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95
393화. 27층(4)
어느새 나는 과도한 긴장감을 느끼며 경계심을 느끼고 있었다.
“…….”
어둠의 신.
시련의 탑을 오를 적에 종종 본 적이 있는 고대 신격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한없이 반갑다는 듯 나에게 손을 흔들거리고 있었으나 경계심은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느껴졌다.
여태까지 내가 쌓아 온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신성의 격이었다.
고대 신격 중 가장 최강에 가까운 존재를 논한다면 어둠의 신은 빼놓을 수가 없는 수준.
고작해야 한낱 필멸자에 불과했던 시절과는 달리, 나는 어둠의 신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확실히 알아보는 게 가능했다.
‘괴물이잖아…….’
확신했다.
내가 가진 최강의 패를 전부 쓴다고 해도 저것은 대적할 수 있을지 모르는 괴물이었다.
이쪽이 고대 신격의 경지에 닿았다고 하여 저것과는 동등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까지 갖추었다.
[ 아이야. ]하나, 그것도 잠시.
[ 그렇게 긴장할 것만은 없단다. ]이내 어둠의 신이 화원의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은 채 나긋나긋 말을 내뱉으며 미소를 지은 순간.
[ 서로 처음 만났을 적부터 말했듯이 나는 너의 적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렴. ]“……예. 알고 있습니다. 어둠의 신이시여. 제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드립니─.”
[ ─아직도 나를 그렇게나 딱딱하게 대하는구나. 슬프게도. 그것보단 친근하길 바란단다. ]“……예?”
[ 아이야,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은 신격에게 존대받을 수는 없잖니? 너 또한 이제는 충분히 신성의 격을 갖추었으니 말이야.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그대로 나는 어둠의 신이 묘하게 신경 쓰는 어조라는 걸 깨닫고는 편하게 대했다.
어차피, 어둠의 신이 이쪽에 대해 일관적인 호감을 드러냈음을 생각하면 더 경계할 필요도 없을 터.
그것을 상기한 채 어둠의 신이 있는 화원의 중앙에 다가가며 과하게 차렸던 격식을 적당한 수준으로 낮췄다.
그제야 어둠의 신은 입가에 방긋 미소를 띠었다.
[ 후후. 그래. 아이야. 그거란다. 이제야 제법 친애의 표시를 할 줄 알게 되었……. ]“일단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응? ]“어째서 저를 이곳에 불러온 겁니까.”
굳이 어둠의 신은 이쪽과 대화를 섞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그럴 생각은 없다.
“다수의 고대 신격이 제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당연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여러분이 탑에게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제 27층 시련을 바꿔줄 리는 없잖습니까.”
세상에 대가 없는 선의 따윈 없었다.
다수의 고대 신격이 이쪽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었기에 시련의 탑에게 많은 대가를 바치며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상대에 대해 완벽한 신뢰도 보내지 않았다.
단지, 어둠의 신을 올곧게 바라보며 저 괴물 같은 고대 신격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할 뿐.
그리고…….
[ 슬프구나. ]실제로 이쪽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 너의 말에 무엇 하나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단 하나의 오답도 없는 완벽한 정답이었다.
***
[ 참……. ]어둠의 신은 씁쓸한 듯 검은 로브 아래로 입가에 부드러이 쓴웃음을 지었다.
[ 그래. 아이야. 너의 말은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단다. 다수의 고대 신격은 너에게 바라는 게 있으니 말이야.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히 답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쯤은 예측 내의 범위다.
여태껏 탑을 오르며 보아온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은 내가 어느 경지에 도달할지에 대해 신경 쓰고 있었다.
그것은, 시련의 탑이 나를 어떤 목적에 쓸 수 있는 도구로 기르고 있다는 사실에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이 흥미가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은 시련의 탑이 나를 도구로 종속하는 것에 대해 신경 쓰고 있었지.’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
“시련의 탑과는 적대 관계인 거군요.”
다수의 고대 신격은 시련의 탑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어둠의 신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답했다.
[ 적대 관계인가……. 아하. 그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구나. 다만, 그게 다는 아니란다. 아이야. ]“그렇다면.”
[ 간단하단다. 시련의 탑이 바라는 건 최악의 평화일지니. 그 괴이한 것이 바라는 미래에 찬동하는 신격은 없단다. 하나도. ]“…….”
[ 당장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란다. 애석하게도. 시련의 탑에 의해 구축된 인과율에 나 또한 얽매여 있어서 알려줄 길이 없구나.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다.
시련의 탑이 고대 신격 같은 상식선 바깥의 괴물들도 경계하는 초월적인 구조물이니 인과율이라는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어쩐지, 고대 신격이 되었음에도 탑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보니 아쉬움이 들었으나, 이 또한 해결책은 없었다.
‘시련의 탑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너머의 층수에서 답을 알아내야 하겠지.’
한낱 답을 알아낼 수 없는 미혹에 깊이 빠져들 필요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당장은 해야 할 일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그대로 나는 어둠의 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굳이 시련의 탑만이 아니라도 내가 알아내야 할 정보는 더 있다.
“만신전. 그리고, 다수의 고대 신격이 이 27층 시련을 주관한다는 것.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려주셔야 할 겁니다.”
이것처럼.
[ 굳이 그러지 않아도 그 일에 대해서는 전부 다 답해줄 생각이었으니 걱정하지 말렴. ]어둠의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로운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 아이야. 시련의 탑을 오르는 도전자인 너에겐 딱히 해당하지 않겠으나, 상위의 경지에 도달한 신격은 대부분 만신전이라는 거대 집단에 소속되어 있단다. ]“…….”
