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98
296. 초월 신화 (5)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신성 이 깃든 성광이 모든 것을 파괴했다.
마침내 구름을 쪼개고 대지에 도달한 검은 별빛은 대지를 쩍 갈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세상을 쪼갤 수도 있을 것 같은 검은 별빛의 기세.
그렇지만 이건 기껏해야 시작에 불과했다.
검은 별빛의 진정한 가치는 따로 있다.
바로…….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시, 심장이!! 심장이 부서질 것 같아아아─!!”
“끄, 크허, 끄허어어어어……! 사, 살려주……! 컥─!”
“신이시여……. 맙소사……. 저, 저희를 보살펴 주시옵……, 끄아아-!!”
대량 학살.
신성 이 깃든 성광은 적들을 남김없이 단숨에 살해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예비 사도의 경지에 이른 신도들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에 달하는 신도들 중 대부분이 동시다발적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사실상 이걸로 악신을 섬기는 잔당 중 상당수를 끝낸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다지 바로 기뻐하진 않았다.
‘원래는 이걸로 끝이 났겠지만, 이번엔 조금은 상황이 다르지.’
그도 그럴 것이…….
「신성 이 사용됩니다.」
「도전자 한성윤의 다음 공격에 신성을 먹어 치우는 힘이 깃듭니다.」
현재 나는 미리 악신에게서 얻은 신성 을 미리 발동해 둔 상태.
그러니 신성 에 적들이 맥없이 전부 죽는 광경은 원하지 않았다.
아직은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여 해 줘야 할 것이 있었다.
최소한 원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진.
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걸로 신성 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알아볼 수 있겠지.’
눈앞에 있는 악신을 섬기는 종들은 개개인이 나름대로 강했다.
심지어 신도들의 선두에 선 4급 사도로 추정되는 남성은 격이 꽤 높았다.
최소한 음성에 신성이 실리는 경지니, 블랙 드래곤이랑 같은 수준은 되겠지.
실제로도 찰나 사이에 이어 간 추측은 정답으로 이어졌다.
「4급 정식 사도 ‘리키오스’의 감정이 극심한 분노로 물듭니다!」
[ 끄, 끄으! 이, 이것은……! 이것은! 악신님의 힘이다! 외도에 빠진 신격이 사용할 힘이 아니란 말이다아아아─! ]시스템 메시지에서 리키오스라고 소개된 사도가 발악하듯 신성을 발했다.
[ 아,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다름이 아니라…….
「4급 정식 사도 ‘리키오스’의 신성력이 소모되어 사도 전용 권능이 발동합니다.」
어느새 리키오스의 손바닥에서 잿빛 액체 같은 기운이 몽글몽글 솟아난 것이다.
「사도 전용 권능 ‘모든 악의 권리’에 의해서 외부 신성이 배척됩니다.」
심지어 그것도 외부에 있는 신성을 밀어내는 형태로.
카가가가가가각……!
순식간에 신성 이 깃든 검은 별빛이 잿빛의 장막에 부딪혔다.
쇠로 된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소음이 이어지는 모습.
그제야 리키오스는 양손을 내민 채로 깔깔대며 추하게 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성광을 막았다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 카하하하핫! 봐, 봐라!! 외도에 물든 신이여! 너 같은 것은 쉽게 막을 수 있─. ]속담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앞에 있는 리키오스도 그 신격에 그 사도라는 걸까?
기껏해야 신성 의 힘을 막은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자신감이 차올랐다.
마치 신성 이 깃든 성광을 완벽하게 방어했다는 듯 우쭐거리는 표정.
하지만 그에게 뭔가의 대꾸를 해 주기도 전에 이변이 일었다.
쩌어억-.
[ ……아? ]사도 전용 권능으로 이루어진 잿빛 장막에 금이 갔다.
[ ……어, 어째서 이게 이렇게 되는─. ]쩌어어어어어어엉─!!
이내 잿빛의 장막이 형태를 잃고 충격이 가해진 유리처럼 깨진 순간.
순식간에 잿빛 장막의 깨진 조각을 먹어 치운 검은 별빛이 리키오스를 분쇄했다.
심지어 그것도 형체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넘쳐흐른 신성의 별빛은 수많은 신도를 그대로 먹어 치웠다.
