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09
307. 난투전 (3)
난투전.
회한의 신이 불시에 건넨 제안에 나는 눈빛을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군주들을 모두 해치울 수 있다면야, 정말로 적잖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스킬도, 권능도……, 그리고 신화로 얻을 2차 승천의 힘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지.’
최소한 네크로맨시에 신화 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순 없겠지.
어쩌면 새롭게 신성 하나를 습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뭣보다 마계의 율령으로 최고 군주의 자리인, 제 1군주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도 얻을 수 있겠지…….
그건 진짜 엄청난 이득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서 이득을 산정하는 동시에, 한 가지의 의구심이 표리일체처럼 같이 떠올랐다.
[ 이해되지 않는군요. ]그도 그럴 게, 회한의 신이 건넨 제안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 어째서 저에게 그렇게 형편 좋은 제안을 하는 겁니까? ]회한의 신.
일단은 장신의 노인 같은 외견이긴 하다만…….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신성 , 그리고 신성 을 간파한 것도 모자라, 아예 내가 탑에서 온 것을 알아챈 자다.
사실상 악신에 필적하는 강자라고 봐도 되는 셈이다.
‘확실히 뭔가가 수상해.’
심지어 눈앞에 있는 노괴는 내가 상위 신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직은 상위 신격 중에서도 초입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는 군주들을 상대로 승리를 점치는 게 어렵진 않았다.
설령 고될지언정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건 아닐 테지.
그리고 그걸 회한의 신 같은 상위 신격의 노괴가, 진짜로 모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 ……흠. 젊은 친구인 터라, 그리 생각이 깊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것저것 고민하는 모양일세? ]회한의 신은 클클 미소를 지으며 재밌다는 듯 말했다.
[ 아마도 그대는 이 늙은이가 뭔가를 꾸민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깊은 심계는 없다네. ] [ 그렇다면……. ] [ 아, 단지, 이곳에 있는 군주들을 상대하며, 자네의 힘이 좀 빠지면 이쪽도 결투를 신청할까 했었지만 말이야. ] [ ……. ]그제야 나는 어째서 회한의 신이 난투전을 제안했는지 알았다.
‘한마디로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게끔 내가 가진 힘을 빼놓을 셈이었나…….’
하지만 정확하게 어째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회한의 신이 이곳에서 나를 적대하여 얻을 이득은 없을 터인데.
전투의 신, 그리고 악신처럼 나에게 특별하게 악의를 가진 게 아니라면 이렇게 나올 리 없었다.
그리고 그에 내가 회한의 신을 바라보니, 어느새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오해하진 말아 줬으면 좋겠구려. 그대에게 원한이 있다는 뜻은 아니니 말이네. 단지, 서로의 힘을 가늠해 보고 싶을 뿐이지. ] [ 그것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말이네요. ] [ 그다지? ……이래 봬도 마계의 17군주라는 자리를 가지고 있는 몸이네. 그대를 재보는 건, 나의 순수한 호기심에 가깝지. ] [ 호기심? ] [ 그래. 그대 같은 괴물이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솔직히, 궁금하거든. 그렇기에 그대를 재보겠네. ]그리고.
[ ……그 끝에서 자네라는 새싹을 살릴지, 아니면 이곳에서 새싹을 자를지, 그것을 고민하는 것 또한 여흥이 될 터이니. ]그대로 회한의 신의 말을 듣고 나니 헛웃음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어쩐지 너무 이쪽에 형편 좋은 제안들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달콤하기 그지없는 과일의 너머에, 이런 귀찮은 이벤트가 숨어 있었을 줄이야.
회한의 신의 말을 이해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노괴는 나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가고, 그 끝에서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하겠다고, 그렇게 단언한 것이다.
심지어 회한의 신에게 패배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길도 없을 터이다.
도대체 뭔 기준으로 나를 재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다마는.
최소한 전투 과정에서 내가 고대 신격으로 자라날 새싹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일말의 주저 없이 나를 죽일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재보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난투전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사실상 직접 요람으로 왔다는 것은 적진의 한복판에 스스로 들어왔다는 뜻이니까.
어차피 이 자리에서 전원을 상대한다고 할지라도, 도망칠 생각 따위는 아주 조금도 없었다.
설마 상위 신격이 있을 줄은 모르기야 했지만, 설령 상대가 상위 신격이라고 할지라도, 그다지 물러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회한의 신은 적어도 지금은 나를 건드릴 생각은 없어.’
그럴 만도 했다.
현재 회한의 신은 자기는 이 상황을 관망하고 다른 군주들이 손을 쓰길 기다리겠다고 선언한 상태.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전투를 통해서 상대할 수 있는 적인지를 알아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회한의 신을 비롯한 다른 군주들을 모조리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기량을 보고 그다음에 움직일 생각일 테지.’
