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5
004. 두 번째 시련 (1)
관리자가 전달하겠다고 한 사항은 간단했다.
-■■■: 튜토리얼 시련을 돌파하며 얻은 포인트의 사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구로 귀환하는 법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여기에서 돌아갈 방법만 궁리하던 이들은 큰 실망감에 제대로 전달 사항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부 기억해 둬야만 한다.’
나는 실망하지 않은 채 최대한 덤덤하게 관리자의 채팅을 바라보았다.
실망?
그런 건 애초에 기대해야만 생길 수 있는 거다.
나는 이 탑이 순순히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돌려보낼 심산이었다면 튜토리얼에서도 시련에 실패할 때의 페널티를 ‘죽음’이 아니라 ‘귀환’이라고 표기했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은 이상, 쉽게 돌려보내지는 않겠다는 뜻.
커뮤니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어지는 관리자의 채팅에 집중했다.
-■■■: 포인트는 시련의 탑 안에서 사용될 공용 화폐이며 주로 상점에서 사용됩니다.
-■■■: 또 포인트는 커뮤니티를 통해서 상대에게 포인트를 건네거나 양도받을 수 있습니다.
-■■■: 시련의 탑에서는 포인트가 없으면 물 한 모금조차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 포인트는 오로지 시련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 전달 사항은 이게 끝입니다.
「관리자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커뮤니티의 채팅 금지가 해제됩니다.」
동시에 관리자의 채팅을 보고 있던 이들의 말이 쏟아진다.
-강선우: ……그니까 포인트인지 뭔지 사용법 알려주는 게 끝이라고? 진짜?
-김승훈: 염병하네. 위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 개새끼야. 찾아간다.
-이승진: 윗분 어디 뭐 분노 조절 장애 있음? 아까부터 저러네.
-이희진: 능력치나 스킬이 전부 초기화됐으니 그럴 만도 하죠, 뭐.
-현석진: 저기요, 관리자님? 제발 돌아갈 수 있는 법 좀 알려주세요! 제발요!
-박진우: 아무튼 그냥은 안 돌려보내겠다는 거네.
그 뒤로도 쏟아지는 채팅을 바라보며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한마디로 어떻게든 이 탑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거네.”
싫든 좋든 간에 그래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여길 탈출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기정사실.
오랜 시간 이 탑에 있어야 한다는 건 분명했다.
그럼 시련을 겪지 않고 대기실에서 쭉 있는 게 가능한가?
그런 것도 아니다.
‘포인트는 시련에서만 지급된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쭉 대기실에서 죽치고 있는 방법은 쓸 수 없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포인트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아까 살짝 상점창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어떻게 굴러가는 체계인지 훤히 보였다.
‘말 그대로 포인트를 입수하지 못하면 물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에는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 시련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한숨을 푹 쉰 나는 침대 옆에 둔 검을 바라보았다.
튜토리얼에서 지급되었던 잘 벼려진 장검.
‘다음 시련도 저걸로 충분할지 모르겠네.’
2층의 시련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샌드 골렘 같은 종류라면…….
“죽을 수도 있겠지.”
샌드 골렘의 사령으로 능력치를 올렸어도 이제야 F급 플레이어 수준.
막 인간의 한계점을 넘을락 말락 하는 단계다.
적어도 몸을 보호할 수단이 한 가지 정도는 필요한 시점.
플레이어로서는 최하위의 능력치를 가진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올린다면 그걸 갖춰야만 했다.
“장검만으로는 불안한데.”
7년간 이것저것 무기를 많이 다뤄왔기에 대부분은 그럭저럭 다룰 줄 알았다.
그러니 굳이 장검을 버리고 다른 걸 택할 필요는 없는 상황.
‘물론 그마저도 전부 초보자 딱지만 겨우 뗀 수준이지만.’
내 절망적인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은 무기술에도 가감 없이 적용됐다.
맨몸을 사용하는 기술도 마찬가지.
그냥저냥 다 할 수 있어도 그게 초보자만 겨우 벗어난 수준이라는 거다.