그리고…….
사아아아아아아앗─!
「4급 정식 사도 ‘리키오스’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예비 사도 ‘시글피움’의 사령을 흡수했습…….」
「예비 사도 ‘요조룬들’의 사령을 흡수했…….」
이내 시야를 가리듯 사령의 표식들이 신체 곳곳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도전자 한성윤이 다수를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2차 승천에 1.97% 가까워졌습니다.」
[ 흠. ]그제야 나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 대충 알 것 같네. ]그럴 만도 했다.
[ 신성 이 가지는 힘은 이런 건가? ]이번에 4급 사도를 상대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 성광의 출력을 많이 낮췄는데도 불구하고 4급 사도를 압도할 수 있었지……. ]이곳에 악신의 패잔병들에게 사출한 성광은 출력이 조정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최대 출력의 성광을 사용하면 신성 의 힘을 확인할 수 없잖은가?
아마도 최대 출력의 성광이었다면 이들은 1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4급 정식 사도인 리키오스라고 해도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죽었을 테지.
하지만 최대한 출력을 낮춘 성광을 쏘아 낸 덕분에 얻어 낸 게 있었다.
[ 신성 은 신성을 상대로는 천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 ]모든 신성을 먹어 치우는 천적과도 같은 능력.
그렇기에 신성 외의 전투 수단이 없는 이에겐 즉사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신성 은 모든 종류의 신성을 먹어 치우고, 그걸 자기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성 은 상대의 신성을 먹어 치우는 데 시간이 들어.’
일단은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단점은 신성 포식의 적용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소한 몇 초는 있어야 신성의 힘을 꿰뚫을 수 있다니…….
아마도 시간 감각 자체를 가속시킬 수 있는 적을 상대로는 대응할 여지를 주게 될 터이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신성 에는 보이지 않는 쿨타임이 있었다.
‘대충 따지자면 4시간 정도 되는 신성 권능 특유의 쿨타임이 있어.’
그렇다면 이건 통상 타격에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오로지 일격필살 같은 수준에 적용해야 할 숨겨진 한 수일 터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쏙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 그래도 이게 있으면 신성 의존도가 심각한 신격은 궁지로 몰아붙일 수 있겠어. ]사실상 이건 한순간이나마 상대의 신성 능력을 없애는 거니까.
[ 괜찮은 걸 얻었어. ]물론 여러 가지의 단점이 있긴 해도 커버할 수 있는 수단이야 많다.
신성 을 어찌 써먹을지는 기대되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추후에 보게 될 적들은 점점 수준이 높아질 테니까.
그리고…….
「시간 종료.」
「신성 권능 ‘신격화’가 비활성화되며 8시간 동안은 재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내 신격화의 힘이 풀리며 신성의 격이 한층 누그러진 순간.
쿵.
갑자기 상공에서 청아한 음색이 울려 퍼지며 대지에 어느 미인이 착지했다.
은색의 머리칼, 붉은 눈빛, 몸에 착 달라붙는 제복 등등…….
수많은 특징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며 그녀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한성윤!”
카나리아 루그펠트.
훗날에는 철혈의 군주로 불리게 될 제국의 황녀가 재빨리 다가왔다.
그녀는 걱정에 찬 눈빛으로 붉은 눈을 이리저리 흔들며 나를 살폈다.
“그대여!”
심지어…….
“괜찮은가?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고? 만약에 그렇다면 바로 이곳을 벗어나야 하…….”
그것도 호들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실제로 뒤늦게 착지한 블랙 드래곤도 혀를 차고는 그리 말했다.
[ 심지어 행색을 보니 전투에서 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리고 이어서 블랙 드래곤은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그렇다면 괴물 같은 주인에겐 쓸데없는 걱정이지. ]어느새 블랙 드래곤의 눈에는 경외와도 같은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제는 블랙 드래곤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깨달은 듯했다.
결전의 중심지에서 내가 악신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을 말이다.
심지어 카나리아도 알고 있었는지 창피하다는 듯 말했다.
“시, 시끄럽긴……. 그런 정도야 알고 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잖나…….”
아마도 이제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다쳤을 리 없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상처가 있다면…….”
그녀는 창피함을 감추듯 그리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다친 곳도 없는데 굳이 아픈 척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 나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카나리아의 걱정을 재빠르게 일축했다.
