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80
079. 비원 (2)
찬란히 빛나는 시스템 메시지가 이내 종적을 감추는 순간.
“…….”
납덩이가 심장에 얹히는 거 같은 감각이 일며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권능 ‘철혈의 검(A-)’이 영혼에 각인됩니다.」
철혈의 검(A-).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을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소환할 수 있는 권능이 손에 들어왔다.
내가 획득한 철혈의 검은 검술 실력 및 마력 수준에 의해서 소환되는 검의 능력 또한 결정되는 권능이었다.
그런 만큼 평범히 계약자 전용 상점에서 구매하려 했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샀어야 했을 게 분명했지만…….
‘그렇게까지 기쁘지는 않네.’
생각보다 더 좋은 능력이 손에 들어왔음에도 의외로 나는 담담했다.
10층 시련에서도 그렇고 여러 차례 많은 보상을 획득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 같았다.
좋은 패가 손에 들어와서 기분이 좋은 정도의 감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 이상의 동요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탓일까?
“……설마 제일 안 좋은 권능이 나온 건가?”
앉아서 나를 지켜보던 철혈의 군주가 눈을 부릅뜨며 그렇게 물음을 건네 왔다.
물론 그녀의 생각처럼 좋지 않은 권능을 뽑은 건 아닌지라 이내 고개를 저었다.
“딱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권능이 뽑혔습니다.”
“……?”
“철혈의 검을 얻었습니다.”
“그건……. 엄청나군.”
철혈의 군주는 이내 안심했다는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철혈의 검은 소싯적에 나도 즐겨 쓰던 능력이다. 검술 스킬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마력이 상승할수록 검도 점점 더 강해지지.”
시전자의 성장에 맞춰서 점점 더 강해지는 능력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내가 예전에 봤을 때는 꽤 좋은 옵션이 많았다.
“그리고 따로 검에 관련된 아이템을 살 필요성도 사라지잖습니까.”
“그렇지. 검을 쓰지 않는 척하다가 불시에 소환해서 기습할 수도 있고.”
사실상 검을 쓰는 이에게는 이만큼 중요한 능력도 따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눈 후에야 철혈의 군주는 기분이 좋아졌다는 듯 씩 웃었다.
“모처럼 여태까지 모아 둔 포인트까지 사용해 가며 선물을 준 보람이 있군.”
묘하게 권능을 주느라 손해를 봤다는 걸 강조하는 그녀의 말투는 내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바로 알아채고는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분명히 쭉 도움이 될 만한 권능일 겁니다.”
그제야 철혈의 군주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눈꼬리를 휘었다.
“감사하기는……. 그렇지 않아도 소중한 계약자인데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철혈의 군주는 그렇게 말한 후 이내 탁자에 있는 과자를 들어서 오물오물 씹었다.
그걸 따라서 나도 과자를 한입에 넣어서 으적으적 씹자 그녀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주고 싶었던 권능도 줬으니 다른 얘기를 하지.”
“……?”
“지금부터 할 얘기는 그대의 질문권을 소모해야 하는데 괜찮겠나?”
“어째서입니까?”
“다른 정보는 몰라도 이제부터 발설할 얘기는 아무런 대가 없이 말해 주면 탑에서 내게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지.”
“…….”
탑에서 제재를 가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라니?
분명 실없는 소리는 아닐 테니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어차피 마땅히 쓸 곳도 없어서 모아 두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답한 순간이었다.
「도전자 한성윤이 보유한 모든 질문권이 소모됩니다.」
“……!?”
순식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질문권이 소모됐다는 메시지에 나는 당황했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이길래?’
이제껏 제대로 질문권을 쓴 경우는 거의 없어서 질문권은 차고 넘쳤다.
그런데 바로 질문권이 다 소모될 정도면 이제부터 나올 이야기가 평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
그에 내가 진중한 기색으로 철혈의 군주를 바라보자 이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전에 그대는 9층에서 이계의 도전자를 죽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랬죠. 처음으로 마주친 무림계 도전자라 고생했었고요.”
아직도 그때 마주친 도전자의 이름이 생생히 떠올랐다.
백선학(白鮮鶴).
스스로를 무림맹 대원로라고 소개했던 노인이 9층에 나타난 이계의 도전자였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말하는 겁니까?”
“다름이 아니라 다 늙어빠진 범의 직책이 문제가 된 거 같더군.”
“……?”
“무림맹 대원로라는 직책 탓에 무림 차원에서는 그대를 찾는 이가 생겼다.”
“그게 무슨…….”
“이른바 복수라는 것이겠지.”
계층 난입을 실패한 탓에 그대로 죽었을 뿐인데 복수라니?
생각한 것보다 더 뜬금없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무림맹이 불온한 단체라도 되는 겁니까?”
조폭이나 야쿠자 혹은 마피아처럼 건실하지 않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 무림에서는 오히려 온건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만…….”
이내 철혈의 군주가 떨떠름하다는 듯 내뱉은 답에 나는 욕을 내뱉었다.
“무슨 그런 개새끼들이…….”
직접 찾아와서 칼까지 들이대고서 은원을 갚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니.
심지어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무림 차원에서 온건적인 단체라고 했다.
순간 온갖 욕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 욕을 꾹 참아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림맹에서 지금 저를 추격해서 죽이겠다고 하는 겁니까?”
결론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수색하고 있다고 했으니 그게 무림맹이라 생각했고.
은원을 갚겠다고 설치는 만큼 내게 추적자를 보내서 죽이겠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지는 않다.”