회한의 신은 철저하게 계산적인 성격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 일단은 그가 바로 개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 정도는 반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추론으로 생각하며,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까짓, 되먹지도 않은 이에게, 다른 군주의 힘까지 합쳐야 한다니…….”
갑자기 조용히 있었던 알톤이 산양을 본뜬 듯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를 뱉었다.
“그렇게 군주들이 모조리 힘을 합칠 이유 따위는 없지요……!”
알톤은 그대로 고개를 번쩍 들더니 결투장의 객석을 둘러보며 말했다.
“고귀한 혈통을 이은 자들이시여! 저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저까짓 잡놈 따위야, 저희가 전부 일어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64군주, 이 알톤 르메네르가 탑에서 온 개를 처리할 테니까요……!”
이내 알톤이 격하게 고양된 목소리로 결투를 청한 순간.
알톤의 눈빛에서 나는 한없이 짙은 탐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제가 62군주가 될 때까지, 모두들 잠깐만 여흥을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기껏해야 고대 신격의 사도 주제에, 신격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하는…….
하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건방진 욕망을 말이다.
정작 먹잇감은 자기라는 것도 모르고서.
***
알톤이 나에게 결투를 청하자마자 회한의 신이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 ……64군주. 알톤 르메네르. 그래. 검은 산양의 피를 이은 자여. ]회한의 신은 살짝 즐거움에 찬 눈으로 알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그대가 직접 탑에서 온 도전자를 처리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그건 요람의 규칙에 따른 1:1 결투 신청이라고 봐도 되겠는가? ]“물론이지요.”
알톤은 씩 미소를 짓더니 이내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가문의 비전 술식을, 하찮은 잡기술 따위로 치부한, 역겨운 것.”
설마 흑마법 [유랑자의 소용돌이]를 개조하여 사용한 것에 원한을 가진 걸까?
“심지어 그게 제가 섬기는 신을 부정하는, 시련의 탑에서 온 불경한 잡것이라면, 최대한 이 손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어느새 그의 말에는 가시가 돋아난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니. 그때는 자기가 직접 따라 해보라고 했잖아.’
하지만 알톤은 이전에 나를 보고 직접 흑마법을 개조하라고 했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을 따라서 가볍게 흑마법 [접어드는 소용돌이]를 개발했고, 그리하여 공간 이동으로 결투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알톤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아마도 알카이드를 해치우고 얻은 62군주의 자리 외에도, 이전에 받은 수모에 관한 앙갚음을 해 주고 싶다는 모양새.
그러나 그에 당황하는 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게 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전에 싸운 게 알카이드 같은 냉철한 적인 탓에 착각하고 있었다.
본래는 저렇게 어이없는 복수심을 가지는 것이 여태까지 겪어 온 적들의 일반적인 케이스 중 하나다.
신격에 견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과정에서 보통은 정신병자라고 해도 될 수준의 사고관을 탑재할 테니까.
단지, 알카이드는 그러한 제약에서 좀 벗어났을 뿐이지.
‘알카이드는 흑마법으로 신격에 견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으니 정신이 비교적 멀쩡했었지.’
하지만 알톤은 아니다.
고대 신격인 절망과 추락 그리고 광기의 신을 섬기는 사도인 탓일까?
그는 탑에서 온 나를 배척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동시에, 62군주의 자리에 관한 한없이 짙은 탐욕을 드러냈다.
‘고대 신격 중에서도 가장 정신이 나간 것을 섬기니 정신병자가 아닐 리가 없지.’
그렇기에 나는 알톤의 어이없는 증오도 수긍했다.
어차피 정신병자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렇게 잠깐의 생각 끝에 알톤을 바라보고 있자니, 회한의 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생각과는 많이 다른 전개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흥으론 충분하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곳곳에 앉은 군주들을 둘러보며 물음을 건넸다.
[ 그대들의 뜻은 어떠한가? ]그리고…….
“찬성합니다. ……뭐, 알톤 군주의 뜻이 그렇다니, 저희야 존중할 수밖에요.”
“동감입니다. 어차피 알톤 군주는 그, 뭐냐, 신의 사도잖아요? 그럼 끼어들 순 없죠.”
“크흐흐. 알아서들 하시게나. 어차피 서로 싸우게 될 건 자명한 일이니 말이야.”
요람의 모임에 참석한 군주들도 그다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서로 겉으로는 배려이니 존중이니, 어찌 되든 관심 없다는 태도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빛에는 기이한 욕망, 그리고 궁금증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정도야 손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알톤을 실험용 쥐처럼 사용하겠다는 건가.’
아마도 군주들은 전부 상관없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을 터이다.
실제로는 내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궁금하겠지.