“……아뇨.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인가?”
“예.”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카나리아가 멋쩍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니 블랙 드래곤이 코웃음을 쳤다.
[ 그것 봐라. ]“…….”
[ 쓸데없는 걱정이라 했었잖나. 서로 사이가 좋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중하는 게 어떠냐.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을 뿐이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애써서 담담한 척하는 어조.
하지만 그녀의 귓불이 붉게 물들어 있음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철혈의 군주의 과거는 의외로 감성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이쪽에서 카나리아를 놀려 주고 싶을 정도.
하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걸로 끝내야 할 터이지.
“이대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완벽히 승리했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악신의 잔재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을 테니까요.”
시련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제야 카나리아, 그리고 블랙 드래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반쯤 붕괴된 신성 영역 에 악신을 섬겼던 이들이 남았듯이, 세계 각지에 그런 이들이 있으리라는 걸 눈치챘을 테지.
“……하긴, 설령 악신이 없다고 해도, 그 잔재는 남았을 테지. 그놈들이 살아 있으면 또 뭔 일이 있을지 모르겠군.”
[ 최소한 방금 죽은 이 잡것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다만. 아마도 주인은 그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겠지. ]“그래. 악신을 섬기던 놈들이 살아 있다는 것.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그러니…….
“시간을 낭비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지.”
이제는 특수 계약 시련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할 차례다.
어차피 신격의 힘을 받은 신도들이라고 해 봤자 대단찮은 수준밖에 없을 터이지.
기껏해야 정식 사도들이 몇 명 정도 남았을까?
그러니 시간을 지체하며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런 귀찮은 술래잡기는 취향도 아니고 크게 이득도 되지 않겠지.’
그렇다면야 재빨리 세계에 남은 멸망의 가능성 자체를 싹 치울 심산이었다.
“그러니 세계에 남은 악신의 잔재를 치우러 가자고.”
그것도 아주 확실히 말이다.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세계 각지에 있는 악신의 잔재를 정리하는 것.
이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도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상황이 잘 풀렸어.’
그도 그럴 것이…….
「신성 에 의해서 세계 그 자체와의 동조를 이루었습니다.」
세계 수호의 자격.
그것들을 모은 끝에 얻은 신성 으로 세계와의 동조를 이뤘기에.
이전에 악신과의 일전에서도 느꼈지만…….
세계에 동조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신성의 격도 오르는 것도 크지만, 세계의 권한도 얕볼 수 없는 힘이야.’
그럴 만도 했다.
신성 의 보조로 세계 그 자체에 동조된 탓에 탐색이 쉬워졌으니까.
세계에 동조하고 나니 아주 약간의 주의만 기울여도, 이 토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쉽게 지각할 수 있었다.
마치 세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관조하는 것과도 같은 감각.
순식간에 악신을 섬겼던 이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이동하여 뒷정리를 하다 보니,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업적 ‘잔당 소탕’을 달성했습니다.」
「전용 권한 #D-0007[보상 상승]이 조건을 만족하여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업적으로 얻는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7 상승합니다.」
어느 이름 모를 초원을 모조리 불태운 끝에, 악신의 잔재를 전부 지운 순간.
“이걸로 전부 끝인가…….”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며 특수 계약 시련의 끝을 알렸다.
「특수 계약 시련 를 클리어했습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클리어 내용에 따라서 보상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철혈의 군주에게 신뢰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클리어 보상이 최고 수준으로 책정되며 추가 보상의 지급도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시련 끝에 받을 보상 자체가 미정이었던 탓일까?
시련의 보상을 정산한다는 문구를 끝으로 시스템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그렇게 시스템 메시지들을 꼼꼼히 읽은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카나리아와의 관계를 쌓은 보람이 있었네.’
이쯤 되니 시련 보상의 산정 후에 뭘 받을지 기대될 정도.
아마도 상위 신격으로 분류되는 악신을 때려잡았으니 그만큼 훌륭한 보상을 얻겠지.
시련의 탑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법칙을 어긴 적이 없었으니, 기대에 걸맞은 뭔가가 나올 것이다.
‘심지어 드래곤도 길들였으니 더 그렇지.’
물론 이제는 블랙 드래곤이 곁에 없긴 한데…….
