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88
286. 소망 (4)
철혈의 군주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딸꾹질을 이어 갔다.
“히끅……, 히끅…….”
설마 내가 했던 말이 그녀에게 상정 이상의 충격을 준 걸까?
그녀는 놀라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입에 도토리를 머금은 다람쥐의 우물거림을 생각나게 한다고 해야 할까?
철혈의 군주는 입가에는 오물거리는 것 같은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얼음처럼 몸을 굳힌 채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껏 철혈의 군주가 이렇게 점잖은 기품을 잃고 이런 적을 본 적이 없기에.
그런데 기껏해야 그녀를 황제로 만들겠다는 말에 이렇게 기품을 잃고 놀랄 줄이야…….
이쯤 되면 이제 머릿속에 심상찮은 걱정이 들 정도.
‘설마 내가 크게 실언한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기분이 상한 것 같은 반응도 아니다.
아니.
구태여 따지자면 소동물 같은 웃음을 짓고 있으니 괜찮은 게 아닐까?
실제로 철혈의 군주도 그리 감정의 상태가 나쁘진 않았다.
어느새 신격의 힘으로 그녀의 감정을 눈치챈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철혈의 군주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신앙에 가까운 뭔가가 됐기에.
‘신뢰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를 겪은 그녀의 감정은 신뢰와도 같은 느낌을 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신뢰의 감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신뢰보다는 짙은데 신앙보다는 옅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적긴 했지만 그래도 눈치챈 것도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조건 달성.」
「철혈의 군주의 감정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호의적입니다.」
「특수 계약 시련 의 클리어 보상의 수준이 상승합니다.」
이걸로 특수 계약 시련의 보상은 최소한 괜찮게 챙길 수 있게 됐다.
그에 나는 이내 입가에 작은 미소를 걸치게 됐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껏 시련 진행 내내 바라왔던 철혈의 군주의 신뢰를 얻었으니까.
실제로…….
“그, 그, 그…….”
어느새 딸꾹질을 멈춘 철혈의 군주의 음색은 분노를 내포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감출 수 없을 정도의 혼란과 신뢰를 느끼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그으…….”
그녀는 붉게 물든 얼굴을 푹 숙이고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이제는 잘 알겠다…….”
이제야 어느 정도는 나를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갑자기 그녀는 내 마음을 알겠다고 말하고는 이내 귀까지 빨갛게 물들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 듯했다.
철혈의 군주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 어째서 내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대의 마음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더는 나도 나약한 소리는 하지 않으마. 그대가 정녕 나를 황제로 추대하고 싶다면, 나도 그에 부응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야 다행입니다.”
흡족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답지 않게 침울했기에 껄끄럽다고 생각을 했는데…….
철혈의 군주가 기운을 차린 걸 보니 나도 같이 괜찮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만…….”
“?”
“……그, 그대는 이제부터 그리 건조하게 말할 것 없다.”
“건조하게 말하다뇨?”
“굳이 나를 직책이나 다른 지칭으로 부를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 카나리아라고……. 이, 이름으로 불러 주면 좋겠구나.”
“…….”
그에 잠깐 나는 대답을 망설여야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철혈의 군주를 이름으로 부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리고 탑에서 철혈의 군주를 볼 때마다 본명을 부르지도 않았기에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탓에 대답을 꺼려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철혈의 군주는 흠칫 몸을 떨고는 마치 뭔가를 부정하듯 말했다.
“그, 그, 그……. 그러니깐……. 그래! 그, 그대는 나의 측근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리 거리감 있게 부르는 건 맞지 않을 터이지!”
어차피 물어볼 생각도 없었는데 어째서 굳이 변명하듯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추후에 황제가 될 거라면 측근이라도 거리감을 두는 게 옳지 않은가?
살짝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다지 생각을 깊이 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간에 철혈의 군주는 자기를 이름으로 불러 주길 바라고 있었고, 그렇게 어렵지 않은 부탁이니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카나리아. 이제부터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읏…….”
