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8
027. 선점 (2)
1억 6,500만 원.
한낱 헌터 지망생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금액의 돈이 통장에 꽂혔다.
시련의 탑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강인해졌다고는 해도 나도 사람이다.
표정 관리를 하는 것도 잊고 순간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순간적으로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뇌리를 빡빡하게 메웠지만.
‘……그럼 뭐하냐, 곧 빠져나갈 돈인데.’
곧 정신을 차린 나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기 시작했다.
괜히 선점이랍시고 높은 가격에 아이템들을 매각한 게 아니다.
시련의 탑에 관해서 실험해 볼 것도 있고, 돈에 집착하는 건 좋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니 가파르게 올라가던 입꼬리가 금방 평평해졌다.
“입금 확인했습니다.”
흥분했던 것과 다르게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였다.
“그럼 물건은 이제 제가 알아서 처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자 직원은 그리 대꾸하고는 이내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을 회수했다.
좀 아깝기는 해도 더 높은 층에서는 쓰지도 못할 물건들이다.
“다음에도 또 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그럼 이만.”
미련을 깔끔하게 접은 채 매장에서 나와서 다른 매장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궁금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시련의 탑 시스템은 내부에서 구매했던 물건들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올 수 있게 했다.
그럼 그 반대의 경우로 바깥에서 산 아이템을 안으로 가지고 가는 건 어떨까 싶다.
아직은 추측에서 그치고 있지만, 가지고 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아예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다.
‘장비를 들고 올 수 있게 했다면 다시 가지고 갈 수 있게도 해 놨겠지.’
다만, 문제는 그게 시련의 탑 바깥에서 산 장비도 통용되는 것이냐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걸 알아 보려고 하는 것이고.
“돈을 벌었으면 써야 하는 법이지.”
헌터 마켓에 널려 있는 매장들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벌었던 만큼 돈을 쓸 차례였다.
***
「크로켄 마탑의 복원 상자」
「등급 : D+」
「한때 괴짜들의 마탑이라 불리던 크로켄 마탑에서 개발한 수리용 마도 공학 용품이다.」
「C등급 이하의 아이템을 상자에 넣을 시, 원래의 형상으로 복원할 수 있다.」
「단, 안에 넣는 물건은 상자의 크기에 맞아야 하며 1개만 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용 제한으로 수리는 1번만 할 수 있다.」
「청결의 돌」
「등급 : E-」
「마력을 주입할 시, 사용자의 몸과 몸에 걸친 장비들을 전부 청결하게 만든다.」
「단, 특수한 효과를 지닌 것들은 청결의 돌로 제거할 수 없다.」
「재사용 대기 시간은 3시간이다.」
다시 원룸으로 돌아온 후.
나는 헌터 마켓의 곳곳을 둘러보며 구매하게 된 두 개의 물품을 바라보았다.
시련의 탑에서 쓰게 된다면 효율적이리라 생각한 것들만 엄선한 결과물이었다.
‘크로켄 마탑의 복원 상자, 그리고 청결의 돌.’
9,700만 원 선에서 구매하게 된 장비들치고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크로켄 마탑의 복원 상자는 D+등급이었고.
청결의 돌은 E-등급이라고는 해도 분명히 탑에 있을 때는 중요한 물건이다.
‘씻을 수 있는 요건이 안 되는 시련의 탑에서는 더 그렇겠지.’
한 번 악취에서 벗어나니 그때 맡던 냄새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자각할 수 있었다.
돈을 좀 쓰더라도 최소한의 청결은 지킬 수 있다면 지키는 게 좋다.
“고작 물건 두 개 샀다고 1억 원이 날아가다니…….”
솔직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련의 탑에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1억 원 안에서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었지.’
어느 정도 여윳돈을 남겨 두는 건 중요했기에 그 정도로만 골랐다.
시련의 탑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시 지구로 돌아오지 않을 건 아니니까.
‘헌터 자격을 유지하려면 일 년에 두 번은 사냥해야 하는 것도 있고.’
A급 헌터들은 명예직으로라도 은퇴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아래는 아니다.
