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48
047. 계약 (2)
서류 더미가 산처럼 쌓인 백은 길드의 팀장실.
“후우우……. 아으, 힘들다.”
새롭게 개설된 ‘도전자 관리팀’의 팀장, 이하연은 낮게 한숨을 흘렸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를 않는 서류를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벌써 시련의 탑에서 복귀한 지 나흘째가 됐음에도 그녀의 안색은 좋아지지를 않았다.
‘돌아온 날부터 지금까지 쉬지도 못하고 일만 했으니까.’
다른 이들이었다면 탑에서는 즐기지 못했던 것들도 즐기며 휴식했겠지만…….
이하연은 그러지 않고 곧장 백은 길드에 시련의 탑에 대해서 알렸다.
“현재 ‘시련의 탑’에서 돌아온 ‘도전자’들을 파악하고 관리할 팀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이건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거예요.”
다름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시련의 탑은 재앙으로만 여기지 않고 새로운 기회로 보았다.
시련의 탑은 분명히 리스크도 크지만 그만큼 확실한 보상을 주는 곳이었다.
또한.
‘시련의 탑은 헌터만이 가는 곳이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도 시련의 탑에 소환된다.
이는 시련의 탑 내부에서 확인한 바였다.
심지어 탑에 입장할 시 모든 능력이 초기화되는 건 오로지 헌터에 한해서만이다.
그럼 일반인이 탑에 입장한다면 각성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면 분명히 강해졌겠지.’
그들을 포섭해서 데려올 수만 있다면 그건 무조건 이득이다.
그건 일반인이 아니라 능력을 잃은 헌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도전자는 시련의 탑에서 보상을 받으며 탑을 오를 수 있으니…….’
능력이 초기화되었다고 한들 그걸 메꾸고도 남을 만큼 성장할 것이다.
이것 또한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라 할 수 있었다.
도전자들을 미리 파악해서 호감을 쌓든 포섭을 하든 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득을 보리란 건 분명했다.
그 때문에 이하연은 새롭게 ‘도전자 관리팀’을 창설하여 직접 팀장이 되었고.
현재는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해서 도전자가 된 이들을 파악하여 포섭 중인 상태였다.
물론 생각했던 것처럼 온통 쉽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도전자들이 숨어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포섭이 힘들 줄이야.”
도전자는 철저히 자신들의 정보를 숨겼으며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직접 탑에 돌아가서 포섭할 수 있음 좋겠지만 귀환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몇몇 이들을 뺀다면 대부분 잘 생각해서 행동하고 있는 만큼 포섭한 도전자의 수는 두 자리도 간당간당했다.
심지어 그들은 모두 그렇게 강하지 않은 ‘쉬움’ 난이도의 도전자이고 말이다.
시련의 탑이란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여 선점 효과를 보기에는 도전자들이 부족하다.
“……이럴 때 같은 어려움 난이도 도전자 한 명만 데려올 수 있음 좋을 텐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강력한 무력을 지니게 된 도전자라면…….
분명히 탑을 오르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 테고 그만큼 더 강해지려고 할 것이다.
그때 이하연이 4층에서 보았던 한 남자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분은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홀로 4층을 클리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했던 사내.
숙련된 헌터들도 당할 수밖에 없던 무위를 뽐냈던 남자가 문득 떠올랐다.
4층에서 친구 추가를 한 이후부터 그 남자와는 그다지 대화하지 않았다.
당시에 살인으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말수가 적었던 것도 그랬지만…….
‘내가 귀환할 때까지도 그다지 말이 없었지.’
실력이 출중했으니 어쩌면 진즉에 귀환했다가 탑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는 상황.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운 인재란 말이야…….’
그 말도 안 되는 성장력도 성장력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소속이 없었다.
헌터 지망생이 탑에 소환되어서 새롭게 강해질 수 있던 케이스.
그런 만큼 이하연은 아쉬움을 더 진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한 번 포섭 제안이라도 해 봤어야 했나……?”
