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4
033. 점령전 (2)
수라장(修羅場).
딱 그 말이 어울리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올라오는 채팅마다 기괴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으며…….
살인이나 약탈 같은 말들이 손쉽게 입에 오르고 내리는 상황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모양이 된 건지도 짐작할 수 없을 정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는 와중에도 채팅이 갱신됐다.
-다크나이트: 살인에 관련된 업적이나 내성류 스킬 습득법 구합니다.
-감귤짬뽕: 씨발, 살인 관련된 업적들 좀 그만 찾아, 개새끼들아. 늬들은 사람도 아니야, 이 짐승 새끼들아.
-다크나이트: 좆까, 자기가 대신 시련 치러줄 것도 아니면서 ㅈㄴ 땍땍거리네.
-초코파이먹고싶다: 4층 시련 거쳤으면 살인은 해봤을 텐데, 왜 자기는 깨끗한 척하는 거냐.
-주황버섯: 그러니깐 ㅋㅋ, 살아남으려고 살인 업적 찾는 건데 누구는 좋아서 하는 줄 아나?
-기둥뒤에공간이있어요: 살인 업적이 제일 효율이 좋아서 하는 건데, 븅신임?
-아모른직다: 혹시 모르지, 4층에서 버스 타느라 손에 피도 안 묻혀본 새끼일지도.
-감귤짬뽕: 미친 새끼들, 짐승들하고 어떻게 대화를 하겠냐, 에휴.
-사냥중독: ㅋㅋ, 6층 통합 시련도 무조건 살인은 해야 할 텐데, 하는 김에 업적 좀 얻는 게 이득이지, ㄹㅇ.
정상이 아니다.
살인을 피할 수 없으므로 관련된 업적을 달성하는 게 효율적이라느니 뭐니 하고 있지만, 그건 효율 이전의 문제다.
“그냥 다들 생각하는 게 연쇄살인마 수준인데.”
이어지는 채팅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찌푸렸다.
물론 무슨 생각으로 살인에 관련된 업적을 거래하는지는 알 수 있다.
6층 시련은 다른 도전자를 죽여야 하는 내용일 테고.
그에 관련된 업적은 판매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다른 업적들은 판매하면 곤란하겠지만, 시련의 탑이 이러한 싸움을 주도한다면 살인에 관련된 업적들은 언젠가 다 공개될 테니 말이다.
‘……아무리 상위권 도전자들은 다 빠져나갔다고 해도, 이건 심한데.’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해치는 정도를 넘어섰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다면 뭘 어떻게 해서든 간에 얻겠다는 듯한 태도.
심지어 그걸 남에게 부추기며 다들 정신 내성이니 살인 업적이니 하는 걸 공유하고 있다.
그러니 효율만을 따지며 저딴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는 것이다.
“……상황을 보니, 이계의 도전자에 대해서 말할 때는 아닌 거 같네.”
이들 중에 이계의 도전자를 만났을 거 같은 사람이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아니, 설령 있다고 해도 어그로를 끌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 손해다.
‘미친놈들한테 주목을 받는 것만큼 최악인 상황은 없을 테니.’
그냥 지금은 돌아가는 상황만을 알아 두는 게 편할 것이다.
-프로그: 방금 막 5층 시련 깨고 왔는데, 정신 내성 스킬은 습득하면 무슨 효과가 있는 건가요.
-사냥중독: 고통 내성이나 뭐, 그런 내성류 스킬처럼 받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이 줄어들게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덜 받는 거죠.
-주황버섯: 고통 내성이 있으면 살인 같은 행위를 저지를 때도 정신적인 고통을 덜 받게 되니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쉽습니다.
-프로그: 정신 내성의 고통 감소율 퍼센테이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다크나이트: F급은 10%고, E급은 12%, D급은 15% 정도임. 직접 배웠던 것들은 그랬음.
-프로그: 아,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사냥중독: 혹시라도 정신 내성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싼 가격에 스킬 습득 방법 알려드릴 테니까요.
-척척박사: 어차피 앞으로도 못 볼 꼴들 꽤 볼 텐데, 정신 내성 얻어둬서 나쁠 건 없음.
“왜 정신 내성 스킬을 판매하나 했더니…….”
