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8
007. 두 번째 시련 (4)
의외로 오크 보초병을 죽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강화된 능력치도 능력치였으나 오크 보초병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행동했다.
잔류 병력이라지만, 어이없이 공황 상태에 몰렸고.
그렇게 패닉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의미도 없이 죽었다.
하지만…….
「오크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현재 보유한 사령의 수 – 1/5」
「숙련도가 7% 상승합니다.」
“흐억, 흐어억.”
패닉에 빠져도 오크는 오크였고 나는 나였다.
간신히 모든 공격을 막고 피하며 오크 보초병의 목에 검을 꽂은 상황.
「스킬 ‘고속 재생’이 활성화됩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작은 상처들은 어느새 아물었다.
‘고속 재생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
체력이 빠져나가며 몸에 새겨졌던 검흔(劍痕)이 빠르게 사라진다.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이제야 고속 재생의 메커니즘을 파악했다.
말 그대로 고속 재생은 자잘한 상처들을 체력을 소모해서 회복시키는 스킬.
물론 치명상은 재생할 수 없는 만큼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정도면 다시 싸울 정도는 되지.’
재생의 물약이나 체력의 물약 같은 것들은 쓰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아직은 소모해 봤자 낭비밖에 안 되는 셈.
나중에 좀 더 궁지에 몰리면 쓰는 걸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랬다.
나는 간신히 숨만 고른 채 몸에 흘러들어오는 사령을 능력치로 치환했다.
「보유한 사령을 사용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2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3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4 상승했습니다.」
「현재 보유한 사령의 수 – 0/5」
일꾼 오크와는 다르게 오크 보초병의 사령을 흡수하니 체력 능력치도 올랐다.
덕분에 고속 재생에 소모된 체력은 다시 채워졌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몸이 한결 가벼워지니 또 다른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근력이 상승하는 폭이 좁아졌네.’
어째서 그런 것인지 정도는 손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슬슬 최저한도의 능력치를 벗어나며 능력치 상승도 더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이 꽤 달가웠다.
그만큼 내가 인간의 한계선을 벗어나며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거니까.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검과 방패를 손에 꽉 쥔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잠깐 사이에 또 불이 번지며 빠져나갈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이제 바깥으로 나섰던 오크 사냥꾼들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온다고 해도 꽤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빙빙 돌아서 와야 할 테고.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거 같지만.”
나 또한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외길에 들어섰음을 인지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오크를 2마리 정도 흡수했다는 것.
‘오크 보초병까지 죽였으니 원래 계획보다 더 좋은 상황이야.’
본래는 능력치가 훅 오르며 느껴질 괴리감을 걱정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도 몸에 큰 괴리감은 들지 않았다.
‘아직은 그렇게까지 능력치가 상승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어찌 되었건 간에 나쁘지는 않은 상태다.
신체의 괴리감이 컸다면 이대로 죽었어야만 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숨을 다 고르고 자세를 다잡은 순간.
“취, 취이잇! 취익! 취이이익!”
“취, 취췻? 취이이이이잇!”
“취이이이이이익!”
목책의 입구에서 안쪽에 남아 있던 오크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목책의 너머까지 번진 불길이 영향을 준 것이다.
무리의 중심에는 늙은 오크가 호위를 받듯이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히 저놈이 오크 족장이겠지.’
오크들도 위험하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활이나 투박한 돌칼 등을 들고 있는 상태.
‘하긴, 그렇게 험하게 싸웠는데 안에서 모를 리가 없지.’
그랬다면 오히려 내 쪽에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 나와 주면 내가 다 고맙지.’
적의 숫자는 대략 5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전투와 관련된 작업을 맡던 놈은 한 마리뿐.
오크 보초병을 제외하면 다들 활이나 칼을 들고 있어도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그렇기에…….
타다닷!
나는 오히려 이 혼란을 틈타서 몸을 잽싸게 날렸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치가 어느 정도 상승한 지금이라면…….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거라는 확신이.
