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66
065. 투기장 (3)
이제는 그 누구도 오지 않게 된 고요한 분위기의 중옥(重屋).
그런 중옥의 대청에 앉아 있던 한 백발의 여인이 즐겁다는 듯 작게 웃음을 지었다.
“벌써 검기(劍氣)를 이렇게 다룰 줄이야…….”
다름이 아니라 뜰에 깔린 작은 연못에서 송출되고 있는 한 도전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도전자 한성윤」
굉음을 동반한 채 쏟아지는 겁화를 단숨에 검기로 베어 내는 것을 보니 본능적으로 검기(劍氣)라는 것의 사용법을 알아챈 듯했다.
그녀는 얼마 전에 후원했던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권능을 한성윤이 벌써 이렇게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에 흡족함을 느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된 이후로는 느끼지 못했던 성장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하나?
흡사 이 도전자의 성장이 그녀가 이룬 것처럼 뿌듯함이 그대로 전달됐다.
‘고작 10층 대기실에 막 도착한 수준의 도전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네.’
이전에 그녀의 계약자였던 백선학보다도 일부분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러니 백선학을 죽이고 이렇게 투기장까지 도착한 거겠지…….’
물론 백선학과는 ‘상성’으로 어떻게든 밀어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때 절정 무인이었던 백선학을 꺾은 것은 의외였다.
그녀가 백선학은 진짜 계약자로 대하지 않고 적당히 권능만 준 것이라고는 해도 그 또한 상당한 강자였다.
‘분명히 이 도전자는 더 성장할 거야.’
틀림없이 더 강해져서 관리자가 될 수 있는 30층의 난관마저도 극복할 터다.
그건 백선학을 이겼던 시점에서 확신한 바였다.
그렇기에 ‘검기상인’이라는 꽤 좋은 권능을 이 도전자에게 준 것이기도 했고.
그런 행동을 그녀는 지금껏 이 도전자를 보며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 도전자의 행보를 볼수록 그때 권능 후원을 했던 것이 묘수라 생각될 수준이었다.
“어쩌면……. 이 도전자가 있다면…….”
그녀가 이루지 못했던 ‘숙원’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까지 들기 시작하자 그녀의 검은 눈이 밝게 빛났다.
‘다른 관리자들보다 빠르게 이 도전자에게 호감을 쌓아야 해.’
그렇지 않는다면 이 도전자에게 ‘숙원’을 해결해 달라고 할 수도 없을 터다.
‘이제 10층이었으니 곧 11층으로 올라오겠지.’
백학검선은 이내 연못에서 비추는 한성윤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곧 한 번 이곳으로 불러야겠어.”
오로지 관리자를 위해서 마련된 세계에서 이 도전자를 우군으로 삼을 것이다.
***
캐서린이 뿜어낸 불꽃을 검기로 갈라 낸 후…….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나는 곧장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캐서린 베넷의 첫 공격을 파훼한 뒤부터 그녀의 기세가 아예 달라졌기 때문이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의 활성화 시간이 1분 지났습니다.」
「마력 소모율이 2% 상승합니다.」
콰아아아앙……!
‘이제는 말도 없이 공격에만 집중하네.’
몇 번을 따라붙는 불꽃을 베어 내도 공격이 끝나지를 않았다.
검기(劍氣)로 마력이 깃든 화염을 베어 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순간 가속까지 쓰고 있음에도 불꽃의 추격 속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피하는 것도 힘들었다.
‘바람의 은총이 없는 만큼 암살자의 망토라도 써 볼까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하게 아예 불꽃을 대뜸 내뿜어서 암살자의 망토를 확 불태웠다.
‘어쩌지?’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바짝 따라붙는 불꽃을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에게 기대감을 품습니다.」
「관리자 ‘검은 악마’가 불꽃의 권능을 보며 크게 웃습니다.」
유도탄처럼 따라오는 불꽃은 관리자들의 메시지를 보니 ‘권능’인 듯한데…….
한 번 베어 내지 않으면 끝까지 따라오니 불편할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스킬 ‘순간 가속(D+)’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순간 가속(D+)’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이제껏 주력기로 삼아서 쭉 써 왔던 것이 숙련도를 미친 듯 상승시킨 것일까?
뜬금없이 순간 가속 스킬이 C-급으로 등급이 성장하며 몸이 더 빨라졌다.
