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72
071. 10층의 시련 (2)
나는 당황하는 사내를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았다.
무려 결산 순위가 6위나 되는 이 사내는 4층 대기실에 있을 무렵에 보았던 이였다.
‘본명은 김승준이었지.’
그때 4층 시련의 테마가 ‘경쟁’이라고 강조하며 뜬금없이 커뮤니티를 얼어붙게 했던 장본인이란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 덕분에 살인의 충격을 살짝 대비할 수 있었지만…….
‘이제야 무슨 의도로 그렇게 시련 테마를 알려 줬는지 알겠네.’
눈앞에 있는 이 도전자는 순수한 의미에서 경쟁의 시련에 대해서 알려 준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경쟁 구도를 형성하여 자기가 최대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그랬을 뿐이겠지.
그 과정에서 내가 살인에 대비하게 됐던 것은 단순히 그가 구성했던 판을 이용하여 얻게 되었던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즉, 김승준의 개 같은 짓에 더 침묵해야 할 사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계약자에게 위해를 끼치려 한 이에게 분노합니다.」
「관리자 ‘탐식가’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의 시원한 행보를 기대합니다.」
어느새 나를 지켜보기 시작한 관리자들도 김승준을 꽤 싫어하는 것 같으니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를 바라보는 김승준을 나 또한 똑같이 노려보며 슬며시 웃었다.
“김승준 씨.”
내가 툭 건넨 말에 김승준이 움찔하며 뒤로 슬쩍 물러서는 것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방금 멋대로 떠드시던 얘기는 꽤 재밌던데요.”
협력 테마라고는 하나 나중에 서로 경쟁자가 될 수 있으니 죽여도 탈이 없는 나를 협력해서 죽이자고 했던 발언들은 흥미로웠다.
한순간은 셋을 함께 상대해서 모두 죽일 수 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해야 했을 정도로 나를 압박했던 만큼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김승준은 그랬던 것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 그건……. 제가 대화로 설명할 수 있…….”
“아뇨, 아뇨.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로 해결하겠어요.”
“…….”
“충분히 스스로 한 말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방금 그렇게 떠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거기에서 대화로 해결하자는 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뒷말을 덧붙이니 김승준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럴 만도 했다.
대부분 도전자의 전투 능력은 결산 순위에 비례하여 점점 강해진다.
그런데 김승준의 결산 순위는 6위이고 나는 그것보다 더 높은 3위라는 위치이니…….
현재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두 명의 도전자 탓에 김승준이 느끼고 있을 부담감은 심각할 것이란 걸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벌레도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발악하듯 김승준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보며 기겁하듯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기, 기다려 보세요……! 진정하고 생각해 보세요! 서로 싸운다면 손해일 뿐입니다!”
“?”
“정말로 이 뒤에 있는 두 명이 공격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습니까!?”
“…….”
“이렇게 보여도 저도 결산 순위 6위입니다. 만약에 공격받을 시에는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그러면 한성윤 님에게도 피해가 가겠죠.”
“그래서요.”
“그때 둘이 어부지리랍시고 난입해서 저희 둘을 죽인다면 그것만큼 최악의 엔딩은 어디에도 없을 거란 뜻입니다.”
그 말에 김승훈은 물론이고 오춘석까지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김승준은 그것을 힐끗 보고도 아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둘이 싸워서 힘을 빼도 10층 시련까지 감내해야 하니 한성윤 님에게도 좋은 건 없겠죠. 틈을 타서 둘이 공격할 수도 있을 테고. 그것이 아니라도 10층 시련이 생각보다 더 강력해서 몸에 누적된 부상 때문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
더 듣고 있기 역겨운 말들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결국, 제가 큰 미지를 받는다는 가정 하에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
“고작 정치질밖에 못 하는 놈을 상대로 크게 데미지를 받고 그 탓에 다른 도전자들한테 견제까지 받게 된다니.”
지나가던 개새끼도 웃고 지나갈 얘기밖에 안 되겠는데요.
그렇게 내가 이죽거리듯 말하니 김승준도 슬슬 감이 왔다는 듯 전투태세를 취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뜬금없이 보랏빛의 기운을 퍼뜨리는 책이 나타났다.
인벤토리에서 본격적으로 싸움을 대비해서 아이템을 꺼낸 것이다.
촤라락……!
김승준의 오른손에 붙잡힌 책이 스스로 펼쳐지며 점점 강렬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비릿한 웃음까지 지으며 아예 그나마 있던 예의까지 싹 없앤 채 바락바락 외치기 시작했다.
“씨발 새끼가……. 좋게좋게 말하니 실감이 안 되나 본데 너만 한가락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이제 한가락 하……!?”
그러나 김승준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한 채 경악하듯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캐서린 베넷과의 결투에서 한 단계 성장한 순간 가속이 활성화되며 본격적으로 내가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늪지 정령의 바람이 사용자의 발을 휘감습니다.」
「일시적으로 마력을 사용하는 가속이 봉인됩니다.」
김승준 또한 그냥 탑을 올라온 것은 아닌지라 곧바로 위협적이라 판단된 내 발을 봉쇄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이미 이런 쇠약류 능력에 대해서는 다 대비된 지 오래였다.
「스킬 ‘항마력’이 활성화됩니다.」
「늪지 정령의 바람이 완전히 소멸합니다.」
강제 돌파 같은 스킬까지 갈 것도 없이 곧바로 항마력만으로 곧바로 빠르기를 되찾았다.