“……예?”
“오히려 무림맹은 어수선할 뿐이고 권력자가 사라져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바쁜 움직임만 있다더군.”
“…….”
“무림맹 측은 그대를 수색해서 기억해 둘지언정 지금은 그다지 크게 제거하려고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나를 죽이기보다는 백선학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더 바쁘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를 죽이겠다는 게 누구인지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그럼 대체 저를 죽이겠다고 하는 건 누굽니까?”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질문을 건넸지만 돌아온 건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남궁세가.”
“……?”
“남궁세가의 검룡이 그대를 찾고 있다.”
“…….”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이가 나를 찾고 있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철혈의 군주가 이런저런 설명을 내놓은 끝에야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무림맹의 기둥 같은 세가(世家)에서 저를 인지하고 죽이겠다고 날뛴다는 거군요.”
“정확히는 그러는 세가는 남궁세가 뿐이고 그 안에서도 소가주인 남궁혁만이 그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지.”
“어이가 없네요.”
진짜로 어이가 없었다.
한 번도 제대로 은원을 맺은 적 없는 놈이 무림맹은 가만히 있는데 죽이겠다고 나를 찾는다니…….
‘도대체 무림인이란 놈들은 사고 회로가 어떻게 된 거지?’
이쯤 되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나는 백선학의 선제공격으로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몸이다.
그런데도 무림에서는 나를 죽여도 될 명분이 차고 넘친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철혈의 군주는 그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얘기했다.
“어째서 그대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림에서 사람을 수색했던 경우에는 그다지 좋은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
그 말에는 수많은 사건을 들어왔다는 경험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럼 저도 그 수많은 선례처럼 좋은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군요.”
“그렇겠지. 적어도 생사결은 각오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그나마 다행인 건 그대를 찾는 이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있다는 거겠지.”
“설마 저를 찾는 그 남궁세가의 소가주랑 안면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된 애송이다.”
철혈의 군주는 코웃음을 치더니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뒤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관리자가 된 지 몇십 년이나 된 나랑은 아예 살아온 세월이 다르지.”
“그럼 남궁세가의 소가주에 대해서 어떻게 아신다는 겁니까?”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뭐,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문득 말꼬리를 흐린 철혈의 군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아마도 그대보다 몇 배는 강할 것이다.”
“…….”
“시련의 탑에서는 20층까지 도달한 제법 수준 높은 도전자일 테고.”
“20층? 그 정도면 그럭저럭 상대해 볼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
확신이 담긴 부정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이내 답했다.
“무림 차원의 도전자는 단신의 무력만큼은 아예 격이 다르다. 억겁의 세월을 오로지 무공에 미친 이들만이 살아온 세계다. 무력을 갈고 닦아서 신처럼 된 자들이 널린 세계인 만큼 무력 증진에 대한 효율성은 그 어느 세계도 무시할 수 없지.”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억겁의 세월을 오로지 무(武)에 바쳐온 세계.
그런 세계에서 자라난 사람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백선학만 보더라도 제한된 신체 능력이나 스킬로도 나를 압도했지.’
심지어 그때는 5층에서 만났던 검은 기사를 꺾은 후였다.
대비는 제대로 되어 있었고 이전처럼 당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위를 눈앞에 두고 경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속도를 끌어올려 움직임을 방해하고 끝까지 내게 죽음을 선사하려고 했다.
반면에 나는 성장에 특화된 능력으로 층수에 맞지 않는 무력까지 갖췄음에도 패배할 뻔했다.
그 차이는 컸고 나는 이내 담담하게 그 차이를 받아들였다.
“그럼 저랑은 아예 격이 다르다는 거군요.”
“계층에서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되면 살아남기도 힘들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죽음의 선고에 쓴웃음을 짓는 것도 잠시였다.
“그러나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일단 내가 아는 정보를 알려 주겠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 남궁세가의 소가주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집중을 시작했다.
그 뒤로 이어진 말들은 꽤 새겨들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창천검룡(蒼天劍龍).
푸른 하늘을 지배하는 검의 용이라는 거창한 별칭을 쓰는 이는 검을 쓰는 자이고.
동시에 무림에서 명가라 불리는 남궁세가를 물려받을 차기 가주라는 것까지.
그리고 본명은 남궁혁이며 무림계 도전자들한테는 이름을 대면 모를 자가 없다는 것도.
검술은 스킬 등급으로 따지면 A급은 넘을 거라는 것 등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 상대법까지 고안한 후에야 대화의 열기가 식었고 이내 철혈의 군주는 축객령을 내렸다.
“……알려 줄 건 다 알려 준 거 같으니 이제 가 봐도 좋다.”
흡사 소기의 목적은 전부 달성했다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나는 대기실에서 보상 확인을 하는 와중이었기에 더 있을 시간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12층 대기실에서 뵙겠습니다.”
그 짤막한 말에 철혈의 군주는 만족스럽다는 듯 화답했고…….
“그대의 행보를 기대하고 있겠다.”
「11층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이어서 시야에 메시지가 떠오르며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적적함이 감돌던 중세풍의 오두막이 아니라 삭막한 대기실로.
“…….”
물론 그에 나는 묵묵히 적응하며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했지만…….
띠링! 띠링! 띠링!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을 관리자 영역으로 초대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을 관리자 영역으로 초대합…….」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을 관리자 영역으로 초대…….」
순식간에 떠오르는 초대 메시지에 나는 이내 하려던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 백학검선이 내게 초대를 보내온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