살인이나 약탈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어필하고 있었다.
왜 커뮤니티에서 다들 살인이나 약탈에 급작스럽게 무감각해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정신 내성 때문이었네.”
정신적인 충격이 일부 감소하는 효과, 매력적이지만 양날의 검이다.
늘 정신적인 고통을 스킬로 흘려낸다면,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본래라면 감정적인 충격을 덜어내 냉철함을 살리는 정도라고 알고 있었지만.’
죽을 고비를 수십 번이고 넘겨야 하는 시련의 탑에서는 정신 내성이 독이다.
자신의 의지랑은 별개로 스킬에 의해서 모든 정신적인 고통이 줄어든다니.
확실히, 정신이 강인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그걸 자기 합리화에 쓰게 된다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채팅들이 그 결과물이다.
6층 시련도 남을 죽여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김에 업적도 얻겠다.
그게 무엇이 나쁜 건지 알 수 없다며 역정을 내는 꼴들이 그랬다.
“…….”
이제야 좀 시련의 탑에 있던 어두운 일면이 보이는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시련의 탑이 새로운 기회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시련의 탑이 모든 걸 앗아간 것에 불과하다는 게 확 와닿았다.
5층에 남은 하위권 도전자들은 그 현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항상 시련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바로 입장해서 몰랐던 거겠지.’
어쩌면 아래층에서는 비슷한 대화들이 반복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지한 나는 시련의 탑에 분노를 품지도 눈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만약에 시련의 탑이 없었고, 세상이 그대로 굴러갔다면…….
‘나는 저기에 있는 도전자들보다 못한 신세였겠지.’
시련의 탑이 있기 전에도 세상은 같은 이치로 굴러갔다.
승자는 모든 걸 가지고, 패자는 모든 걸 잃는다.
단순히 시련의 탑이 나타나며 승자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서 본래라면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도 내게 주어진 것이고.
‘그럼 더 망설일 게 있을까.’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강해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더는 다른 도전자들에게 동정심을 품지도 눈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프로그: 정신 내성류 스킬 습득법부터 구매할 수 있을까요?
-사냥중독: 예예, 포인트만 주신다면 당연히 가능하죠.
-주황버섯: 정신 내성에 어울리는 업적들도 있으니 생각 있으시면 한 번 문의 주세요!
-다크나이트: 살인이든 뭐든 다음 시련에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업적 찾습니다.
-설인족장: 음, 5층에 막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실 분 있으신가요?
모두 경쟁자일 뿐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경쟁자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고, 그걸 어떻게 쓸 것인지를.
뭐든지 알고 있어야 대처하기 쉬운 법이니 말이다.
***
「6층 시련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12분」
이전의 시련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그다지 준비할 게 없었다.
몸을 움직여서 능력치에 적응하는 것도 스킬들의 성능을 시험하는 것도 진즉에 다 끝냈기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능력치에 적응하겠답시고 더 단련했겠다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사실, 이만큼 감각이 예민해졌으면 능력치의 상승에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
성장한 신체 능력에 적응하지 못해서 끙끙대는 건 슬슬 끝낼 시점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고, 쓸 만한 정보들도 구했다.
-tkfdlsrhkd: 4층 시련에서 팀원을 죽였더니 ‘배신자’라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근력이 +1 성장하더군요.
-살려주세요: 정신 내성 있으신 분들은 살인에 관련된 업적 알아보세요. 이게 은근 꿀이라, 살인할 때 조금 특별한 짓만 해도 업적이 쌓이거든요.
-IiIiIIiIIi: 팀원이 조금만 트롤 기질 보이거든 그냥 그 자리에서 등 찔러라. 그게 편하다. 괜히 살아 있으면 걸림돌만 된다. 그러는 편이 업적 쌓기도 편하고.
-킹생충: 님들, 4층에서 뜬금없이 시련 정보 풀었던 새끼 ‘혜디공듀’라는 닉네임으로 이름 변경한 거 알고 있음?
-괴라는나물: 그 씹새끼 닉네임 그거임? 그 개자식 때문에 질문권 썼던 거 소용이 없게 됐었는데, 씨발. 만나면 죽여야지.
