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69
367. 정복자 (3)
순식간에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
오직 적막만이 남아버린 상황.
어느새 비무대의 아래에 있는 관객들은 숨소리마저 쉬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이 이들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으로 들린 탓인 것 같은데…….
그에 나는 무어라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대충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에서 검을 빼내며 재차 말했다.
“굳이 한꺼번에 오는 게 싫다면 거절해도 되긴 해.”
그것이 저쪽에 꽤 자극을 준 것일까?
“어차피,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간에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다음 순간.
“천한 것이…….”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비무대 아래에 있는 객석 중 하나에서 분노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감히, 어딜 그 하루살이 같은 알량한 목숨을 가지고 입을 놀리는 것이냐. 버러지가.”
그제야 나는 눈빛을 얕게나마 반짝이며 그 음성의 발원지를 바라보았다.
어느 매화 문양이 그려진 자줏빛 도복을 입은 노인이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린 모습.
그에 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복을 입은 노인은 눈을 부릅뜬 채 결투장 위로 올라왔다.
착.
“굳이 너 같은 벌레 놈을 잡는데 천하오절이 한꺼번에 올 필요는 없음이야.”
바로…….
“적매자. 화산파의 태상장로이니라. 이 화산일절(華山一絶)의 적매진인을 그 눈에 담은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천한 것.”
천하오절 중 하나였다.
순식간에 적매자의 수준에 대해 가늠을 마친 나는 눈을 반짝였다.
어느덧 적매자의 심장 부근에서 적잖은 신성의 빛을 발견한 탓이다.
‘……재밌네.’
정말이지, 놀라웠다.
‘……신들의 전장 같은 곳도 아닌데 신성을 지닌 예비 신격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직도 화산파에 이쯤 되는 절세고수가 남아 있다니?
본디 화산파는 내가 멸문시킨 시점에서 끝났을 줄 알았기에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적매자의 태상장로라는 직함을 보아하니 일반적인 장로들과는 달리 화산파에 있지도 않은 덕에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 같다마는…….
그야말로 예상외의 이득이다.
‘그래도 천하오절이라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허명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제야 나는 입맛이 당기는 걸 느끼며 검파를 꽉 쥐었다.
천하오절을 다 해치운 후에는 제법 배부를 듯했으니까.
하나, 그것도 잠시.
―너.
“?”
이내 적매자가 귓가에 속삭이듯 전음을 보내온 순간.
―천한 것. 어떤 사술을 썼길래 너 같은 것 따위가, 이 적매진인의 사문을 멸했는지는 모르겠다마는……. 이것 하나만을 알아 두어야 할 것이야.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야 했다.
―빈도는 네놈이 저지른 짓을 열 배로 갚아 줄 것이다.
적매자의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이는 가운데 수많은 부정의 감정이 그 눈동자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화산의 이름에 먹칠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려 주마. 일단, 백씨세가의 놈팽이들은 전부 사지의 근맥을 자르고, 무공의 근원이 되는 단전을 철저하게 폐할 것이다.
“…….”
―그뿐인가? 백씨세가의 가주 놈은 내 직접 참수할 것이요, 백씨세가의 무공은 전부 불태울 것인즉, 그것은 네가 섬기는 백설화라는 계집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야.
“…….”
―어쩌면 더욱 심할 수도 있겠고. 아, 마침 저기 있군? 과연, 산동제일미 같은 별호가 붙을 만한 미모이니, 기대할 법한 일이야. 왜, 예쁜 계집이 쓰일 곳은 많…….
“시작할까?”
그에 나는 입가에서 미소를 전부 지우고는 눈앞에 있는 적매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굳이 더는 시간 끌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적매자는 비웃음을 한 번 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걸 원한다면야 그러도록 하지. 서로 원하는 바는 확실한 것 같으니 말이야.”
그는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싸울 준비를 마쳤다.
“감히, 버러지 주제에 대 화산파에 도전한 대가를 똑똑히 알려 주겠…….”
