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82
280. 파괴자 (3)
꽈아아아아아아앙……!!
성광을 발동하자마자 귓가로 맹렬한 폭음이 들려오며 상황이 격변했다.
검은 별빛이 드넓은 숲을 맹수처럼 쩍 아가리를 벌리며 집어삼킨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심지어…….
콰과과과과과과과……!
검은 별빛은 그저 대수림을 집어삼키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신성 을 머금은 성광은 폭주하듯 일렁이며 그대로 모든 것을 불살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숲의 절반이 통째로 지워지며 귓가로 굉음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치이이-.
“시원하네.”
이내 머지않아서 귓가로 들려오는 잡음들이 사라진 순간.
대수림의 60% 정도는 거의 타다 남은 재만이 남게 됐다.
마치 대수림 중 대부분이 지우개로 지워진 것 같은 모습.
그렇다고 할지라도 대수림의 크기 자체가 압도적이고, 기감으로 사람들이 없는 곳을 노렸기에 실질적 피해는 그리 크지 않겠지.
아마도.
‘하지만 적어도 이걸로 다크 엘프들의 입은 닥치게 할 수 있겠지.’
애초에 다크 엘프들을 모조리 없애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설령 아집으로 꽁꽁 뭉쳐 있다고 해도 대량 살상을 벌이는 건 원치 않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탑이 원하는 대로 미쳐 버릴 수도 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조용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의미 없이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어.’
현재 다크 엘프는 인간 측의 방문 자체에 살의를 느끼고 있는 상황.
아마도 이곳에서 온건적인 수단을 썼다면 상당히 귀찮아졌을 터이지.
그러느니 차라리 이렇게 힘을 써서라도 길을 여는 게 합리적인 진행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니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업적 ‘최악의 방화범’을 달성했습니다.」
「전용 권한 #D-0007[보상 상승]이 조건을 만족하여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업적으로 얻는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5 상승합니다.」
“…….”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를 읽은 나는 양심이 쿡쿡 찔렸다.
‘……왜인지 모르게 대놓고 탑에 쓰레기라는 낙인이 찍힌 기분이 드는데.’
하지만 어쨌든 간에 결과가 좋으면 괜찮은 거 아닐까?
실제로 이렇게 업적을 달성하여 높은 능력치 상승을 얻기도 했고 말이다.
그에 바로 찝찝함을 털어서 없애니 옆에 있는 철혈의 군주가 창백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한성윤……. 이건, 대체…….”
마치 도저히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같은 표정.
“어째서 대수림을 파괴했지……?”
실제로 철혈의 군주는 복잡한 감정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현재 내가 선보인 힘은 확실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수준.
눈 깜짝할 사이에 지형 자체를 바꿀 정도의 힘을 직접 봤으니 놀랐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을 걸 수 있는 게 신기한 거긴 하지.’
이곳에 있는 군사들마저도 충격, 그리고 공포의 감정을 보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아예 충격에 몸이 집어 삼켜진 탓에 입을 열지도 못하는 모습.
저것이 일반적인 이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그녀의 수준이 소드마스터 정도는 되기에 이 정도에서 그치는 거겠지.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설령 힘이 있어도 이렇게 대뜸 다크 엘프의 영역을 파괴할 줄은 몰랐을 테지.
고작 몇 분 전의 나조차도 이렇게 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실수입니다.”
“……응?”
“적당하게 손대중하려 했는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아니……. 어딜 봐서 이게 실수라고 할 수 있…….”
“아뇨. 실수입니다. 어차피 인명 피해는 없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얼굴에 아주 살짝 철판을 깔고 실수라고 하니 철혈의 군주도 입을 닫았다.
“아마도 출력 조정에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진짜로요.”
“……그대여.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긴 하다만. 자주 뻔뻔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나?”
“전혀요?”
얼굴에 살짝은 철판을 깐 게 맞아도 뻔뻔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남에게 그렇게 성격이 뻔뻔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적고 말이다.
여태까지 실수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것도 아주 확실히.
