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80
378. 차원 요람 (4)
파천황.
그게 누구인지는 이쪽도 가끔이나마 탑의 커뮤니티를 보기에 알고는 있다.
탑을 오르는 수많은 도전자 중에서도 늘 최상위권에 꼽히는 무림인 출신의 랭커 중 하나.
그에 나는 눈을 찌푸린 채 뇌리에 잠든 기억을 불러일으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끔 파천황이라는 닉네임을 결산 순위에서 본 적도 있긴 한데…….’
다름이 아니라…….
‘그게 어째서 여기서 나오는 거지?’
본디 탑에 등록된 세상들은 서로 간섭할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니까.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네…….’
당연했다.
사실상 한 번 일본에서 한바탕 싸움이 난 후에는 더는 타 차원에 소속된 도전자들이 넘어올 수 없게 되었지 않은가.
그랬을진대 이렇게까지 사절을 보내며 노골적으로 협박하다니?
어째서 무림에 소속된 도전자가 지구로 넘어올 수 있는 것일까.
그제야 나는 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이어서 이하연의 메시지에 재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
그리고.
“뭔…….”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들을 보며 나는 침음을 흘렸다.
-백련화(25층) : 이제, 이계 출신의 도전자라고 해도 지구에 드나들 수 있게 됐어요.
-백련화(25층) : 아마도 차원 요람의 이벤트로 차원 이동 제약이 일부분 해제된 것 같은데…….
-백련화(25층) : 최악에 가까운 일이죠.
그럴 만도 했다.
차원 이동 제약 중 일부분이 해제된 것 같다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타 차원에서 도전자들이 침략해올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잖은가.
그에 나는 경각심을 일깨우고는 지구로 즉각 돌아가려고 했으나 재차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는 그러길 멈췄다.
-백련화(25층) : 그렇지만 아무나 지구로 오는 게 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백련화(25층) : 최소한 차원 요람의 이벤트에서 어느 조건을 만족한 후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차원 이동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
-백련화(25층) : ……단, 저쪽에서는 자기네 세력에 굴종하지 않는다면 파천황이 직접 지구에 올 거라는 식으로 협박하고 있는 거고요.
이쯤이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확실히 알기 충분했다.
‘아.’
간단했다.
흔히들 탑을 오르는 이들은 고난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다.
그것은 탑 내에서 이루어지는 시련이 아닌 별도의 이벤트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은 탑이 주최한 차원 요람 같은 이벤트에서는 ‘차원 이동’이 가능해지는 특수한 보상을 받은 것일 터이다.
“이제야 뭔지 알겠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지 않겠는가.
아마도 저쪽은 지구와는 달리 차원 요람의 이벤트에서 많은 성과를 거둔 것 같은데…….
설령, 현시점에서 무림인 중 최강이라고 불리는 파천황이 무엇을 이루었든 간에 딱히 상관은 없다.
“도리어 잘 되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도 그럴 것이…….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무림에 가보려 했으니 말이야.”
어차피, 이쪽도 지구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예정은 아니었으니까.
“참…….”
기대됐다.
본래 강자를 상대로는 손해뿐인 자선사업을 벌이는 것이 무림인이지 않은가.
그것은, 무림인 출신의 도전자 중 최강에 가깝다는 파천황이라고 한들 달라지지 않는다.
어쩐지, 저 너머에 있을 파천황은 어떤 보상을 가져올지 기대되었기에, 심장이 기분 좋게 박동했다.
“운이 좋네.”
……어느새, 나는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지구로 돌아갈 것을 결정하고는 이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냥꾼(27층) :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냥꾼(27층) : 한 시간 내로 지구에 돌아갈 예정입니다.
-사냥꾼(27층) : 그때까지 파천황이 보냈다는 사절이랑 접선할 수 있게 해주시면 나머진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대화창을 닫았다.
이쯤이면 지구로 돌아갈 경우의 대비는 충분했다.
그제야 나는 석실의 벽면에 등을 기댄 채 탑의 결산 순위를 열람했다.
「26층 시련 결산판」
-1위, 사냥꾼(SSS+) [지구]
-2위, 파천황(SSS-) [무림]
-3위, 낡은 잿빛 기사(SS+) [아레스]
-4위, 빛을 수호하는 용사(SS) [세리온]
-5위, 지옥의 왕자(SS-) [세리온]
-6위, 낙성신검(S+) [무림]
-7위, 검존劍尊(S) [무림]
-8위, 언데드라도 성직자합니다(S-) [칼리안]
어딘지 모르게 많은 부분이 바뀐 듯했다.