헌터 협회 소속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헌터 활동을 이어가지 않으면 강제적인 은퇴 처리를 받기 마련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헌터는 게이트나 괴수를 처리하기 위한 직업이다.
실질적인 활동 기록이 없으면 헌터로서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돌아오게 되는 이유가 그것만이 아닐 것 같기는 하다만…….’
지금은 현실보다 시련의 탑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곧 돌아가게 될 시련의 탑은 아직 시련을 남겨 두고 있으니까.
8층, 그 장소에 다다르려면 세 번은 시련을 더 치러야 한다.
영구적인 귀환이 제한된 지금은 무엇보다도 시련의 탑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 판단을 내린 나는 컴퓨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해야 할 건 다 했으니 남은 문제는 하나뿐이다.
‘문제는 생각했던 것처럼 이 물건들을 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느냐인데…….’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될 일이다.
당장은 뭘 어쩔 수도 없으니 남은 건 탑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것뿐.
‘어차피 내일 돌아가게 될 테니 걱정할 건 없겠지.’
일단은 정보 수집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이만큼 시간이 지났으니 무언가 새롭게 정보가 갱신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깍, 딸깍.
그렇게 인터넷에서 ‘시련의 탑’에 관련된 내용을 찾던 도중이었다.
“……이건 또 뭐야.”
「너희 중에 시련의 탑에 다녀온 놈들 있냐.」
헌터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새롭게 갱신된 글에 순간 멈칫했다.
뭘까, 이 미친놈은.
‘4층 시련에 대해서 정보를 푸는 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지만…….’
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놈들이 꽤 많다.
무슨 생각으로 시련의 탑에 대해서 가볍게 글을 쓰는 것인지 궁금하다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딸깍.
「작성자 – 전직D급헌터인데요」
「씨발, 고민하다가 최하급 귀환석 구매해서 돌아왔는데 정보 좀 공유할 수 있겠냐. 급하다.」
일단은 글을 보자마자 거짓말은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귀환석에 대해서 알고 있는 5층 이상의 도전자.
난이도는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올렸는지 더 궁금해지네.’
급격하게 흥미도가 상승했기에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4층, 5층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는데. 6층 시련이 또 통합 시련이라 불안해서 미치겠다.」
「지금 질문권 다 써서 더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 진짜 죽게 생겼다고.」
「하필이면 어려움 난이도라서 더 좆됐다.」
어려움 난이도.
즉, 나랑 같은 난이도에 머물던 도전자였다.
‘벌써 6층 시련이 다가오게 된 건가…….’
5층의 시련이 얼마나 짧았길래 벌써 6층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잠깐 그런 의문을 넣어 두고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드륵, 드르륵.
「좆 같은 관리자 새끼들은 자꾸 질문하면 조금씩만 대답하고.」
「4층이랑 6층 대기실에서 ‘그 새끼’가 통합 시련에 대해서 어설프게 정보 풀어서 지금 커뮤니티는 알다시피 눈치 싸움하는 중이고.」
「밑바닥 도전자들은 진짜 다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거.」
「우리 같은 놈들은 정보라도 공유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올라간다.」
「혹시라도 정보 공유할 생각이 있는 하위권 도전자는 댓글 남겨라.」
“흠.”
이제야 좀 상황이 파악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4층 대기실에서 통합 시련에 관해서 정보가 뿌려졌듯 6층 대기실에서도 정보가 풀렸나 보네.’
글에서 지칭하는 ‘그 새끼’라는 도전자는 4층에서 보았던 그놈일 테고.
의외로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4층에서 봤던 그놈은 분탕을 치는 놈이고, 6층 시련은 통합 시련이라는 것.’
그리고 작성자는 질문권을 다 쓰게 된 하위권 도전자라는 것까지 알았다.
물론 정보를 공유하자는 글에 응답할 생각은 없었다.
‘공유할 정보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4층 시련 결산에서 16위로 지정되었으니 나는 상위권 도전자에 속한다.
그리고 질문권도 지금껏 써 오지 않았으니 누적된 상태고.
