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68
366. 정복자 (2)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현재 내가 직접 나선 덕에 구파일방 중 과반수가 반쯤 멸문되다시피 한 상황.
개방이 건네준 정보에 따르면 지난날 무림맹은 천하오절을 소집하여 이쪽을 죽여 버리려 한다고 했었다.
‘천하오절은 머지않아서 도착하겠지.’
그럴 만도 했다.
사실상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이니 하는 무림 세력들의 연합체가 무림맹이지 않은가.
굳이 개방이 넌지시 건네준 말 같은 게 아니라도, 이곳에 닥쳐올 무림인들이 괴물 같은 실력자라는 것쯤은, 이미 기정사실과도 같다.
“…….”
그렇다면 조만간 도래할 재난에 어떻게 대비를 해야만 하겠는가.
‘사실, 해야 할 일은 뻔히 정해져 있지.’
간단했다.
“백설화 아가씨.”
다름이 아니라…….
“이제는, 제 기술을 당신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전수할 겁니다.”
교육이었다.
나는 연무장 앞에 선 백설화를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어쩌다 보니 탑을 오르며 수많은 무공을 배운 덕에 그녀에게 무술을 교육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번에 교육에 실패한 원인은 내가 무공을 배웠던 것처럼 가르치려 한 탓이었지.’
단지…….
지난날의 나는 백설화의 재능을 너무나도 고평가하여 기술 전수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저, 그녀 또한 내가 그랬듯 무공을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오류를 범하여 그랬을 뿐.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어느새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백설화에게 말을 이었다.
“본디 무공이라는 것은 딱히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하나, 그것도 잠시.
“하아아, 사범님…….”
그에 백설화는 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아니……. 사범님은 이러실 때가 아니라니까요? 화산파나 종남파 같은 문파들을 멸문시킨 마당에, 무공 지도 같은 걸 하실 처지가 아니잖……!!”
아마도 이쪽이 구파일방 중 과반수를 봉문시킨 걸 알아챈 탓에 껄끄러운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아뇨, 아뇨. 전혀 안 괜찮은데요, 지금. 사범님은 이제 무림공적이나 다름없─.”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무림의 법도를 따라서 정정당당하게 굴었을 뿐이니까요.”
그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생각해 둔 말을 내뱉었다.
“구파일방 중 과반수의 봉문은 서로 간의 합의 아래에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서로 합의를 본 결투에서 패배했으면 승자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게 무림의 법도잖습니까?”
“…….”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결투에 합의를 이끌어 냈던 건 사실이니까.’
구파일방 중 어느 한 곳도 이쪽과의 결투를 거부한 적이 없으니까.
사실상 화산파의 장문인은 물론이고 종남파나 청성파 같은 곳들의 수장들도 나와의 결투를 수락했지 않은가.
물론 그중에서는 장문인이 직접 결투에 나서기도 전에 패배했음을 인정한 곳도 있긴 한데…….
뭐, 어찌 되었든 간에 서로 합의 아래에 스스로 봉문을 선택한 것이므로 딱히 무림의 법도를 어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게 너무나도 지나쳤던 탓에 이쪽도 이제 복수 당해도 할 말이 없어졌을 뿐이지.
‘딱히 고대 신격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에는 위험할 만한 일은 없어.’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사실상 천하오절이 오고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으로 걱정해야 할 필요는 딱히 없었다.
어차피, 어느 상대이든 간에 상위 신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어려운 전투도 아닐 테니까.
“당장은 아가씨도 그냥 무공 수련에만 집중하셔도 됩니다.”
“사범님이 그렇게 말씀하셔 봤자 별로 설득력이 없는데요…….”
백설화의 낯빛이 어이가 없다는 듯 변했으나 그도 오래가진 않았다.
“그럼 이제 무공 수련이나 하죠.”
이내 내가 그리 말하며 그녀에게 본격적인 무공의 기술 전수를 시작한 순간.
“본디 무공이라는 것은 의념의 발현입니다.”
나는 각종 무공을 배우며 깨달은 이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백설화에게 전수했다.
“검기는 검에 몸을 연결한다고 생각하는 게 편합니다.”
“본래 검기라는 것 자체가 마력, 아니, 내공에 의한 의념 구현이니, 신체의 내공 순환을 검에도 같은 식으로 구축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의념 전달 효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공의 초식은 앞서 말했듯 의념에 의한 기술 구현이니 어느 행동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 본질에 집중해야 하…….”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탑을 오르며 쌓인 무공에 관한 경험은 어느새 아득히 먼 고차원적인 영역에 맞닿아 있었고, 그 깨달음의 편린을 알아듣기 편하게 설명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설명을 이 어가다 보니 새삼 묘한 감흥마저 느낄 수 있었다.
고작해야 검기를 막 발현했을 뿐이었을 애송이에 불과했던 시절에서, 엄청나게 많은 발전이 있었음을 실감한 탓이었다.
