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01
298. 특수 계층 (3)
「시련의 탑 에 입성합니다.」
「난이도 – 어려움」
「해당 시련의 주제는 ‘마계(魔界)’입니다.」
「도전자가 선택한 고행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수 계층.
“…….”
시련의 탑이 난이도에 맞게 계층들을 조정한다며 시련을 멋대로 압축한 결과물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지금껏 탑을 오르며 본 적도 없는 현상인 탓일까?
왜인지 모르게 머리에 지끈거리는 두통이 일어나며 한숨이 푹 쉬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4개의 계층을 모조리 하나의 계층에 압축하여 합치다니?
최근에 탑을 오르며 모든 계층의 난이도가 반쯤은 초월적인 수준을 자랑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최악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소한 정식 신격이 하나 이상은 얽혔다고 보아야 할 터이지.
설령 상위 신격에 이르렀을지언정 개념 영역의 신성을 다루는 정식 신격을 이리 자주 만나는 건 그리 달갑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번에 상위 신격의 경지에 도달한 탓인가?’
생각을 천천히 이어 가다 보니 대충 왜 이렇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철혈의 군주의 비원을 이루어 주며 비약적으로 상승한 신성의 격, 그리고 초월 신화 에 이어서 탑이 줄 수 있는 최상의 보상까지 얻었다.
그러니 이전 같은 수준의 시련으로는 그리 어렵다고 느끼지 않겠지.
아마도 탑은 새롭게 얻은 힘에 맞추어 계층 자체의 수준을 단숨에 올려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심지어 그것도 계층 자체를 합치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계층 자체를 합칠 줄은 몰랐는데.”
이쯤 되면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
―허어…….
그리고 그에 담천우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생전에도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었거늘.
원래는 탑의 41층까지 도달했던 최상위의 도전자인 담천우도 이런 현상을 처음 본 듯했다.
―신성의 경지가 높아지니 이렇게 난이도를 조율하는 것인가…….
마치 탑이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모습 자체를 낯설어하는 모습.
아마도 40층에 도달한 도전자마저도 이렇게 대하진 않는 것 같은데…….
어느새 탑이 40층 너머에 있는 도전자들보다도, 이곳에 있는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뜻과도 같았다.
‘탑의 관심이 빠르게 늘어나는 건가.’
그에 나는 눈을 찌푸린 채 이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가늠해야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도 탑이 선정한 후보는 여럿이 있을 테니까.
신성 을 가졌던 도전자인 ‘세이르 나그랏’이 그러했듯이, 시련의 탑이 신격으로 성장시키는 도전자는 많이 있다.
그런데…….
그리 많은 후보를 제치고 나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
‘아마도 탑이 자기 목적에 걸맞은 후보를 나로 확정했을 수도 있겠어.’
어쩌면 탑은 모든 신격을 없앨 수 있는 수단으로 나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다.
여태까지 탑이 나에게 보여 줬던 것들을 생각하면 신빙성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
하지만 깊은 고민을 이어 갈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특수 계층 시련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14일」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내에 마계의 최고 군주의 자리를 얻어 낼 것」
「시련 실패 조건 – 도전자의 죽음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이름 모를 신이 썼던 낡은 마검(SSS)」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다름이 아니라…….
드드드-.
이내 시련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 순간.
순식간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삭막했던 대기실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라색으로 물든 대지가 눈에 들어오며, 공기 중에 퍼진 마기가 몸을 쿡쿡 찌르듯 눌렀다.
바로─.
「업적 ‘마계 탐사’를 달성했습니다.」
「전용 권한 #D-0007[보상 상승]이 조건을 만족하여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업적으로 얻는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이제는 진짜로 시련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
갑자기 시작된 시련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하는 걸 멈췄다.
‘……이제는 조용히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겠어.’
그럴 만도 했다.
현재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 총 4개의 계층을 압축한 시련이 시작을 알려온 상황.
그런데 아직도 탑의 의중을 읽어 내려는 생각을 이어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최소한 이곳이 어디이고 뭘 해야 할지 정도는 알아야 하겠지.
‘……어차피 탑에 대해서 생각해 봤자 지금은 그리 의미 있는 답을 낼 수도 없겠고.’
그렇기에 나는 바로 권능 중 하나를 발동하여 기척을 깔끔하게 차단했다.
「특수 권능 ‘유령신공’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기운이 기척 차단 상태로 전환됩니다.」
이전에 19층 의 퀘스트 보상으로 습득했던 능력이 은둔의 장막이 되어서 힘을 가렸다.
―실질적인 전투 능력은 없어도 은신 자체는 써먹긴 좋은 능력이군…….
그리고 기척이 사라지자마자 담천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물음을 건넸다.
―그래서 이제는 어찌할 것이냐.
아마도 시련을 어찌 진행할지 묻는 것 같은데.
“……글쎄요. 일단은 탐색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상 정보가 없으니까요.”
어차피 크게 의미 있는 대답은 내놓을 수 없었다.
현재 시련의 클리어 조건은 ‘마계의 최고 군주 자리를 얻어 낼 것’으로 설정된 상태.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바로 시련 클리어 조건을 만족할 수 있지는 않았다.
사실상 마계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보니, 도대체 뭘 하라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알 수 있는 거라고는 이 마계라는 곳이 악마랑 깊게 관련됐다는 것 정도일까?
