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71
070. 10층의 시련 (1)
「10층 시련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3시간」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안에 보스 몬스터를 협력하여 토벌할 것」
「시련 실패 조건 – 팀원 전멸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스킬 숙련도 상승 물약(B+)」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허공을 수놓는 메시지들을 본 나는 이내 힐끗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연상케 만드는 들판을 달빛이 환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토벌 시련임에도 불구하고 적이 없는 걸 보니 곧 팀원이 등장한 후에야 적이 출현한다는 것임을 나는 바로 눈치챘다.
그리고…….
「결산 순위에 따라서 팀원이 배정됩니다.」
「팀원이 배정된 후 30분 동안의 유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예 시간 동안은 남은 시간이 흐르지 않으며 온전히 도전자들 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최대한 협력심을 마련하여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십시오.」
“생각했던 것처럼 됐네.”
흡사 내가 생각한 것이 정답이라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팀원의 배정을 끝냈습니다.」
「배정된 팀원의 결산 순위가 나열됩니다.」
우우웅……!
살짝 떨어진 곳에서 세 개의 포탈이 생성되며 그곳에서 도전자들이 나타났다.
「결산 순위 1위, 김승훈.」
첫 번째로 나타난 건 검은 가면을 쓴 채 오함마를 어깨에 얹은 도전자였고.
“또 통합 시련인가……. 귀찮게도 구는군.”
「결산 순위 2위, 오춘석.」
두 번째로 나타난 건 비쩍 마른 체격에 비굴한 얼굴이 인상적인 도전자였으며.
“어? 뭐야, 승훈 형님도 탑 오르고 있었어요?”
「결산 순위 6위, 혜디공듀」
마지막 세 번째로 나타난 것은 빨간 정장을 입은 기괴한 차림의 도전자였다.
“오……. 하하, 다들 랭커시네요. 반갑습니다.”
모든 팀원이 나타난 것인지 그 뒤로는 더 포탈도 나타나지 않았고 결산 순위도 나열되지 않았다.
“…….”
그런 그들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결산 순위에 따라서 팀원들이 배정된다더니…….’
설마 한국 서버의 결산 순위의 최상위권에 있는 도전자들이 다 나타날 줄이야.
그에 내가 놀라움을 느끼고 있을 때 김승훈이 검은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30분의 유예 시간 동안 따로 할 말은 없을 것 같군.”
살짝 오만한 태도였지만 그의 말에는 이런저런 뜻이 담겨 있음을 나는 단숨에 알아챘다.
여기까지 올라온 만큼 다들 서로 알아야 할 것은 별로 없을 테고 시련만 제대로 클리어하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결산 순위 1등이란 것은 그냥 달고 있는 건 아닌지 상황 판단도 빨랐고 적절히 선을 그을 줄 알았다.
검은 가면을 쓴 것도 그렇고 오함마를 들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전투력에 관해서도 말할 것도 없이 현재 탑의 도전자 중에는 최상위권을 달릴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하긴, 그러니 1등인데도 당당히 실명을 내놓고 다니겠지.’
그때였다.
“어……. 저도 승훈 형님의 말에 동감합니다. 별로 얘기를 나눌 건 없을 거 같네요.”
뒤늦게 그런 김승훈의 말에 오춘석도 동감한다며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결산 순위 2위처럼 보이지는 않네.’
생각했던 것이랑은 다르게 살짝 순박하다고 해야 하나?
아예 자기주장이란 것을 하지 못할 것처럼 생긴 그는 결산 순위에 걸맞지 않게 좀 더 소심한 인상이었다.
가끔 채팅창에서 일반인 출신 중에 유일한 랭커니 뭐니 떠들던 것을 봤는데 그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하긴, 다들 랭커시니 알아서 행동할 수 있겠죠. 이견은 없습니다.”
끝으로 혜디공듀라는 닉네임을 쓰는 도전자 또한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의외로 결산 순위가 높아서 그런지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네.’
