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5
034. 점령전 (3)
6층 시련이 시작한 직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업적 ‘배신자’를 달성했습니다.」
“…….”
도대체 방금 죽은 도전자는 무슨 생각이었을지 궁금하다.
단순한 미친놈이었을까, 아니면, 전략적인 공격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간에 정상적인 생각으로 포탈에 칼을 쭉 뻗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일 생각이 있었기에 뻗은 무기였을 터다.
“젠장.”
방심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팀원이 배신할 수도 있고, 정신 내성으로 무장한 도전자들이 꽤 있으리라 여겼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법은 방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누구든지 죽으랍시고 칼을 찌를 줄이야.’
그저 뒤늦게 포탈이 생성됐다는 것만으로 포탈 너머에 누군가 있을 거라 여겼다는 점.
그리고 그 추측을 바탕으로 칼을 들이미는 행동은 대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약에 내가 아니라 다른 도전자가 여기에 있었다면 미간이 꿰뚫리고도 남았을 터다.
그러지 않은 건, 단순히 내가 능력치 면에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 것 같지?”
심장을 꿰뚫린 채 쓰러진 도전자의 시체를 본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계의 도전자도 그렇고, 6층 시련의 팀원도 그렇고.
불행이 잇따라 따라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완벽하게 실감했다.
팀원이 있는 시련에서 시작부터 한 명뿐인 팀원이 죽다니.
‘최악의 전개네, 이건.’
만약에 다른 도전자 중에 팀원이 멀쩡한 쪽이 있다면 그쪽이 유리해진다.
‘최대한 다른 도전자들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게 낫겠지.’
지금은 그러는 게 나으리라 판단하여 고개를 돌린 순간.
눈앞의 광경에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흐, 흐하하! 어, 업적이다! 진짜 근력이 상승했어!”
“젠장, 수상전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제, 제발……. 사, 살려줘. 포, 포션을…….”
핏물이 여기저기에서 튀며 동시에 귀곡성 같은 비명이 사방에서 울린다.
흥분, 분노, 당혹, 절망, 갈망, 후회 등등…….
수십여 개의 감정이 한데 뒤섞여 음악이라도 되는 양 울려 퍼진다.
‘……오히려 나는 괜찮은 편이었네.’
다른 이들은 나보다도 더 상황이 심각한 편이었다.
지옥이 존재한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시련의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업적을 얻을 수 있다는 연유로 팀원을 죽였다.
그것도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차마 눈을 뜨고 봐주기도 힘들게 살해했다.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다는 게 느껴진다.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잊고 시련보다 업적을 더 우선할 줄이야.
대부분 눈앞의 이득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네 개의 타일 중 하나를 점령해야 한다는 것.’
그게 시련의 돌파 조건인데 그것도 잊고 저렇게 싸울 줄은 몰랐다.
물론 그 와중에도 허겁지겁 타일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보이기는 한다만.
“젠장! 물에 빠지면 능력치가 감소해, 조심해!”
“타, 타일이 출렁거려서……,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흐어억! 나, 나 좀 살려 줘! 무, 물에서 못 나가겠……!”
그들도 썩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물에 빠지면 능력치가 감소하고, 움직일 때마다 타일이 출렁거리네.’
다른 도전자들을 바라보며 지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과연, 시련의 탑이 낸 시련답게 위험천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물론…….
‘뭐야, 은근히 쉽네.’
그게 내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촤아악, 촤아악!
애초부터 물에는 닿지 않으면 될 뿐이고, 출렁이는 타일도 나를 흔들지는 못한다.
근, 민, 체 능력치의 합산 수치를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균형을 잃을 수가 없다.
신체적인 능력치는 이계의 도전자도 나보다 약했으니 당연한 바였다.
차라리 5층 시련이 더 어렵게 느껴질 지경이다.
통, 통, 통.
오히려 이 출렁거림은 리듬을 타기 쉽게 만들 뿐이다.
리듬에 맞춰서 타일을 이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아직 대부분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방금 팀원이 죽었다며 긴장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시련의 돌파 과정은 순조롭다.
‘이대로 타일에 도착하면, 그대로 시련이 끝나는 건가?’
툭.
그런 생각에 이어서 끄트머리에 있던 붉은색의 타일을 밟았지만…….
