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78
376. 차원 요람 (2)
순식간에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이 일변했다.
「보상 산정 완료.」
「백학검선(白鶴劍仙)의 감정 상태에 따른 보상 지급이 이루어집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돌파 보상으로 ‘깊은 신성의 부름(EX)’이 인벤토리에 전송됩니다.」
「특수 계약 시련의 추가 돌파 보상으로 ‘신성 흡수의 팔찌(SSS-)’가 인벤토리에 전송됩니다.」
세상이 어둠으로 물든다.
마치, 이곳은 더 존속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듯이.
탑이 만들어 낸 하나의 세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순간.
그제야 나는 백학검선에게 받은 비원의 시련이 완벽하게 끝을 맺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굳이 따지자면 이건 기뻐해야 했다.
본디 관리자 측이 내주는 비원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도전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고난이도의 시련이니까.이것을 클리어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인 셈이지 않은가.
고작해야 탑의 10층 대 구간을 오르던 도전자였던 시절에는, 철혈의 군주나 백학검선에게 비원의 시련 끝에 있을 보상에 눈이 멀어 부나방처럼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들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지.’
아니.
되레 그 반대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이쪽이 비원의 시련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클리어할 것을 탑 측에서 견제하여 수많은 페널티를 내걸 정도이니 말이다.
실제로 쉽게 클리어를 했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랬으나 그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설령, 탑이 수많은 페널티를 덧붙인다고 해도 이쪽은 고대 신격이지 않은가.
고작해야 탑에 의해 재현된 가짜 세계에서 최고의 무림 세력을 일구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한낱 신성도 없는 일반적인 이계의 도전자들에게도 고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엄청난 발전이라고 해도 될 수준.
본래는 그래서 탑의 일개 도전자에 불과했던 시절부터 고전할 것으로 생각했던 이 비원의 시련을 다 깨고 나면 엄청나게 뿌듯할 것이라 여겼다.
지난날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기에.
‘그렇지만…….’
한데…….
‘허무하네.’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이쪽도 성장의 실감이라고 할 기쁨이 아예 없진 않긴 했다.
단지, 그것이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오롯한 기쁨보다는, 입안에 쓴맛이 감도는 탓에 복잡한 감상이 되었을 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 소망인가…….’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백학검선이 생전에 바랐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설령, 탑의 재량하에 구축된 스테이지 내에서 비원의 시련을 이룬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이쪽이 받는 보상 빼고는 남는 게 없으니까.
‘저번에도 지금처럼 이랬었지.’
그것은 철혈의 군주에게 비원의 시련을 받아내어 클리어했을 때와도 같았다.
그녀의 멸망을 맞이한 세계는, 탑이 내준 비원의 시련을 깬다고 하여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철혈의 군주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보며 미망에 매달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백학검선도 다르지 않았다.
‘본래의 역사에서 백씨세가는 멸문했겠지.’
본디 그녀의 가문은 멸문하여 어디에도 그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터다.
아마도 그녀만이 종말을 맞이한 백씨세가에서 빠져나와서는 방랑을 거듭하여 종국에는 탑에 들어가게 된 것 같은데…….
그마저 딱히 희망적이지는 않을 듯했다.
어쨌건 간에 백학검선이 다시금 백씨세가를 부흥시킬 수 있었더라면, 이것이 그녀의 비원으로 남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에 나는 입안에 쓴맛이 더 강하게 감도는 걸 느꼈다.
‘그나마 나름대로 익숙해진 탓인가?’
하나, 그것도 잠시.
‘그래도 저번보다 착잡함은 줄었네.’
어느새 나는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남아있던 상념을 털어냈다.
뭐, 이걸 가지고 더 고민한다고 해봤자 더 나은 대답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최후에 이르러 백설화가 나를 보고 스승으로 대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생각하면 씁쓸함이 짙어지기는 한데…….
어차피 지나가 버린 미망에 집착한들 그 끝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망념이 될 뿐이다.
‘내가 딱히 건드릴 수 없는 것보다는, 직접 해낼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지.’
그러니까…….
「수림(樹林)에 입장했습니다.」
이제는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차례다.
“…….”
그에 내가 눈을 감았다가 뜨자 어느 익숙한 저택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늘 그랬다는 듯이 백학검선이 몸을 바르게 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는 달리 이질감이 있었다.
