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81
279. 파괴자 (2)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일곱 색상의 드래곤에 관해서 알게 된 게 있다.
‘드래곤이 전부 힘을 합치면 세계를 침공하려는 신의 힘을 억제할 수 있다고 했었지.’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단지, 이 세계에서는 드래곤들이 토착 신격과도 같은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됐을 뿐.
아마도 드래곤들이 힘을 합친다면 세계가 바로 종말을 맞이하진 않겠지.
최소한 이 대지에 신격이 행패를 부릴 수는 없게끔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악신이 직접 오기 전까지는 그러할 터이다.
‘시련의 진행 구조는 드래곤들의 인정을 전부 받아 내는 거겠지.’
그리고 그에 따라서 드래곤들이 바라는 것들을 얻고 그걸 내주어야 하겠지.
길게 볼 것도 없이 내용이 머릿속에 착 그려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드래곤들의 인정을 그리 힘들게 받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설령 드래곤이라고 해도 몇 대 쥐어패면 순해질 테지.’
이제는 시련의 진행을 그대로 따라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기에.
적어도 이제 신성조차도 없는 적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그것도 아주 조금도.
‘드래곤이 정식 신격이라도 되지 않는 한에는 달리 저항할 수단도 없겠지.’
그럴 만도 했다.
신격으로 성장하며 얻은 힘은 그러한 수준이다.
설령 토착 신격이라 해도 간단히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
그러니 블랙 드래곤에게 간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웬만한 수준의 힘과 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내게 아무런 위해도 끼칠 수 없을 테니까.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하지만 철혈의 군주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그대여. 그……. 드래곤을 때려눕히겠다는, 어제의 말은……. 그저 농담인 거겠지?”
갑자기 철혈의 군주가 불안하다는 듯이 불쑥 말을 걸었다.
현재 나는 말을 타고 철혈의 군주의 옆에 붙어 있는 상태.
그녀는 말의 고삐를 매만지며 초조하다는 듯 눈빛을 발했다.
실제로…….
“그대는 드래곤에게 갈 때까지 제국군을 수호해 주면 될 뿐이다.”
철혈의 군주의 말에서는 지울 수 없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제국 측에서 마련한 교섭안도 있으니, 그대는 그렇게 힘을 쓸 것 없다.”
마치 이대로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같은 모습.
사실은 그 말을 따를 생각은 없지만, 어차피 싫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말을 설렁설렁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혀 알아들은 것 같지 않은 얼굴이다마는.”
“아뇨. 확실하게 알아들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렇다면야 상관없겠지. 어차피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진 않고 말이야.”
철혈의 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리 말하고는 이내 말을 끊었다.
아마도 이제는 내가 뭔 말을 해도 잘 듣지 않음을 알게 된 게 아닐까?
어쨌든 간에 그다지 나쁘진 않은 일이기에 나는 조용히 말을 탄 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종종 나타나는 악신을 섬기는 종들을 상대로 승리를 반복했다.
하지만 수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도전자 한성윤이 적들에게서 승리함으로써 2차 승천에 0.00007% 가까워졌습니다.」
「에 따른 특수 보상으로 전용 효과 ‘마기 농도 상승(D-)’을 획득합니다.」
「이제부터 도전자 한성윤의 마기는 농도가 살짝 상승합니다.」
기껏해야 티끌만큼이라고 해야 할 보상이 전부였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덤벼 온 악신을 섬기는 이들 중에서 사도 수준의 적은 없었기에.
심지어 성유물 같은 아이템은 가지고 올지언정 격이 높은 이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것도 단 한 명도 말이다.
‘마치 수준을 살피듯 쓸모없는 놈들만 보내고 있어.’
아마도 내가 가진 힘을 살피려 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압도적인 힘의 앞에서는 뭔가를 살피고 전략을 펼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신성, 마력, 스킬, 권능 등등…….
현재 내가 가진 수많은 능력 중 이들이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악신을 섬기는 이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해도 가소로울 뿐이다.
‘고작 이까짓 걸로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리 없지.’
적어도 가진 힘을 전부 끌어내려 한다면 악신이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것도 화신체 같은 게 아니라 본체로 말이다.
