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45
044. 던전 공략 (3)
본래는 던전의 중심부에 도달할 때까지는 얌전히 있으려 했다.
던전 초입은 이철원의 오더를 들어 보며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알아 보려고 했다.
꽤 경력이 있는 D급 헌터의 공략 방식을 직접 경험해 보는 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으리라 여겼고.
‘그런데 이렇게 진행이 느릴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내게는 이철원과 다르게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남은 시간 – 68시간 38분」
시야의 한구석에 떠오른 홀로그램이 시련의 탑에 돌아갈 때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 주고 있다.
이 남은 시간이 넉넉하다고 한다면 넉넉할 수도 있겠다만…….
‘던전 공략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시간을 다 쓸 순 없지.’
포인트를 써서 귀환한 만큼 이 남은 시간은 굉장히 귀중했다.
헌터 협회, 혹은 길드에도 접촉해 볼 수도 있고 현재 상황이 어떤지도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인맥 쌓기의 일환으로 이하연에게 연락해 보는 행동도 고려해 둔 상황.
그런 만큼 최대한 남은 시간은 효율적으로 쓰는 편이 나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지.’
고작 이런 상황에도 쩔쩔맨다면 그 이후에 어떨지는 뻔했으니까.
선두에 선 나는 동굴의 중심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던전 내부의 괴수 사냥 방식을 잠깐 바꾸죠.”
“사냥 방식을 바꾼다면 어떤 식으로…….”
“좀 더 넓은 중심부에 들어설 때까지 어지간한 괴수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크흠, 알겠습니다.”
이철원은 잠깐 고민하다가 곧 내 말에 수긍했다.
방금 보여 줬던 내 움직임이 확실히 예리했던 만큼 설득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괴수의 부산물도……, 당장은 제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나는 선두에 서며 리자드맨의 사체로 다가섰다.
본래 탑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괴수의 마석을 채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는 살아남기도 급급했을 뿐만 아니라 탑의 괴수에서는 마석을 얻을 수도 없다고 들었다.
그러나 현실의 던전에서 나타난 괴수라면 분명히 마석을 가지고 있을 터다.
‘실제로 해 보는 건 처음이기는 한데…….’
관련된 지식은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검을 움직였다.
뿌드득!
살갗이 갈라지며 동시에 심장 부근에 자리한 보라색의 보석 같은 마석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이전에 꾸준히 관련 영상을 보고 공부했던 것은 헛되지 않았던 모양.
단숨에 나는 사체의 내부에 손을 뻗어서 마석을 꺼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할 수 있었네.’
이내 나는 손에 묻은 피를 대충 암살자의 망토에 닦아 냈다.
검의 손잡이를 잡을 때 실수로라도 묻히면 향후 전투에서 방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암살자의 망토가 지저분해지겠지만 다시 깔끔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 구매했던 아이템이 바로 청결의 돌이었으니 말이다.
이어서 마석에 묻은 피도 적당히 닦은 나는 천천히 의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마석(魔石)」
「등급 : D-」
「리자드 맨의 심장에서 채취한 혼탁한 마력을 품은 마석.」
「활용도에 따라서 야금술 및 연금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 이게 되네.’
이어서 ‘진실의 눈’ 스킬이 발동되며 마석의 정보를 담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한 번 시동어를 말하지 않고 발동시킬 수 있을까 해서 해 본 건데 생각보다 더 잘 됐다.
물론 의지를 강하게 일으켜야 해서 전투에서 쓰기는 힘들 것 같지만 말이다.
하기야 본래도 스킬을 의지로 발동시키려면 꽤 높은 숙련도가 요구된다고 했으니…….
그렇지만 어느 정도 소득은 있었다.
‘순간 가속도 비슷하게 발동시킬 수 있으면 훈련해 둬야겠네.’
액티브 형태의 스킬을 말하지 않고 쓸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 메리트일 터다.
나중에 시련의 탑에 돌아갔을 때 훈련해 두기로 하며 마석의 정보를 읽었다.
아이템으로 인식되지 않는 마석은 일반적으로는 그 정보를 볼 수 없기에 좀 기대됐다.
그러나…….
‘뭐, 근데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없네.’
진실의 눈 스킬로 파악한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설명일 뿐.
그다지 특별하다고 할 만한 부분은 없었기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이내 나는 스킬 발동을 중지시켜서 설명이 적힌 홀로그램을 껐다.
툭.
나는 매고 있던 가방에 마석을 넣은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이건 제가 짊어지고 있겠습니다. 나중에 마석 정산 때 개수를 세어 보고 다시 정산하죠.”
