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87
285. 소망 (3)
궁금했다.
어째서 눈앞에 있는 황자는 굳이 자살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블랙 드래곤을 길들인 나를 상대로 어찌 이리 조롱을 이어 갈 수 있는지 말이다.
진짜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게 아니면 이러지 못하는 게 정상일 터인데…….
황자답게 목숨마저 아깝게 여기지 않는 배짱일까?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걸 이해할 수 없는데.’
살짝 선을 넘을 듯 말 듯이 혀를 굴리며 점점 강도를 높여 가는 언행.
적어도 이건 세계의 수호자 중 하나를 길들인 내게 할 짓은 아니다.
그러니 최소한 믿는 구석이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런데…….
“……자, 자, 자살하고 싶은지를 물어본 게, 저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설마 이렇게까지 상황이 단숨에 나빠질 건 예상하지 못한 걸까?
글리오스는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그리 물음을 건네었다.
마치 자기가 들은 말이 거짓이라고 해 주길 바라는 것 같은 표정.
그러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물음에 긍정을 표했다.
“그런데요?”
“……저, 저는 제국의 황자입니다. 제 동생도 황녀이긴 합니다마는. 현재 계승권에 가까운 저라는 말입─.”
“그래서요?”
“?”
“그게 황자님이 자살하고 싶은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
아직도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진짜로 자살하고 싶으면 혀를 더 놀려 보셔도 됩니다.”
어차피 상대가 누구든 간에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제국에서 가장 계승권에 가까운 황자라고?
철혈의 군주는 계승권에서 멀기에 자기가 차기 황제나 다름없다는 것 같은데…….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조금조차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직도 저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으신 생각이 듭니까?”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황자든 뭐든 간에 이 자리에서 머리통이 으깨지면 똑같이 죽지 않는가?
그렇게 된다면 글리오스의 같잖은 자신감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글리오스도 이제야 깨달은 듯했다.
“……흐, 흐으. 미, 미친놈. 어, 어찌 일국의 황자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
글리오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달달 떨리며 말이 이어졌지만…….
“그래서.”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자살하고 싶으신 게 맞습니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글리오스를 보며 미소를 지어 줬다.
“깔끔하게 그것만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사, 사, 살고 싶…….”
“그렇다면 됐습니다.”
글리오스의 살고 싶다는 생존 의지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시죠.”
“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살려 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
이제야 자기가 제대로 농락당했음을 깨달은 글리오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사실은 더 혀를 굴렸다면 진짜로 죽였을 것 같기는 하다만…….
뭐, 어쨌든 간에 이제라도 실수를 깨닫고 사과를 했으니 어느 정도 용서할 순 있다.
그리고 뭣보다도 글리오스는 철혈의 군주의 오빠이니 이런 것이다.
만약에 다른 이가 이랬다면 소통보다는 일단은 주먹이 먼저 나갔을 터이지.
실제로…….
“아, 그런데 머리를 으깨고 싶은 건 아직도 같으니, 살려 줄 때 빨리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아직도 손은 글리오스의 머리를 으깨고 싶다며 힘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글리오스는 힘이 집약되는 손을 보고는 흠칫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마치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긴장감이 그의 얼굴에 드러난 상태.
글리오스는 재빠르게 나에게 예의를 갖추고는 작별을 고하였다.
“……알, 알겠, 알겠습니다. 한성윤 님. 실언했음에 사죄드리며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리고 추후에 보복 같은 것은 일절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아깝네요.”
“?”
“그런 보복을 할 정도면 진짜 삶을 포기한 걸로 알았을 텐데.”
그에 나는 활짝 웃음의 꽃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황자님답게 확실히 생각이 깊으시네요.”
“……칭찬에, 감, 감사, 감사드립…… 니다.”
설마 자살을 도와주겠다는 말에 크게 감동한 걸까?
그는 감정이 북받친다는 듯이 말을 크게 더듬으며 다리를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글리오스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철혈의 군주 쪽을 힐끗 보고는 말을 남겼다.
“……카, 카나리아. 너도 잘 있거라. 나, 나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마. 나, 남은 일정이 있어서 말이야.”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여유로움이 없었다.
“사, 사도 강림이 일어난 장소에, 가, 가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그에 철혈의 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라버니. 그렇다면 저희는 따로 전장에 진입하는 걸로 해 두겠습니다. 그럼 이만.”
어느새 그리 말을 마친 철혈의 군주는 등을 돌리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이 자리에는 더 있는 것조차도 껄끄럽다는 듯이.
그것은 글리오스도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는 아예 말을 걸지도 않고 글리오스는 재빨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조용히 철혈의 군주의 보폭에 발을 맞췄다.
“…….”
그렇게 서로 한마디도 없이 몇 분 정도를 걸었을까?
“……정말로, 고맙다.”
갑자기 철혈의 군주는 그리 말하더니 이내 걸음을 멈췄다.
그것도 뜬금없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이다.
그녀의 어깨는 왜인지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제야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
그럴 만도 했다.
“아무것도, 못했었다…….”
어느새 철혈의 군주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려 있었으니까.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것도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로.