“아-.”
마치, 살짝 화라도 난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오셨어요?”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에서 은은하게 묻어나오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백학검선은 언뜻 봐서는 싱긋 미소를 머금은 것도 모자라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것 같긴 한데…….
어째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성윤……. 아! 아니지. 이제는, 이쪽을 사제로 받아주셨으니, 다르게 불러야 하려나? 후후.”
그리고.
“사부님.”
그제야 나는 백학검선이 저렇게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원인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정말로 이 불초 제자로서는 순수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없어서 물어보는 건데요…….”
다름이 아니라…….
“생애 첫 제자로 자기 스승을 받아들인 기분은 어때요?”
비원의 시련 속에서 최후에 이르러 백설화를 제자로 받은 것에, 저 앞에 있는 백학검선이 단단히 삐졌음을 어필한 것이다.
“네? 사부님. 대답해주세요.”
“…….”
그것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서늘한 음색을 내가며.
***
“……오해입니다.”
마치, 흐를 리 없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감각.
흔히들 잘못을 인지하면 오해라며 이렇게들 변명을 했던가?
갑자기 이쪽이 그 꼴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어느덧, 백학검선은 팔짱까지 낀 채 볼을 다람쥐처럼 부풀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스승님을 제자로 받은 건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을 뿐입니다.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백학검선이 눈매를 좁히며 답했다.
“……진짜로요? 그럴 생각 없었어요, 사부님?”
“네. ……그리고 사부라는 말은 안 쓰셔도 됩니다.”
“후우. 본래는 기사멸조의 죄인데. 제 은인이신 사부님이니 어쩔 수 없네요. 사부, 이 불초 제자가 잘못했어요.”
“…….”
하나, 그것도 잠시.
‘……어?’
그에 나는 이어서 백학검선의 얼굴을 눈치를 보듯 바라보며 어느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다름이 아니라…….
‘……이거, 설마 나 놀리고 있는 건가?’
이것이 저쪽에서 나를 놀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새 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는 걸 본 탓이다.
그제야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조용히 헛웃음을 짓고는 이어서 뻔뻔하게 나갔다.
“그렇다면 사제 관계를 그리 변경하죠.”
“……?”
“스승님. 아니. 제자의 말도 일리는 있으니까요. 뭐, 제가 스승이 되길 바란다면야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예?”
그에 나는 백학검선과는 달리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이제 무공도 제가 더 잘 다룰 것 같으니, 도리어 이쪽에서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수준 아닙니까.”
“가, 가르침이라고요……?”
“네. 그래도 나름 스승으로 대접받게 되었는데 가르침을 안 베풀 수는 없잖습니까? 설화 아가씨에게는 제 무공을 가르치겠…….”
“노, 노, 농담이었어요……!!”
그리고.
“……기, 기, 기사멸조의 죄 같은 것은 성윤에게 추궁할 생각도 없었어요! 지, 진짜로요! 그, 성윤이 진짜 스승이 되는 건 원치 않―.”
“물론 알고 있습니다.”
“……?”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백학검선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며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푹 숙이며 말했다.
“저……. 설마, 방금 속은 건가요……? 성윤에게……?”
“단지, 스승님도 저를 놀리셨으니 똑같이 되돌려드린 것뿐입니다.”
“이, 이건 기사멸조의 죄에요! 이, 이번에는 진짜로 봐줄 수 없……!”
그리고 그에 백학검선이 그리 발끈하며 말했으나 이어 흠칫하더니 개미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흐, 흐흠. 아, 아뇨. 이번엔 봐 드리도록 할게요. 뭐, 스승 되는 자로서 그 정도의 자비는 갖추어야죠.”
아마도 이쪽이 또 스승 노릇을 하겠다거나 하는 말을 떠올린 탓인 것 같은데…….
“그것참 운 좋은 소리네요.”
정말이지…….
재밌는 반응이지 않은가.
이건 종종 두고두고 놀려먹을 것도 같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나저나 딱히 미련은 없으신가 보네요.”
“미련이라니……?”