“……아, 예. 그, 그런데 혹시 던전에 오신 게 두 번째이신 건가요?”
“아뇨,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만…….”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능숙하게 보여서요.”
이철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으나 감흥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시련의 탑에서도 죽도록 싸웠고 헌터에 관련된 지식은 몇 년을 배웠다.
실전에서 써먹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숙련했으니 오해할 만도 했다.
‘뭐, 실제로도 던전이나 다름없던 시련의 탑에 있었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걸 순순히 말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짧게 대꾸했다.
“그냥 해 본 건데 의외로 잘 됐을 뿐입니다.”
“…….”
“정말입니다.”
“아, 네…….”
이철원은 미심쩍다는 눈빛이었지만 더 말하지는 않았다.
헌터 협회에 등록된 정보에서는 경력이 없었기도 하고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뭐, 어쩌면 다른 생각에서 입을 다문 것일 수도 있었지만…….
‘다르게 생각해도 별로 상관은 없지.’
그냥 집요하게 이것저것 묻지만 않는다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었다.
「리자드맨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숙련도가 0.7% 상승합니다.」
‘슬슬 D급 괴수로는 숙련도를 올리기 힘들겠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며 리자드맨의 사령을 흡수한 나는 눈을 찌푸렸다.
8층 시련을 대비하기 위해서 지구로 온 건데 생각보다 성장 효율이 별로기 때문이다.
물론 고유 특성으로 능력치는 어느 정도 올릴 수 있겠지만…….
‘스킬 숙련도 혹은 고유 특성 숙련도는 그렇게 많이 올릴 순 없겠네.’
실제로도 시련의 탑 안에 있을 때도 숙련도 상승은 꽤 힘들었다.
그런데 더 약한 D급 던전에서 싸우니 숙련도가 팍팍 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부족한 건 물량으로 때울 수 있지.’
던전 안에 도사리고 있을 수많은 괴수를 전부 사냥할 수만 있다면…….
새롭게 변화한 고유 특성의 숙련도 또한 좀 더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움직이죠.”
나는 의욕에 가득 찬 눈으로 동굴의 내부를 바라보았다.
본격적인 괴수 사냥의 개시였다.
***
푹!
「리자드맨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숙련도가 0.7% 상승합니다.」
“세 마리.”
꽈드득! 푹! 촤아악!
「리자드맨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숙련도가 0.7% 상승합니다.」
“여섯 마리.”
스콰악! 콰아앙! 쩌어엉!
「리자드맨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숙련도가 0.7% 상승합니다.」
“아홉 마리.”
촤아악-!
단순한 작업을 하는 듯한 한성윤의 담담한 중얼거림이 동굴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건 또 뭐야.’
그걸 지켜보는 이철원은 한바탕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헌터 협회 공인 사이트에서 조회했을 때는 경력이 없는 초보 헌터였을 텐데…….
‘무슨 싸움 수준이 이런데……!’
한성윤은 이상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마리의 리자드 맨이 죽는다.
그 광경에 이철원은 뒤에서 전투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중한 수싸움도 없고 스킬을 이것저것 섞는 기술의 조화로움도 없다.
그런데도 한성윤은 상대를 확실하게 죽였다.
기계적으로 한차례 검을 휘두르면 어느새 적의 목이 땅에 떨어져 있는 상황.
그 전투를 지켜보며 이철원을 혀를 내둘렀다.
‘완전히……, 격이 다르다.’
하급 헌터들이 싸우는 방식과는 아예 수준이 달랐다.
본래 무기술을 가지고 있는 괴수들은 하급 헌터들도 신중하게 상대한다.
싸움의 격을 올려 주는 스킬이 무기술인 만큼 잘못하면 헌터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성윤은 그런 요소는 상관없다는 듯 리자드 맨을 금방 처리했다.
단순한 반복 작업이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공략이었다.
“와…….”
본래 이철원은 이 던전을 전부 공략할 마음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이 던전을 완벽히 공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철원이 D급 헌터라곤 하나 그 또한 하급 헌터에 가까운 존재다.
몇 명이 더 있으면 몰라도 듀오로는 그냥 중심부에서 깔짝거리는 게 전부라고 상정해 둔 바였다.
특별한 보상 같은 건 일절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판단을 했기에 한성윤에게 특별한 물품이 나온다면 대부분 넘기겠다고 한 거고.
