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89
087. 창천검룡 (2)
흡사 캐서린 베넷은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냐는 듯 시선을 보내왔지만…….
“…….”
그 시선은 오히려 내가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심정이었다.
설마 다른 국가도 아니고 미국에서 캐서린 베넷이 올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캐서린 베넷도 크게 당황한 건 마찬가지인지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투기장에서는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하길래 의도해서 온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도 내가 여기에 있을 줄은 아예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 탓에 서로 간에 어색한 침묵의 기류가 흐르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모든 도전자분께서 모이셨군요.”
그녀의 뒤로 아까 나를 회의실까지 안내했던 아리에 치카가 들어오더니…….
아리에 치카는 곧 회의실의 대표석에 가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자기를 소개했다.
“저는 일본 헌터 협회의 회장 아리에 치카입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부릅뜨며 아리에 치카를 바라보았다.
‘일본 헌터 협회장이라고?’
나를 공항까지 데리러 오길래 그녀가 단순히 협회의 직원일 거라 여겼지만…….
그게 아니라 일본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었다는 말에 나는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마 협회장이 직접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도전자를 데리러 올 줄은 몰랐기에 더 그러했다.
“일본 헌터 협회의 지원 요청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물론 그것도 잠시고 이내 나는 침착함을 되찾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고.
곧 아리에 치카는 진중한 얼굴로 캐서린 베넷이랑 나를 번갈아서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서로 아는 사이십니까?”
그 물음에 나는 살짝 고민하다가 바로 답을 내놓았다.
“어느 정도는요. 탑에서 잠깐 만났던 사이입니다.”
사실은 잠깐 만나서 서로 죽기 직전까지 콜로세움에서 싸웠던 사이겠지만.
캐서린 베넷도 내가 한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내가 앉은 자리의 왼쪽에 와서 슬며시 착석할 뿐.
그제야 아리에 치카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잘 됐습니다. 어차피 그녀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소개해야 했으니.”
“……?”
“현재 일본 헌터 협회에는 더 지원이 오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 발언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가만히 앉아 있던 오춘석이었다.
“아, 아니. 잠시만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다른 국가에서도 도전자가 아니라 헌터라도 더 지원이 없다는 겁니까?”
“터놓고 말하자면……. 헌터와 도전자는 더 오지 않을 겁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져서 도전자는 물론이고 헌터까지 지원을 통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
오춘석은 그에 할 말을 잃은 듯 입만 뻐끔거렸지만…….
바로 왼쪽에 앉은 캐서린 베넷이나 김승훈은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합리한 상황은 능력 부족에서 기인한다.
일본이 헌터 약세 국가가 아니었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헌터를 지원했을 것이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국가이고 승산이 높은 싸움이라 별로 손해를 입을 것도 없을 테니.
그러나 일본은 S급 헌터도 한 명밖에 없고 A급 헌터는 40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다.
심지어 그 40명밖에 되지 않는 A급 헌터도 벌써 여섯 명이나 죽었고 중국에서 왔다는 S급 헌터도 개죽음을 당했다.
이 상황에서 헌터 약세 국가로 낙인이 찍힌 일본에 더 지원을 허용할 국가는 없었다.
구태여 막심한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일본을 도와줘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지.’
직접 가겠다고 나서는 헌터나 도전자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
솔직히 말해서 이 자리에 모이게 된 네 명의 도전자가 비정상이라고 해야 한다.
보통은 이 상황에서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도 지원에 응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현재 일본에는 그 누구도 돕겠다고 나서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리에 치카는 암울함을 슬쩍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도전자 여러분이 당황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도쿄의 신주쿠구에 나타난 괴물은 확실히 규격 외의 능력을 지녔으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곧 그 암울함을 서서히 지워 내듯 목소리에 힘을 담아서 말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승산이 있습니다.”
그 말을 꺼내는 동시에 그녀는 캐서린 베넷을 바라보며 확신을 품은 채 말했다.
“캐서린 베넷이 지닌 능력을 통해서 이 싸움의 판도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이 싸움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존재라고.
***
순식간에 회의실 내의 시선이 내게 쏠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캐서린 베넷에게.
“……제가 지닌 권능 중에는 ‘불의 억압’이라는 게 있어요.”
그제야 그녀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어서 스스로의 능력을 설명했다.
“저보다 강한 상대에게 이 권능으로 발동한 불꽃을 닿게 할 수 있으면 상대는 최대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하고 스킬이 몇 개 무작위로 봉인돼요.”
어째서 아리에 치카가 그녀를 보고 이 싸움의 판도를 뒤집을 존재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관리자를 뒀나 보군. 그런 사기적인 권능을 획득하다니.”
여태껏 거의 입을 열지 않던 김승훈도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를 툭 뱉을 정도로.
현재 캐서린 베넷이 지니고 있다고 밝힌 능력은 정말로 사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캐서린 베넷도 도도한 얼굴을 유지하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힐끗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흡사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초롱초롱한 눈빛이라고 해야 하나?
“대단하네요.”
리액션을 바라는 눈빛에 나는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죠?”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캐서린 베넷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일견에 보기에는 외견은 도도함 그 자체인데 칭찬 한마디 들었다고 이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그녀의 능력을 통해서 저희는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곧 아리에 치카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단, 그녀의 능력이 발동하게 되는 조건이 중요합니다.”