물론 그런 숙련도라면 창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포인트를 소모해서까지 창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
그러나 장검을 제외하고도 안전성을 올려줄 수단은 필요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적의 공격을 흘리거나 막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
내 육체는 허약해서 한 번 공격을 얻어맞으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테니까.
“상점.”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기본 장검은 칼날이 80cm 정도로 제법 긴 편.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서 이렇게 길쭉한 목검을 지니고 연습했을 때 방패를 같이 썼던 게 기억나서 방패를 구매하기로 정했다.
기본적으로 검과 방패라는 건 흔하면서도 그 궁합이 좋기에 자주 사용된다.
숙련된 헌터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검과 방패, 혹은 창과 방패를 사용하기도 할 정도.
인터넷 쇼핑몰처럼 된 창을 둘러보다가 대충 체육관에서 썼던 거랑 비슷한 모양의 것을 구매했다.
‘익숙해야만 실전에서 더 잘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좀 연습을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드워프의 투박한 방패(E)를 구매하셨습니다.」
「7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남은 포인트 – 800」
조금 비싸기는 해도 등급이 높은 목제로 된 한 손 방패.
목제라고 해서 약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드워프의 투박한 방패」
「등급 : E」
「초보 드워프가 제작한 목재 재질의 한 손 방패.」
「겉쪽에는 특수한 강철로 덧대어져 있어서 나름 단단하다.」
대격변 이후 모든 상식이 뒤바뀌었다.
이렇게 약한 듯 보이는 방패도 등급이 높기에 더 가볍고 튼튼하며 내구력이 좋다.
대격변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방패는 가볍게 웃도는 수준.
‘현실에서는 3천만 원은 훌쩍 넘을 방패가 손에 들어오다니…….’
살짝 금전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헌터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헌터도 쉽게 얻지 못하는 장비를 얻었으니 당연했다.
물론 바깥으로 나갈 수단이 없으니 무의미한 계산이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방패와 장검을 든 채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열렬하게 훈련했던 게 헛된 게 아니었는지 그럴싸하게 모양이 잡힌다.
심지어 능력치가 올라가니 각각 손에 검과 방패를 들어도 살짝 묵직한 정도에서 그칠 뿐.
컨디션으로 따지자면 유례없을 정도로 최고라 할 수 있다.
최대한 익숙한 종류의 방패를 샀기에 이질감이 적은 것도 한몫했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일단 검과 방패를 내려두고 다시 상점창을 열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물품은 포인트를 소비해서 얻어야 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것들 외에도 자잘하게 얻어야 할 아이템들은 꽤 있었다.
잡다한 물건은 다 파는 모양이니, 내가 원하는 물건도 있을 터였다.
일반인이었다면 더 무엇을 구매해야 할지 고민했겠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체력의 물약」
「등급 : F-」
「극소량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특수한 물약이다.」
「조금이지만 피로를 덜어 주는 효과도 있다.」
「재생의 물약」
「등급 : F-」
「복용 혹은 상처 부위에 뿌리면 상처가 치료되는 물약이다.」
「단, 이 효과는 어디까지나 가벼운 외상에 한정하여 발동된다.」
「낡은 투척용 단검」
「등급 : F-」
「칼날이 매우 짧은 낡아빠진 투척용 단검이다.」
「심하게 낡아서 제대로 된 날붙이에 부딪히면 즉시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다행히도 염두에 둔 물건들은 전부 상점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정말로 중요할 때 쓰려고 필요한 물건만 사들였다.
최대한 가진 포인트를 아끼면서도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남은 포인트 – 375」
그 덕분에 포인트는 꽤 보존시키면서 쓸 만한 물품을 구할 수 있었다.
식료품을 구매할 만큼은 포인트를 남겨 두었으니 적당한 소비였으리라.
‘적어도 이렇게 해 두면 전투에서 쉽게 지지는 않겠지.’
장기전으로 가더라도 체력의 물약이 있고 상처들이 많아져도 재생의 물약이 있다.
그리고 투척용 단검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할 수도 있을 거다.