“취, 취이이이이잇!”
그때 앞에 있던 오크가 들고 있던 활의 시위를 당기며 날 겨냥했다.
쐐애애애애액!
빠르다.
활을 다뤄 본 적이 있는지 정확하게 화살이 머리통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온다.
능력치가 상승했다고는 해도 쉽게 피하기 힘든 수준.
그러나 포인트를 들여서 산 방패는 괜히 들고 있는 게 아니다.
팅!
“취, 취이이이잇?”
슬쩍 들고 있던 방패를 위로 올리니 화살이 무력하게 튕겨 나간다.
활을 든 오크는 당황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바로 활을 든 오크의 목젖에 칼을 내밀었고 놈의 목이 무력하게 잘렸다.
“취이이이이이이잇!”
“취이이이이이익!”
그 옆에 있던 오크들이 즉시 반응하며 칼이나 창을 내찔렀지만 무의미했다.
뻔하고, 정직하며, 어설프다.
칼과 창의 목표 지점마저도 막기도 쉽게 똑같은 심장부였다.
둘 다 연계라고는 조금도 안 되는 모습.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방패의 위치를 위로 조정한다.
일꾼 오크들은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으며 그저 신체 능력만 믿고 달려드는 놈들뿐.
터어엉!
반면 나는 초보자 딱지만 겨우 뗐다곤 해도 무기술을 7년이나 연마했다.
그러니 공격을 막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취, 취이익!”
내지른 공격이 튕겨 나가니 오크들이 화들짝 놀랐다.
전투 경험이 없는 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괴수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었다.
스콰악!
창과 칼이 방패에 막히며 튕겨 나가는 순간에 검을 휘둘렀다.
무기의 반동으로 인해서 무방비해진 오크의 살가죽에 일직선의 붉은 선이 그어진다.
푸화아아악!
뱃가죽이 갈라지며 그 틈새로 오크의 내장이 활어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도 나는 별다른 감상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따위의 감상을 느껴도 될 상황이 아니었다.
창을 든 오크는 마무리했어도 칼을 든 놈은 아직 살아 있는 상태.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감상은 사치일 뿐이다.
‘침착하게만 하자, 침착하게.’
더 무리해서 파고들 필요도 없이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고는 뺨에 튄 핏물을 적당히 닦아 내고는 남은 오크에게 돌진했다.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 줬다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수법.
전투에 능하지 않은 괴수는 제대로 대응조차 할 수 없다.
그제야 뒤쪽에 있던 오크 보초병이 족장의 호위를 포기했지만…….
이제 와 그런다고 해서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서걱!
그렇게 일꾼 오크의 목을 쩍 가른 순간.
어느 샌가 다가온 오크 보초병이 분노한 듯 괴성을 내질렀다.
“취이이이익!”
오크 보초병의 외침과 그 두 눈에서 번들거리는 살기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일도양단.
방패째로 내 몸을 갈라 버리겠다는 듯 들고 있던 대검을 내리친다.
핏줄이 솟은 놈의 근육을 보며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E등급의 방패가 부서질 수도 있음을.
물론 부서지지 않는다면 그저 대검에 찍히는 정도일 테지만.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방패기에 왼쪽 손목이 부러질 수도 있다.
그렇게 왼손이 박살이 난 후에 제대로 싸울 수는 있을까?
아니, 단언컨대 그럴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기에 이를 악물었다.
‘막을 수 없다면 흘리면 돼……!’
단숨에 방패를 비스듬하게 기울여서 대검의 날이 흘러내리도록 조절한다.
예전이었다면 낮은 능력치 탓에 실패했을 기술이나 이제는 아니다.
끼기기기기긱……!
“취, 취이이익!?”
흘러내리는 대검 탓에 비틀거리는 오크 보초병의 복부에 검을 쑤셨다.
푸우욱!