6층 통합 시련 때처럼 혹은 공용 구역에서처럼 미친 듯이 싸우려고 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정도까지 인격이 마모된 사람은 없는 것 같고 하나 같이 시련만 깨면 된다는 마인드인지라 내게는 꽤 좋은 상황이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의외로 무난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쓸데없는 평화로움에 입술을 삐쭉 내밉니다.」
물론 시련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관측하기 시작했는지 바로 메시지를 띄우는 두 관리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동의합…….”
그렇게 안도감을 느끼며 이내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견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여러분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뜬금없이 혜디공듀가 내가 하던 말을 끊고 다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설마 다들 시련 테마가 [협력]이라고 다 조용히 있기만 할 겁니까?”
그 말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은 검은 가면을 쓴 김승훈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설명해 보라는 듯이 눈초리를 보내는 그에게 혜디공듀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시련 테마는 확실히 [협력]이기는 합니다. 서로 도전자끼리 뭉쳐서 보스 몬스터를 물리치면 될 뿐인……. 예, 경쟁이 아닌 테마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다음에 있을 시련도 똑같을 것 같습니까?”
그에 오춘석은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음……. 그렇지는 않겠죠. 시련의 탑은 매번 시련 테마가 바뀌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방금 떠오른 메시지를 보셨습니까?”
“……?”
“결산 순위에 따라서 팀원이 배정된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 말은 곧 이제부터는 통합 시련도 결산 순위에 따라서 그 수준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모르겠습니까? 다들 잠정적 경쟁자나 다름없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오춘석이 눈을 찌푸리는 동시에 혜디공듀는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아, 물론 그게 오춘석 씨에게 해당이 되는 건 아닐 겁니다. 김승훈 씨도 그렇고요. 두 분은 서로 친분도 있는 듯하니 더더욱 그렇죠. 다른 시련에서도 서로 어느 정도 협력할 테니 두 분은 싸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혜디공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결산 순위 3위인 ‘사냥꾼’은 좀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요?”
그의 말이 끝난 후 나는 곧바로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김승준에게 있어서 남을 속이는 것은 일상이었다.
남을 속이고, 있지도 않은 사실로 다른 이와의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최선의 생존법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C급 헌터로 활동할 때까지도 그 삶의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거짓으로 팀을 분열시켜서 다 함께 나눠야 했을 보수를 다른 이가 받지 못하게 하여서 좀 더 많은 몫을 받았고.
좋은 길드에 입사할 길이 있을 시에는 같이 있던 동료를 다른 곳으로 내몰고 혼자 들어가기까지 했다.
본래 사람이란 막상 눈앞에 있는 진실보다도 다른 이에게 들은 거짓에 더 현혹되기 쉬운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다른 이들이 싸우는 것은 늘 그에게 이득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것은 시련의 탑이라고 하는 이질적인 곳에서도 통용되었다.
혜디공듀라는 닉네임을 쓰게 된 그는 커뮤니티 기능을 통해서 최대한 도전자끼리 불화가 일어나도록 하여 정보 공유를 막았고.
그 덕분에 김승준은 오랫동안 도전자끼리의 교류가 없는 것을 틈타서 통합 시련 및 개인 시련에서 크게 이득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10층의 통합 시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리자 ‘거짓된 어릿광대’가 계약자의 기만에 입꼬리를 쭉 찢은 채 웃습니다.」
혜디공듀, 아니, 김승준은 싸늘해진 분위기를 만끽하며 내심 끅끅대며 웃었다.
‘역시 이것 때문에 이 짓을 못 끊지.’
다들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쾌감이 몰려왔다.
「관리자 ‘결투의 달인’이 당신의 화술에 눈을 크게 찌푸립니다.」
「관리자 ‘기만의 구도자’가 당신의 비겁한 행동을 즐겁게 바라봅니다.」
「관리자 ‘어둠의 응시자’가 당신의 행동을 독특한 생존법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한술 더 떠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관리자들도 그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좋지 않은 쪽으로 관심을 가지는 관리자도 하나 있었지만…….
어쨌든 간에 김승준이 계약한 관리자 ‘거짓된 어릿광대’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썩 나쁘지는 않은 반응이었다.