“아니, 이런 뭔 미친 항마력이……!”
김승준이 불만을 토해 내는 동시에 나는 바로 놈의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꽈드득.
그 앞에 도착한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김승준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일단 바로 검을 날리지 않은 것은 김승준이 숨기고 있는 패를 까 보기 위해서였다.
만약에라도 검을 막은 후 그 틈을 타서 공격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까다로운 일도 없을 테니.
쾅……!
발이 꽂힌 곳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며 김승준의 몸이 뒤로 날아갔지만…….
“끄, 끄허어억……!”
겉으로 보기에는 살짝 충격을 받아 보였어도 실질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큰 데미지를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뒤로 날아간 김승준은 바닥에 쓰러지지도 않은 채 끙끙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김승준이 좀 추하게 침을 질질 흘리고 있어서 저런 눈빛을 받아도 별로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발끝에 남은 감각은 또렷하게 무언가를 꿰뚫고 파괴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멀쩡한 걸 보니 따로 무슨 수를 쓴 모양.
‘빨간 정장 같은 걸 왜 입고 있나 했더니만 역시나 아이템이었네.’
예상 범위 내의 상황이었기에 별로 당황하지는 않았다.
보호 계열의 아이템인데 직접적인 충격을 완화해 주는 것은 아닌 듯했다.
발로 찼을 때 무언가 꿰뚫고 공격했다는 느낌을 받는 걸 보니 따로 공격받을 시 보호막을 생성해서 그 충격을 흡수하는 아이템인 거 같은데…….
‘바로 검을 날렸으면 보호막에 잠깐 막혔을 수도 있겠네.’
오히려 짧게 공격하고 빠졌기에 상대방이 무슨 패를 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나보다 약하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결산 순위 상위권의 도전자임은 확실한 상황에서 김승준의 능력을 파악하는 건 중요했다.
그러나…….
물론 몸을 보호하고 있는 부류의 능력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더 망설이지 않았다.
방금 발차기는 적당히 봐주면서 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갈비뼈는 부러뜨릴 요량으로 했던 공격이었다.
전투에서 뼈가 부러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방어 수단은 모두 썼을 터다.
그렇다는 것은 곧 방금 펼쳤던 공격을 막느라 썼던 보호 계열 능력이 김승준을 보호해 주는 수단의 전부라는 거나 마찬가지.
‘이게 방어 수단의 전부라면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지.’
그에 나는 좀 더 짙은 웃음을 지으며 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4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4/7」
파아앙……!
순식간에 발동된 바람의 은총이 발을 좀 더 가속시키며 몸이 산들바람처럼 움직였다.
굳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도전자가 있는 만큼 나중에 김승준이 말했듯 두 번째 전투까지 번질 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 속력이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이라고 착각하도록 해야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도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김승준은 한 대 얻어맞고 나더니 이제는 아예 그런 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바로 전력을 전개했다.
“씨이바아알……! 뒈져, 이 개새끼야……!”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악의만큼은 또렷하게 드러내며 오른손에 책을 쥐고 왼손을 내뻗은 순간.
김승준의 왼팔에서 뇌전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폭력적인 속도로 아예 전방을 감싸듯 쇄도하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지직……!!
‘서로 싸우고도 멀쩡할 수 있겠냐고 하더니만 그렇게 말할 만도 했네.’
아예 공간을 집어삼키듯 쇄도하는 푸른 사슬을 보고 있자니 김승준이 했던 말들이 아예 허세인 것 같지는 않았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뇌전의 사슬에는 닿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합니다.」
「관리자 ‘탐식가’가 당신의 전투를 흥미롭게 관전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이 검술을 뽐내기를 기대합니다.」
지켜보던 관리자들 또한 그걸 알고 있는지 내게 툭툭 메시지를 던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뇌전을 보고도 그다지 큰 위기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 ‘반격의 방패’가 활성화됩니다.」
지금 같은 상황을 나는 미리 대기실에서 대비해 뒀기 때문이다.
키이잉.
왼팔을 내밀며 스킬을 발동하니 손바닥의 너머로 붉은빛이 감도는 커다란 방패가 펼쳐졌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김승준이 내뿜은 전격의 사슬은 요란하게 방패에 부딪히며 흩어졌고 그 와중에 방패로 전격이 일부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위력이 위력인지라 방패 강도를 올리기 위해서 꽤 많은 마력을 소비했지만 그만큼 방패에는 제법 충격이 쌓여 있었다.
반격의 방패는 받은 피해량을 어느 정도 흡수해 둔 후 누적된 만큼의 피해량을 반대로 반사할 수 있는 스킬이다.
즉, 방금 김승준이 전력으로 쏘아 냈던 기술을 막은 이 방패에는 김승준의 전력 중 일부가 녹아들어 있다는 뜻.
“이, 이게 무슨……. 이 기술을 이렇게 쉽게 막았다고……!?”
그런 만큼 이제 뭘 해야 하는지는 뻔했다.
나는 방패의 크기를 손바닥에 딱 맞을 정도로 작게 만들고는 경악하고 있는 김승준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딱 받은 만큼만 돌려줄 테니 잘 막아 보세요.”
그리고 동시에.
「스킬 ‘반격의 방패’가 누적된 피해량을 한 번에 방출합니다.」
콰아아아아아―!
손바닥에 떠올라 있던 작은 방패에서 뇌광(雷光)이 번뜩이며 원형의 빛줄기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