그리고.
「신성 이 사용됩니다.」
「신성 에 침식된 모든 것의 죽음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신성 이 사용됩…….」
「도전자 한성윤의 다음 공격에 신성을 먹어 치우는 힘이 깃듭…….」
「신성 이 사…….」
「도전자 한성윤이 가진 모든 능력이 크게 가속되어…….」
다음 순간.
「권능 ‘순보’가 활성화됩니다.」
「10분 동안 해당 권능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부여됩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시야 내의 원하는 지점으로 즉시 이동합니다.」
그에 나는 바로 수많은 신성의 힘을 발동하고는 이어 묵직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지직───!
그리고 그것으로 끝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적매자의 몸통을 반으로 쪼개 버리며 승리를 거뒀다.
신성 , 그리고 신성 같은 즉사기가 가미된 탓에 상대는 어떤 저항 반응도 없이 죽었다.
촤아악-!
그것도 아주 가볍게.
「도전자 한성윤이 고수를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초월]에 1.1% 가까워졌습니다.」
「화산일절 ‘적매자’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
설령, 적매자가 이 공격에 반응했다고 가정한들 딱히 의미는 없다.
신성 은 만물의 종말을 고하는 힘이고, 신성 은 신성 그 자체를 먹어 치우는 능력이니까.
적매자의 즉사는 당연했다.
그제야 나는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적당히 닦아 내고는, 비무대 아래를 둘러보듯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이제는 대충 감이 오겠지?”
어느덧 비무대 아래의 관객석은 하나 같이 경악의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희는 애초에 내 적수가 될 수 없었어.”
그에 나는 싱긋 입가에 한없이 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그것도 한없이 밝은 미소를 말이다.
“그놈의 같잖은 자존심 그만 세우고 한꺼번에 와.”
그러나…….
「초월과 죽음의 신이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필멸자들을 내려다봅니다.」
[ 어서. ]……그것은, 눈가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스며들지 않은, 정색 섞인 미소였다.
***
어느새 장내의 분위기는 침묵이 아닌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
마치, 천하오절 중 하나인 적매자가 단 일격으로 죽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이게 대체 무슨…….”
“적매진인이 단 한 초식만에 패배했다고?
”“……거짓말이지? 그 화산일절의 적매진인이 이리 당할 리가 없잖나! 사, 사술이야!”
실제로도 그러했다.
비무대 아래의 관객석은 대부분 무림맹 측의 인원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실상 이쪽이 마련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저쪽이 더 많은 인원수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인원이 무색하게도 저 자리에 앉아있는 수많은 무림맹 측의 사람들이 경악에 몸을 떨어 대고 있었다.
“감히…….”
그리고.
“정녕 네놈이 이 선원진인에게 명령하는 건가?”
그것은 천하오절 또한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어느덧 태극 문양이 그려진 도복을 입은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으르렁거렸다.
최대한 선원자는 격노한 척하려고 했으나 그의 손길은 미세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나는 여전히 정색 섞인 웃음을 내보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
“그럼 어쩔 건데?”
“너……!!”
선원자가 의자의 손잡이를 으스러뜨릴 듯 꽉 쥐며 분노를 터뜨렸다.
“개자식이…….”
그리고.
“그렇다면 소원대로 죽여 주마─!”
그 순간이었다.
선원자가 분노 섞인 울음을 내지르는 찰나에 그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그 옆에 앉아있던 세 노인 또한 같이 시야에서 점멸하듯 흔적을 지웠다.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의 집중력이 열 배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세상이 느려진다.
어느새 시야는 슬로우 비디오를 재생한 듯 사물의 움직임이 전부 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리 느려진 세상에서도 수많은 잔상을 자아내며, 초음속으로 움직이는 절세고수들을 보고 있자니, 내심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
그럴 만도 했다.