그렇지만 한성윤의 싸움은 그런 이철원의 생각을 달라지게 했다.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학살극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의 전투 센스를 가진 한성윤이 있다면 다르다.
어쩌면 던전 보스를 죽이고 게이트의 점령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물론 그렇게 된다면 게이트 점령권은 한성윤에게 내 줘야 하겠다만 그건 상관없었다.
던전의 끝에 다다르며 얻은 보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돈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기대감에 몸을 떠는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경외심이 들었다.
이제 막 헌터가 된 수준이 이 정도라면 나중에는 또 얼마나 더 강해질지 궁금해졌다.
‘헌터 업계를 뒤흔들 인재의 싸움을 보고 있는 걸 수도 있겠는데……?’
오랫동안 이런저런 던전을 누볐던 이철원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헌터 업계에 새로운 초신성이 탄생했노라고.
***
“후…….”
뚝뚝.
리자드 맨을 썰며 칼에 묻은 피가 바닥으로 방울져서 떨어진다.
“…….”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나름대로 많이 잡았다는 게 느껴졌다.
리자드 맨의 사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핏물로 된 웅덩이를 형성한다.
‘생각보다 더 적이 많아서 당황했지만……, 꽤 괜찮네.’
그만큼 고유 특성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다만, 문제는 새롭게 얻은 능력을 그렇게 많이 확인해 보지 못했다는 거다.
‘망자 소환의 능력을 확인하기엔 주변이 협소했지.’
뒤에 있던 이철원도 함부로 창을 휘두르지 못하는 공간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만약에 여기에서 망자를 일으킨다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확인은 미뤄 뒀다.
전에 스킬을 합성해서 얻었던 ‘강제 돌파’도 비슷했다.
속박 스킬을 쓰는 상대가 없어서 강제 돌파도 확인은 불가능했다.
등장했던 괴수는 전부 근접전에 능한 리자드 맨들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좀 달라질 거 같았다.
“보스룸 게이트……!”
뒤에 있던 이철원이 붉은색의 포탈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보스룸.
던전을 유지하고 구성하는 핵이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설마 했는데 솔로 플레이로 처리해야 하는 D급 던전이었을 줄이야.”
그랬다.
지금껏 많은 괴수를 죽였음에도 이철원이 사냥에 끼어들지 못했던 건…….
이 던전이 솔로 플레이에 적합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중심부를 지나쳤는데도 공간이 확장되지 않을 줄이야.’
그 덕분에 모든 괴수를 내가 처리해야만 했지만…….
그다지 불만이라고 할 건 없었다.
전부 혼자 잡아서 네크로맨시로 사령들도 독식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철원은 좋아하면서도 미안한 듯 내 안색을 살폈다.
“크흠, 죄송합니다. 공간이 확장되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산 비율은 추후에 조정해서 더 깎으셔도 할 말이 없을 거 같군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는지 이철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반반 정산을 해 주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그건 제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물론 그냥은 아니고 보스룸에서 얻게 될 모든 보상을 제가 가질 수 있다면 반반 정산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긴급 발생 게이트의 진입 허가를 따 둔 사람은 이철원이다.
전투 자체는 공간의 협소함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어도 정산을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오히려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덕에 좀 더 성장할 수 있었기도 하고.
혼자 독식하고 넘어가기엔 내 양심에 살짝 찔리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뭐, 솔직히 게이트 진입 허가만 아니었다면 독식하고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걸로 충분하시다면 보스룸 보상은 전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철원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내 말에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그러면 됐습니다. 지금부터 보스룸에 진입할 건데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뭘 하지도 않은 저야 괜찮긴 한데……. 한성윤 헌터님은 좀 휴식해야 하지 않을까요.”
“별로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괜찮습니다.”
“……그, 그렇군요.”
흡사 별종을 보았다는 듯 이철원은 눈매를 좁히며 나를 쳐다봤지만…….
그런 표정으로 본다고 해도 실제로도 지치지 않았으니 쉴 수는 없었다.
한꺼번에 상대한 게 아니라 일직선으로 많아야 두 마리씩 상대했으니 지치기도 힘들었다.
‘차라리 오크 무리들처럼 합격술로 덤벼들면 까다로웠을 텐데.’
그런 합공도 없었던 만큼 체력의 소모도는 꽤 얕았다.
또한.
‘지쳤다고 해도 시간이 아까운데 쉴 수는 없지.’
얼른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이득은 전부 얻고 나가야 했다.
그러니.
“그럼 이제 보스룸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이제 슬슬 던전 공략을 끝내야 할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