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55
353. 백학검선 (4)
비원(悲願).
그것은 탑에 종속된 관리자가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소원을 대신하여 이루어 주는 것이다.
그것도 시련의 탑이 도전자에게 내주는 시련과도 같은 형태로.
오직 관리자의 생애에 걸쳐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
그걸 나에게 맡긴다는 의미는 적지 않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의 전용 권한 #G-0778[최후의 숙원]이 발동했습니다.」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을 맡길 정도로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긴 하지.’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탑을 오르며 나는 무수한 격전을 거쳤고 그 끝에 고대 신격의 경지에 도달했다.
사실상 이 너머에 있는 30층이나, 40층을 등반하는 도전자라고 한들 나를 이길 수는 없을 터이다.
‘이곳에선 내가 가장 강하니까.’
자신감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이건 구차하게 과장을 보태거나 할 것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백학검선이 신뢰하는 걸 넘어서 반드시 나에게 비원의 시련을 맡기려 하는 것이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의 소망을 토대로 계층과는 벗어난 특수 시련이 작성됩니다.」
「특수 계약 시련 에 도전할지 결정하십시오.」
「수락 : 탑의 힘으로 재현된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거절 : 특수 계약 시련 이 취소됩니다.」
단지…….
“죄송하지만 이건 아직 못 받겠습니다.”
아직은 비원의 시련에 들어설 생각이 없을 뿐이지.
다짜고짜 이런 식으로 백학검선의 비원을 수락하긴 힘들었다.
순식간에 백학검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돌처럼 굳으며 그녀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어느새 그녀의 눈은 강렬했던 열망 대신에 그렁그렁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마치 주인에게 버림받은 소동물 같은 모습.
“……비, 비원의 시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요?”
“네.”
“……어, 어째서요? 서, 성윤은 제가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잖아요! 설마 제가 싫어지기라도 했─.”
“아뇨. 그게 아니라 비원의 내용을 알아야 하잖습니까.”
그리고 그제야 백학검선의 눈망울에 곧 쏟아질 듯 그렁그렁 맺혔던 물방울들이 멈췄다.
“아…….”
“비원의 내용, 그리고 그 배경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게 편하니까요.”
“네에……. 그, 그렇…네요……. 비원의 내용을 알아야 하니까…….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그녀의 얼굴에 뒤늦게 붉은빛이 올라오며 고개가 푹 내려갔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대로 고개를 붕붕 흔들어 화끈거리는 낯빛을 가라앉힌 백학검선이 고개를 들어 눈동자를 빛냈다.
그녀는 차분하게 심호흡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윤에겐 저의 소망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죠.”
어느새 백학검선의 눈빛은 씁쓸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렇게 어려울 건 없어요. 저의 소망은, 저의 가문이 부흥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슬픔을 담은 눈빛을 자아내며 말했다.
“어릴 적에, 멸문지화를 겪은 탓에 사라진 저의 가문. 그것을 무림에 재건하여 부흥시키는 것만이 저의 소망일 뿐이에요.”
“그렇다면 스승님의 가문을 재건하여 부흥시키면 끝이군요.”
“……네. 그래서, 철혈의 군주, 그 여자처럼 극단적인 소망은 아니죠. 세계 멸망을 논할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어요.”
“?”
그에 나는 눈을 찌푸려야 했다.
세계의 멸망을 논할 수준은 아닌데 그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니?
설령 상위 신격이 얽혀 있다고 해도 딱히 부담스럽진 않을 터인데 어째서 어려울 수 있다는 걸까.
“비원의 시련에는, 신선이나 그에 견줄 수 있는 대적이 얽혀 있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빠르게 풀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가문의 부흥이라는 것은 제 손으로 직접 이루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원의 시련에 있는 어릴 적의 제가 직접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죠.”
“…….”
“설령 성윤이 가문의 부흥을 이룰 조건을 전부 만족한다고 해도, 그걸 어릴 적의 제가 이어 갈 최소한의 자격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설마, 그거…….”