「남쪽 타일의 점령을 진행합니다.」
생각했던 것처럼 손쉽게 시련이 끝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타일 내에 다른 팀이 진입하면 점령 진행이 중단됩니다.」
「다른 적들이 해당 타일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하세요.」
「단, 다른 팀이 타일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점령 진행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 – 9분 59초」
“점령이라…….”
시련의 주제였던 ‘점령전’이라는 것이 뭘 뜻했는지 명확해졌다.
공성, 그리고 수성의 개념을 조금 바꾼 것뿐이다.
다만,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점령 조건이 꽤 까다롭다는 거겠네.’
이 수라장에서 10분을 이 타일에서 버티라니…….
어지간히 무력이 차이 나지 않는다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게 혼자라면 더 점령지를 뺏기기 쉬울 테고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다른 도전자들도 팀원을 꽤 많이 잃었다는 것 정도.
이어서 힐끗 주변의 상황을 살핀 나는 이내 확신했다.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주변에 이계의 도전자 같은 실력자는 없는 듯이 보였다.
대부분 타일을 제대로 넘지도 못하고, 지형에 발이 묶여서 방황하고 있는 상황.
시작부터 팀원을 죽이게 됐기에 긴장했던 게 무색했다.
‘애초부터 대부분 5층 결산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이들이니 그럴 수밖에.’
시련에 바로 도전한 상위권 도전자들은 6층의 너머에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도전자들이 뒤늦게 이 6층의 시련에 도전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귀환석을 썼다든가 혹은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올라온 이들도 적지만 있을 터다.
바로 나 같은 이들이 그런 부류였다.
그때였다.
“……남쪽으로 가! 남쪽 타일에 있는 놈은 혼자다!”
문득 누군가 외친 말에 주변의 시선이 이쪽에 쏠리는 게 느껴진다.
“지, 진짜야. 공성에 관련된 마법도 못 쓰는 거 같고…….”
“아니야. 팀원도 없는 걸 보니 업적 쌓으려고 저러는 걸 수도 있어.”
“쓰벌, 실패해 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냐! 난 돌격한다!”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대개 나를 먹음직스러운 목표물로 본 듯했다.
도전자들이 이쪽으로 슬금슬금 접근하는 걸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거, 꽤 안 좋은 흐름인데.”
누군가의 선동에 혼란스러웠던 전장의 눈길이 내게 돌려졌다.
‘어디로 가든 정치질을 하는 놈들은 꼭 있네.’
4층의 시련 때부터 꾸준하게 정치질을 했던 ‘혜디공듀’란 작자도 그렇고.
이 와중에 남쪽 타일이 구멍이라며 정작 자신은 뒤로 슬그머니 빠지는 남성 도전자가 그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샘솟지는 않았다.
‘뭐, 이 정도면 예상 내의 범주니.’
시련의 탑에서 대부분의 일은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다섯 명 정도 되는 도전자들은 같은 팀이 아닌 것 같지만…….
나를 공동의 적으로 인식했는지 서로 싸우지 않고 이쪽으로 다가온다.
자신들이 선동당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였지만, 그걸 알려 주며 시간을 끌 생각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네크로맨시의 숙련도도 올려야 했는데 잘됐네.’
특별 시련이니 통합 시련이니 했지만, 내게 이 시련은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고유 특성의 숙련도, 그리고 운이 좋으면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초대박 이벤트.
“이제야 좀 시련의 탑 같아졌네.”
다가오는 도전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사실, 굳이 저들은 전부 죽일 필요는 없다.
시련의 탑이 명시했듯 타일 점령에 소모되는 10분만 버틴다면 시련은 통과하는 셈.
그런 만큼 봐주려고 한다면 봐줄 수도 있었다.
눈앞의 도전자들은 전부 실질적으로는 나보다 약하기에 다른 타일로 보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러는 편이 저들의 생존 확률을 올려주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래 봤자 위선일 뿐이지.’
다른 타일로 보내도 결국 누군가는 죽는다.
그건 본래 타일을 점령하고 있던 도전자든, 타일에 침범하는 도전자든 똑같다.
어느 한쪽은 타일에서 내쫓겨서 시련에 실패하고, 죽는다.
그러니 싸우겠다고 결심했다면 이런저런 감정을 품을 필요는 없었다.
6층 대기실에서 판단했듯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며…….
하위권 도전자라고 해서 동정심을 품을 가치는 없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그리고 그건 상대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뒈져!”
남쪽 타일의 점령권을 노리는 만큼 도전자들의 행동은 신속했다.