‘……이제는 블랙 드래곤을 방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상의 수준은 오르겠지. 아마도.’
설령 곁에 블랙 드래곤이 없을지언정 이에 관한 업적은 보상에 적용될 터다.
최소한 여태껏 했던 일을 생각하면 보상이 낮게 책정될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에 내가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결국에는 이 지긋지긋했던 전쟁도 막을 내렸구나…….”
어느새 카나리아가 피를 털어 낸 칼을 검집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을 걸어왔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녀는 이제는 타다 남은 재만이 남은 초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수많은 왕국이 광신도들에 의해서 파멸을 맞이했고, 제국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전투를 이어 가야 했었지.”
마치 지난날을 생각하듯 감성에 물든 어조.
“그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카나리아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여태껏 해결되지 않았던 모든 일이 그대의 등장으로 단숨에 풀렸지.”
“과찬이십니다.”
“후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대도 어차피 자기가 다 했다는 걸 알고 있을 터인데?”
“…….”
사실상 틀리진 않은 말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어차피 이제는 아니라고 해도 겸손이 아니라 의미 없는 부정이 될 뿐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입을 닫은 채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경청하는 게 나았다.
“그대가 있었기에 나도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 터이지.”
카나리아의 은빛 머리칼이 순풍에 흔들리며 청량한 음색이 이어졌다.
“제국 측에서 서신이 왔다.”
“서신……?”
“그래, 서신. 차기 황제가 내정됐다는 걸 알리는 서신이 말이야. 그리고 황위를 물려받을 자가 누군지는, 굳이 말할 것 없이 그대도 알겠지.”
“…….”
“그때, 그대가 말하지 않았나.”
어느새 그녀의 입가는, 한없이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대가 반드시 나를 황제로 만들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러니 이 말은 그대에게 꼭 해 주고 싶었다.”
다음 순간.
“한성윤.”
카나리아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기대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제국에 같이 돌아가지 않겠나?”
그녀의 얼굴은 노을빛 탓인지 붉은 기조를 띠고 있었다.
“설령 이후에 황제가 되어도,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할 테지.”
“…….”
“그때까지 나의 곁에 있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랑 함께하고 싶다. 서로에 대해서 더더욱 많은 걸 알아가고자 한다.”
“그건…….”
“싫은가?”
그리고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알고 있다.
‘가짜야.’
이것이 어차피 한순간에 무너지게 될 환상이라는 것쯤은 말이다.
눈앞에 있는 카나리아는, 탑의 관리자인 철혈의 군주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아마도 성장 과정 자체가 크게 차이가 날 터이고, 실제로 철혈의 군주와는 달리 감정 표현도 다양하고, 아직은 권위적인 어조가 그리 깊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특수 계약 시련이 끝나면, 더는 얼굴을 볼 일도 없겠지.’
하지만…….
‘……그런데 왜 자꾸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그렇기에 왜인지 모르게 답답했다.
지금껏 쌓아온 그녀와의 관계, 그리고 이 세계가 전부 사라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한다고 할지언정 이 자리에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탑의 끝에 다다르기 전까진.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최종층에 도달하면 뭔가가 달라질까.’
설령 신격이라고 해도 이미 종말을 맞이한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탑의 끝에 도달한다고 해도 뭔가가 달라지는 것일까?
진짜로 관리자의 비원이 현실이 될 수 있는가.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다마는…….
그래도 더는 대답을 미룰 수 없었다.
“저는…….”
그리고 이어서 나는 카나리아에게 정해 둔 답을 말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며 환희의 감정이 일렁였다.
그렇지만 허용된 것은 거기까지.
갑자기 세상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흑색으로 물든다.
마치 세계 그 자체가 시간, 그리고 색채를 잃은 것 같은 모습.
‘아.’
다름이 아니라…….
「보상 산정 완료.」
「철혈의 군주의 감정 상태에 따른 보상 지급이 이루어집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돌파 보상으로 ‘신성 복제의 고서(EX)’가 인벤토리에 전송됩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추가 돌파 보상으로 ‘스킬 숙련도 상승 물약(SSS+)’이 인벤토리에 전송됩니다.」
‘이제는 진짜로 시련이 끝난 거구나…….’
어느새 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