헌터로서의 안목을 길러온 만큼, 이게 최선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걸로 대충 전투 관련 물품은 그만 사도 되겠고…….”
이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니 곧바로 답이 나왔다.
시련까지 남은 시간 동안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무기에 익숙해지는 편이 나았다.
아직은 검도 익숙하지 않고 방패도 쓰던 것과 좀 다르다.
적응하지 못하면 실전에서 제대로 싸우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피로감도 회복 효과로 나아졌기에 정신도 말끔한 상태.
설령 훈련으로 지친다고 해도 이 대기실의 효과로 인해서 금방 피로는 사라질 터였다.
몸을 움직여서 곧 있을 시련에 대비하는 건 당연했다.
「2층 커뮤니티(3928/4321)」
「2층 시련 시작까지 – 20시간 53분」
커뮤니티와 남은 시간을 시야의 한구석으로 옮겼다.
연습하는 김에 틈틈이 커뮤니티와 남은 시간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쓸 만한 정보가 오갈지도 모르지.’
관리자가 다녀간 후, 그나마 상황이 좀 정리되며 혼란스러움이 잦아들었으니까.
하지만 곧 그 생각은 이어지는 채팅에 싹 사라지게 됐다.
-강선우: 미치겠네. 스킬도 다 사라져서 검술이나 창술이 어려움. 엿 같다.
-이희진: 저도요. 원래는 마법 썼는데 스킬이 없으니까 제대로 못 쓰겠네요.
-김승훈: 다른 건 모르겠고 능력치 내려간 건 짜증나네. 적응하기 힘들다.
-이승진: 스킬 습득은 했는데, 이거 처음부터 다시 숙련도 쌓아야 하네. 돌겠다, 진짜.
-오춘석: 헌터들은 그나마 편하지; 일반인은 지금 뭐 해야 할지도 모름; 2층 돌파는 가능할까;
-강선우: 모르죠. 근데 님도 빨리 검 아니면 창 그리고 방패 사서 연습이나 하는 게 나음.
-이승진: 하, 씨발. 원래 능력만 있었어도 이딴 거 안 하는데. 관리자 이 씹새끼.
관리자가 나와서 전달 사항을 말하기 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불안함, 초조함, 그리고 상실감에 찬 채팅만 올라올 뿐.
그리고도 오가는 대화에서 해당이 되는 사항도 없어서 관심이 영 안 간다.
헌터였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인이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럴 때는 처참한 재능이 도움이 되네.’
탑에 들어오기 전과 나는 다를 게 거의 없으니까.
아니지, 오히려 나는 이 안에서 성장했다.
7년 동안 처절함만 더해 줬던 저주받은 재능이 도움이 된 순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쁠 건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다.
이제야 능력치나 스킬이 초기화되며 스타트 라인에 설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차이는 난다.
한 번 습득했던 스킬은 빠르게 습득할 것이고 나보다도 더 빠르게 성장할 거다.
‘따라잡으려면 이렇게 소소한 훈련이라도 게으르게 해서는 안 되겠지.’
성장은 곧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
다른 사람이 노력할 때 두 배 세 배로 더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슷한 수준이라도 될 테니까.
몸을 조금이라도 놀려서 싸움에 대비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시련에 응해야 한다.
모든 걸 포기했던 몇 시간 전과 다르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고유 특성, 스킬, 능력치의 상승 등등.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희망을 보았기에 포기할 마음은 싹 사라졌다.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헌터는 될 수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과는 다르다.
살아서 나가기만 한다면 원하는 것을, 아니, 더 높은 것도 노릴 수 있겠지.
탑은 그저 허망하게 죽으라고 하지 않았다.
시련만 돌파하면 보상도 주어지고, 포인트도 입수할 수 있다.
그럼 그걸 토대로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어쩌면 바깥으로 나갈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당장 정해진 목표 또한 단순하고 명확했다.
‘두 번째 시련도 돌파해야 한다는 것.’
그게 탑이 내려준 과제라면, 어떻게든 돌파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