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68
067. 스킬 습득 (2)
무림(武林).
이 짧은 두 글자는 모든 것이 무(武)로 직결되는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이 몸을 담고 살아가는 곳을 일컫는다.
서로 각각 다른 가치관을 무(武)로 상대를 설득하여 가치를 증명한다고 해야 하나?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것이 있고 설파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순수한 무력으로 상대방에게 의지를 전달하는 것.
그 간단한 약육강식의 체계로 굴러가는 무림은 오로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무력 증진에만 집중하는 무인들이 사는 세계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디에든 권력자가 있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온통 무력의 증진에만 생각이 쏠려 있는 무림에서도 권력자로서 군림하는 세력은 꽤 있었다.
무림맹과 흑사회, 그리고 천마신교라는 각각 정사마(正邪魔)의 주요 단체들이 그러했다.
그 안에서도 백도 단체에 속하는 무림맹은 그 성세가 거대한 만큼 구성하는 단체도 그 수가 적지 않았고.
특히나 무림맹은 구파일방 및 오대세가라는 기둥들을 통해서 지탱되고 있는 만큼 그 어떠한 세력보다 견고하다고 자부했다.
심지어 구파일방 및 오대세가에서 늙은 무인들은 원로회라는 곳에 원로 직책까지 받으니 기둥들이 무림맹에 불만을 가지는 일은 적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제껏 견고함을 지켜오던 무림맹의 기둥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로 다름이 아니라 무림맹 원로회의 대원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림맹의 고위직을 꿰차고 있던 사내가 사라진 만큼 소식은 곧 무림맹의 주된 단체들로 퍼져 나갔다.
그건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도 마찬가지였다.
“백선학 대원로의 행적이 묘연해졌습니다.”
중세 중국의 생활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집무실에서 청의무복을 입은 한 사내가 그렇게 보고했다.
그리고.
“섬전문의 백선학을 말하는 것인가?”
그 보고를 들은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혁이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맞습니다.”
“최근 탑에서 ‘계층 난입’을 시도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런데 돌아와야 하는 시점이 지났는데도 돌아오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혹시 탑의 순위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는가?”
“예, 백선학 대원로의 순위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남궁혁은 눈매를 슬며시 좁히며 이내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흐음.”
청의무복을 입은 사내는 그것이 곧 남궁혁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임을 알아채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원로회에서도 죽은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오가더군요.”
“그렇겠지. 순위에서 배제되고 행적이 묘연해졌다는 것은 그런 의미일 뿐이니.”
“그렇지만 믿기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계층 난입을 했길래 그런 것인지.”
“백선학 대원로의 신중한 성격을 생각하면 정치적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는 무림에서 계층 난입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럴 겁니다. 분명 다른 세계로 계층 난입을 했겠죠.”
“어느 세계로 계층 난입을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도 낮은 계층에서 백선학 대원로가 죽었다는 것이 신기하군.”
그렇게 말을 끝낸 남궁혁은 잠깐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흠……. 뭐, 백선학 대원로가 죽은 건 나쁜 소식은 아니지. 어쨌든 간에 섬전문을 대표하는 무인이 죽었으니 섬전문의 성세도 약해질 테고 대원로가 죽은 만큼 본가에서도 새로운 대원로를 추천할 수도 있을 테니.”
“그렇겠죠.”
“그렇지만 조금 궁금해지기는 하는군.”
“……?”
“백선학이 꽤 옹졸한 성격이라고는 해도 탑에 들어서기 이전에는 순수한 실력만으로 무림맹의 대원로 직을 꿰찬 사내거든. 그런데 그런 백선학이 힘을 잃었다고 자기보다 낮은 계층에 있는 도전자한테 죽었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
“글쎄요. 시련의 탑은 사술과도 같은 기술을 모든 도전자에게 부여하니까요.”
“방심해서 죽었을 수 있다는 말이군. 뭐, 그것도 틀리지는 않았겠지만…….”
남궁혁은 말끝을 흐리고는 이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백선학을 죽인 도전자가 누구인지 좀 궁금해지는군.”
“그렇다는 건……?”
“수단과 방법을 최대한 가리지 않고 백선학이 어느 세계에서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구해 오면 좋겠군.”
“존명.”
그 말을 들은 후 청의무복을 입은 사내는 바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남궁혁에게 흥미를 끌은 이에게 약간의 동정심을 느꼈다.
‘누군지는 모르겠어도 공자님한테 걸릴 줄이야…….’
본래 남궁혁은 꽤 강한 이들을 부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무골 중의 무골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는 도전자가 백선학을 죽였으니 그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었다.
무림에서는 남궁혁도 남궁세가의 입지 및 정치적 물의를 일으킬 것을 생각해서 손쉽게 움직일 수 없지만…….
‘시련의 탑, 하물며 그것도 다른 세계의 도전자라고 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오랜만에 남궁혁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 도전자는 곧 색출되어 계층 난입의 희생자가 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청의무복을 입은 사내는 집무실에서 빠져나오며 슬며시 중얼거렸다.
“꽤 오랜만에 시련의 탑에서 혈겁이 일어나겠군.”
창천검룡(蒼天劍龍) 남궁혁(南宮爀).
남궁세가의 검룡이 5년 만에 직접 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권능을 승리 보상으로 올린 후부터는 결투의 연속이었다.