권능 발동 조건.
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불꽃이 반드시 이계의 도전자에게 닿아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능이란 능력은 발동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이계의 도전자가 순순히 불꽃에 맞아 줄 리는 없을 테고.”
“…….”
“한마디로 캐서린 씨가 ‘불의 억압’을 발동할 상황을 저희가 만들어야 한다는 거네요.”
“현명하시군요. 그 말대로입니다.”
그 말을 들은 김승훈은 별거 있냐는 듯 말을 툭 던졌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겠군.”
그 이후에는 오춘석도 불안하다는 듯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최대한 해 보죠, 뭐.”
의외로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없었으나 나는 오춘석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마법 계통의 스킬을 전문적으로 익혀서 그런지 대군 전투를 휩쓸던 그였다.
물론 사령을 통해서 체력 및 마력을 보충한 탓에 나한테는 이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를 약하다고 하기에는 오춘석은 명백한 강자였다.
걱정할 건 그다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야기할 것도 없을 거 같은데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나는 더 따져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기실에서 제대로 된 검기(劍氣)의 사용법까지 깨우쳤으니.
사실상 일행의 발목을 잡을 상황은 없으리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리에 치카도 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정도 동의했다.
“……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라는 분이 없으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네 명 중 그 누구도 더 구체적인 작전을 짜기를 원하는 이는 없었다.
서로 간의 실력을 가늠하는 건 탑을 오르며 생긴 일종의 잡기(雜技)였다.
여기에 온 이들 중 그 누구도 작전을 나누고 싸워야 할 정도로 미숙하지 않음을 모두 본능적으로 통찰한 것이다.
“여러분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현재 옥상에 헬기가 대기 중이니 바로 출발하시죠.”
아리에 치카는 바로 회의실 바깥으로 안내하며 나섰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옥상까지 올라가서 헬기를 타기까지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헬기에 올라서니 곧 소음을 동반한 움직임이 느껴지며 헬기가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했다.
서로 제대로 대화도 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도착만을 기다릴 뿐.
아까는 당황하며 긴장했던 오춘석조차도 이내 다가올 싸움만을 기다리듯 고요한 얼굴이었다.
캐서린 베넷만이 바깥을 바라보다가 힐끗힐끗 나를 바라볼 뿐이고.
다 이 싸움이 그렇게 어렵게 흘러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여러 번이나 이계의 도전자랑 마주친 전적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만날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저 나를 힐끗힐끗 보기만 하던 캐서린 베넷이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
“사실은 좀 더 평범하게 만나고 싶었다고요.”
“애초부터 평범하게 만나지를 않았는데 어떻게 평범하게 만나겠습니까.”
“그건……. 뭐, 그렇네요. 첫 만남도 평범하지는 않았었죠. 하아.”
곧 캐서린 베넷은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더니 한탄했다.
“알고 싶은 게 있는데……. 경력 있는 신입 같은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한국 헌터 협회 사이트에서 당신에 대해서 검색해 본 적이 있거든요.”
“…….”
“그런데 한국 헌터 협회 사이트에 뜬 기록은 딱 하나였어요.”
“거기에서는 제가 C급 헌터로 떴겠군요.”
하기야 캐서린에게는 내가 은퇴했다가 복귀한 헌터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탑에서 강해진 거랑은 별개로 헌터 시험에서 나는 C급 헌터가 되었고.
그때부터 쭉 헌터로서 활동해 온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뭘 생각하든 간에 대부분 틀린 추측일 겁니다.”
“……?”
“탑에 들어가기 전에 저는 헌터가 아니었거든요.”
“그게 대체 무슨 소ㄹ…….”
캐서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음을 건네 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순간적으로 바깥에서 폭발음이 울리는 동시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에.
나는 경악하는 동시에 같은 헬기 안에 타고 있던 아리에 치카를 바라보았다.
“……이계의 도전자가 날뛰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녀는 바깥 상황을 보더니 이내 침음을 흘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중국에서 지원 요청에 응했던 팽자문이 죽은 후부터 이렇게 도심을 엉망으로 만들겠다며 파괴를 일삼고 있습니다.”
“…….”
“때마침 저희가 헬기를 타고 이동하고 있을 즈음에 날뛰기 시작한 거고요. 이제 슬슬 전투에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군요.”
무림 차원 출신의 도전자답게 하는 짓거리도 한참 예상 범주를 벗어났다.
나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이렇게 난리를 피워 댈 줄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가 이내 결심을 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캐서린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심각해진 상황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캐서린 씨, 혹시 공중에서 착지할 수 있습니까?”
“……네? 그건 무슨 뜻이에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요. 이게 통하면 놈에게 바로 권능을 발동할 수 있을 겁니다.”
“어……. 이 정도 높이에서는 어떻게든 착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충분하겠네요.”
나는 바로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둘러싼 채 헬기의 바깥으로 향했다.
“……!?”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자, 자, 잠깐만요! 뭘 하려는……!?”
“뭐기는 뭐겠어요.”
「권능 ‘강철의 날개’가 활성화됩니다.」
“비행이죠.”
그리고 동시에 나는 등에서 뻗어나가는 날개의 이질감을 통제하며 헬기를 나섰고.
후우웅!
한 마리의 새처럼 굉음이 일어나는 도심의 중심부로 날개를 펼치며 날아갔다.
그것도 초월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