하지만 악신이 인과율의 성립도 시키지 않고 바로 등장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최소한 이 세계에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계기적인 뭔가는 있어야 하겠지.
그렇기에 시간은 의미도 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업적 ‘드래곤 탐색가’를 달성했습니다.」
「전용 권한 #D-0007[보상 상승]이 조건을 만족하여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업적으로 얻는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4 상승합니다.」
어느새 나는 블랙 드래곤이 살고 있다는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대수림(大樹林).
다크 엘프 일족의 영역인 동시에 블랙 드래곤이 자리 잡은 곳에 도착했다.
그에 나는 조용히 감각을 넓히며 저 너머를 살폈고, 철혈의 군주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아무런 피해도 없이 이곳에 올 수 있을 줄이야…….”
그녀는 붉은 눈을 별빛처럼 반짝이며 한 번 군사들을 슥 돌아봤다.
“추악한 악신을 섬기는 종들을 상대로 엄청난 쾌거를 이뤘군.”
그리고 철혈의 군주는 씩 미소를 지으며 이내 주먹을 툭 내밀어 어깨에 닿게 하였다.
지금껏 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정도 친해진 탓일까?
그녀의 장난기가 깃든 행동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여태까지 이렇게까지 감정을 표현한 적은 없었지.’
관리자로 인연을 맺은 철혈의 군주마저도 이렇게 격식 없이 행동한 적은 없었기에.
심지어 며칠 간은 감정을 숨기며 의중을 읽으려 했었던 그녀다.
철혈의 군주의 감정이 점점 알게 모르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인데…….
솔직히 말해서 시련의 보상도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게 했다는 것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아직은 완전하게 마음의 벽을 열어젖힌 건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전진한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성윤.”
철혈의 군주가 붉은 눈을 약간의 신뢰를 담은 채 반짝였다.
“제국군이 이렇게 피를 흘리지 않고 이곳에 온 건 그대의 공적이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껏 이곳에 오며 악신을 섬기는 신도를 모조리 해치운 건 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크게 잘난 척은 하지 않고 간단하게 답했다.
실제로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습니까.”
철혈의 군주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그렇다. 그대의 힘이 없었다면 제국군은 이곳에 올 수도 없었을 터이지. 실로 꿈 같은 일이 따로 없어.”
“그렇다면야 다행입니다.”
“아마도 이대로 블랙 드래곤의 설득에 성공하고 제국에 돌아가면, 만인장의 자리를 넘어서 군주의 자리도 얻을 수 있겠지.”
“…….”
그녀는 더없이 밝은 미소를 자아내며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된다면 나의 소망도 이룰 수 있겠지.”
마치 꿈을 좇는 천진한 소녀와도 같은 표정.
“소망?”
그에 나는 잠깐 멈칫해야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철혈의 군주의 비원은 제국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또 다른 소망을 말하고 있으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틈은 없었다.
‘살기가…….’
갑자기 대수림의 너머에서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이내 바로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말에서 내린 순간.
소리도 없이 쏘아진 마력이 깃든 화살이 미간을 노리며 쏘아졌다.
콱-!
하지만 나는 화살이 미간에 닿기 직전에 바로 왼손으로 화살을 잡았다.
설령 마력이 깃들었다고 해도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다.
실제로 철혈의 군주도 쏘아진 화살을 쉽게 막았다.
콰직-!
“다크 엘프 측이 쏜 화살인 건가. 과격해. 일반적인 엘프보다 공격성이 심각하군.”
철혈의 군주는 손등으로 화살을 쳐낸 게 아프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그리 말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저 너머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차가운.
-세계에 버려진 오염물들 주제에 선을 넘으러 왔는가.
“대충 마력으로 음성을 퍼뜨리는 기술인 건가.”
하지만 그 덕분에 대충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다크 엘프라고 하는 일족도 그리 수준이 높진 않나.’
그럴 만도 했다.
아마도 말을 전달하는 이는 일족의 전투 가능 인원 중 하나일 터인데…….
공기 중의 마력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역추적하여 수준을 가늠하니 수준이 매우 낮다.
