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08
306. 난투전 (2)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뀐 공간을 보며 나는 눈매를 좁혔다.
‘이게 바로 요람인 건가.’
결투장.
진짜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장소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아마도 알톤이 말했던 마계 군주들의 1:1 결투 모임이라는 게 이곳인 거 같은데…….
‘흥미롭네.’
설마 이렇게 본격적으로 결투장까지 차려 놨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일반적인 결투장도 아니고 곳곳에 관중석처럼 보이는 자리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넓은 객석에 앉은 이들에게서 어렴풋이 신성과 마기, 그리고 마력 같은 힘을 느끼며 눈치챌 수 있었다.
[ 군주들이군. ]대충 따지자면 이제 막 정식 신격의 반열에 오른 정도라고 해야 할까?
……신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신성으로만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것도 아니니, 확언하긴 어렵다만.
최소한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결투장의 객석에 앉은 8명의 군주를 보며 눈빛을 반짝이고 있자니,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다름이 아니라…….
“진짜로 비전 마법을 따라 할 수 있다고……?”
알톤이었다.
“그, 그럴……, 그럴 수는……, 없을 텐데……!”
아직도 그는 새로이 개조한 흑마법 [접어드는 소용돌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산양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
여태까지 잘 관리했던 표정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지며, 순식간에 분노와 경악이 뒤섞인 채 뱉어졌다.
“64군주인 저의 흑마법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제 가문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그런데 그걸 외인 따위가 쓸 수 있다고!?”
꽈아악-.
“심지어 비전 술식의 원리 자체를 뜯어고치는 형태로?”
알톤의 손이 꽉 쥐어지며 한없이 짙은 부정의 감정이 흘러나왔다.
“뭔가가……,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
하지만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 어차피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닌데, 그렇게 흥분할 것까지 있을까?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흑마법에 관해서도 심상찮은 재능이 있음을 나는 이미 확인을 마쳤으니까.
이전에 알카이드와의 전투에서 흑마법의 진수 중 일부를 습득했고, 그것을 토대로 아예 새롭게 흑마법까지 창조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흑마법을 일부분 개조하는 것 따위야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것만이 아니지.’
그리고 뭣보다 알톤은 흑마법의 개조에 경악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스스로 다루는 흑마법의 술식 원리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새롭게 개조된 흑마법에 대해서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아마도 알톤은 아직도 흑마법 [유랑자의 소용돌이]의 결점이 뭔지도 잘 모를 터이다.
그래도 고블린이라고는 해도 나름대로 흑마법에 대한 조예로,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던 알카이드와는 달랐다.
알톤은 알카이드보다도 아무것도 뛰어난 게 없었다.
‘애초에 알톤은 흑마법보다는 신성에 특화된 실력자 같은데.’
고대 신격을 섬기는 사도가 아니었다면 필시 64군주라는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터이다.
절망과 추락 그리고 광기의 신을 섬기는 몸이기에, 고대 신격의 힘을 토대로 저 자리에라도 앉을 수 있던 거겠지.
하지만 알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어느새 알톤의 짐승 같은 눈에 격해진 감정이 일렁였다.
“그리할 수 있을 리 없지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톤의 감정은 일종의 영향력으로 이어져, 그대로 신성의 힘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마치 종말을 앞뒀던 세계를 생각나게 하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신성의 형태.
절망과 추락 그리고 광기의 신을 섬기는 사도답게, 참으로 짜증 나는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짜! 가짜입니다! 그쪽이 선보인, 그러한 흑마법은, 전부 가짜에 불과하─!”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드드드……!!
「회한의 신이 하찮은 잡것의 예의 없는 태도에 짜증을 느낍니다.」
[ ─그쯤에서 멈추시게. 64군주. 무엇인진 몰라도 무례하군. ]갑자기 결투장의 객석 중 상석에 앉은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격을 드러냈다.
‘이건.’
그리고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격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신성…….’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사도 같은 게 아니라, 스스로 신성을 개척한 경지야.’
