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
002. 시련의 탑 (2)
「능력치 및 스킬, 그리고 고유 특성을 각성 시점으로 초기화합니다.」
「해당 도전자의 능력치는 각성 초기와 동일합니다.」
「초기화를 중단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멍하니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튜토리얼 시련을 시작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튜토리얼 시련’을 시작한다는 문구.
그걸 본 순간부터 나는 온몸의 피가 빠르게 식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건데, 이 상황은.’
가장 기본적인 의문부터 시작해서.
‘시련의 탑? 설마 2차 대격변이라도 온 건가?’
현재 상황에 대한 가장 그럴싸한 추측까지.
순식간에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들쑤시며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무기를 지급합니다.」
툭.
뜬금없이 무기를 지급한다는 문구가 뜨더니 눈앞에 장검이 떨어졌다.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서 보던 목검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잘 벼려진 검이 말이다.
칼날 길이만 해도 80cm는 될 법한 진검.
“도대체 이게 무슨……?”
고작 맥주 한 캔에 취해서 이딴 환상을 보고 있을 리 없다.
약하다고는 해도 플레이어로 각성했기에 취기에도 내성이 있는 몸이다.
그런데.
‘그걸로 이렇게 꿈을 꾸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나는 빠르게 눈알을 굴려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도 한겨울의 공원 벤치가 아니라 웬 사막이었다.
아니, 이걸 사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래로 된 바닥에 곳곳에는 선인장 같은 게 즐비한 장소.
슬쩍 보기에는 멀쩡한 곳일지 몰라도 그 너머에 있는 벽과 하늘을 가로막는 천장을 보는 순간부터는 아니다.
넓기는 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던전이라면 게이트를 통해서 이동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전조도 없었으니 그저 기괴할 따름이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샌드 골렘이 출현합니다.」
쿠구구궁……!
“미친……!”
모래로 된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며 전방의 모래가 솟구쳤다.
그러더니 모래가 뭉쳐져서 사암(砂巖)처럼 변하며 골렘 같은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
크기만 해도 6m 정도는 될 법한 크기의 거대한 골렘.
온몸에서 모래를 줄줄 흘리며 시뻘건 안광을 흘리는 놈을 본 내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동시에 홀로그램 메시지가 다시금 떠올랐다.
「샌드 골렘에게서 생존하십시오.」
「남은 시간 – 9분 59초」
“그르르르…….”
튜토리얼 시련과 생존하라는 메시지.
그리고 그 외에도 떠올랐던 온갖 문구들까지.
그 모든 게 샌드 골렘을 맞닥뜨리게 되며 단숨에 연결되는 듯했다.
여기까지 봤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젠장!”
나는 땅에 떨어져 있던 장검을 급하게 주운 뒤 잽싸게 도망쳤다.
전투?
그런 게 성립될 리가 없는 거대한 체급 차이다.
샌드 골렘의 돌로 된 주먹에 스치면 성인 남성도 어쩌지 못하고 죽는다.
최하급 능력치를 지닌 플레이어인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다.
그게 현실이다.
쿵! 쿵! 쿵!
“그아아아아……!”
등 뒤로 샌드 골렘의 포효가 들려오자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
더 빨리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푹푹.
발걸음을 모래로 내디딜 때마다 발이 모래에 파묻힌다.
“빌어먹을!”
이 모래사막이 내 발을 묶는 것이다.
반면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는 도망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다가온다.
만약에 여기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끝에 있는 건 천장과 맞닿은 벽.
추격전이 끝까지 진행되더라도 죽고 그렇지 않아도 따라잡혀서 죽는다.
심지어 탈출구는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나마 시야의 한구석에서 흘러가고 있는 ‘남은 시간’이 희망이라면 희망이겠지만…….
그것마저도 그리 희망적인 관점에서 볼 수는 없었다.
「남은 시간 – 9분 11초」
내 체력으로 사막 지형에서 9분이나 더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높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으면 몰라도 나는 플레이어 중에서도 최약체.
‘남은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도망칠 수도 없어……!’
검을 지급하고 도망치라는 것부터 그 의도가 뻔하게 보였다.
무의미하게 도망치다가 죽든지, 아니면 싸우라는 뜻.