-미친놈을보면짖는개: 자살 희망자임? 혜디공듀는 결산 등급만 해도 B급이고 님은 D급도 간당간당한데 어떻게 죽이겠다는 거임?
간간이 업적을 공유하는 이도 있고, 남의 정보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도 있었다.
솔직히 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없었지만, 이 정도면 확신할 수 있었다.
“6층 시련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겠네.”
현재 커뮤니티를 보니 미친놈들이 많다는 게 느껴진다.
4층 시련에서 만났던 이성훈은 그나마 괜찮은 반열에 속할 수준.
팀원도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이외의 소득이 있다면 ‘혜디공듀’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 정도였다.
‘그때 4층 대기실에서 뜬금없이 커뮤니티 분위기를 망쳤던 도전자였나?’
4층에서 뒤늦게 올라온 사람도 있는 모양이라 알 수 있던 정보였다.
물론 포인트를 쓴다면 더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괜히 채팅을 치고, 포인트를 쓸 필요는 없겠지.’
전부 사사로운 이득만을 주는 정보밖에 없기에 더 그랬다.
만약에라도 어그로가 끌려서 ‘혜디공듀’라는 도전자처럼 정보가 풀려도 곤란하고.
“여러모로 채팅은 치지 않는 게 좋지.”
그렇게 이것저것 하고 있으니 대기 시간은 쭉쭉 흘러서 이윽고 0에 도달했고.
「6층 시련에 응하시겠습니까?」
시련에 응하겠냐는 메시지가 떠오르며 선택지도 함께 나타났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듯이 단번에 수락을 누르니 포탈이 나타났다.
우우웅……!
「시련의 탑 6층에 입성합니다.」
「난이도 – 어려움」
「해당 시련의 주제는 ‘점령’입니다.」
「도전자가 선택한 고행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포탈을 넘어간 순간, 눈앞에는 이질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촤아아, 촤아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물결들이 귓가에 존재감을 넓게 퍼뜨린다.
“……바다?”
「6층 시련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50분」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안에 사방에 있는 거점 타일 중 하나를 차지할 것」
「시련 실패 조건 – 도전자의 죽음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랜덤 뽑기 상자(B)」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망망대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넓은 바다의 한가운데.
수십, 수백, 수천의 타일이 바다 위에 둥실거리며 서로 딱 붙어서 형성된 장소였다.
그제야 좀 머리 회전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
5층 시련은 협소했던 동굴이었던 반면, 6층 시련은 바다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것도 바다의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는 타일의 위에서 말이다.
‘뜬금없기는 한데, 시련의 탑답네.’
그때였다.
우웅, 우웅.
여기저기에서 포탈이 열리며 그 안에서 도전자들이 등장했다.
이어서 내 옆에 있는 타일에도 포탈이 열리며 메시지가 떠오른다.
「팀원 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팀원과 협력하여 시련을 돌파하십시오.」
4층 시련에서도 그랬듯, 6층 시련도 팀원이 있기는 한 모양.
‘이성훈 같은 도전자만 아니면 좋겠는데.’
그리 생각하며 포탈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쐐애애액!
대뜸 포탈에서 금빛의 칼날이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코앞까지 쇄도한다.
‘아니, 미친……!’
예상했던 도전자는 나오지도 않고 칼날이 솟구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황한 것과는 별개로 압도적인 능력치로 형성된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텁.
황금의 칼날을 맨손으로 잡아서 그대로 붙들었다.
내구의 수치가 43에 다다르며 할 수 있게 된 묘기였다.
칼날을 꽉 잡지 않도록 조심만 한다면 C급 아이템에도 손이 베이지 않는다는 걸 대기실에서 확인한 상황.
그러니 하위권에 머무는 도전자의 무기라면 맨손으로 잡아도 멀쩡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어, 어어?”
포탈 너머에서 들려온 당혹스러운 음성을 들으며 침착하게 칼을 훅 당겼고.
이어서 멍청한 표정을 짓는 남성이 포탈에서 나온 것을 확인하곤 오른손에 쥔 검을 움직였다.
푸우욱!
「업적 ‘배신자’를 달성했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핏물이 허공에 솟구치는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에 나는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6층 시련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