사실상 웬만한 신체 능력을 가진 정식 신격도 저만큼 기민한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의 세상에서 절세고수로 평가받는 이들답게 그들의 몸은 하나의 기관처럼 한 줌의 낭비 없이 힘을 운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순수 기교로 싸우면 신체 능력의 차이 때문에 맥없이 지겠지.’
그러나 긴장하진 않았다.
「신화 가 활성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300 상승합니다.」
「특수 버프 이 활성화됩니다.」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서 모든 능력치가 +300 상승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용 주문 발동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전용 주문 가 활성화됩니다.」
「전투 종료 시점까지 모든 능력치 및 모든 스킬 효율이 100% 상승합니다.」
어차피 어떤 난적이라고 해도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상대들은 무공의 극치에 도달한 노괴들이지 않은가.
아마, 이번 전투에서는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을 터다.
그냥 신화 이나, 네크로맨시로 얻어 낼 수 있는 것들 말고도 저들에게서는 수많은 무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수백 년 분량의 전투 경험 축적으로 인해 다듬어진 무공의 정수를 말이다.
‘어디 얻어 낼 만한 무공이 있는지 한 번 봐볼까.’
그에 나는 탐욕에 찬 미소를 그리며 지면을 박찼다.
***
선원자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이게 대체 무슨…….’
눈앞에 있는 저 이십여 년 정도밖에 안 살아 봤을 것 같은 애송이가 미칠 듯 강하다는 사실이 그를 경악하게 하였다.
‘천하오절 중 네 명이 같이 달려들었는데 저 정도라고?’
그럴 만도 했다.
한성윤은 무예의 화신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저,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하거나 검의 궤도를 슬쩍 비틀어 공격을 흘려내는 식의 완벽한 방어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오로지 방어 구도 하나만 형성된 상태.
사실상 일 대 사의 전투이다 보니 저쪽이 공격하는 일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천하오절 중 넷의 공격을 받고도 방어가 된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다.
‘미친놈.’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선원자는 한성윤이 적매자의 몸통을 쪼개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었다.
천하오절 중 적매자의 수준은 밑바닥보다 좀 나은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또한 강자였다.
그럴진대 한성윤은 선원자조차도 알 수 없는 괴이한 힘으로 적매자를 죽여 버리다니?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눈앞에 있는 저 청년이 그조차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강적이라는 뜻이지 않은가.
그럼 이곳에서 죽여야만 했다.
“찢어 죽일 놈이───!”
선원자는 경악을 숨기고자 격노를 토해 내며 허공에 권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선원무적자라는 별호의 기원쯤 되는 기술들이 폭발하듯 차례차례 터져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선원자의 손바닥이 내질러지며 무당파의 삼봉 태극권이 구사되더니 굉음을 동반하는 공격들이 발휘됐다.
꽈아아아아아앙-!
격공권이었다.
선원자가 허공을 격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권격이 한성윤을 타격했다.
그것은 무림에서 일컫는 권법가의 이상 그 자체이고, 구태여 검사로 따지자면 심검쯤 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심검에 비해서 상위의 것이다.
선원자의 격공권은 공간을 넘어서 펼쳐지는 것이므로 심검과는 달리 상대방이 대응하기 더더욱 어려운 면이 존재했다.
‘어디까지 격공을 피할 수 있을지 지켜봐 주마, 개자식.’
쩌어어어어어엉-!
선원자는 천하오절 중 가장 천하제일인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노괴였다.
그것은 천하오절 중 다른 셋과는 달리 그의 경지가 높다는 뜻이다.
그랬기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뭐지?’
어느새, 한성윤은 다른 천하오절 중 셋에게는 시선도 안 주며 선원자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창천검존 남궁수의 검격들을 알고 있다는 듯이 피하고, 종남검선 운수자의 절초들을 흘려내며, 사천독왕 당낙운의 수십 가닥쯤 되는 강기의 실들마저 가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성윤은 딱 선원자만을 바라보며 기이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지……?’
마치, 선원자의 격공권을 훔쳐 배울 수라도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