‘많은 랭커의 명단이 바뀌긴 했네.’
그럴 만도 했다.
이곳에서 탑을 오르는 도전자들은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두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천황이라는 인물은 이쪽의 아래에 랭킹이 매겨져 있었다.
‘파천황은 얼마나 강하려나.’
이쯤 되니 궁금증이 일긴 했다.
사실상 무림인 중 최강인 것도 모자라 탑에서도 나를 빼고는 절대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약간의 정보 수집은 필요했다.
어차피 파천황은 탑의 결산 순위에서 늘 최상위권에 기록되는 인물이고, 대부분 화제의 중심에 있을 게 뻔하다 보니, 커뮤니티에 가는 것만으로 많은 소식을 알 수 있을 터였다.
“…….”
그리고.
‘정답이네.’
실제로도 그러했다.
「정식 등반 차원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난이도 – 어려움」
「27층 커뮤니티 [채널 : A-4] (487/2,000)」
-산동제일검(무림) : 파천황. 그놈의 전투광 늙은이는 뒈지지도 않는군. 기어코 온 무림에 정복 전쟁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빌어먹을.
-운남의 약장수(무림) : 그렇겠지. 천 년 가까이 묵은 노괴라고 불리는 창천검존 남궁수도 이긴 늙은이잖아? 뭐, 무림일통을 꿈꿀 만도 하지.
-천하삼십육검의 달인(무림) : 그뿐만인가? 선원무적자랑도 비겼다던데……. 신선이신 선원진인이랑 비겼다면 당대의 최강자임은 확실하지 않겠는가.
-해남파 최고의 총잡이(무림) : 하! 파천황. 그 개 같은 노친네. 해남파 보고 자꾸 오랑캐 검술 배운 근본 없는 잡것들이라고 하는데……. 기다려라. 내가 조만간 저격으로 암살할 거니까.
-배화교 대사제 단철운(무림) : ……총? 저격? 암살이라고? 하. 그딴 화약 장난감이나 가지고 노니 오랑캐랑 어울리는 섬 촌놈 소리나 듣는 것 아닌가? 버러지가.
-해남파 최고의 총잡이(무림) : ?
-배화교 대사제 단철운(무림) : 그딴 걸로 파천황을 죽이겠다는 네놈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군.
-해남파 최고의 총잡이(무림) : 개소리하고 있네. 배화교? 어딜 감히 사파 나부랭이 놈이 총기에 대해 떠들고 있어. 너, 어디 살아? 생사결 한 번 떠? 심장에 총알 박아줘? 응?
-배화교 대사제 단철운(무림) : 섬 촌놈답게 폭급한 성질머리로군.
-해남파 최고의 총잡이(무림) : 너……. 이 사파 새끼, 이제 내 눈에 걸리지 마라. 네놈의 그 썩은 내 나는 면상이 눈에 보이면 대가리에 총알 박아줄 테니까. 알겠어?
-배화교 대사제 단철운(무림) : 네놈이야말로 본좌의 신성한 불꽃에 심판받으리라.
-마도대종사(무림) : ……저 새끼들은 또 지랄이네.
……물론 영양가 있는 내용만 있지는 않았다.
‘……진짜 무림인들답긴 하네.’
어느새 커뮤니티의 채팅들을 전부 읽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해야 파천황에 대해 알아낸 내용이라고는 무림일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빼고 나면 남는 거라고는 서로 무림인답게 시비를 걸며 싸우고 있는 모습이 다였다.
‘……탑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채팅 중 쓸만한 소식은 딱히 없나.’
하나, 그것도 잠시.
-77번째 소드마스터 카일(아레스) : 하……. 진짜 정보 하나 얻을 곳이 없군. 네놈들 세상엔 차원 요람이 없는가? 어째서 그딴 생산적이지 않은 헛소리들이나 하고 있지? 참담하군.
갑자기 탑의 시스템 채팅창에 올라온 어느 글에 의해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아마도 이쪽이랑 비슷하게 탑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은 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본 어느 도전자 중 하나가 탑의 커뮤니티에 채팅으로 즉각 대꾸했기에 본격적으로 많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운남의 약장수(무림) : 아레스? 다른 세상에 있어서 이쪽 사정을 잘 모르나 본데……. 차원 요람이라는 것은 입장 제한이 있어.