투기장에 있는 도전자들은 내가 건 명경지수의 권능을 보고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한 번씩은 결투를 신청해 왔다.
그런 만큼 이것저것 습득한 스킬들도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나는 스킬 합성에 소모할 스킬을 꽤 모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제 이름도 꽤 알려졌고 권능 낚시인 걸 알았는지 웬만한 도전자는 아예 결투 신청도 안 하게 됐지만.’
권능 낚시도 몇 번을 하다 보니 도전자들의 결투 신청도 곧 멈췄다.
이쯤 되니 내가 권능을 내 주지 않을 수준의 실력자임을 깨달은 것이다.
“아쉽네.”
직접 실명까지 알려 가며 결투 신청을 받은 것인지라 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킬을 꽤 많이 습득한 만큼 본전은 다 뽑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거랑 별개로 더 단물을 빨아먹지 못하게 된다는 건 힘드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투기장을 더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여깁니다.」
철혈의 군주 또한 투기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이제껏 투기장에서 습득한 스킬의 수는 탑을 올라오며 흡수했던 스킬들과 비슷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내 나는 더 투기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여 바로 투기장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건 좀 신선한데?”
바깥에 나온 나는 짙은 어둠이 깔린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설마 공용 구역이란 곳에도 밤이 존재했을 줄이야.
늘 낮일 줄만 알았던 것과는 다르게 현재 공용 구역의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별빛들은 어둠 속에서 존재감을 뿜어대고 있었다.
‘뭐, 아예 낮인 것보다는 이런 것도 꽤 괜찮네.’
그런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투기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했으니 공용 구역에 무엇이 있는지나 좀 더 살펴볼 요량이었다.
경매장, 도박장, 거래장 등등…….
공용 구역에는 꽤 많은 시스템이 있다고 들었지만, 솔직히 내가 거기까지 다 살펴볼 여력은 없다.
당연했다.
‘투기장에서 싸운 것만으로도 몸이 지쳤으니 굳이 보고 싶지는 않을 수밖에.’
두 자릿수를 넘어가는 격전을 치렀으니 몸도 이제 더 못 움직이겠다고 호소할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경매장이니 도박장이니 하는 곳들을 모두 살펴보고 그 안에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탐색하는 건 고역 중의 고역이다.
‘그냥 적당히 살펴보기만 해야지.’
그렇게 각 잡고 볼 것도 없이 설렁설렁 공용 구역을 구경하는 식이다.
그 이외에 뭐 따로 생각해 둔 것도 없었기에 나는 천천히 광장을 돌아다녔다.
도전자들끼리 서로 얘기하고 교류하는 것이 공용 구역의 거리에서는 매우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부터 공용 구역은 도전자끼리 교류하라고 만든 곳이지 투기장 및 경매장 같은 곳만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나처럼 투기장에서 죽치고 싸움만 한 게 더 이상한 거겠지.’
그렇게 천천히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실명도 알려졌으니 현실에 돌아가면 나도 좀 곤란해지겠네.”
본래 결산 순위의 상위권에 있던 랭커였던 ‘사냥꾼’은 조심성이 많은 탓에 제대로 얘기하지도 않는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제 그 얘기도 사라지겠네.’
어쩌면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실컷 떠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귀찮음이 몰려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악영향을 끼칠 수는 없겠지.’
내가 누구인지 알아냈다고 해서 나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나는 약하지 않았고 본래 상정했던 것보다도 더 강해졌다.
본능적으로 탑을 더 오르고 싶은 마음에 미친 듯 여기까지 올라온 덕분에 그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다.
“…….”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았다.
살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고 강해진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도 알게 되었다.
7년간 멈춰 있던 시간이 제대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듯 이 탑에 있을 때마다 나는 미친 듯이 성장했고.
그 덕분에 현재 나는 뭘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강해져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도록 강해져야 해.’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경멸받고 무시당하는 것은 아예 겪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비참했고 무력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깨달았다.
이 탑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무력한 이들은 강한 이들에게 짓밟힌다.
내가 온갖 이들에게 플레이어답지 않게 약하다는 것을 이유로 멸시받았듯 이 탑에서는 약한 것은 곧 죽음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는 건?
‘결국,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만 한다는 거지.’
이제는 강해지기 위해서 탑을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명확한 목표가 없이 탑을 올랐다면 이제는 확실히 왜 탑을 올라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무력하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춰야 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력이 절실했다.
어렸을 적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지금처럼 강했다면 그때 부모님은 돌아가지 않았을 테고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 계셨겠지.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약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모든 걸 잃었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인 만큼 더 무언가를 잃고 멸시받는 것은 진저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예전처럼 되지 않으려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어.’
그리고…….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계약자가 묵묵히 걷는 것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묵묵히 고민하며 걷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관리자 ‘검은 악마’가 쓸데없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는 건 지루하다며 하품합니다.」
일단은 그러기 위해서는 이 ‘관리자’라는 이들이 어떤 생각인지도 알아내야 했다.
‘온갖 권능을 습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관리자는 성장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지.’
만약에 더 많은 관리자에게서 환심을 사고 그들에게서 권능을 후원받을 가치를 증명한다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대기실로 돌아가야겠지.’
이제 공용 구역에서 벗어나서 강해질 준비를 해야 할 차례였다.
투기장에서 습득한 모든 스킬을 합성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