***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일변한다.
‘이게 무슨…….’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비상사태에 나는 등골을 타고 오싹함이 흐르는 걸 느꼈다.
철혈의 군주가 눈물을 흘리려 한다니……?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에 뇌 정지가 일었다.
진짜로 철로 된 피를 가졌을 것 같았던 철혈의 군주가 눈물을 흘린다는 건 그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스킬 ‘전투 집중’이라도 활성화하여 최대한 천천히 머리를 굴리고 싶을 정도.
‘어쩌지……?’
탑을 오르며 축적된 수많은 경험 중에서도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은 없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탑을 오르며 한 거라고는 수많은 적을 상대로 싸운 것밖에 없으니까.
사람을 상대하며 감정을 달래 줄 수 있는 회화력?
있을 리가.
심지어 가지고 있는 스킬이나 권능 중에서도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순수하게 머리를 굴려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하지만 생각할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그대에게 사죄하고 싶을 지경이다.”
“갑자기요……?”
“오라버니에게 움츠러들어서 그대가 조롱받는 것조차도 못 막았잖은가.”
“아.”
이해할 순 없지만 납득은 되었다.
현재 철혈의 군주는 죄책감과 자괴감, 그리고 분노 등의 감정으로 점철된 상태.
한마디로 말해서 그녀는 글리오스에게 억눌려서 해야 할 말을 못 했던 것에 크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다지 상관은 없는데…….’
어차피 상대는 황자인 동시에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다.
그러니 탑에서 온 도전자가 아닌 철혈의 군주를 적대하긴 힘들 터이다.
심지어 그게 그녀의 오라버니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보다는 철혈의 군주 쪽이 더 크게 모욕당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뭣보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이쪽이 해결을 해 뒀다.
그래서 전부 잘 풀리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새.
철혈의 군주는 반쯤은 울먹거리게 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오라버니는. 황위의 계승권에 가까운 존재지. 그래서 어릴 적부터 오라버니에게는 아무것도 못 하고 뺏겼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나는 조용히 경청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오라버니를 보자마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학습된 무기력 같은 거라는 뜻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철혈의 군주는 자조적인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황제의 계승권은 서로의 힘, 그리고 업적으로 결정되지 않는가.”
그녀의 세계에서 황제의 계승권은 실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듯했다.
심지어 그것도 힘과 업적이라는 형태로.
그러니 글리오스의 적대심이 그녀에게 흘러넘친 거겠지.
어쩌면 철혈의 군주에게 차기 황제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것이 제국의 전통이니 굳이 오라버니에게 움츠러들 이유도 없었다.”
철혈의 군주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움츠러든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대에게 보호받기만 했었잖나.”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그대는 나의 이름이 황실의 것임을 알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철혈의 군주의 말에 침울한 기색이 깃든다.
“아마도 이는 그대의 배려일 터이지.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
그도 그럴 것이…….
‘……아니. 배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을 뿐인데.’
철혈의 군주가 황녀라는 것은 이제 막 알게 된 사실인 탓이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외의 정보들도 나는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철혈의 군주에게 사적인 정보를 들은 적이 존재하지 않기에.
하지만 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오케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
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기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천인장을 넘어서 만인장의 자리에 도달하여, 언젠가는 황제의 자리를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지만 황제의 자리를 얻을 자격은커녕 측근 하나조차 지키지 못하지 않는가.”
이내 그녀의 말이 끝을 맺는 순간.
“나는……, 그대에게 신뢰받을 자격조차도 없다.”
어느새 눈밭에는 철혈의 군주의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
그녀에게 뭔가를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적어도 글리오스 같은 이가 황제가 되느니 당신이 황위를 얻는 게 낫다고.
그리고 그렇게 자책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다지 입에 착 달라붙는 말들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담천우의 조언이 그리운 상황이 왔구나…….’
시련의 페널티 탓에 잠깐 떨어지게 된 담천우의 조언이 절실할 정도다.
하지만 이 자리에 없는 이에게 도움을 바랄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기에 나는 이내 선택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쪽도 해야 할 말을 할 뿐이었다.
“자책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철혈의 군주가 자기를 어찌 생각하는지 따위야 중요하지 않았다.
“황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해도, 저에게 신뢰받을 자격이 없다고 해도, 어찌해도 좋습니다.”
“그러한가…….”
“예.”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어찌 생각하시든 간에 하나도 상관없을 테니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그게 무슨…….”
자격?
“황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신뢰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말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쓸모없는 건 조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카나리아 루그펠트.”
그따위의 것들이 없어도 원하는 걸 이룰 힘은 충분히 있으니까.
“저에게 있어선 당신이야말로 황제이고, 신뢰할 수 있는, 몇 없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
“그러니 쓸데없는 자격 같은 건 운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대체…….”
그리고.
“어차피 제가 무조건 당신을 황제로 만들 거니까.”
이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리 말한 순간.
“히끅……!”
갑자기 딸꾹질 같은 소리가 일었다.
‘어?’
그에 고개를 돌려서 철혈의 군주를 본 순간.
철혈의 군주의 얼굴이 놀랐다는 듯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입을 오물거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히끅, 히끅…….”
심지어 그것도 놀랐다는 듯 딸꾹질을 반복하는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