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83
281. 파괴자 (4)
콰아아아아아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블랙 드래곤의 몸뚱이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그것도 더없이 강하게.
그대로 용의 거체(巨體)에 대수림의 지면이 짓눌리며 얕은 지진이 일었다.
하지만 그에 신경을 쓸 틈도 없이 쩌렁쩌렁 비명이 울렸다.
[ 끄아아아아아아아아-!! ]다름이 아니라…….
[ 대, 대체 내게 뭔 짓을 한 거냐!! 어째서 몸이 움직이질 않는 것이지!? ]어느새 블랙 드래곤이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어선 그리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신성력을 가지고 있길래 토착 신격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신성 에 바로 손쓸 도리도 없이 붙잡힌 걸 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
‘설마 드래곤의 힘은 토착 신격 정도의 수준도 되지 않는 건가.’
설마 세계를 수호한다고 했던 드래곤이 이렇게 약할 줄이야.
여태까지 드래곤과의 전투를 생각하며 어느 정도는 상대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 게 우스웠다.
실상은 이렇게 신성 권능 한 번 쓰는 것으로 족한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에 잠시에 불과했다.
갑자기 신성 을 쓰고 나니 심장에 격통이 몰렸다.
쿵-.
모든 능력치 격하의 페널티 탓에 신성의 사용을 심장이 버티지 못한 걸까?
신성들이 한차례 크게 일렁이며 심장에 크게 손상을 입었다.
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에서 피를 토해 내야 했다.
“욱…….”
촤아아-.
한껏 입에서 핏물이 쏟아지며 잠깐 정신이 아찔해지려 했다.
하지만 통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권능 스킬 ‘잿빛 선혈’이 활성화됩니다.」
「소모하는 신성력에 따라서 재생력이 상승합니다.」
「신체 재생력이 400% 상승하며 모든 재생 불가 능력에 면역이 됩니다.」
어차피 심장에 데미지가 쌓여도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기에.
심지어 출혈로 잃은 혈액도 얼마든지 혈마신공으로 수복할 수 있었다.
사실상 신성 권능으로 반동이 와도 어지간한 데미지로는 크게 피해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신격과의 전투에서는 불리하겠네. 심장이 터지면 전투에 지장이 생길 테니까.’
아마도 신격과의 본격적인 전투 같은 게 아니라면 그리 문제는 없겠지.
세계를 침공하려 하는 악신을 상대로 힘을 쏟는 수준이 아니라면 상관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신격화를 써서 이쪽도 모든 격을 끌어올리면 반동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테고 말이다.
한마디로 그렇게까지 심각한 제약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신격이 상대가 아니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겠어.’
이내 잿빛 선혈로 회복을 마치니 철혈의 군주가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대여. 괜찮은가? 가, 갑자기 어째서 피를……! 자, 잠깐만 기다려라!”
그리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것도 눈빛까지 크게 흔들리는 상태로.
심지어 허둥지둥 품에서 회복 물약으로 추정되는 것까지 꺼냈다.
의외였다.
“회복 포션이다. 그대여. 자, 잠깐만 기다리면, 바깥에 있는 군의관을 불러오겠…….”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나는 이미 회복된 지 오래인 몸이다.
“회복은 이미 전에 마쳤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호의는 호의고, 쓸모는 쓸모다.
이제는 회복 물약은 쓸 것도 없었다.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은 순간.
철혈의 군주는 당혹스럽다는 듯이 눈을 여러 차례 깜빡이며 말했다.
“……회복을 이미 했다고?”
그리고…….
“……허어. 납득은 힘들지만, 이해는 되는군. 회복 계통의 능력인 건가.”
그제야 그다지 위험한 상황이 아님을 알아챈 철혈의 군주가 살짝 뺨을 붉게 물들였다.
“그, 그럼 설마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 건가?”
아마도 나는 멀쩡한데 혼자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운 거겠지.
그러니 이대로 곧이곧대로 ‘예.’라고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녀의 물음에 말을 최대한 포장하듯이 답했다.
“아뇨. 그래도 걱정해 주신 덕분에 힘이 나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게끔 말한 덕일까?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철혈의 군주도 나름대로 이에 대해서 만족하는 듯했다.
심지어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새.
그리고 그걸 보며 나도 같이 옅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의외의 이득이 생겼네.’
그럴 만도 했다.
‘시련이 끝나고 난 후에 최소한 보상을 후려치기 당하진 않겠어.’
어느새 철혈의 군주에게서는 신뢰의 감정이 새어나오고 있었기에.
신뢰, 그리고 결속 같은 감정은 곧 이 특수 계약 시련의 보상 상승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러니 나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 빌어먹을 연놈들이……! 감히! 감히 이 몸을 두고 그따위 촌극을 벌이는 건가……! 정녕 죽고 싶은 거냐!! ]드드드-.
갑자기 블랙 드래곤이 발작을 일으키듯 그리 소리치며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그에 신성 으로 강제된 행동의 제약이 살짝이나마 풀렸다.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이제야 저걸 풀어 낼 생각을 하는 거구나…….’
사실은 신성을 음성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면, 저래야 하는 게 정상이니까.
