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75
074. 10층의 시련 (5)
「10층 시련이 시작을 맞이합니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며 몬스터들이 출현합니다.」
「괴수 개체수가 일정 이상 줄어들 시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10층 시련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들이 떠오른 순간.
쿠구궁……!
들판의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흙이 여기저기에서 위로 솟구치며 뱀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몇 미터는 될 법한 몸집도 그렇지만 흙의 뱀이 생성되는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바로 인지한 나는 바로 천둥의 검을 꺼내든 채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 순간이었다.
「조건 충족.」
뜬금없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특수 과제, ‘공적 기여’가 시작됩니다.」
「10층 시련에 등장하는 괴수를 쓰러뜨릴 시 개체마다 ‘기여도’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서 추가적인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단, 이때 쌓이는 기여도는 개체마다 강함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쌓인 기여도에 따라서 시련 보상의 수준이 격상될 수도 있으며 이때 보상 수준은 서로 간의 기여도 순위로 결정됩니다.」
“……!?”
경쟁의 시련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특수 과제란 메시지에 나는 당황했지만…….
“이거……. 생각처럼 협동만 하는 시련은 아닌 거 같네요.”
이내 왼쪽에서 들려온 오춘석의 말에 곧 그런 감정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요. 이것도 일종의 경쟁이라고 해야 할 테니.”
특수 과제든 뭐든 간에 현재 이건 일종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10층 스테이지 안에 있는 모든 도전자가 기여도 순위에 기재되는 것을 고려하면 당황해 있을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을 오춘석도 아는지 그는 이내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뭐, 서로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알아서 잘해 봐요.”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말이 잘 통해서 좋네요.”
그렇게 말한 오춘석은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고풍스러운 고깔모자를 꺼내서 푹 눌러쓰더니 이내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만.”
짤막한 말을 끝으로 오춘석은 이내 전방으로 내달리며 뱀처럼 만들어진 흙의 괴수들에게 손끝으로 불꽃을 내뿜기 시작했다.
딱 봤을 때 마법사가 아닐까 했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오춘석은 마법 전투에 특화된 도전자인 것 같았다.
물론 적이 흙으로 이루어진 만큼 굳이 불꽃 마법을 써야 하나 싶었지만…….
꽈아아앙―!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오춘석의 불길에 닿은 흙의 뱀은 모조리 산산이 터져 나갔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퍼지는 불꽃이 괴수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을 보니 대량 학살에 특화된 전투법인 모양.
괜히 결산 순위가 높은 것이 아님을 느끼는 와중에 여태껏 가만히 있던 김승훈이 커다란 오함마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야, 저거.”
김승훈의 전투가 시작되는 동시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파지지지직……!
김승훈의 몸에서 뇌전이 흘러나오더니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심상치 않은 광경을 연출하기 시작한 순간.
팟―.
곧바로 김승훈의 신형이 바닥을 으스러뜨리며 잔상만이 눈에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펑! 펑! 펑!
김승훈의 주변에 있던 흙의 뱀들은 이동 경로에 남는 잔상이 사라지는 찰나에 바로 그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그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상위권 도전자.”
소위 랭커라 불리는 최상위권 도전자의 순수 무력이었다.
혹시나 이계의 도전자 같은 것보다도 못한 건 아닐까 싶었는데…….
김승훈이나 오춘석의 전투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은 아예 싹 사라졌다.
“재밌네.”
점령전 같은 하위권 도전자들과의 경쟁보다도 이런 시련이 더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 또한 천둥의 검을 꽉 쥔 채 몸을 움직였다.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4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4/7」
파아앙……!
바람을 가르는 동시에 흙의 뱀들이 모인 중심지에 도착한 순간.
나는 짙은 웃음을 머금은 채 놈들의 그림자가 뻗친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스킬 ‘은밀한 그림자의 걸음(C+)’이 활성화됩니다.」
「생명체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상태입니다.」
「일시적으로 근력이 +3 상승합니다.」
새롭게 얻은 스킬을 활성화하며 이내 손에 쥔 검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이 활성화됩니다.」
백학검선에게 후원받았던 검기(劍氣)를 바로 활성화시키고.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거기에 더해서 무림맹 대원로 백무학의 사령을 흡수하며 습득한 섬전검기를 뒤섞은 후.
「스킬 ‘광란의 검극(C+)’이 활성화됩니다.」
「도검류 공격 속도가 2%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1/10」
공격 속도까지 올리며 곧바로 눈앞에 있는 뱀의 목덜미를 깔끔히 썰었다.
「암사(巖蛇)를 처치했습니다.」
「기여도를 1 획득합니다.」
「현재 도전자 한성윤의 기여도 순위는 최하위입니다.」
눈앞에 기여도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서걱―!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발을 재빨리 놀리며 내게 공격을 감행하는 놈들의 뒤로 돌아가서 ‘은밀한 그림자의 걸음’을 활성화한 채 검을 휘둘렀다.
콰직! 서걱! 퍼걱!