‘새삼 재밌긴 하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업적 ‘교육자’를 달성했습니다.」
「전용 권한 #D-0007[보상 상승]이 조건을 만족하여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업적으로 얻는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스킬 ‘기술의 전수(B-)’가 생성됩니다.」
이번에 새로운 업적이 달성되어 교육에 도움이 되는 스킬을 얻은 것이다.
『스킬 – 기술의 전수(B-)』
『숙련도 – 0%』
『기본 효과 – 사용자의 교육 효율이 크게 상승한다.』
『세부 효과 – 사용자의 스킬이나 권능이 아닌 순수한 기술이나 요령의 전수에 있어서 일정 수준의 보정이 가해진다.』
‘써먹을 가치는 있겠네.’
이쯤 되니 백설화의 경지 상승 또한 오래 걸릴 수가 없다.
스킬의 교육 보정 효과까지 합쳐진 덕일까?
어느새 그녀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검기성강에 가까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성윤 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백천혁이 다가와서는 한없이 긴장에 물든 얼굴로 그리 말을 건넨 탓이다.
“……무림맹 측에서 산동백가에 있는 한성윤 님을 지목했습니다.”
“지목이라고요?”
“예.”
백천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말했다.
“……갑자기 무림맹 측에서 한성윤 님을 지목한 용건은 간단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본 맹에서, 한성윤 님에게 결투 재판을 신청했습니다.”
최후의 전투가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
결투 재판.
흔히들 무림에서 일어난 다툼은 비무로서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리듯…….
이제는 대놓고 서로 목숨을 건 결투를 하자며 무림맹 측에서 나를 지목해 온 것이다.
‘재밌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냥, 천하오절이니 어쩌느니 하는 고수들이 습격해 올 줄 알았는데, 결투 재판이라니…….’
재밌었다.
설령, 천하오절 같은 고수들이 오더라도 더 많은 인원이 올 줄 알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갑자기 저쪽에서 결투 재판 같은 제안을 해 올 줄이야…….
이쯤이면 저 바깥에 있을 가짜가 아닌 진짜 무림 또한 기대할 수밖에 없잖은가.
‘탑의 바깥에 있는 진짜 무림에 들르는 순간이 기대되게 하네.’
하나, 그것도 잠시.
“한성윤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무림맹 측의 착오를 반드시 바로잡아 볼 터이니. 부디, 맡겨만 주시지요.”
어느새 백천혁이 사명감에 차오른 얼굴로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의아함을 느꼈다.
‘설마 아직도 내가 아무런 짓도 안 했는데 무림맹이 저러는 줄 아는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터다.
저번에 백설화에게 구파일방의 영약을 먹이며 백천혁에게도 같은 말을 했었으니까.
거대 무림 세력으로 분류되는 구파일방 중 여섯 문파를 내가 없앴음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백천혁이 헛수고하지 않게끔 했다.
“제가 결투에 나서게 놔두셔도 됩니다.”
“아뇨. 설령, 한성윤 님이 흉수라고 하셔도 그리 두지 않을 겁니다.”
“?”
“어찌 되었건 간에 한성윤 님은 백씨세가의 은인이시니 도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아마도 백씨세가 측의 멸문지화를 막아 준 전적이 있어서 이러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제가 승리할 게 뻔하니까.”
“…….”
이쯤 되니 백천혁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은 걸까?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백천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뒤로 물러섰다.
그에 나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백천혁에게 물음을 건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서, 결투 재판은 언제쯤 열리는 겁니까?”
이제는, 나도 천하오절을 상대한 끝에 얻어 낼 보상이 궁금해진 탓이다.
“……열흘 후입니다. 단, 원하신다면 그 기간을 늘릴 수 있─.”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최대한 빨리 잡아 주시죠.”
그 말에 나는 정색하듯 딱 잘라서 말했다.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지.’
그럴 만도 했다.
그냥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음식이 있는데 배고픔을 참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천하오절 또한 상위 신격 같은 수준은 아니어도 충분히 성장의 양식이 될 수 있을 터이니 더 그러했다.
‘어서 보고 싶네.’
그에 나는 기대에 찬 눈빛을 발하며 입맛을 다셨다.
***
천하오절(天下五絶).
수많은 강호의 호사가들은 천하오절이야말로 세간에서 가장 강한 다섯이라고들 말한다.
사실상 천하오절은 마교의 발호를 다섯이서 막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업적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
그것은 무림맹을 이끄는 천강운도 동의하는 바였다.
‘삼백 년을 넘게 살고도 저리 정정한 모습들이라니…….’
산동의 백씨세가에서 마련한 비무대에 결투 재판의 공증인으로 올라선 천강운이 객석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야.’
그곳에는 무림맹의 긴급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천하오절의 일원들도 앉아 있다.