그리고 때마침 알톤이 실험용 쥐를 자처하니 군주들은 아닌 척하면서도 알톤의 1:1 결투를 허락한 것이다.
[ 군주들의 뜻이 일치하니, 그대들의 결투를 허락하지. ]아마도 알톤 정도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정보를 끌어 내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 이제부터 서로 전력으로 싸우게나. ]이내 회한의 신이 그리 말하며 결투 성사를 알려온 순간.
어느새 회한의 신은 물론이고 군주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알톤은 아예 산양의 얼굴을 잔뜩 흥분으로 일그러뜨리며 저열한 음성을 내뱉어 오고 있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알톤은 이제 살의와 적의를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사납게 말했다.
“감히 제 가문의 비전 술식을 모욕한 것도 모자라, 아예 비틀어 버린 개자식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줄 수 없을 테니까요.”
[ ……. ]“도전자……. 나의 위대한 신을 부정하는, 한낱 어리석은 탑의 개여. 당신의 목을 자르고 나의 신에게 바치도록 하지요.”
[ 그러든지. ]하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알톤이 62군주의 자리를 가지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더불어 절망과 추락 그리고 광기의 신을 섬기는 것도 숙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탑의 도전자라는 걸 알자마자 적의도 몇 배로 증폭된 거겠지.
그러니 나는 알톤의 적의와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 태도에 분개하는 대신에, 그에게서 느껴지는 신성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말이지…….
[ 어차피 이기는 건 나일 테니까. ]기대됐다.
알톤과의 결투 자체는 기대되지 않아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성 자체는 욕심났다.
여태껏 사도를 해치우며 얻은 ‘사령 조각’의 개수는 총 둘이다.
21층에서는 카르나르 사그시스를, 그리고 지구에서 전투의 신을 섬기는 사도를 살해하며 얻은 ‘사령 조각’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 알톤을 죽이는 걸로 새로이 신성을 습득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터이지.
새롭게 신성을 얻을 기회이다 보니 저절로 기대에 찬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는 알톤을 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뭔 이런 시건방진 게 다 있…….”
그에 알톤이 불쾌하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주먹을 꽉 쥐는 순간.
[ 됐고. ]그대로 나는 알톤을 바라보며 흑마법을 발동하여 신성의 갑주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켰다.
「초월의 신이 하찮은 미물을 바라보며 죽음을 선고합니다.」
【 검은 후광 】
[ 이제, 죽어. ]순식간에 흑마법 [검은 후광]이 검은빛의 헤일로를 그리며 빛을 번뜩인다.
“그건 또 무슨 개 같…….”
알톤은 검은 후광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짜증을 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쓸데없이 알톤이 말을 잇기도 전에, 신성의 갑주를 매개로 하여, 흑마법 [검은 후광]으로 신성 권능을 발동했다.
「신성 을 사용합니다.」
「신성 에 침식된 모든 것의 죽음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신성 이 [검은 후광]에 의해서 흑마법으로 강화될 수 있습니다.」
본래 신성 은 알톤 같은 고대 신격의 사도에게 바로 통용되진 않을 터다.
신성력을 지닌 존재는 외부 신성에 관한 저항력을 가지니까.
하지만 흑마법 [검은 후광]이 깃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핫! 신성에 내재된 권능의 힘이라고? 그래 봤자 나에겐 닿지 않……, 어?”
상대의 외부 신성 저항력 자체를 낮추어 즉사시킬 수 있게 할 수 있기에.
「신성 이 [검은 후광]으로 상대의 신성 권능 저항력을 감소시킵니다.」
“이게 무슨……?”
[ 잘 가.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순간.
뻐어어어어어어엉─!
「마계 군주 ‘알톤 르메네르’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사령 조각 ‘■■■[3/3]’을 흡수했습니다.」
「도전자 한성윤이 군주를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2차 승천에 6.1% 가까워졌습니다.」
「에 따른 특수 보상으로 전용 효과 ‘흑마법 제어력(C+)’을 획득합니다.」
「이제부터 도전자 한성윤의 마기 제어 능력이 10% 오릅니다.」
알톤의 머리통이 신성에 한 번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터졌다.
고대 신격을 섬기는 정식 사도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어이없는 최후.
눈 깜짝할 사이에 화려한 피의 분수, 그리고 짐승의 누린내가 곳곳으로 퍼지며, 경악에 찬 시선이 몰린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나는 덤덤히 받아 내며 말했다.
[ 이제 이걸로 실력 검증은 됐을 테지? ]같잖은 증명의 시간은 끝났다.
[ 모든 군주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도 힘들 거다. ]그러니…….
[ 전부 한꺼번에 덤벼. ]이제부턴 승천의 경험치를 폭발적으로 쌓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