현재 결투장의 상석에 앉은 장신의 노인은, 비유도 뭣도 아닌 진정한 정식 신격.
기껏해야 고대 신격에 의해서 신성을 내려 받은, 알톤처럼 외부에 의존하는 사도와는 달리, 본질적으로 격이 드높았다.
여태 마계에서 본 어느 적보다도 순수하게 영혼의 수준이 높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 새로이 자리를 얻은 64군주를 데려온다고 하더니, 스스로 본분을 잊고 그렇게 분노하면 추할 뿐일세. ]회한의 신.
시스템 메시지에 그렇게 기록된 장신의 노인이 그리 말하자, 알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감정을 감췄다.
마치 어른에게 잘못을 들킨 아이와도 같은 모습.
그리고 알톤은 지금까지 화냈던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재빠르게 다시금 예법을 갖추고는, 회한의 신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저희 가문의 비전 술식이 모욕당한 탓에, 잠깐 눈이 흐려졌…….”
[ 그렇게 변명하면 그대의 추한 짓은 좀 괜찮아지는 것 같은가? ]“…….”
[ 참으로 멍청한 자로군. ]회한의 신은 턱을 삐딱하게 괴며 클클 웃음을 지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대로 몇 분이고 짜증만 낼 수는 없는 법이지. ]그리고 그는 이어서 나에게 시선을 맞추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상위 신격쯤 되니 서로의 역량 정도는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것일까.
[ 과 ,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구려……. ]회한의 신은 지금껏 조용히 가라앉혔던 눈빛을 반짝이며 씩 미소를 지었다.
[ 신기하군. 과 이 공존하고 있다니. 신명이 하나로 확립되지 않은 것은, 그대의 잠재력을 나타내는 거겠지. ]심지어 나도 모를 소리를 그는 거침없이 툭툭 뱉었다.
[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그릇이군……. ]그리고.
[ 어쩌면 , 그리고 이 서로 뒤섞여,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도 있겠어. ] [ ……. ] [ 훌륭해. 기껏해야 수천 년 정도의 단련만으로도, 상위 신격의 껍데기를 벗을 수도 있겠어. ] [ 그렇습니까……. ] [ 그렇기에 궁금하군. ]이내 회한의 신이 흥미롭다는 듯 감탄하는 걸 멈추고 표정을 바꾼 순간.
[ 어째서 탑이 그대 같은 괴물을 이곳에 보냈지? ]그대로 나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탑.
‘설마 탑의 시련으로 이곳에 왔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회한의 신이 불시에 툭 뱉어낸 그 한 글자를 듣자마자 나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것이 지칭하는 것은 아마도 시련의 탑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심지어 그걸 입에 담은 이가 다른 이도 아니고 상위 신격의 자리에 오른 자라면 더 그랬다.
회한의 신은 즐겁다는 듯, 그리고 동시에 궁금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그대 같은 대양의 그릇을, 어찌 고작 이런 곳에 쓸까. ] [ ……. ] [ 마계에 간섭하고 싶은 셈인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탑이 숙달된 사냥개를 쓰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 [ 도대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뚝 시치미를 떼었다.
어쩔 수 없다.
탑에서 온 도전자라는 걸 알리면 나는 마계에서 진짜로 재빨리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 될 테니까.
어차피 내가 탑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길도 없지 않은가.
‘이대로 아닌 척하면 될 뿐이야.’
실제로 결투장 곳곳에 앉은 강자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했다.
“탑이라니……?”
“성채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대체 뭘 말씀하시는 거지.”
“소속된 곳, 같은 걸 말하는 걸까요?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하긴 좀 애매한 부분이…….”
마치 탑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구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수많은 군주가 탑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있었고, 알톤의 눈빛이 크게 일그러지며 증오에 가까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탑에서 왔다고……? 그렇다면……! 위대한 나의 신을 모독하는 불경한 죄인이라는 말인가!!”
그래도 꼴에 고대 신격의 사도랍시고 아는 정보는 꽤 있는 듯했다.
[ ……. ]정작 자기가 가진 흑마법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걸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지경.