철혈의 군주, 아니, 카나리아는 이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였다.
“흠흠. 그래. 이제야 거리감이 좀 줄어든 것 같지 않은가. 한성윤.”
“아, 예.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나쁘진 않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러게요.”
이내 카나리아의 의기양양한 미소를 본 나도 피식 웃음을 짓는 순간.
후우우우우우웅-!
그때였다.
콰지지지지지지직……!!
갑자기 설원의 저 너머에 있는 하늘에서 검은 기둥이 지상에 내리꽂히며 굉음이 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카나리아와의 담소는 끊겼고, 어느새 나는 입가를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하면…….
“설마, 저거…….”
천공에서 내리꽂힌 검은 기둥은 나도 쓸 줄 아는 능력 중 하나기에.
“신성 영역?”
불길한 신성을 머금은 기둥은 지금껏 봐왔던 신성 영역의 기둥과도 같았다.
그리고 저렇게 불길한 신성 영역을 생성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는 하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나는 설원 곳곳에 심상찮은 마기가 휘몰아치는 걸 느끼며 얼굴을 굳힌 채로 중얼거렸다.
“사도 강림을 쓴 악신이 힘을 썼나…….”
아마도 설원의 끝자락에서 드래곤들을 상대로 싸우며 신성 영역을 쓴 것 같은데…….
“신성 영역을 쓸 정도로 상황이 비틀렸다는 건가.”
검은빛 기둥을 보며 나는 긴장감을 느끼는 대신에 기대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재밌네.”
그럴 만도 했다.
‘새로운 신화의 습득에 더불어 신격을 살해하고 그 신성까지 얻을 기회라…….’
드디어 이 특수 계약 시련의 최종장이 개막을 알려온 거니까.
‘기대되네.’
그것도 아주 화려히.
***
카나리아의 은색 머리칼이 검은 기둥에서 뿜어진 돌풍에 휘날렸다.
“그대도, 느꼈나……?”
어느새 그녀의 붉은 눈은 긴장감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루비와도 같은 카나리아의 눈이 서늘함을 풍긴 순간.
그녀는 이어서 잔뜩 몸에 힘을 준 상태로 경계하듯 말했다.
“검은색 기둥에서 방출된 힘의 흔적을?”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아니.
단순하게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확실히 저것의 힘을 감지했다.
설령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그녀라고 해도 나처럼 이를 확실히 느낄 순 없다.
지금껏 몇 번이고 신격의 영역을 접해 본 나는 누구보다 저것이 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신성 영역. 그것도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는 상태야. 적어도 사도 수준이 쓸 순 없을 터인데.’
그렇기에 이어서 확신했다.
‘이제는 저건 사도 강림의 수준이 아니야.’
드래곤들과의 격전 속에서 악신이 뭘 얻었는지 같은 건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정해진 게 있었다.
현재 악신은 드래곤들을 상대로 세계의 수호를 무뎌지게 하는 데 성공한 상태.
그러니 사도 강림의 수준을 넘어서 신성 영역을 구현할 정도로 힘을 침공시킨 것이다.
실제로…….
[ 주인이시여! ]여태껏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블랙 드래곤이 재빨리 말했다.
[ 다른 드래곤들과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
[ 시, 신성 영역이 생기며 뭔가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천공에서 검은 기둥이 내리꽂힌 시점부터 뭔가가 비틀렸음은 확실히 눈치챘다.
“사도로 강림했어도 신격의 영역은 그리 녹록한 힘이 아니야.”
그럴 만도 했다.
“적어도 용신의 사도인 드래곤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 정도야 기본으로 끊기지.”
[ 아……. ]“심지어 그것도 사도기에 가능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야.”
[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간단하지.”
블랙 드래곤의 혼란에 찬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 신성 영역에 진입해서 결착을 내는 거지.”
[ ……. ]“효율적이지?”
[ ……예. ]원래 무엇이든 간에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이 붙듯…….