“맞아요.”
그도 그럴 것이…….
“그러니까…….”
어느새 백학검선이 어째서 이 비원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는지 알아챈 탓이다.
“한마디로, 비원에 재현된 저를 유사 신격의 수준까지 성장시켜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것도 아주 확실히.
***
사실상 백학검선의 비원은 일반적인 도전자는 이루어 줄 수 없는 것이다.
‘……설마, 탑에 의해 재현된 백학검선을 신격의 수준까지 성장시켜야 할 줄이야.’
그럴 만도 했다.
한낱 탑을 오르는 도전자의 역량으로는, 신격의 수준을 범접할 수도 없을 테니까.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설령 신격의 수준에 닿았다고 한들 그걸 남이 똑같이 해낼 수 있게 할 수는 없다.
‘이게 도전자의 수준에서 클리어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
그리고 그것은 나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타인이 오롯한 신격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끔 성장시키는 것은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정식 신격이 아닌 유사 신격의 수준이라고 해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해보겠습니다.”
결국에는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그으……. 미안해요……. 터무니없는 소원이라서…….”
그리고 그에 백학검선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했고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알고는 있는 것 같으니 됐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개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읏, 네…….”
“뭐, 그리고 어차피 어느 정도 해결책은 생각해 뒀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해결책이요?”
“그렇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권능의 응용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가진 고대 신격으로써의 권능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테지.’
고대 신격이 된 이후로 나는 많은 것을 다룰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직은 확신할 수 없긴 해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그것도 한낱 필멸자가 신격의 경지에 발을 들이밀 수 있게 할 정도의.
“아마도 해결책이 통한다면 그렇게 시간을 길게 끌 필요는 없을 겁니다.”
물론 구태여 따지자면 일종의 편법에 가까운 해결책이긴 한데…….
어찌 되었든 간에 신격의 경지에 올리기만 해도 되는 것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는 있다.
단지, 문제점이랄 게 있다면 그게 백학검선이 바라는 것처럼 오롯이 도달하는 신격의 경지는 아니라는 것뿐이지.
“……그렇다면야, 부탁할게요.”
그리고.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의 전용 권한 #G-0778[최후의 숙원]이 발동했습니다.」
이내 재차 그녀의 전용 권한이 발동된 순간.
“성윤이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느 정도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말에 기분이 풀어진 걸까?
어느새 백학검선은 한결 안심했다는 듯 풀어진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그제야 나도 피식 작게 웃음을 짓고는 시련에 진입할 준비를 완전히 끝냈다.
“그다지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비원의 시련이라고 해도 이제 제게는 어렵지 않을 테니까.”
다음 순간.
「시련의 탑 입성합니다.」
「난이도 – 어려움」
「해당 시련의 주제는 ‘백학검선(白鶴劍仙)’입니다.」
「도전자의 의지로 깊은 곳에 있는 소망을 이루길 바랍니다.」
순식간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검게 물들었다.
‘시작인가.’
다름이 아니라…….
「특수 계약 시련 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10년」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내에 무공으로 백씨세가의 부흥 및 복수를 마치십시오.」
「시련 실패 조건 – 도전자의 죽음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백학검선의 감정에 의해서 보상의 수준이 결정될 것」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이제야 드디어 최후의 비원을 이룰 시간이 온 것이다.
***
검은 공간.
아무것도 없는 무채색의 세계에 진입하자마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들을 남김없이 읽은 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 장비의 착용이 제한되어 인벤토리로 전송됩니다.」
「도전자 한성윤은 시련의 특수성에 적합하지 않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는 각각 【80】이 되며 이는 시련의 진행도에 따라서 변화하지 않습니다.」
「※단, 개념 능력치의 경우에는 【80】이 아닌 【10】으로 고정 설정됩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예 모든 능력치를 두 자릿수까지 내리겠다는 건가.’
갑자기 탑에서 비롯된 시스템이 내가 가진 힘을 배제하려고 했으니까.