[ 본래 시련의 탑이 주관했을 27층 시련은 너에게 최악의 분기점이 되었을 테지. 그걸 만신전에 소속되어 있는 고대 신격들의 의뢰로 대체하겠다는 거란다.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제게 의뢰하겠단 것이군요.”
[ 그렇단다. ]대충 상황 파악이 되긴 했다.
아마도 만신전은 저 바깥에 있는 수많은 상위 신격이 모인 엘리트 집단쯤 되는 것 같은데…….
시련의 탑에 의해 27층 시련이 최악으로 변질되어야 했으나, 그것을 다수의 고대 신격이 주도한 끝에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둠의 신은 이쪽이 대견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은 저를 탑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게 하고 싶어 했으니, 어찌 되었건 간에 저는 이렇게 되었을 게 분명합─.”
[ 아니란다. ]“?”
그러나 어둠의 신은 냉정히 답했다.
[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이 너를 총애하고 있지. 그것은 확실히 맞단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너를 구하는 것은 별개의 일. 행운 같은 게 아니란다. ]“그건 또 무슨.”
[ 아이야.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은 네가 기대치에 못 미쳤다면 냉정히 버렸을 거란다. 단지, 너의 압도적인 격이 탑에 대항할 수 있음을 보고 손을 쓴 것이지. ]“…….”
[ 그뿐만이겠니. 설령, 다수의 고대 신격이 너를 돕지 않았더라도, 그때 보여준 신성과 영격은 탑과도 협상할 법했단다. 결국, 고대 신격 중 대부분은 손해 없는 일을 도운 셈이지. ]“그것참 현실적인 이야기네요.”
[ 기분이 나쁘다면 미안하─. ]“전혀 기분 나쁠 이유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씁쓸함을 느꼈으나 이어 그 감정을 호승심으로 바꾸었다.
“간단합니다.”
[ ……? ]“그건 제가 고대 신격의 관점에서 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잖습니까.”
[ ……. ]“그렇다면 그걸 이번에 확인받은 셈이니 기분이 나쁠 이유는 없습니다.”
그에 나는 비틀린 호승심이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니까…….”
한데…….
“제게 만신전에서 의뢰하겠다는 게 어떤 일인지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그것이 저쪽의 마음에 들었단 것일까?
[ 참으로 너다운 말이야. ]그것을 본 어둠의 신은 놀랍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가 은은한 웃음기를 머금은 채 답했다.
[ 만신전 측에서 너에게 의뢰하려는 내용은 과한 감이 없잖아 있어서 내가 바꾸려고 했으나 그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그리고.
[ 만신전 측에서 너에게 의뢰할 것은 성유물의 탈환, 그리고 어느 거슬리는 배신자를 처벌을 하는 거란다. ]“성유물?”
[ 나, 그리고 오만의 신, 그 외에도 고대 신격이 아닌 상위 신격들의 성유물이 전부 어떤 손버릇이 배신자에게 도둑질당했더구나. ]“그건 큰일이긴 하겠네요.”
[ 참으로 그렇지. 아, 이에 대해서는 사전에 설명을 충분히 해줄 수 있단다. 그 성유물을 훔쳐간 배신자에 대해 추적은 끝난 상태이니 말이야. ]“그렇다면 한 번 봐봅시다.”
그대로 내가 어둠의 신에게 그렇게 말을 내뱉으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어느 어둠에 파묻히더니 이어 그 너머의 어둠이 꿈틀거리며 모양을 바꿨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손에 닿은 어둠이 하나의 물질이라도 되듯 형상화하여 스크린 화면 같은 형태를 갖췄다.
[ 만신전의 상위 신격들이 처벌을 바라는 배신자가 있는 행성은 여기란다. ]어느새 그 스크린 화면 같은 것 너머로 꽤 훌륭한 퀄리티의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 스칸디아. ]그곳은 드넓은 하늘, 그리고 광활한 대지를 갖춘 생명력이 풍부해 보이는 세상이었다.
여태껏 탑을 오르며 봐온 세상 중 가장 평화로운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지구에 가까운 평화로움을 가지고 있으나 그보다도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의 신도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 그 어떤 신격 하나 탄생하지 않고, 그 어떤 괴물 하나 탄생하지 않는, 이 우주에서도 희귀한 행성 중 하나란다. ]그러나 그녀는 안타깝다는 듯이 씁쓸한 음성을 내며 고개를 저었다.
[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단다. ]갑자기 그 말을 끝으로 어느 영상에 나오는 행성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도래하는 것을 보았다.
“…….”
그것을 본 나는 어떤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 ……그래. 아이야. 너도 고대 신격이다 보니 눈치챈 것 같구나. 저것이 평범하지 않음을. ]그리고.
어둠의 신은 얕은 분노를 드러내며 그에 대해 말했다.
[ 착생의 신. 디르모아. 그것이 만신전 측의 성유물을 가고 도망친 배신자. 저것이란다. ]다음 순간.
[ 그리고 기껏해야 백여 년 전에 고대 신격에 도달했음에도 주제를 모르는 같잖은 것이지. ]그대로 그녀의 입에서 내가 눈치챈 사실이 흘러나오며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 고대 신격의 처단.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
[ 그것이, 만신전 측에 실질적으로 너에게 크게 기대하고 있는 일이란다. ]27층.
본디 내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야 했을 곳.
그리고, 그 분기점을 비튼 결과 끝에 맞이한 시련의 내용은, 고대 신격을 해치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