현재 북부 전선에 일어난 악신의 사도 강림을 해결하려면 폭풍의 중심지로 가야 했다.
그래야 저 너머에 있을 악신의 사도를 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 와중에 운이 좋지 않은 탓에 그대로 최종 보스와의 전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더는 전투를 피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착-.
“잠깐 좀 타고 가자.”
그에 나는 바로 블랙 드래곤의 등에 올라탄 채로 설원 쪽을 봤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전에는 블랙 드래곤의 공간 도약 능력을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 설원의 끝자락에 펼쳐진 검은색 기둥의 신성 영역은 크게 신성을 머금은 상태.
그러니 그곳으로 공간을 도약하는 것을 허용할 리 없었다.
아마도 신성의 힘이 공간을 도약하는 걸 막겠지.
‘차라리 물리적인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게 낫겠지.’
블랙 드래곤도 그것을 아는지 저항 없이 등에 타게 했다.
[ ……그러시지요. 그다지 썩 기분 좋진 않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군요. ]그리고.
“카나리아. 타십시오.”
이내 블랙 드래곤의 등에 탄 채로 카나리아에게 손을 내뻗은 순간.
“……그대다운 선택이군. 그래. 바깥에선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겠지.”
그녀도 이에 동의하듯 미소를 짓고는 손을 붙잡고 블랙 드래곤의 등에 올랐다.
“그대의 뜻이라면 같이 가 주마.”
그대로 이어서 카나리아가 승차하자 블랙 드래곤은 그대로 지면을 박찼다.
쉬이이이익-!
순식간에 파공음이 일어나며 블랙 드래곤의 몸이 가속됐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래도 고대 신격의 사도답게 블랙 드래곤은 잠깐 사이에 설원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느새 압도적인 크기의 검은빛 기둥을 눈앞에 두게 된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엄청났다.
이전에 에서 본 악신의 힘이 확실히 이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도 필멸자는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일반적인 사도 강림은 아니라는 걸 눈치채게 된다.
‘사도 강림의 상위 호환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거목 미궁에서 본 신격들의 강림마저도 이리 수준이 높진 않을 정도.
심지어 전투의 신도 탑에서 강림을 썼을 때는 이것처럼 성역을 만들지도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사도에게 강림한다는 것은 신격 자신이 가진 힘을 일부분 사도에게 잠깐 전이시키는 것이니까.
기껏해야 탑의 관리자도 되지 않는 수준인 사도들이 신격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는 없잖은가.
‘그러니 사도에게 감당할 수 없는 힘이라 강림을 써도 쓸 수 있는 힘은 한정되어 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런데 악신은 아예 설원 한복판에 신성 영역까지 놔뒀어.’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리 복잡할 것 없었다.
‘최소한 이제부터 상대하게 될 사도 강림의 상대는 유사 신격 정도는 된다는 뜻이지.’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악신의 사도는 여태껏 봐왔던 이들과는 격이 다를 터이다.
어쩌면 이 세계를 수호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보다도 격이 높을 수 있었다.
최소 고대 신격의 3급 정식 사도 정도는 될 테지.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신격의 힘을 남발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이제는 힘을 아낄 때가 아닌가.”
어쩔 수 없다.
「신성 권능 ‘신격화’가 활성화됩니다.」
「잠재 신성에 따른 신성 권능 행사가 가능해집니다.」
「잠재 신성은 , , , , , , , , 입니다.」
드드드-!
[ 이제 진심으로 갈까. ]지금껏 사용하지 않은 채로 아껴 둔 신격화도 사용해야 할 타이밍.
이내 그대로 신격화를 발동한 순간.
검은색의 빛기둥에 블랙 드래곤이 그대로 돌진했다.
신격화의 발동에 맞추어 신성 영역으로의 진입이 이뤄진 것이었다.
정말이지…….
「신성 영역 에 입장했습니다.」
오랜만에 최고의 독주 무대가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