흔히들 선원무적자라고 부르는 선원진인, 그리고 창천검존이라는 별호로 알려진 남궁수가 그곳에 있었다.
그저, 무당파의 도사답게 깔끔한 도관에 도복을 입은 평범한 외모의 선원자에 더하여 청색 무복에 귀신같이 눈을 빛내는 남궁수의 모습.
그걸 보고 있자니 천강운도 저절로 긴장감을 느끼게 됐다.
‘어째서 천하오절 중에 천하제일인이 나올 것이라고들 말하는지 알겠군.’
그럴 만도 했다.
무당파의 태상장문으로 선원무적자라고도 불리는 선원진인이며, 남궁세가의 태상가주로서 창천검존으로 불리는 남궁수이며, 한없이 초월자에 가까운 이들이니까.
그리고 그들만이 아니다.
어느새 객석에 한 자리씩 차지한 적매자에 운수자, 그리고 당낙운 같은 이들도 저 둘에 비해 모자랄 수는 있어도 엄청난 실력을 지녔다.
그것을 천강운은 백 년 전 마교의 발호를 막아 내며 보았다.
‘그때는 저 괴물들이랑 같은 자리에 설 줄 몰랐는데 말이야…….’
천강운의 검은 눈빛에 경외와 추억의 빛이 함께 뒤섞였다.
삼백 년 전쯤부터 살아왔다고 하는 저 노괴들이 한 짓이 생각난 탓이다.
그저, 선원무적자의 손바닥이 내질러지는 것만으로 지형이 파괴되고, 창천검존의 제왕검형에 수많은 마인이 쩍쩍 베였으며, 적매자며 운수자, 하물며 당낙운마저도 일기당천의 신위를 보였다.
‘참, 저 괴물 같은 노인네들을 상대할 놈이 안타깝게 되었군…….’
그에 천강운은 백씨세가의 인물들을 둘러보고는 내심 혀를 찼다.
‘그냥, 그때 본 맹이 주도한 대계(大計)에 백씨세가가 멸문당했다면 나았을 터이거늘.’
백씨세가.
오대세가 중 하나로서 오랫동안 검가(劍家)로서 크게 위세를 떨쳤었다.
심지어 천하오절 중 하나인 창천검존 남궁수가 있는 남궁세가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사사건건 본 맹이 추구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들 같으니라고.’
본래는 천하오절 같은 이들을 부를 것 없이 백씨세가를 멸문시키려 했었다.
그도 그럴 게, 산동백가는 오대세가 중 무림맹의 이득 추구를 가장 반대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리하여 흑야맹 같은 흑도의 거물들까지 움직인 끝에 백씨세가를 멸문시키려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과연, 그 긴 세월 동안 명맥을 이어온 만큼이나 숨겨 둔 한 수는 있었던 모양이다마는.’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끝이다.
‘그까짓 잔재주도 끝이다.’
사실상 천하오절이 온 마당에 저들이 무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설령, 결투 재판 끝에 구파일방 중 과반수를 없앴다는 흉수 놈이 죽는다고 해도 그건 같다.
이곳에 있는 목격자는 한 줌의 핏물이 될 것이고 산동백가는 무림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림맹의 공증 아래에 결투 재판을 시작하겠소.”
천강운은 그리 생각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이어서 무림맹에서 나온 공증인답게 입술을 떼었다.
“산동백가의 한성윤은 지엄한 무림의 법도에 따라서 생사결에 응해야 할 것이외다.”
그리고.
“결투 재판은 일대일의 생사결로 진행되며 모든 죄에 대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때까지 이는 계속될 수 있…….”
그에 백씨세가 측의 자리에 앉아있던 한성윤이 결투장에 올라선 순간.
“일 대 다수가 아니라 하나씩 나와서 상대하겠다니…….”
한성윤의 입에서 싸늘하기 그지없는 조소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흡사 사자 앞에 나타나 투지를 불태우는 토끼들을 보며 흘리는 미소와도 같았다.
그저 가지고 놀 듯 죽일 수 있는 먹잇감들 주제에 어찌 그리 건방지게 굴 수 있느냐는 것 같은 태도였다.
“어이가 없네.”
“…….”
천강운은 말하는 것마저 잊고서 경악했다.
‘저게, 무슨…….’
설령 천하오절이 삼백 년 전부터 있던 위계라고는 한들 그 명성을 모를 수는 없다.
그럴진대 저따위로 말하다니…….
사실상 저건 천하오절에 대한 적대 의사의 표출이고, 무림의 최강자들을 상대로 처참하게 찢겨져 죽겠다는 의미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란 것일까?
“너희들 따위가 한 명씩 싸워선 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다음 순간.
“다 한꺼번에 와.”
한성윤이 싸늘하게 눈빛을 발하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야, 그나마 상대해 줄 가치가 있을 테니까.”
마치, 그게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