순식간에 한 남성 도전자가 창을 내찌르며 내게 달려들었고.
그걸 본 다른 도전자들도 이어서 적대적인 행동을 취했다.
“젠장, 이판사판인가! 심장 결속!”
「고유 특성 ‘심장 결속’에 의해서 플레이어 ‘김진현’과 플레이어 ‘한성윤’의 고통이 공유됩니다.」
쿵……!
순간적으로 심장에 납덩이가 얹히는 듯한 감각이 일더니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통 공유?
‘또 마력을 사용하는 계통의 고유 특성이냐.’
항마력에 관련된 스킬이 없어서인지 저항할 새도 없이 고유 특성에 당했다.
육체적인 스킬이라면 어찌어찌 막거나 피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계열의 공격은 방어할 수도 없으니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항마력에 관련된 스킬도 습득해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능숙한 움직임을 구사했다.
내찔러지는 창을 왼손으로 붙잡고 타일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라서 적의 목을 벤다.
서거걱……!
「업적 ‘일격일살’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약자멸시(F)’가 생성됩니다.」
무언가를 얻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감흥을 느낄 새도 없었다.
‘남은 건 셋인가.’
아직은 눈앞에 적이 남아 있기에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
점령이 진행 중인 타일에서 다른 타일로 재빨리 넘어갔다.
분명히 타일에 발을 내디뎠을 때 떠올랐던 문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단, 다른 팀이 타일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점령 진행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해당 타일에 다른 팀이 진입하지만 않는다면 점령은 중단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다른 타일로 이동해도 점령 진행이 끊길 일은 없다는 뜻.
괜히 뭔가를 더 하게 둬 봐야 좋은 것도 없으니 선공을 하는 게 낫다.
‘빠르게 처리하는 게 낫겠어.’
「스킬 ‘약자멸시’가 활성화됩니다.」
「다섯 개의 능력치 중 다섯 모두 사용자보다 수치가 낮은 적입니다.」
「적이 당신에게 위압감을 느끼기 쉬워지며 근력이 1 상승합니다.」
그리 결심한 순간에 업적으로 얻은 스킬이 발동되며 몸에 활기가 감돌았다.
새롭게 얻은 스킬에 흥미가 생겼지만, 이내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에 헛웃음을 지었다.
‘다섯 능력치 중 다섯 모두 나보다 못한 상대라니…….’
특정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들은 대적할 상대조차 되지 않는단 말이다.
“괴물 새끼, 무슨 힘이 저렇게 강한데……!”
“이, 이게 무슨…….”
“젠장, 못 오게 막으라고! 마법사라며! 쉴드를 쳐!”
“빌어먹을 새끼야, 마법이 만능인 줄 아냐! 이런 지형에서 어떻게 쉴드를 치는데!”
통, 통, 통.
방금 발동된 ‘약자멸시’라는 스킬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적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타일을 넘고 있는 와중에도 싸우는 꼴에 한숨이 나올 정도.
‘나였으면 일단은 다른 타일로 넘어가든 아니면 밑에 있는 물을 이용하든 했을 텐데.’
타일의 아래에 깔린 물은 닿으면 능력치를 감소시킨다.
그래서 밑에 빠진 이들도 있고 나도 능력치 감소는 썩 달갑지 않은 편이다.
그걸 이용했다면 나도 꽤 견제당했을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그 요소들을 자신들의 발을 묶는 데 쓰고 있으니 한심스러웠다.
‘뭐, 됐나.’
애초부터 내가 있을 곳은 6층이 아니다.
본래는 시련에 곧장 참여했던 이들이 있을 더 상위 계층에 있어야 했었지만…….
단순히 지구로 복귀해서 이것저것 선점하느라 탑을 오르는 게 늦어졌을 뿐이다.
어쩌면 하위권 도전자들을 상대하는 것이니 당연한 상황이라 할 수도 있다.
좀 더 수준 높은 전투를 원한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해.’
더 강한 도전자들이 있는 곳으로, 더 위험한 시련이 있는 곳으로.
이런 이들만을 상대한다고 한들 극적으로 강해지는 건 어렵다.
시련의 탑도 엉터리인 체계를 갖춘 게 아니라고 친다면.
이런 식의 학살극으로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리는 없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시 그들과 같은 최전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은 이것들부터 다 끝내야겠지.”
그래야 6층 시련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