도망가는 와중에 나는 뒤를 따라오는 샌드 골렘을 힐끗 보았다.
미친, 저걸 어떻게 이기라고.
그렇다고 도망가면 죽는 게 뻔하니 어쩔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검이 골렘에게 제대로 통할 리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만 하겠지.’
도망쳐도 답이 없다면 적어도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를 찾아야 했다.
나는 도망치면서 샌드 골렘에 대해서 기억해 뒀던 정보들을 더듬었다.
헌터에 도전한 7년간 이론만큼은 현직 헌터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리고 7년간 배웠던 이론은 이 상황에서도 통용되기 마련.
골렘 같은 괴수는 핵이 되는 돌만 깨트리면 움직임을 멈춘다.
심지어 샌드 골렘 같은 괴수는 자신의 핵을 몸 안에 두지도 않는다.
표면적인 부분에 두기에 E급 괴수로 분류되는 정도.
실제로도 저 샌드 골렘 또한 몸통에 새빨간 보석이 박힌 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저 괴물의 품을 파고들 자신이 없다.
이 검으로 때려도 핵석에 가해지는 충격은 금이 가는 정도일 게 뻔했다.
아니, 칼로 친다고 해도 금이 갈까 싶었다.
그럼에도.
‘갈 수밖에 없어……!’
뒤에서 쫓아오는 골렘과의 거리를 슬쩍 재보니 약 15m쯤 될 거 같다.
그렇다면 내가 저 골렘에게 달려들어서 공격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게 아니지.
고민을 길게 해 봤자 결국 스스로 숨통을 좁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무조건 피해야만 한다!’
파바박!
결심한 찰나에 바로 뒤를 돌은 나는 샌드 골렘에게 뛰어들었다.
15m, 12m, 10m, 7m, 5m.
점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놈과 나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거대한 체급을 지닌 E급 괴수는 그 눈빛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토할 거 같은 압박감 속에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헌터 시험에서도 고블린 정도밖에 상대해 보지 못한 놈이 샌드 골렘이라니.
하지만 해내야만 살아남는다.
그 일념 아래에 눈을 부릅뜬 채 샌드 골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후우웅……!
사암으로 이루어진 육중한 팔이 공기를 찢으며 쇄도한다.
맞으면 최약체 플레이어인 나는 최소 치명상을 입고 나가떨어질 게 분명한 공격.
그러나 나는 그 공격을 똑바로 바라보며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팔이 바로 앞까지 도달한 순간.
촤아아악-!
나는 내리뻗어지는 팔 아래의 틈으로 슬라이딩하며 아슬아슬하게 주먹질을 회피했다.
콰아앙!
모래가 사방으로 튀며 뒤늦게 뒤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그러나 덕분에 거대한 몸집 탓에 행동이 둔한 샌드 골렘의 움직임에 딜레이가 생겼다.
그걸 깨달은 순간에 나는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머리보다도 몸이 먼저 깨닫게 된 것이다.
샌드 골렘의 심장부에 이 검을 박아 넣어야만 산다는 것을.
민첩하게 몸을 일으킨 나는 둔하게 몸을 추스르는 샌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꽈드드드득-!
칼날이 골렘 심장부의 핵과 맞닿으며 찌르르 울린다.
그럼 그렇지.
골렘의 핵은 고작 이 정도의 힘으로는 한 번에 깨지지 않았다.
쩌저적.
샌드 골렘의 핵석에는 그저 살짝 금이 간 정도에 불과했고…….
후우우우웅!
“그아아아아-!”
그 사이에 샌드 골렘은 후속타를 날렸다.
그걸 본 나는 검이 튕겨 나오는 반동도 제대로 잡지 않고 몸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촤아아아아아악!
그리고.
후우웅……!
이어진 후속타는 파공음을 내며 내 머리 위를 지나쳐갔다.
천재일우의 기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바로 몸을 일으켰다.
모랫바닥에 쓸리며 살갗이 다 까졌음에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제발, 이번에는 부서져라!
그리 염원하며 검을 골렘의 심장부에 다시 부딪힌 순간.
쩌저정!
「샌드 골렘의 핵석을 파괴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샌드 골렘의 눈빛이 팍 꺼졌다.