하지만 알톤이 저렇게 격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확실히 상위 신격의 경지에 들어선 회한의 신은 더 아는 게 많다는 뜻일 터이지.
그러니 이제는 사실상 탑에서 오지 않았음을 주장해도 쓸모없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 걱정은 머지않아서 현실로 이어졌다.
[ 그렇게 부정해도 소용없을 것일세. ] [ ……. ] [ 그리고 그렇게 굳이 부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고. ] [ 그게 무슨……. ]그런데 생각보다 회한의 신이 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 어차피 마계에서는 탑이든 도전자든 그다지 신경 쓰는 게 없어서 말이네. ]회한의 신은 클클 이질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탑이든 도전자든 마계에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 걸까?
여태껏 외부에서 왔다는 자그마한 추측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표적이 됐는데.
눈앞에 있는 상위 신격이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고 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아, 그대의 이야기는 들었네. ……이전에 알카이드 그 친구를 죽이고, 62군주가 됐다고 했었지? 안타깝군. 그 고블린 친구의 흑마법은 나도 인정할 정도였는데 말일세. ] [ ……. ] [ 그래도 뭐 그대 같은 괴물을 적으로 마주쳤다면야, 그 고블린 친구도 맥없이 죽는 게 이치에 맞겠지. ] [ ……저에게 원한 같은 건 없는 겁니까. ]그리고 그에 나는 눈매를 좁히며 물음을 건넸다.
어째서 회한의 신은 그리 신경 쓸 이야기도 아니라는 듯 저리 말하는지.
척 봐도 마계에서 높은 순위에 자리 잡은 군주인 회한의 신이, 탑에서 왔다는 걸 알면서도 어째서 나를 싫어하지 않는가.
[ 그거야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회한의 신은 그걸 듣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어차피 이곳에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힘이 전부일 테니까. ] [ ……. ] [ 마계의 기본적인 원리는 강자론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 강자론을 다른 떨거지처럼 부정할 생각이 없을 뿐일세. ] [ 그럼……. ] [ 그래. 외부인을 배척하는 다른 놈들이랑은 다르게 나는 그대를 인정하네. ……그렇기에 이 ‘요람’이라는 걸 만들었지. ]회한의 신은 길게 기른 수염을 다듬으며 말했다.
[ 요즘 것들은 군주 결전에서 뭔 세력 다툼이니, 전략 활동이니, 귀찮은 짓들을 하는데, 원래 마계의 본질은 그게 아니지 않나. ]그리고.
[ 본래 마계의 군주라는 것은 오로지 힘으로 결정되는 자리……. ]이내 회한의 신의 눈빛이 기이한 열망을 띤 채 번뜩인 순간.
[ 그에 나는 뜻이 맞는 군주들을 소집하여, 서로 1:1로 정정당당하게, 생물로서의 극의를 가릴 뿐이네.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쳐져 있었다.
[ 그리고도 이건 그대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될 규칙의 일종일세. 탑에서 왔다는 걸로 딱히 불합리한 대우를 할 생각은 없다네. ]오랜만에 재밌는 놀이 상대를 얻은 것 같은 표정이 드러났다.
[ 그러므로 요람에 참가한 자로서,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하지. ] [ 제안……? ] [ 아마도 그대는 상위 신격의 자리에 확실히 도달했을 터이지. 그러니 웬만한 이들은 적수도 되지 않을 것이야. ] [ ……. ] [ 그러니 요람의 1:1 결투의 룰을 좀 바꾸어 적용하고 싶다네. ]회한의 신은 노인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환하게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곳에 있는 알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다른 군주들까지 합쳐서, 난투전을 벌이는 건 어떤가? ]심지어…….
[ 그래야 좀 밸런스가 맞을 것 같은데. ]어느새 회한의 신의 얼굴은 즐거움, 그리고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어떤가. ]그리고 그의 말을 해석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 하겠나? ]‘이건.’
재빨리 2차 승천의 경험치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일종의 경험치 획득 이벤트라고 말이다.
그것도 흔치 않은 기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