가죽으로 된 갑옷이 순식간에 뚫리며 핏물을 쏟아 낸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검을 빼내어 휘둘렀다.
촤아아악!
빠르게 연계된 공세에 오크 보초병은 배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섰다.
“취… 이이익…….”
뚝뚝 끊기는 울음과 함께 오크 보초병의 무릎이 땅에 맞닿는다.
쿠웅.
그대로 땅에 엎어지려는 오크 보초병에게 나는 다시 검을 내리찍었다.
방심하지 않고 제대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제야 질기게 살아 있던 오크 보초병이 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남은 것은 2층 시련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오크 족장뿐.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다음 목표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취, 취이이익! 취, 취이익!”
오크 보초병의 죽음에 족장은 공포에 질린 채 지팡이를 꽉 붙들고는 입을 달싹였다.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 끝난 직후.
화르르르르륵-!
오크 족장의 눈앞에 거대한 불덩이가 떠오르며 맹렬히 타올랐다.
그제야 나는 오크 족장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오크 보초병이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던가 했더니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오크 족장을 지키기 위함.
즉, 아까 상대했던 오크들을 방패로 사용해서 영창을 완성한 것이다.
마법사만 살아 있으면 얼마든지 화력을 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들도 이렇게 전멸할 줄은 몰랐기에 형성했던 진형일 터였다.
하지만.
그 진형 덕에 지금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아니, 제일 노회한 오크 사냥꾼이 족장이 되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이례적인 경우였다.
‘무슨 오크 주제에 마법사인데……!’
그렇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파아앙-!
곧바로 나는 쏘아지는 불덩이를 향해서 방패를 내밀며 몸을 움츠렸다.
최대한 몸을 불덩이의 범위에서 내빼기 위함.
그러나 그러한 전략은 크게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콰아아앙!
방패에 전해지는 충격과 함께 시야가 붉게 물들고.
“끄아아아아……!”
온몸의 피부가 지글거리며 무언가 타는 냄새가 역하게 올라온다.
그럼에도.
“끄으으으으……!”
나는 무너질 것 같은 정신을 꽉 붙들며 자세를 유지했다.
산 채로 불에 구워진다는 게 이리도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차라리 지글거리는 살점을 내 손으로 벗겨내고 싶을 정도.
눈이 까뒤집히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앞으로 조금씩 전진했다.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업적 ‘불을 견디는 자’를 달성했습니다.」
「스킬 ‘화상 내성(F)’이 생성됩니다.」
무슨 메시지가 울리는 듯했으나 도저히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온몸이 지져지는 고통은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나를 몰아갔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치이이이익.
“끄허억. 끄, 끄흐억.”
오크 족장의 마법을 내가 견뎌 냈다는 것.
상체를 가렸던 방패를 내리며 나는 오크 족장을 노려보았다.
반쯤 무너진 방패의 너머로 본 오크 족장은 아연실색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최대한 살의를 담아서 말했다.
“……뒈졌다, 너는.”
피부가 끓어올라서 의식이 끊어질 것 같은데도 그 말만큼은 또박또박 뱉을 수 있었다.
언어를 초월한 감정이 느껴졌는지 오크 족장이 공황에 빠진 채 뒤로 주춤거렸다.
“……!”
그러나 오크 족장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경악했다.
“취, 취취췻!”
광활했던 숲이 전부 불에 뒤덮여서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추레한 마법사의 눈에 어렸던 희망이 빠르게 식어간다.
나는 터덜터덜 오크 족장의 앞까지 걸어가서 검을 치켜들었다.
지팡이를 든 오크 족장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부들거렸다.
공포에 집어 삼켜진 것이다.
“취, 취이이잇.”
콰지지지직!
오크 족장의 허탈한 단말마가 울려 퍼지며 그의 머리가 쪼개졌다.
그리고 동시에 메시지가 연이어서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시련의 탑 2층을 돌파하셨습니다.」
드디어 2층 시련이 끝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