그러니 나는 혼란을 느끼는 대신에 바로 신성 에 힘을 더 쏟았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신성 이 사용됩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현실 세계에 말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단, 세상의 이치를 간섭하는 언령에는 매우 많은 신성력이 소모됩니다.」
《 멈춰. 》
그리고…….
[ 크으으으으으으!! ]콰드드-.
이내 신성 이 재차 블랙 드래곤의 몸을 죄이듯 감싸는 순간.
블랙 드래곤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다크 엘프들이 경악을 뱉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블랙 드래곤님이 어째서 저리 간단히 당하지!”
“아, 아아, 아아아아아! 드래곤이시여! 어째서 일어나지 못하시는 겁니까!”
“거짓말이지……? 응? 거, 거짓말이라고 해 달라고……! 이런 게 진짜일 리 없잖아!”
아마도 다크 엘프에게 있어서 블랙 드래곤은 절대적인 존재인 것 같은데…….
어차피 그래 봤자 한낱 토착 신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을 가진 생명체.
그러니 블랙 드래곤이 더는 저항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화를 불러온 것일까?
[ 이러한 수모를 겪고도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갑자기 블랙 드래곤은 파충류 같은 눈빛을 번뜩이며 분노를 토했다.
[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곳에서 네놈을 죽일 테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상관없어.”
토착 신격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제에 뭘 할 수 있다는 걸까?
“그쪽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해보라고.”
그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블랙 드래곤의 발버둥을 허락했다.
그런데…….
[ 용신이시여……! ]갑자기 블랙 드래곤의 입에서 엉뚱한 이름이 나왔다.
[ 당신에게서 비롯된 존재가 간청하나이다!! ]용신(龍神).
지금껏 알뜰살뜰 잘 써먹은 스킬인 성광(星光)을 창조한 신격을 부른 것이다.
그제야 나는 어째서 블랙 드래곤이 토착 신격도 아닌 주제에 신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용신의 피조물이라서 사도로 취급받는 거였나.’
고대 신격 중 하나인 용신에게서 비롯된 존재인 탓에 신성을 가진 거다.
그리고 그 추측은 실제로 옳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 저에게 적을 쓰러뜨리고 세계를 수호할 힘을 주시옵소서!! ]블랙 드래곤이 그렇게 분노를 담아서 외친 순간.
「4급 사도 ‘티르미온 아그네스’의 부름에 의해서 용신의 시련 관측이 가능해집니다.」
스으으-.
갑자기 거대한 존재감이 그림자처럼 드리우며 오싹한 감각이 일었다.
「용의 신이 4급 사도 ‘타르미온 아그네스’의 청을 수락합…….」
어느새 용신이 블랙 드래곤의 청을 들어주러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사도의 청을 수락한다는 시스템 메시지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용의 신이 상정 외의 존재를 보며 혼란을 느낍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인맥도 곧 실력이라고 말하듯…….
아마도 이것도 실력의 일부 아닐까?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습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후계자라며 내게 집착하던 용신이다.
호의를 가지고 있는 신격이 나를 해하려 하는 사도에게 힘을 내려줄 리는 없었다.
‘심지어 탑에 의해서 재현된 사도라면 더더욱 그렇지.’
신격은 탑에 의해서 재현될 수 없지만, 사도는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었다.
그러니 용신이 가짜에 불과한 블랙 드래곤의 청을 들어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후에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도 추측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용의 신이 4급 사도 ‘타르미온 아그네스’의 청을 거절합니다.」
「용의 신이 4급 사도 ‘타르미온 아그네스’에게 한성윤을 잘 모시라고 합니다.」
「용의 신이 4급 사도 ‘타르미온 아그네스’에게 더는 이런 걸로 자신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 이게 무슨……! 요, 용신이시여!? 어째서 저까짓 인간을 비호하시는 겁니까……! ]블랙 드래곤은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용의 신이 싸늘한 눈빛으로 지금 뜻을 따르지 않는 거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신격과 사도의 관계는 수직적인 구조다.
블랙 드래곤은 이를 갈며 분노를 곱씹듯 삼켰다.
그리고 점점 블랙 드래곤의 적의는 내부로 가라앉았다.
아마도 신의 뜻을 거스를 순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생각 외로 일이 잘 풀리는 걸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해맑게 웃으며 오랜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용신이시여. 오랜만입니다.”
용신과의 인맥을 과시하니 블랙 드래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 어……? ]마치 이렇게 될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
그럴 만도 했다.
설마 용신과의 인연이 이렇게 작용할 줄은 나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껏 찾아온 인맥의 힘을 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용의 신이 곧 관측이 끊긴다며 나중에 보자고 하며 손을 붕붕 흔듭니다!」
“아쉽네요. 용신이시여. 추후에 따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용신의 격이 사라지자 블랙 드래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용신님이랑,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아마도 상정한 것 이상으로 용신이랑 돈독한 사이인 줄 아는 것 같은데…….
착각은 자유이므로 굳이 블랙 드래곤의 착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착각한 만큼 이용해 줄 심산은 있었다.
[ 그……. 저, 저기……. 실례지만……. ]그리고…….
[ 귀하께선 누구신지……? ]어느새 블랙 드래곤의 공손해진 말투를 보며 나는 흡족하다는 듯 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직감했다.
“오늘부터 네 주인이 될 사람이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드래곤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가속될 것이다.
“용용아.”
그것도 아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