 보면 강제 징집된 걸로 추정되는 이도 있다.
그래도 대충이나마 평균을 따지자면 일반인보다는 살짝 나은 정도라고 해야 하겠지.
‘쓸 만하진 않은 수준이야.’
실제로 나는 선두에 서 있는 철혈의 군주에게서 그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탑에 선택받은 도전자가 되기 이전의 모습인 탓일까?
아직은 앳된 모습이 크게 강조되는 철혈의 군주는 감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도 얼굴에 조금은 감정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말이다.
단지, 저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을 읽을 수준의 사람이 없기에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어째서 이게 철혈의 군주의 비원인지 알겠네.’
아마도 적들이 어지간히 머저리가 아닌 한에는 제국의 군대를 이길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신격의 힘을 받은 이들은 최소한 탑의 도전자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일 테니까.
설령 아무리 진형을 잘 짜고 작전을 잘 짠다고 해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
아마도 본래의 세계에서 철혈의 군주는 크게 패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간에 살아남은 끝에 탑의 도전자가 되겠지.
추측하건대 철혈의 군주는 그러한 과거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될 뿐이었다.
그때였다.
“십인장님!”
갑자기 웬 붉은 머리의 남성이 흠칫 놀라며 재빨리 달려왔다.
설마 시련의 배정된 배역이랑 연관이 있는 것일까?
마치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느냐는 것 같은 표정.
그에 나는 그를 보며 눈을 찌푸리곤 되묻듯 말했다.
“십인장?”
“……예! 십인장님! 론 십인장님이시잖습니까!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겁니까!?”
“론이라는 게 십인장의 이름인가?”
“……예? 아니, 뭔, 그딴……. 하아. 지금 이런 장난칠 시간 없습니다. 진짜로요.”
굳이 따지자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긴 한데…….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걸 보니 쓸데없는 대화는 생략해야 할 듯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간략하게 질문해야 할 것을 물었다.
“내가 십인장으로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있는 건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게 가장 궁금했다.
“……당연하잖습니까. 저희는 전방이 아니라 후방에 배정된 조입니다. 그러니 얼른 후방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방에 가지 않으면?”
“……그럼 십인장님은 군법을 어긴 죄로 처벌을 받을 겁니다. 현재 전황이 심상찮으니 사형으로 다스려질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전방에 있는 적들을 내가 모조리 섬멸하면?”
“……이제 진짜 농에 어울려드릴 수 없─.”
“물음에 대답하면 좋을 것 같은데.”
붉은 머리의 남성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드러내더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하, 씨. 아마도 그럼 십인장님은 죄 대신 공이 더 크다며 진급하실 겁니다. 이제 됐죠.”
“어느 정도는.”
“궁금증이 풀렸다면,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테니, 저희는 이제 후방으로 가야 하─.”
“그럼 굳이 후방에 갈 필요는 없지.”
그리고 그의 말을 전부 들은 나는 바로 걸음을 돌렸다.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후방 측에 가지 않아도 공을 세우면 벌을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차라리 시간을 끌 것도 없이 속도감 있게 시련을 진행할 생각이 들었다.
「권능 스킬 ‘성광’이 활성화되어 신성 을 머금은 별빛이 생성됩니다.」
“어차피 전장에 있는 걸 전부 죽이면 되는 거잖아?”
그것도 아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