‘적어도 마족이랑 악마들은 이렇게 말해도 뻔뻔하다고 안 했는데.’
……살짝은 힘이 깃든 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됐다……. 그대는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존재군…….”
철혈의 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고는 이내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름이 아니라…….
“다크 엘프 측에는 둘이 갈 테니 제군들은 이곳에서 잠깐 대기하도록 하라.”
기껏 끌고 온 군사들을 이곳에 전부 대기시킨 거다.
“어째서 기껏 끌고 온 군사들을 전부 놓고 가는 겁니까.”
그에 바로 어째서 그러는지 물어보니 바로 한숨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그대의 그 ‘실수’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
“원래는 다크 엘프 측을 견제할 겸,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교전까지 고려했다. 그래서 군사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지 않은가.”
“아.”
그제야 그녀의 지시를 이해한 나는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제 덕분에 이룬 훈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쓸데없이 군사들을 소모시킬 필요는 없어졌지 않습니까.”
“……그래. 대충 그런 걸로 하지. 이제 그대에 사고관을 좀 알 것 같군.”
철혈의 군주는 질렸다는 듯 그리 말하고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대수림이 절반 넘게 파괴되긴 했어도 멀쩡한 부분은 있었다.
기감으로 바로 다크 엘프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걸어가니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부, 불이다! 장로님들을 모셔 와라! 그, 그리고 호수에 있는 물의 정령을 불러!”
“말도, 안 되는, 일이……! 대수림이 절반도 넘게 파괴됐어……?”
“어찌 이런 것이……! 대체, 대체! 대수림이 어째서 이리된 것이더냐!”
혼돈에 휩싸인 채 절규하는 다크 엘프들이 나타난 것이다.
살짝 그을린 것 같은 갈색 피부를 가진 다크 엘프들이 분노를 토해 내고 있는 상황.
심지어 어째서 단숨에 대수림이 파괴됐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난장판이 따로 없을 지경이네.”
그럴 만도 했다.
‘고작 한 사람이 대수림을 반파시킬 수 있을 줄은 몰랐을 테지.’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대수림을 몇 분도 되지 않아서 파괴할 수 있다니?
상식적으로 추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마도 곧 정보통이 있다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터이다.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내게 있으며 대수림을 파괴한 것도 나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상황이 귀찮아지기 전에 정리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상황이 꼬이기 전에 기선제압을 마치는 게 옳았다.
쩌저저저저저저정─!
「권능 ‘겨울의 왕’이 조건을 충족하여 자동으로 활성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증폭되며 사용자는 냉기에 일절 영향받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신성력이 냉기로 치환되어 불타던 숲을 겨울로 만들었다.
그것도 얼음으로 점철된.
그리고 동시에 분주히 움직이던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이쪽에 쏠렸다.
심지어 그것만이 아니다.
“어째서, 얼음이……? 설마, 저기에 있는, 인간이……?”
“추악한 것도 모자라 역겹기까지 한 인간이 더러운 몸으로 이곳에 왔는가……!”
“설마 검은 별빛도 인간들이 한 짓인가! 역시 인간 같은 오염물은 전부 절멸시켜야 하…….”
혼란, 경악, 불신, 경계, 분노 등등…….
현재 이곳에 있는 다크 엘프들은 모조리 적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것도 더없이 짙은 수준의 적대심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왜냐하면…….
콰아앙-!
“전부 조용.”
이내 마력을 한껏 담은 채로 대지를 거칠게 내려찍은 순간.
어느새 넘실거리는 마력이 다크 엘프들의 입을 다물게 했기에.
그제야 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다크 엘프들에게 말을 걸었다.
“10분 줄게.”
다름이 아니라…….
“10분 내로 블랙 드래곤이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
드디어 온건한 ‘교섭’을 시도한 것이다.
“그럼 이 자리에서 더는 힘을 쓰지 않고 물러나 줄 테니.”
그것도─.
“간단하지?”
한없이 평화로운 교섭을 말이다.