-77번째 소드마스터 카일(아레스) : 입장 제한?
-운남의 약장수(무림) : 그래. 탑에 의해 만들어진 차원 요람에는 소수의 인원만이 들어갈 수 있다더라고.
-산동제일검(무림) : 그리고 무림에 있는 차원 요람의 입구는 파천련이 독점하고 있어서, 그곳에 대해서 딱히 더 알 수 있는 내용도 없다네.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옳음. 파천황은 차원 요람에서 수많은 보상을 독식하고 있음. 파천련 외의 조직은 차원 요람에 참가할 권한도 없음.
-77번째 소드마스터 카일(아레스) : 그렇다면…….
-운남의 약장수(무림) : 서로 차원 간의 경쟁이니 어쩌느니 해도 결국에는 소수의 인원이 독식하는 구조라는 셈이지.
-산동제일검(무림) : 물론 차원 요람의 입장 인원수 제한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풀 수 있긴 하네. 단, 그마저도 차원 요람을 독점한 누군가가 방해하면 참여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
-천마신교 마도가문 막내아들(무림) : 파천황. 그 늙은이 놈이 그래서 차원 요람에 처박혀 있는 거잖아. 아무도 차원 요람에 못 들어가게 하려고. 개자식.
-77번째 소드마스터 카일(아레스) : ……그럼, 그냥 순수한 목적으로 다 같이 차원 요람의 이벤트에 참여할 수는 없다는 거군.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ㅇㅇ.
차원 요람이란 이벤트에 대해서는 딱히 소득이랄 것이 없었다.
어차피 저 정도쯤은 지구에 가서 이하연에게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파천황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 자체는, 꽤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어이가 없었다.
채팅창 내용이 진짜라면 파천황은 무림에 있는 차원 요람에서 보상들을 독점하고 있는 탓에 지구에 올 시간도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파천황이 언제든지 이곳에 올 수 있다며 조건 없는 굴종을 요구해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딱히 저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전형적인 무림인다운 타입이네.’
여태껏 탑을 오르며 본 무림인들은 대부분 일반인과는 다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날짐승에 가까운 그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할 필요 따위가 있긴 할까?
그에 나는 얕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뭐, 그래도 하나 기대하고 있는 소식이 있긴 함.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이번에 파천황이 지구라는 곳까지 세력 확장을 하는 것 같은데…….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그쪽에 ‘사냥꾼’이라고 하는 지구 출신 중 최강이라는 도전자가 있다고 했었음.
그래도 나도 탑을 오르는 도전자 중 손에 꼽는 랭커 중 하나라는 것일까?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아마, 차원 요람의 이벤트로 그 둘이 맞붙을 것 같다는 고급 정보가 있음.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한낱 군소 차원 출신 도전자인 ‘사냥꾼’이 승리할 확률은 없지만, 파천황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을 것이기에 암살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밖에 없음.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아마, 파천황을 암살할 수 있다면 어부지리로 지구 같은 군소 차원도 하나 먹을 수 있을 거임.
어쩐지, 굉장히 재미있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커뮤니티의 채팅창에 올라오는 걸 보며 나는 입가를 매만졌다.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이곳에 무림일파의 장문인들이 많다고 아는데, 파천황 암습에 대해서도 다들 생각해 보길 바람.
다름이 아니라…….
-귀곡의 역대급 살수(무림) : 어쩌면 ‘사냥꾼’이라는 도전자의 전리품도 챙길 수 있을지 모르는 거잖음?
저쪽에서는 아예 나를 파천황을 해치우고 얻을 수 있는 전리품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알고 있는 걸까?
사실상 어느 세상이건 간에 ‘차원 요람’의 특수 보상을 토대로 서로 침공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쪽에서도 무림으로 역공을 가할 수 있다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음을 말이다.
“정말이지…….”
물론 그럴 리는 없을 터다.
본디 무림 출신의 도전자들은 일반적인 사고관과는 달리 오만함에 물들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곳에서 떠들고 있는 이들은 나름대로 탑의 후반부까지 올라온 엘리트이지 않은가.
“진짜 기대되게들 하네.”
추측하건대, 저쪽에서는 내가 무림에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였다.
「귀환석(D+)을 구매하셨습니다.」
“내가, 무림에 건너간 후에도 저딴 말들을 내뱉을 수 있을지, 한 번 보고 싶네.”
애석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