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49
048. 계약 (3)
“계약 조건에 따라서 관리팀에 들어갈지 아닐지 결정할 것 같습니다.”
도전자 관리팀이란 곳은 현재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 주기 꽤 적합했다.
서로의 뜻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
새롭게 창설되었다는 ‘도전자 관리팀’의 팀장인 이하연은 도전자를 포섭해야 하고.
나 같은 도전자는 던전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길드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야 했다.
서둘러서 탑으로 복귀해야 하는 나로서는 미리 계약해 두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나중에 필요할 때 바로 길드의 던전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그 사실을 이하연도 인지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나 그렇군요……. 그럼 원하시는 조건을 알려 주시겠어요?”
조건이라…….
“일단 길드에서 내려오는 소집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는요?”
“탑에서의 행동은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과 백은 길드의 던전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소집 명령을 거부하는 거랑 행동에 관여하지 않는 건 팀장의 권한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처리해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다만…….”
“다만?”
“백은 길드의 던전은 그렇게 쉽게 쓸 수 없어요. 물론 실적이 있다면 던전 사용도 쉽게 허가되겠지만…….”
“팀장의 권한으로는 그걸 메꿀 수 없다는 거군요.”
이해했다.
백은 길드의 던전으로 꿀을 빨 수 있는 건 소수란 뜻이다.
‘그것도 유망주, 혹은 꽤 기대받는 헌터뿐이란 거겠지.’
그건 팀장의 권한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상부에 던전을 사용할 만한 실력이 있는 걸 알린다면 얘기가 달라지겠군요.”
“……생각보다 더 잘 알고 계시네요. 예, 맞아요. 실적이 있으면 상황이 달라지죠.”
“그럼 소집 명령 거부랑 탑에서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는 건 지켜 줄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도전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창설된 게 ‘도전자 관리팀’이니까요.”
생각보다 더 도전자 관리팀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4층에서의 인연 때문인지 이하연은 최대한 내 요구를 들어주려는 듯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다는 듯한 태도라 해야 하나?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던전 사용에 대해서 실적만 만들 수 있다면 도전자 관리팀에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에 이하연은 놀랐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내일 계약서를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어쨌든 간에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만 있다면 내게 나쁜 조건은 없다.
그런 철저한 계산하에 흔쾌히 승낙한 것이지만 이하연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반드시 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드릴게요.”
흡사 감동했다는 듯한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계약이 끝나면 바로 실적을 만들 수 있게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공략하실 게이트는 금방 준비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나는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내심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게 흘러가네.’
귀환한 지 하루 만에 원하던 것들을 대부분 이뤄서일까?
두 번째 귀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
다음 날, 나는 곧장 만나기로 했던 장소인 한 카페로 들어섰다.
‘어제 계약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았겠지만…….’
아쉽지만 그것까지는 과한 욕심이다.
이하연에게는 이하연의 일정이 있고 공략 가능한 게이트를 마련하는 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게이트 공략 일정을 잡는 것은 꽤 시간이 걸린다.
다만, 이하연은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팀장 자리에 있기에 하루 만에 그런 게이트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일 뿐.
시간은 귀중하다고 하나 그건 나만이 그런 건 아닐 터다.
‘귀환하기까지는 시간도 좀 남았고 그렇게 급할 건 없겠지.’
생각보다 어제 일들이 싹 잘 풀렸던 덕분에 마음도 여유로웠다.
원하는 것은 대부분 성취했으니 잠깐의 휴식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한적한 카페 내부로 누군가 들어왔다.
딸랑…….
긴 생머리를 뒤로 슬쩍 넘기며 들어온 여성은 이하연이었다.
그녀는 곧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하며 다가와서 자리에 앉았다.
“한성윤 씨, 설마 지금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건가요?”
“뭐, 조금 기다렸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돌아서요.”
“저도 나름 일찍 준비해서 온 건데……. 이거 면목이 없네요.”
“그럴 것 없습니다. 보아하니 바쁘셨던 모양인데요.”
과장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이하연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두 눈은 퀭했고 머리를 말릴 시간이 부족했는지 긴 생머리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만큼 바빴던 것을 증명하듯 여기저기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하……. 그런가요? 살짝 무리해서 그렇게 보이실 수도 있겠네요.”
이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하더니 이내 서류를 꺼냈다.
“읽어 보세요. 어제 작성한 한성윤 씨의 계약서에요. 옆에 있는 건 업계 표준 계약서니 한 번 비교해 보세요.”
그에 나는 계약서를 받아들고는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팔락, 팔락…….
‘와, 이건 뭐야?’
그 안에 적힌 계약 조건들을 보니 눈이 부릅떠졌다.
‘기본 연봉이 5억이고 심지어 내가 던전에서 얻는 것들은 모조리 내 소유네.’
돈은 그다지 상관없다고 했는데도 꽤 신경을 써 준 모양인지 전부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보통 헌터들은 마석이고 뭐고 던전 내부의 모든 부산물을 길드를 통해서 판매한다.
그러다 보니 계약 비율에 따라서 마석의 일부를 길드가 가져가는 것이 관례가 됐는데…….
이 계약서에는 그런 것은 아예 없고 던전 내부의 부산물은 모조리 내 것이라 되어 있다.
즉, 길드가 무언가를 가져가는 것은 아예 없는 것이다.