‘나이스……!’
약간이지만 공격을 회피하는 것에 여유로움이 생겼다.
그 틈을 타서 나는 곧장 네크로맨시를 통해서 백선학의 사령을 흡수했다.
만약에 공격을 더 허용하면 패시브 보호막으로 사령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전자 ‘백선학’의 사령을 흡수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2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1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3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3 상승했습니다.」
「내구가 2 상승했습니다.」
순식간에 이런저런 능력치들이 조금씩 성장하며 몸에 활력이 돋은 순간이었다.
「도전자 ‘백선학’이 보유하고 있던 스킬 중 한 가지를 흡수합니다.」
‘오……?’
스킬 흡수가 발동되며 백선학의 스킬 중 한 가지를 습득했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B)’를 습득합니다.」
‘섬전검기……?’
백선학의 검이 잠깐 번개에 휩싸인 채 번뜩였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 스킬이 취소된 듯했는데 그 스킬을 흡수한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앙―!
불꽃을 피해서 도망치는 동시에 섬전검기의 능력을 곧장 확인했고…….
『스킬 – 섬전검기閃電劍氣(B)』
『숙련도 – 0%』
『설명 – 섬전문(閃電門)의 진신절기(眞身絶技).』
『기본 효과 – 검기(劍氣)를 사용할 시 검기에 뇌전이 맺히며 번개 속성이 부여된다. 단, 이는 검기를 쓸 수 없을 시 사용할 수 없다.』
『세부 효과 – 스킬이 활성화될 시 검기(劍氣)의 기본 운용 능력이 크게 상승하며 참격(斬擊)을 날릴 수 있게 된다.』
이어서 떠오른 설명문을 다 읽은 나는 이내 확신했다.
‘검기를 참격으로 날릴 수 있다고……?’
이 불꽃의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손에 들어왔음을.
그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눈을 팔 시간이 있나 보네요?”
캐서린이 눈을 반짝이며 순식간에 손에서 또 불꽃을 뿜어낸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아까보다 더 격렬해진 불꽃의 파도를 보며 나는 살짝 긴장했다.
‘할 수 있을까……?’
새롭게 습득한 ‘섬전검기’를 통해서 이 불꽃을 베어 낼 수 있는지 고민했지만…….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어쨌든 간에 회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만큼 고민은 무의미했다.
파츠츠츳……!
순식간에 검기(劍氣)가 번개를 머금은 듯이 요동치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게 번개 속성을 부여하는 능력인가……?’
그뿐만이 아니라 검기가 신체의 한 부분이 된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이 능력에 확신을 머금을 수 있었다.
이제는 검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검기를 참격으로 쏟아낼 수 있음을.
그리고 이어서 폭풍처럼 덮쳐오는 불꽃을 향해서 검을 휘두른 순간에는…….
촤아아아아악―!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의 검기 운용에 깜짝 놀랍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계약자의 활약에 실실 웃음을 짓습니다.」
「관리자 ‘검은 악마’가 이런 건 말도 안 된다며 경악합니다.」
번개를 머금은 참격이 뿜어지며 단숨에 불꽃의 파도를 반으로 쩍 갈랐다.
심지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캐서린에게까지 번개의 참격이 닿으려고 했지만…….
꽈아아아앙……!!
이어서 또 한 번 뿜어진 불꽃에 의해서 참격이 아예 상쇄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검기의 위력은 충분히 확인했다.
‘이 수준의 위력은 거의 삼절 스킬 급인데……?’
권능을 보조하는 스킬인 ‘섬전검기’까지 있는 이상에는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도대체 검으로 어떻게 이런 위력을……!”
캐서린 베넷의 푸른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그에 대꾸하지도 않고 나는 곧장 검기를 허공에 흩뿌렸다.
촤라라라라락……!
일곱 개의 검기가 참격이 되어서 뿌리를 뻗듯 이곳저곳으로 날아들었고…….
“읏……!”
그런 검기를 본 캐서린은 황급히 손을 내뻗어서 불꽃을 내뿜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그리고 동시에 모든 검기가 파훼되는 찰나에 곧장 나는 바닥을 박찼다.
검기를 날리는 것으로 승기를 잡은 만큼 그것을 활용해야 했다.