그 일련의 과정을 10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몇 번을 반복하며 나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아직…….
아직이다…….
이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1등을 차지하려면 이걸로는 안 돼.’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물 흐르듯 끊기는 구간이 없이 사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기여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뇌리에 각인하듯 되뇌고는 지면을 박찼다.
본격적인 사냥의 시작이었다.
***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한성윤의 모습을 보며 철혈의 군주는 슬며시 웃었다.
“역시 내가 고른 계약자라고 해야 하나…….”
홀로그램 화면 너머에서 한성윤은 흡사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흙의 뱀들을 처치해 가며 더 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정말로 즐겁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철혈의 군주는 한성윤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아직 시련의 탑이 정착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구 차원에서도 몇 되지 않는 최상위권 도전자였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관리자로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차원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귀중한 인재야.”
탑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알아챈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 결국에는 탑을 오르지 않으며 도전자로서의 길을 포기한다.
혹은 탑을 오르더라도 리스크를 아예 짊어지지 않을 정도로 준비하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 후에야 오른다.
그것이 시련의 탑에 막 들어선 이들이 보이는 가장 정석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철혈의 군주의 눈으로 본 한성윤은 그런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성장 욕구.
시련의 탑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차원에서도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탑을 성장 욕구란 것 하나만으로 올라왔다.
오로지 성장만을 바라보는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
그것은 10층 시련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김승준에게서 모든 아이템을 앗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부족하다는 듯 특수 과제까지 1위로 클리어하려고 하고 있었다.
공적 기여도 1등에게만 주어진다는 특별한 보상을 쟁취해 내기 위해서.
섬전의 검기를 칼날에 두른 채 여기저기에 참격을 날리는 한성윤의 모습은 검귀(劍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혈의 군주는 한성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신기한 도전자라고.
“이거……. 옛날이 떠오르는군.”
한때 철혈의 군주 또한 저렇게 강함만을 추구하며 싸워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탑을 오르던 이들을 모조리 추월하여 검만을 들고 미친 듯 싸웠던 나날들.
그 시절의 그녀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철혈의 군주였다.
물론 그것도 탑의 끝자락에 가까워지며 죽음을 맞이하여 끝이 났다지만…….
한성윤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계약자로 골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에 다른 이들에게 한성윤의 첫 계약을 뺏겼다면 이제껏 계약에는 관심이 없던 철혈의 군주라 해도 상심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 미친 성장력을 지닌 도전자가 내 계약자란 말이지…….”
결국, 탑은 한성윤의 계약을 철혈의 군주에게 이관했고 그 덕분에 철혈의 군주는 한성윤과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 부분만큼은 철혈의 군주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도전자에게 있어서 [첫 번째 계약]이란 것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했다.
11층 대기실부터 해금되는 시스템으로 계약한 관리자에게서 본격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그때 확장되는 기능 중 하나인 도전자의 추가적인 관리자 간의 계약 또한 철혈의 군주가 어느 정도 간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만 간섭할 수 있고, 결정은 도전자가 하는 것이므로 철혈의 군주 또한 긴장되는 시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백학검선까지 한성윤한테 눈독을 들이는 거 같던데…….’
첫 번째로 계약한 관리자라 해도 도전자의 선택에 따라서 그 중요도가 달라질 수도 있는 법.
관리자는 계약한 도전자의 성장도에 따라서 탑에서 혜택을 받는 만큼 중요도에서 밀릴 시 관리자는 도전자를 육성하며 얻는 혜택이 줄어든다.
그런 만큼 그녀는 11층 대기실 이후부터의 일들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계 도전자들에게 있어서 백학검선은 거의 전설로 취급되는 인물이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요새 기웃거리는 탐식가도 칼리안에는 꽤 추종자들이 많았다.
여러모로 첫 번째로 계약한 관리자라고는 하나 다른 관리자들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이점이 적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
적어도 성장 욕구가 큰 한성윤은 그렇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른 관리자들과도 계약해서 권능을 획득하고 그것들을 토대로 강해지려고 하겠지.
철혈의 군주가 지닌 권능은 모두 활용도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구하기 힘든 만큼 더 그랬다.
분명 이번 시련을 돌파한다고 해도 획득하는 SP로는 질 좋은 권능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1층부터는 좀 달라질 것이다.”
무림이든 칼리안이든 아레스든…….
어느 차원의 관리자든 간에 그녀가 준비해둔 [선물]을 따라올 수는 없다.
이번에 탑에게 큰 제약까지 감내하며 한성윤을 위해서 준비한 것은 다른 도전자들은 지금 시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후원이다.
그러니…….
분명 성장만을 바라보는 한성윤은 그녀가 준비해 둔 [선물]을 본다면 다른 관리자들을 더 우선할 리는 없을 것이다.
“백학검선이든, 탐식가든, 열심히 해 보라고들 하지.”
두 번째든 세 번째든 관리자들이 더 몇 명이나 계약해도 이제 그녀에게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성윤은 나를 고르게 될 것이다.”
스스로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