탑의 도전자로 치자면 고작 10층 대의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저렇게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최소한 마인드 자체는 비틀려 있다는 건 확실해.’
이내 상대의 어리석음에 비릿한 웃음을 지은 순간.
-너…….
갑자기 공기 중에 울리는 음성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한낱 오염된 쓰레기 주제에 뭘 그리 웃고 있나.
“나?”
-그렇다. 너. 인간 남성.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잡것아. 어째서 웃음을 지은 것이냐.
“그거야 그쪽이 재밌는 짓을 하니 웃는 거겠지?”
-재미있는 짓이라니……?
“그렇잖아. 뭔지도 모르고 갑자기 화를 내다니. 사람을 재밌게 하는 재주지.”
-하! 화를 내는 게 뭐 그리 재미가 있지? 생각한 대로 오염물들은 자기 주제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구나!
“…….”
솔직히 이쯤 되면 어디 정신에 살짝 문제가 크게 있는 것 아닐까?
갑자기 다크 엘프 측이 저렇게 오염물이니 뭐니 말하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성광이라도 쏘아 보내서 숲을 활활 불태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는 걸로 화를 참았다.
“한성윤.”
그럴 만도 했다.
“다크 엘프에게 감정을 소모하지 마라.”
어느새 철혈의 군주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리 부탁한 탓이다.
“어차피 블랙 드래곤을 만나는 걸 허락받으면 끝일 뿐이니.”
실제로 딱히 틀리지도 않은 말이다.
블랙 드래곤을 접할 수 있다면 어차피 저것들이야 크게 중요치 않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쓸데없이 힘을 쓸 생각도 이내 사라졌다.
‘……참자. 어차피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놈들. 블랙 드래곤을 만나면 끝이야.’
그리고 이내 나는 화를 절제하고는 말을 이었다.
“다크 엘프. 현재 세계는 악신 탓에 어지럽혀져 있어. 이건 알고 있을 텐데.”
다름이 아니라…….
“나는 블랙 드래곤에게 세계의 수호에 관한 인정을 받으러 가고 있을 뿐이야.”
지적인 생명체답게 ‘교섭’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니 길을 비켜 준다면 너희와는 얽히지 않고 블랙 드래곤을 만나지.”
그래.
아마도 이렇게 하는 게 옳을 터이다.
흔히들 ‘참을 인을 세 번 외우면 살인마저 피할 수 있다.’라고 말하듯.
설령 지성이 부족한 다크 엘프라도 인내심을 가지면 싸우지 않고 넘길 수 있…….
-그래! 잘 알고 있지. 서로 같은 오염된 쓰레기들끼리 싸우고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것이지?
“…….”
-블랙 드래곤님은 다크 엘프 일족의 수호자이시다! 너희 같은 오염된 것들이 만날 순 없지! 추악하고, 역겹고, 모순적인 존재들이!
“…….”
-설령 악신이 세계를 지배해도 블랙 드래곤님이 다크 엘프들을 지켜 줄 거다! 굳이 악신이 오염물들을 싹 청소해 준다는데 막을 리 없지!
“하…….”
-너희들은 그저 주어진 자연을 더럽히는 게 전부잖나. 그대로 전부 유린당해서 죽어라. 그리고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우리에게 사죄하…….
“그렇다면 이제 그만하자.”
그제야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크 엘프의 말을 끊었다.
그럴 만도 했다.
생각처럼 다크 엘프의 일족이 온화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그리고 이어서 나는 바로 권능 스킬을 발동하며 말을 이었다.
키이이이이잉-!
「권능 스킬 ‘성광’이 활성화되어 신성 을 머금은 별빛이 생성됩니다.」
“어차피 나도 참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쉽거든.”
이제야 참을 인이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이 틀렸음을 알았다.
-뭣……! 자, 잠깐만……! 인간!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그럴 만도 했다.
“일단은 서로 지적 생명체답게 화를 한 번 가라앉히고 협상을 하자고.”
처음부터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을 세 번이나 외울 필요도 없잖은가?
“그럼 너희도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렇지?”
다음 순간.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별빛이 대수림의 절반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