그런데 어설프게 접근해서 괜한 변수를 창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였다.
「고블린과함께춤을 – 정신병 있냐? 무슨 개소리야?」
금방 생성된 글임에도 어그로가 끌렸는지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대의오크 – 하긴, 헌터 중에 정신병 걸려서 은퇴한 애들도 꽤 있기는 하지.」
「월급루팡 – 아, 나도 D급 헌터인데, 잘못하면 얘처럼 정신병 걸리는 거냐. 좀 무섭네.」
「정공겜하는헌터 – 시련의 탑이니 도전자니 같잖은 헛소리하지 말고 게임이나 하러 가세요, 정신병자님.」
물론 댓글 중에 본문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하긴, 이런 글에 곧이곧대로 답할 리는 없겠…….’
「폭풍간지 – 서로 비슷한 처지네, 씨발. 나도 그런데. 일단 일대일로 대화 좀 할 수 있겠냐. 나도 어려움 난이도다.」
「도닥붕 – ㄹㅇ 감정이입 오지게 되네, 하. 좀 얘기할 수 있겠냐, 나도 정보 있음. 같은 어려움 난이도 도전자끼리 뭉치자.」
“……있네.”
벼랑 끝에 몰려서 그런 것인지 다들 초조한 게 글에서 드러났다.
그나저나 하위권 도전자들도 귀환했다는 게 놀라웠다.
‘그 정도로 초조하면 그냥 탑에서 수련이나 하다가 시련에 도전하면 됐을 텐데.’
그 많은 포인트를 써가며 귀환한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모르므로 속단하는 건 좋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슬슬 귀환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네.’
5층 시련을 끝낸 것처럼 말하는 걸 보니 이제 막 귀환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는 건 점점 시련의 탑에 대해서 공식적인 정보가 늘어난다는 것이기도 했다.
“선점하려고 남들보다 빠르게 귀환한 게 다행이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나중에 곤란해졌을 것이다.
빠르게 귀환했다는 것에 만족하며 인터넷을 더 뒤져보니 무언가 더 나왔다.
「님들 시련의 탑이라는 던전에 관해서 알고 있음?」
「민간인들은 전부 ‘시련의 탑’에 끌려가지 않게 주의하세요.」
「시련의 탑에서 팀을 구성할 도전자분들을 구합니다.」
생각보다도 더 많은 정보가 풀려나오고 있는 상황.
심지어 일반인 중에 귀환자가 있었는지 경고성 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하긴, 난이도 중에 쉬움도 있었으니 당연히 슬슬 나타나겠지.’
그러며 동시에 시련의 탑에 관심을 가지는 자들도 있었다.
「시련의 탑이 도대체 뭐길래 이놈이고 저놈이고 탑탑탑 거리는 건데.」
「무슨 시련의 탑인지 뭔지 하는 던전이, 민간인도 데려간다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단체로 조작하려고 하나, 시련의 탑이 뭔데 그러는 거야.」
슬슬 시련의 탑이 수면 위에 드러나리라는 것은 손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시련의 탑에 다시 돌아가서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래야 이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터였다.
‘6층은 통합 시련이고, 5층은 개인 시련인 모양인데…….’
그럼 또 혈전을 벌여야 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사실은 생각보다 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싸워야 한다면 싸울 뿐이지.’
오히려 싸워서 이기게 될 때, 얻게 될 보상이 궁금해질 정도.
한 번 사람을 죽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탑에 과하게 적응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제야 탑에 적응하게 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거 같았다.
‘투쟁, 그리고 그 투쟁 끝에 주어지는 보상에 익숙해졌다는 거겠지.’
분명히 어딘가 나사가 빠지게 된 인간이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8층에 다다를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8층이라…….”
다시 시련의 탑 전용 시스템이 확장되는 순간, 모아둔 질문권을 쓸 심산이었다.
그때는 시련의 탑에 대해서 전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될 테니까.
그러니.
“일단은 탑의 시련부터 철저히 대비해야겠네.”
당장은 변함없이 쭉 시련을 돌파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