본래 헌터들의 계약 조건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 안 됐다.
‘소집 명령은 언제든 거부할 수 있고 탑에서도 간섭은 일절 없다, 라…….’
요구했던 조건들도 모조리 빠지지 않고 기입이 되어 있는 상황.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라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던전의 사용’에 관해서도 조건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C급 던전을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하면 길드 소유의 던전은 전부 쓸 수 있는 건가……?’
그렇다는 건…….
곧 이하연이 내게 증명용으로 내 줄 게이트의 수준도 C급이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 높은 수준의 던전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네.’
계약서를 다 살펴본 나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계약서에 문제는 없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이하연은 뿌듯하다는 듯 생글생글 웃음을 짓더니 이내 물음을 건네 왔다.
“그런데 혹시 헌터 라이센스가 없으신가요? 없다면 제가 임시로 게이트 출입권을…….”
“아뇨, 있습니다. 전에 귀환했을 때 헌터 협회에 가서 따뒀거든요.”
“그거 다행이네요. 지금은 협회에서도 도전자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느라 헌터 라이센스를 취득하기도 힘들거든요.”
그럴 줄 알고 미리 자격증을 취득해 둔 것이 꽤 좋은 수였다.
‘뭐든 선점해 둬서 나쁠 건 없다는 거겠지.’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도 꽤 귀찮은 상황이 됐을지도 모른다.
곧이어 계약서에 서명한 나는 이하연을 바라보았다.
“계약도 끝났으니 바로 실적 증명용 게이트에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근방에 발생한 C급 게이트가 있으니 거기로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참관인으로 제가 있을 건데 그 점은 상관없겠죠?”
“예, 상관없습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이번엔 마지막 던전 공략이겠지.’
벌써 두 번째 귀환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
의정부 녹양동, 천보산.
“도착했네요. 여기에 게이트가 있어요.”
얼마 가지 않아서 이하연은 차에서 내리더니 그렇게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도 이어서 차에서 내리고는 장비를 착용했다.
‘산지에 있는 게이트라…….’
조금 특수하긴 했으나 곧 관심을 끈 나는 이하연의 뒤를 따라서 이동했다.
과연, 일시적으로 발생한 게이트라 해도 게이트라고 해야 하나?
천보산의 게이트에는 관리하는 자들이 몇몇 붙어 있었다.
물론…….
“아, 백은 길드의 이하연 팀장님이셨군요. 확인됐습니다.”
금방 신분이 확인됐기에 쉽게 관리하는 이들을 지나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음, 안에 들어가기 전에 말씀드리는 거긴 한데…….”
“……?”
“만약에 안에 들어간다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제가 보조하지는 않을 거예요.”
“공정성을 위해서 딱 참관인으로만 있겠단 거군요.”
“네, 맞아요. 만약에라도 실적이 증명되지 않으면 곤란하니까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이전에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서 난관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도와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내게는 별로 큰 상관이 없었다.
그건 4층에서 직접 나를 보았던 이하연이 더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이하연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단히 설명했다.
“일단 무장하시고 안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실적 증명이 시작돼요. 일시적 게이트라 보스까지 잡고 나올 테니 끝까지 쭉 진행하시면 될 거고요.”
더는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여태껏 해 온 것처럼 모든 적을 섬멸하면 될 뿐이라는 것이니.
***
우우웅……!
게이트를 통과하여 던전 내부로 들어오니 풀로 가득한 언덕이 보였다.
“흠.”
좀 곤란한 지형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언덕 같이 개방된 스테이지를 갖춘 던전은 주변에서 괴수들이 몰아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런 만큼 곧 벌어질 싸움은 난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뒤에 있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곤란할 수도 있겠네.’
참관인이라지만 이하연도 괴수들의 표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무력을 생각해 본다면 썩 좋은 환경에서 싸우는 건 아니겠지.
그때 이하연도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는 듯 내 시선을 받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길드에서 지원받은 아티팩트가 있거든요. 공격받으면 자동으로 보호막이 활성화될 거예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이하연이 목에 걸린 푸른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보여 줬다.
“그럼 제가 보호해드려야 할 만한 상황은…….”
“아마도 없을 거예요. ‘여제의 목걸이’라고 해서 A급 아이템인데……. 이게 꽤 많이 충격을 흡수하거든요. 은신 효과도 살짝이지만 있고요.”
“그거 잘 됐군요. 덕분에 저도 걱정할 것 없이 싸울 수 있겠네요.”
“아, 물론 만약에라도 어그로가 끌리면 그걸로도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으니 꽤 떨어져 있겠지만요.”
그때였다.
키에에에에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울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오…….”
그곳엔 입에서 검은 불길을 내뿜으며 눈동자를 번들거리는 거북이가 있었다.
‘화염 아귀인가?’
누군가는 ‘작은 악마’라고도 부르는 꽤 험악한 괴수였다.
생긴 것은 거북이지만 움직임도 잽싸고 내뿜는 불길도 강력했다.
심지어 내구력도 어지간한 괴수들보다 낫기에 기피되는 대상이지만…….
‘지금은 네크로맨시로 올리게 될 능력치 제물에 불과한 놈들이지.’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기꺼움을 느끼며 씩 웃음을 지었다.
자, 이제 다시 폭풍처럼 성장할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