4층 시련을 돌파했을 때 제안을 해 볼 걸 그랬나 하며 후회하려는 찰나였다.
위이잉―!
“……?”
책상 위에 엎어 둔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이하연의 눈길을 끌었다.
‘뭐지? 분명히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은 없을 텐데?’
스팸 메시지라도 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하연은 이내 손을 내뻗었고.
“……어?”
이어서 메시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에는…….
「4층에서 만났던 한성윤입니다. 이하연 씨, 귀환하셨다면 잠깐 만나실 수 있을까요?」
“…….”
그녀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메시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문자를 보낸 나는 이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혹시라도 연락이 닿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것도 있었지만…….
‘만약에 귀환하지 않았다던가 탑으로 돌아갔다면 어쩔 수 없겠지.’
뭐, 별로 크게 고민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당장은 원하는 바를 해결했고 소속 같은 건 나중에 고민해 봐도 좋을 테니 말이다.
방금 이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은 그저 한 번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계약해 줄 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을 뿐.
‘받든지 안 받든지 상관은 없지, 뭐.’
그러나…….
만약에 이하연이 연락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카페를 나서려는 순간.
우우웅―!
“?”
그런 고민은 무의미하다는 듯 곧장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뭐야.”
메시지를 보낸 후에 글귀를 읽었는지 이하연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물론이죠!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묘하게 들뜬 글귀처럼 느껴지는 건 순전히 착각일까?
뭐, 어쨌든 간에 글귀에서 활력이 느껴지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귀환하셨었군요. 그럼 혹시 지금 만나실 수 있을까요? 제가 제일 싼 귀환석을 사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어서 메시지를 작성한 후, 그대로 전송하려는 순간이었다.
띠링―!
「어디에 계신지만 알려 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새롭게 답변을 보내기도 전에 도착한 문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도 성격이 급하네.’
어쩌면 나처럼 제일 싼 귀환석을 골랐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이내 나는 작성하던 문자를 지우고 새롭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이내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이하연의 답장이 도착했다.
「알겠습니다. 곧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저 위치만 알려 줬을 뿐인데 곧 가겠다는 말과 함께 메시지가 끊겼다.
“생각보다 여기랑 가까운 곳에 있었나 보네.”
뭐, 언제 도착한다고는 확실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만…….
곧 오겠단 말을 보아하니 그렇게 오래는 기다리지 않아도 될 듯했다.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싶었을 때쯤이었다.
딸랑…….
문득 카페의 문이 열리며 지친 듯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도도한 인상의 미인이 서 있었다.
“한성윤 씨……?”
백은 길드 소속의 헌터, 이하연이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가와서 자리에 앉았다.
“……언제 귀환하셨던 거예요? 진작에 탑으로 돌아가셨을 줄 알았는데. 미리 귀환하셔서 제 메시지에 답장이 없는 줄 아셨어요.”
흡사 내가 여기에 있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단 듯한 말투였다.
그럴 만도 했다.
5층에서 한 번 귀환하고 탑을 오르는 등의 변칙적인 행동 탓에 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메시지라도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마저도 안 받았으니…….’
확실히 이하연에게 있어서는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사정이 있어서 5층에서 돌아갔다가 8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귀환한 것도 오늘이고요. 그리고 메시지는…….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못 읽었나 보네요.”
물론 메시지 자체는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대답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답장을 보내지 못했을 뿐.
“아녜요, 사과하실 건 아니죠. 그런데 5층에서는 왜……?”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어쨌든 둘 다 살아서 탑에서 나온 것만 해도 행운이니까요.”
슬며시 미소를 지은 이하연은 이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표정을 굳히곤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이제 탑은 오르지 않으시는 건가요?”
설마 등반을 그만뒀냐는 표정으로 이하연이 내게 질문해 왔지만…….
“그건 아닙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그 물음에 곧장 대답을 내놓았다.