“철혈의 군주, 카나리아와는 달리 비원의 시련이 끝났는데도 별달리 감정에 동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백학검선이 배시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게요……. 사실, 오랜 세월을 비원에 매달려 보낸 것치고는, 감흥이 별로 없어요. 그저, 약간 아쉬울 뿐이죠.”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윤 같은 조력자가 곁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후회되지는 않네요.”
“…….”
어느새 백학검선은 어깨 너머로 내려온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본래와는 달리 제 가문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저는 성윤을 만나서 제자로 삼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
“큼! 그, 그만큼 성윤이라는 제자가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스승으로서. 아, 알겠죠? 이게 무슨 뜻인지는.”
“……예.”
그녀는 이윽고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도 무엇보다 제가 복수해야 할 대상들은 대부분 수명 탓에 대부분 죽었어요.”
“아.”
“단지, 제가 비원의 시련에 매달린 것은 그치들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이나, 백씨세가가 건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망념 때문이었어요.”
“그게 이제는 사라졌다는 겁니까.”
“성윤이 비원을 들어준 덕에요.”
그에 내가 백학검선을 바라보니 이윽고 그녀가 재차 말했다.
“사실, 후회랄 게 안 남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기는 해요.”
“……?”
“……그러고 보니 한 번 정도 말했던 적이 있었죠. 비원의 시련이 아예 실재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건 아니라고. 과거를 바꿀 수도 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나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토대로 즉각 답했다.
“탑의 최종층에 오를 수 있다면야 관리자의 비원마저도 현실로 바꿀 수 있다고 했잖습니까.”
백학검선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후후. 맞아요. 그래서 후회는 남지 않아요. 제 비원의 시련이 진짜 현실이 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통쾌한 복수가 될 터이니.”
그 말을 들은 나는 눈매를 좁히고는 입술을 떼었다.
“단, 그건 제가 탑의 최종층까지 도달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녀는 그마저도 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성윤은, 확실히 저 탑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니까.”
“?”
“확신했어요. 성윤은,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했던 이 탑의 정상에 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는 것이고요.”
“…….”
어느새 백학검선은 확신에 찬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이제 그저 성윤이 저 꼭대기에 오르는 것뿐이에요.”
“…….”
“그리고 탑의 끝에 가서도 성윤이 제 곁에 남아준다면 저는 그걸로 족해요.”
“그렇다면야 저도 다행이네요.”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 어쨌건 간에 저쪽이 딱히 후회가 없다면 이쪽도 구태여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대로 내가 용건을 마쳤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짓고 나니 백학검선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윤은 이제 대기실로 돌아갈 거죠?”
“예.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꽤.”
“그렇다면 저는 이곳에서 성윤을 지켜보고 있을게요. 쭉. 그래도, 이 스승님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한번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백학검선을 바라보고는 가볍게 작별을 고하며 떠났다.
본디 돌아가야 했을 곳으로 말이다.
바로…….
탑이었다.
***
「27층 대기실에 입장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어느덧 나는 친숙하기 그지없는 석실로 돌아왔음을 눈치채고는 바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초월 신화 을 발동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탑에게 받은 페널티들이 다 해제된 상황.
그랬기에 장비의 대부분이 재착용 가능했다.
인벤토리에서 장비들을 차곡차곡 불러내었다.
‘일단은 이쪽이 가진 장비들부터 전부 재착용하고서 보상들을 확인하면 되겠…….’
하나, 그것도 잠시.
드드드─!
“?”
갑자기 탑에서 이질적인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다름이 아니라…….
「지구 차원의 25층 돌파 인원이 1,000명을 넘었습니다.」
“이건 또 뭐지?”
어느새, 눈앞에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으니까.
「조건 만족.」
「모든 정식 등반 차원이 25층 돌파 인원 1,000명을 넘겼습니다.」
「시련의 탑이 모든 정식 등반 차원에 공동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모든 정식 등반 차원에 ‘차원 요람’이 출현합니다.」
이쯤 되니 감이 왔다.
「※주의※」
「차원 요람은 필수 선택 이벤트이며 지구의 멸망이나 존속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차원 요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경쟁에서 패배할 시, 지구 차원의 보호 장벽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뭔…….”
차원 요람.
그것에 대해 전부 알지는 못해도 하나는 확실히 눈치챌 수 있었다.
……이것이, 지구의 멸망을 불러올 수도 있는 탑의 이벤트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