“개수작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나는 그에 딱히 당황하진 않았다.
「초월 신화 이 활성화됩니다.」
「이제부터 도전자 한성윤의 행동에 의 신성 효과가 붙습니다.」
「외부의 간섭으로 실현되는 당신에 관한 모든 부정적인 변화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도전자 한성윤에게 의 신성 효과가 붙습니다.」
「외부의 현상은 당신의 것이 된 힘을 절대로 허락 없이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꽈가각─!
어차피 탑이라고 해도 초월 신화 을 뚫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곳곳에서 들이닥친 탑의 제약이 붕괴하며 형태 없이 흩어졌다.
그것도 아주 깔끔히.
그리고…….
「…….」
「오류 발생.」
「시련의 탑이 당신의 행동에 침묵합니다.」
그에 대해서 탑이 선택한 대응법은 실로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시련의 탑이 전용 권한 #A-088[제약 수정]을 발동하여 일부 제약을 수정합니다.」
「특수 계약 시련 의 제약 중 일부분이 변화합니다.」
「시련의 탑이 전용 권한 #A-021[보상 수정]을 발동하여 보상 내용에 수정합니다.」
「특수 계약 시련 의 보상의 수준이 상승합니다.」
그제야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강제할 수단이 없으니 회유하겠다는 뜻인가?”
사실상 이쯤 되면 수작질이 아닌 부탁에 가까운 일이다.
‘대충 장비 제약이 많이 사라진 것 같네.’
물론 완벽히 장비 착용 제한이 사라진 건 아니긴 한데…….
시련의 페널티 중 하나인 ‘인벤토리’의 사용 불가 제약이 해제된 듯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시련 내에 진입해서 원래 가지고 있었던 장비들을 싹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냥 장비 쪽은 있으나 마나 하는 수준으로 변경된 건가.’
하지만 아직도 그대로인 부분도 있었다.
‘딱히 모든 능력치 쪽은 협상할 생각이 없나.’
현재 탑은 내가 가진 모든 능력치를 두 자릿수까지 내리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상황.
그러나 그것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집착은 아니다.
그대로 내 신체 능력이 유지되면 밸런스를 붕괴할 테니까.
‘그래도 이쯤이면 충분해.’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탑이 전용 권한 ‘#A-021[보상 수정]’을 발동하며 시련 보상에 보정이 붙은 상태.
아마도 보상에 보정을 붙인 걸로 모든 능력치에 관한 제약을 온존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래봤자 의미는 없는 제약이야.”
어차피 초월 신화 을 크게 운용하면 힘을 되찾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그리 제안이 나쁘진 않네.”
기껏해야 모든 능력치를 대가로 보상에 보정을 붙일 수 있다면 이득은 확실할 터이므로.
“그렇다면야, 상관없겠지.”
그리고.
「초월 신화 이 비활성화됩니다.」
이내 초월 신화 이 사라지며 탑에 의해 모든 능력치의 수준이 격하된 순간.
「특수 계약 시련 의 세계 조성을 완료했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의 검은 공간이 색채를 되찾으며 변화를 일으켰다.
「배역 선정 완료.」
「도전자 한성윤에게 산동백가의 의 배역이 배정됩니다.」
「순차대로 시련을 진행하여 시련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십시오.」
그에 마침내 시야에 탁 트인 정경의 모습을 담은 순간.
“…….”
그대로 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뭐야……?”
그도 그럴 것이…….
「업적 ‘멸문지화’를 달성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어느새 눈앞에 드러난 정경은 더없이 참혹했으니까.
시야를 어디로 돌리든 간에 곳곳을 물들인 피의 강이 피비린내를 흩뿌린다.
심지어 곳곳에서는 비명이나,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 혹은 전투의 함성이 들린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넓은 대지에 지어진 전각들이 불에 휩싸인 채 타오르고 있었다.
“……재밌네.”
다름이 아니라…….
“……시작부터 하드 모드인가?”
……백학검선의 비원이, 시작되자마자 실패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