탑을 오르는 것은 8층 이전에 결정한 바였다.
‘그만두기엔 늦었어.’
스스로 성장하고 승리한다는 것에 대해서 희열을 느낀 순간.
탑을 오르지 않고 강해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어진 거나 다름없다.
“저는 시련의 탑을 더 오를 생각입니다. 뭐가 됐든지 제게 있어서 시련의 탑은 매력적인 장소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이하연 씨를 만나고 싶다고 했던 거고요.”
“……?”
“현재 귀환까지 남은 시간도 별로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소속이 필요해졌습니다.”
“소속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시련의 탑을 드나들면서도 던전 공략이 가능한 곳이 필요합니다.”
즉, 이하연에게 부탁하는 바는 하나였다.
“혹시라도 길드 알선이 가능한지 묻고 싶어서 뵙고 싶다고 한 겁니다.”
“…….”
그 말을 들은 순간 이하연이 조용해졌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한 태도에 내심 나는 실망했다.
‘무리인가?’
큰 기대도 안 했긴 하다만 막상 이렇게 되니 아쉽긴 아쉬웠다.
어디든 간에 길드 알선이 된다면 조건을 붙여서 행동 제약이 없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헌터 협회는 긴급 소집 같은 건 무조건 동참해야 한다고 하는 집단이라 그럴 수도 없겠지만 길드라면 다르지.’
소속 헌터에게 강제력을 크게 부여하는 헌터 협회랑 길드는 다르다.
입단 시험이든 뭐든 간에 이것저것 조건을 붙일 수 있는 곳이 길드다.
그런 만큼 이하연에게 부탁해서 적당한 길드에 소개해 줄 수 있느냐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쩐지 반응이 썩 좋지 않은 걸 보니 불가능한 듯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나?’
그때였다.
“……한성윤 씨가 원하는 건 던전 입장이 자유로우면서도 시련의 탑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이해해 줄 수 있는 길드인가요?”
가만히 앉아 있던 이하연은 그리 말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길드 알선이 가능한 겁니까?”
“으음,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르겠네요.”
“……?”
“현재 저는 백은 길드에서 ‘도전자 관리팀’의 팀장 직책을 맡고 있어요.”
“도전자 관리팀……?”
“시련의 탑에 소환됐던 도전자를 찾아내서 포섭하는 팀이죠.”
도전자 관리팀이라.
‘벌써 그런 것까지 만들어진 건가?’
의외였다.
아직은 헌터 협회마저도 제대로 도전자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전자 관리팀이란 걸 창설하고 운용하다니…….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
오히려 헌터 협회도 제대로 도전자를 파악하지 못하기에 기회로 여길 수도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모든 도전자를 파악한다면 협회에 소속되게 하려고 할 테니 그 전에 길드 측에서 도전자를 포섭하는 것이다.
“만약에 제가 있는 팀으로 들어오신다면 계약 조건은 어느 정도 맞춰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물론 돈까지 맞춰드리긴 힘들겠지만…….”
이어서 이하연의 부연 설명까지 들은 나는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은 상관없다.
게이트 점령권을 팔아서 얻은 것만 12억이다.
모자란다면 탑에서 가지고 온 아이템을 팔아도 되니 돈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도전자 관리팀에서 맞춰 준다는 조건이 관건이네.’
시련의 탑을 드나들어야 하는 도전자로서는 계약 조건만큼은 중요했다.
백은 길드에서 맞춰 줄 수 있는 조건은 어디까지이며 그게 이후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인지도 알아야 했다.
‘만약에 그 어느 것도 충족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길드 입단은 그만두고 다시 탑을 올라야 할 것이다.
어쨌든 간에 나중에 좀 더 도전자란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그 가치가 증명된다면 무조건 소속은 가질 수 있을 터다.
‘근데 그걸 기다리기 싫어서 이러는 것뿐이지.’
그때 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던 이하연이 조심스레 물음을 건네 왔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에 고민하던 나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어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