그리고…….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의 활성화 시간이 2분 지났습니다.」
「마력 소모율이 4% 상승합니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의 활성화 시간이 3분 지났…….」
「마력 소모율이 6% 상승합…….」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의 활성화 시간이 4분 지…….」
「마력 소모율이 8% 상…….」
슬슬 마력 소모율도 상승하며 마력 회로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검에 거의 모든 마력을 쏟아붓고 있으니 마력이 남아나지를 않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더해서 ‘순간 가속’의 스킬에 들어가는 마력까지 계산하면 오래는 버틸 수 없음이 확실했다.
‘얼른 싸움을 끝내야 해.’
그런 계산을 마친 나는 이내 캐서린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어……!?”
캐서린은 그런 나를 보고는 뒤늦게 흠칫하며 폭발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철컥……!
“여기에서 폭발을 일으키면 같이 휘말릴 텐데요?”
그때는 캐서린의 목에 내 검이 맞닿은 뒤였다.
본래라면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목을 베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 투기장에서의 싸움은 시련도 아니고 그렇게 목을 베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도움말에서도 상대방이 항복하면 싸움을 끝낼 수 있다고도 했고.’
그런 만큼 항복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
캐서린의 벽안(碧眼)이 떨리는 것을 보니 그녀도 패배를 인지한 듯했다.
그녀는 이내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참격을 날리는 기술은……. 원래부터 숨기고 있던 건가요?”
승패를 가르게 해 줬던 ‘섬전검기’의 스킬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캐서린은 속았다는 것이 분하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런 건 아니고 도중에 우연히 얻게 됐습니다.”
“설마 도중에 스킬이 성장했던 거예요?”
“뭐, 그렇다고 봐도 좋습니다.”
“하아아…….”
물론 숨기고 있던 것도 스킬이 성장한 것도 아니라 도중에 습득한 것이지만…….
굳이 그것까지 말해 줄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그때였다.
“일단 제가 졌으니 항복하기는 할 건데……. 뭣 좀 물어볼 수 있을까요?”
“……?”
“투기장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고 왜 저한테 결투를 신청한 거예요?”
“들고 있는 보상이 저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캐서린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깔끔했다.
그녀가 페널티 보상으로 걸었던 ‘질풍검’이란 스킬이 탐났기 때문이다.
스킬 합성에서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습득하고 싶었다.
그저 그뿐인 얘기일 뿐이다.
“그, 그게 다라고요?”
“예.”
“그럼 혹시 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건가요……?”
“……?”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챘다.
분명히 이 벽안의 미인은 타국의 헌터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꽤 높은 등급인가 본데.’
안타깝게도 나는 국외의 헌터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아는 것이 없다.
국내에서도 A급 헌터를 모두 다 파악하고 있지도 못한데…….
하물며 국외라고 한다면 S급 헌터가 아니라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예전에는 수련만 하느라 그런 것들을 알아볼 새도 없었고.’
그때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느라 바빴다.
어떻게든 스킬을 습득할 방법 혹은 능력치를 올릴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탑에 들어오기 이전까지는 무용지물이었으니 헛된 노력이겠지만.
‘캐서린이라…….’
어쨌든 간에 돌아가서 한 번 알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서 상대할 자신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캐서린은 그것이 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냥 보상만 보고 달려들었던 것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네요.”
그러더니 이내 캐서린은 나를 노려보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한성윤이라고 했었죠?”
“……?”
“나중에 찾아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에 내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캐서린은 망설이지 않고 포기했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고…….
「도전자 캐서린이 항복했습니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휙 사라지며 그런 메시지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
「승리했습니다.」
「승리 보상으로 스킬 ‘질풍검(C+)’을 습득합니다.」
「결투 종료로 인하여 곧 10층 공용 구역의 투기장으로 이동합니다.」
이내 스킬을 습득했다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성장의 쾌감을 느낄 새도 없이 얼떨떨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뭔가 폭풍 같은 사람이었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곧 찾아오겠다, 라…….’
악의는 없던 것 같은데 무언가 좀 기묘한 대사였다.
흡사 신기한 것을 봤다는 것에 가까운 흥미로움이 담겨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캐서린이 느꼈을 감정은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신기하네.’
이 결투에서 얻은 것은 스킬만이 아니라 묘한 인연도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