새빨갛게 빛나던 흉흉한 눈빛은 사라지고 모래로 형성됐던 몸뚱이는 금세 무너졌다.
쿠르르르릉……!
「남은 시간 – 7분 8초」
「튜토리얼 시련을 종료합니다.」
그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나는 검도 내팽개친 채 쓰러졌다.
“허억, 허억……!”
아직도 모래에 쓸리며 다쳤던 살갗이 타는 것처럼 아프고 손이 덜덜 떨린다.
폐는 찢어질 것 같고 모래에 쓸린 피부에서는 피가 줄줄 흐른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고양감.
7년간 느끼지 못했던 승리의 기쁨.
숨을 가다듬은 후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했다.
“……샌드 골렘을 죽였어? 내가?”
평생 F급 괴수인 고블린조차도 제대로 이기지 못했던 주제에.
죽을 위기가 되어서야 E급 괴수라는 샌드 골렘을 쓰러뜨리다니.
그러나 곧 현실을 깨달은 나는 내심 침울해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겨우겨우 이긴 거지.’
이게 다른 E급 괴수였다면 3분 안에 내가 죽었을 것이다.
샌드 골렘은 움직임이 굼떴고 약점도 훤했으니까.
내가 아니라 좀 강한 플레이어였다면 말 그대로 조금 어려운 튜토리얼 상대였을 거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남았다.”
그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깐 휴식하려는 때였다.
「축하드립니다, 시련의 탑 1층을 돌파하셨습니다.」
“……?”
대뜸 시련을 돌파한 것을 축하하더니 그 뒤로 메시지의 향연이 이어졌다.
「돌파 보상으로 ‘고유 특성 개방’의 특전이 내려집니다.」
「돌파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추가 돌파 보상으로 스킬 ‘고속 재생(E+)’를 획득하셨습니다.」
「추가 돌파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그제야 처음으로 이 사막에 도착했을 때 본 메시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시련 돌파 보상- 고유 특성 개방」
그때는 당황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어도 확실히 보상도 있었다.
그리고.
“고유 특성이라니…….”
그건 곧 내가 7년간 줄곧 바라마지 않던 고유 특성이었다.
심지어 추가 보상으로는 마찬가지로 쭉 못 얻고 있던 스킬까지.
절대로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벌어졌다.
‘7년을 훈련해도 능력치조차 못 올렸는데…….’
처음 탑에 들어와서 당황했을 때보다도 더 어안이 벙벙했다.
「고유 특성을 개방하셨습니다.」
「고유 특성 ‘네크로맨시(F)’가 플레이어에게 각인됩니다.」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는 이게 사실이라고 재차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괴수에게 이겼으며 7년간 정체되었던 성장을 진행했다.
그 사실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랐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생각할 틈은 주지 않겠다는 듯 이변이 일었다.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우우웅!
그 어떠한 전조도 없이 샌드 골렘이 무너진 자리 뒤에 푸른색의 포탈이 생겼다.
딱 봐도 저걸 타고 ‘대기실’로 이동하라는 모양새.
그것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이게 튜토리얼이라고……?”
던전은 클리어하면 거기에서 끝나지만 ‘시련의 탑’은 아닌 듯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도 이쯤 되면 그럴 수조차 없다.
방금 겪었던 것은 튜토리얼, 그러니까, 말 그대로 준비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즉, 또 시련을 겪어야 하며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긴 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숨을 고른 나는 침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군데군데 안 다친 곳이 없을 정도로 꽤 많이 다친 상태였다.
나름 샌드 골렘의 주먹을 피한답시고 모랫바닥을 너무 구른 모양.
그래도 뭐 안 죽은 게 다행이니 크게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샌드 골렘이 무너진 곳을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뭐지, 저건?
“진짜로 무슨 일이지, 이건.”
온몸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잠깐 잊을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
샌드 골렘이 모래로 돌아간 자리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현상에 나는 머뭇거리다가 검은 연기에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고유 특성 ‘네크로맨시(F)’를 발동합니다.」
「샌드 골렘의 사령을 흡수하시겠습니까?」
「Y/N」
“……?”
지금껏 봐 왔던 메시지랑은 또 다른 문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