***
물리적인 힘이 동반된 교섭은 확실히 훌륭했다.
“이건, 대체…….”
최고의 협상 수단은 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일까?
어느새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던 다크 엘프들이 얌전하게 변했다.
마치 작은 짐승이 자기보다 큰 맹수를 보고 겁먹은 것 같은 모습.
실제로 상황은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누, 누구시오……? 누, 누구시길래, 우, 우리들을 이리, 피, 핍박하는 것이……오.”
다크 엘프 중 연장자로 보이는 노인이 말을 더듬거리며 그리 말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는 게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재밌네.”
그럴 만도 했다.
“아까까지는 인간들은 오염물이니 어쩌느니 하더니. 이제야 분노 조절이 되나 보네.”
“그, 그, 그…….”
“왜?”
“그건 전부 이유가 있…….”
“아니야?”
힘을 가진 자에 따라서는 조절될 수 있는 혐오라니?
선택적인 분노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잠깐 웃음을 짓던 나는 그대로 마력의 방출량을 늘렸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드드드-!
순식간에 늘어난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지가 울려 댄다.
“아직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컥……! 마, 맞소……! 마, 맞으니, 제발, 힘을 거두어 주시오……!”
이제야 분노 조절을 인정하는 다크 엘프를 보며 나는 마력을 살짝 거뒀다.
“허억, 허억…….”
그제야 늙은 다크 엘프는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친 기색을 드러내는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눈을 빛냈다.
그리고…….
“9분.”
“……예?”
“이제는 9분 남았어.”
“……살려 주시오.”
“죽일 생각 없어.”
“……블랙 드래곤이 있는 곳은 알려 줄 수 없소. 그분은 다크 엘프 일족의 수호자이니 배반할 수는 없─.”
꽈아아아아아앙-!
“…….”
“8분.”
“아니…….”
“7분.”
“아니! 아직 몇 초도 지나지 않았잖소! 시간이 그리 흘러갈 순 없……!”
“6분. 아니. 괘씸죄로 4분.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어.”
“이, 이, 이이이!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포, 폭거는 그만하시오! 그래 봤자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을 것이외다!”
“그거야 한번 해보면 알겠지.”
지금껏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선택적인 혐오로 점철된 종족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겠지.
아마도 힘을 조금 더 쓰는 것으로 손쉽게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시간을 낭비하는 게 귀찮기에 직접 정보를 불게 할 기회를 줄 뿐이지.
“선택해.”
그리고…….
“맞은 후에 알려 줄래, 그냥 지금 알려 줄래?”
이내 주먹에 힘을 꽉 쥐며 위협적인 어조로 그리 말한 순간.
[ 그만해라. ]갑자기 신성이 깃든 음성이 천공에 웅웅 울렸다.
[ 어디까지 나의 종들을 핍박하려 하는 것이더냐. ]다름이 아니라…….
[ 하찮은 인간아. ]어느새 천공에는 검은색의 용(龍)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너처럼 같은 미물이 감히 나의 종들을 핍박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가? ]그리고.
[ 너는 오늘 나의 종들을 해하려 한 죗값을 치를 거다. ]차아아아아아앙-!
이내 신성이 깃든 힘이 블랙 드래곤에게서 울려 퍼지는 순간.
“……젠장. 한성윤. 생각보다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았는가.”
철혈의 군주는 눈을 크게 뜨며 이를 악물더니 검파에 손을 올렸다.
“그러길래 협상은 이쪽에 맡기라고 했었잖나. 그대여.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 그대는 지원 요청을 하…….”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뇨.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검은 뽑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정도는 상정 내의 범주니까.
「신성 이 사용됩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현실 세계에 말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단, 세상의 이치를 간섭하는 언령에는 매우 많은 신성력이 소모됩니다.」
《 앉아. 그리고 엎드려. 》
그리고…….
[ 불쾌하군. 누굴 개로 아는 건가. 그런 말은 따를 필요도 없……!?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대로 블랙 드래곤의 몸이 개처럼 굽혀지며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