‘좀 더 재미있게 상황을 연출하면 권능을 받을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까지 하니 들뜨는 것은 물론이고 김승준의 입까지 단숨에 가벼워졌다.
그는 힐끗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서 다른 쪽에 있는 ‘사냥꾼 한성윤’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굳은 꼴을 보니 당황한 모양이네.’
최근에 공용 구역에서 이름까지 밝혀 가며 온갖 결투를 통해서 스킬을 습득한 만큼 김승준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공용 구역에서 대뜸 권능을 내놓고, 그것을 미끼로 해서 온갖 결투를 통하여 수많은 스킬을 습득한 인물이었다.
채팅방에서 본 것은 물론이고 직접 공용 구역에서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그였기에 더 적대감을 느꼈다.
‘이 새끼는 더 놔두면 미친 듯이 강해질 놈이야…….’
만약에 좀 더 탑을 오르게 된다면 한성윤은 더 강해져서 나중에는 통합 시련에서 김승준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김승준은 되도록 이 10층 통합 시련에서 한성윤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혼자였다면 그는 한성윤에게 시비를 걸기는커녕 최대한 그의 눈치를 보았겠지만…….
“늘 채팅도 치지 않고 철저히 몸을 숨기던 ‘사냥꾼’님은 요새 꽤 유명하죠. 투기장에서 권능을 걸고 결투해서 스킬을 꽤 챙긴 건 물론이고 시련 결산의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끼어 있던 분이신 만큼 늘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현재 이 통합 시련에는 결산 순위 1등 ‘김승훈’에 더불어서 2등 ‘오춘석’까지도 함께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얼마든지 김승준이 짜는 판에 따라서 한성윤을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슬슬 스킬도 꽤 많이 수급하셨을 거 같은데……. 협동이 테마인 시련에서는 몰라도 또 다른 시련에서는 어떨까요. 승훈 씨나 춘석 씨한테 위협이 안 될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잖습니까?”
김승준은 최대한 과장된 몸짓까지 써가며 얼른 배제해야 한다는 듯 굴었다.
그러나…….
“4층 통합 시련에서 나댔던 게 너였군.”
그 말을 가만히 듣던 김승훈은 오히려 기가 찬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4층 통합 시련은 경쟁이 필수적이라고 했던 김승준인가 뭔가 하는 나부랭이였던가?”
“…….”
“그렇게 아가리를 움직이는 게 좋으면 거울이나 보고 씨부리는 걸 추천하지.”
“하하, 무슨 말을 그렇게…….”
“다른 도전자를 죽이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그걸 나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나을 거다.”
거기까지 김승훈이 말을 끝내니 오춘석도 덧붙이듯 말했다.
“어, 음……. 승훈 형님 생각에 동감입니다. 별로 그렇게까지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에서 확실히 사냥꾼을 배제할 수 있다면……!”
“근데 그거 결국에는 저랑은 상관없는 얘기인 거 같아서요.”
“……예? 그게 뭔?”
“결국, 그런 것도 확신할 수 없으면 탑을 오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
그에 김승준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관리자 ‘거짓된 어릿광대’가 계약자의 어설픔에 혀를 찹니다.」
그것을 관리자들도 감지했는지 대부분 부정적인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관리자 ‘결투의 달인’이 당신의 화술을 비웃습니다.」
「관리자 ‘기만의 구도자’가 당신의 찌질함의 결과를 즐깁니다.」
「관리자 ‘어둠의 응시자’가 당신의 독특한 생존법이 불러온 결과에 코웃음을 칩니다.」
‘씨발……. 이거 좆된 느낌인데.’
그러나 그는 애써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특별한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놈을 쉽게 죽일 수 있을 겁니다. 놈을 죽일 시 남은 장비는 다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더불어서 질문권으로 습득했던 이런저런 정보들도 다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든 한성윤을 함께 죽이는 것에 동의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말에 다들 움직이지 않은 채 김승준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럼 얘기는 다 끝난 겁니까?”
그렇게 적막함이 감도는 들판에서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던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꽤 재밌는 얘기를 하던데…….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지셔야 할까요.”
바로 한성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