‘……어?’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깐, 악마?’
그도 그럴 것이…….
“…….”
어느새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자리를 잡은 탓이다.
생각해 보니 굳이 마계를 직접 탐색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현지인 가이드를 한 명을 고용하면 끝인데.
그리고…….
「스킬 ‘접촉 영역 탐지’가 활성화됩니다.」
「발이 닿고 있는 지역을 탐지하여 그곳에 있는 정보를 사용자에게 전달합니다.」
이내 어느 전투에서 얻은 계륵 같은 스킬을 발동한 순간.
마력을 아예 쓰지 않고도 어디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이 대지의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기감을 쓰는 것보다는 성능이 그리 좋지는 않긴 한데…….
기척을 감춘 상태에서 일정 구역을 탐지하기엔 썩 훌륭한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마계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어쩔 수 없다.
여태껏 쌓아 온 시련의 난이도가 4번 중첩됐다고 생각하면 이곳은 진정한 의미의 마경일 테니까.
나름대로 총 4개의 시련을 합친 시련인데 신격이 얽혀 있지 않을 리 있겠는가.
이곳에 대해서 정보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최대한 마력이든 신성이든 사용을 자제하는 게 옳았다.
상위 신격의 경지를 갖춘 게 아니라고 해도 정식 신격쯤 되면 감지 능력도 필멸의 격을 초월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스킬을 주로 쓰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덕분에 여태껏 얻었던 쓸모없는 스킬들을 한 번씩은 쓰겠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사령을 흡수하며 스킬들을 많이 얻었다.
……뭐, 그다지 쓸모 있는 스킬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써먹을 가치가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바로 일대 지역에 관한 탐지를 마치자마자 지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후우웅……!
「바람 정령의 부츠(A+) 전용 효과 ‘바람의 길’이 활성화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템의 보조 효과를 받으며 단숨에 공중 기동에 임했다.
신성력, 그리고 마력은 사용이 힘든 상태이니, 최대한 아이템에 의존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귀찮은 짓을 하는군. 상위 신격이 됐는데도 조심하는 건가. 어차피 웬만한 적은 네놈이 감당할 수 있을 터인데?
“……4개의 계층이 합쳐진 시련이니까요. 설령 상위 신격이 됐다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최대한 힘을 감춘 채로 이동하는 걸 본 담천우가 툴툴거리긴 했지만…….
진짜로 이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일전에 악신을 해치우고 상위 신격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상위 신격보다는 정식 신격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상위 신격 중에서도 최약체로 분류된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그거야 그렇긴 하다만…….
아직은 완벽한 상위 신격이 아님을 담천우도 알고는 있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래도, 그다지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군.
“동감입니다.”
―하지만 힘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도 현명하진 않으니……. 쯧. 갑자기 상황이 꼬인 탓에 답답하게 되었군.
“그렇습니까.”
그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혈천마검의 검파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답답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곧 정보만 얻으면 원래 방식대로 움직일 테니까.”
이내 그렇게 말을 마치고 아래쪽을 내려다본 순간.
콰가가가가가강─!
“이 되먹지도 않은 잡것들이!! 감히 47군주의 심복인 나에게 결투를 거는 거냐!!”
“크하하하하! 그래! 네놈을 죽이고 62군주의 자리를, 47군주의 자리까지 올릴 것이다!”
“헛소리……! 51군주야말로 47군주의 자리까지 올라갈 몸이다!! 네놈들은 희생양에 불과하다!”
어느새 보라색 대지에서 서로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거목 미궁에서 본 고대 악마를 생각나게 하는 짙은 농도의 마기.
하지만 고대 악마와는 달리 외견 자체는 인간의 범주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
―마족이군.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본 담천우가 심드렁하게 정답을 도출했다.
―머리에 자라난 뿔이나, 고양이 혹은 도마뱀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꼬리를 보니, 아마도 고위 마족일 터이지.
“흠…….”
―뭔지는 잘 몰라도 군주이니 어쩌느니 떠드는 걸 보니, 아마도 시련의 클리어 조건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만?
“그렇게 보이긴 합니다.”
47군주이니, 62군주이니, 51군주이니…….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막 쏟아 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감이 잡혔다.
이번에 받은 특수 계층 시련의 클리어 조건은 ‘마계의 최고 군주 자리를 얻어 낼 것’이니까.
그렇다면 아마도 저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곧 시련의 클리어 조건으로 이어진다.
‘그럼 나도 이 자리에서 관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잠깐의 생각 끝에 그리 결론을 낸 나는 재빨리 대지에 발을 붙였다.
착-.
「스킬 ‘신성의 증명’이 활성화됩니다.」
「신성의 수준에 따라서 외부에 형태 없는 압박감이 전개됩니다.」
어느 이름 모를 악신의 사도를 죽이고 얻은 스킬을 발동한 순간.
드드드─!!
“……!!”
“끄아아아악……!?”
“이, 이게 무슨? 어, 어디냐! 어디에서 이런 존재감이……!”
순식간에 격렬하게 싸우던 마족들이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며 고통을 토해 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릴 때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니 모두 경악에 물든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안녕?”
그제야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스킬 ‘만마지왕萬魔之王’이 활성화됩니다.」
“나랑 같이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 있어?”
그것도 악마에겐 한없이 사교적인(?) 힘을 동반한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