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91
089. 창천검룡 (4)
초월적인 속도의 추락이 끝난 후 내가 최초로 느낀 감정은 후회였다.
「사령이 사용자에게 가해진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암사(巖蛇)의 사령이 소멸했습니다.」
「암사(巖蛇)의 사령이 소멸했습…….」
「암사(巖蛇)의 사령이 소멸했…….」
마력을 보충하고 남은 모든 사령이 패시브 보호막으로 빠지고도.
아예 시야가 붉게 물들어서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뇌는 그렇게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걸 추측할 뿐.
「스킬 ‘잿빛 선혈’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40% 감소합니다.」
온몸에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 거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현재 나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거다.
눈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촉감도 둔해져서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내가 크게 다쳤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연철의 펜던트나 흡혈 백작의 낡은 연미복을 써서 몸을 방어한 것이 거짓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어리석었다.
정말로 내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된 줄 알고 뒷감당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물론 아직도 살아서 스킬까지 발동하는 걸 보니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나중에는 좀 뒷감당도 생각해야겠어.’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질 정도로 쭉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며 스킬 ‘잿빛 선혈’의 숙련도가 20% 상승합니다.」
……아니, 이렇게 숙련도가 오르는 걸 보니 좀 더 험하게 움직여도 될 거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 속에서 나는 이내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서 아예 마비되듯 굳은 전신의 감각도 돌아오며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
어째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나 했더니 내가 처한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강철의 날개로 온몸을 감싸고 있어서 다행히도 외부의 공격은 허용하지 않았지만.
하반신에 있던 다리는 아예 뭉개져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고 왼손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눈에 띄지도 않는다.
물론―.
‘이게 또 재생되기는 되네.’
회복 물약을 써도 되돌리기 어려울 부상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복구되기 시작했다.
뭉개졌던 다리의 골격이 새롭게 생기고 살갗이 더해지며 온전히 하반신이 돌아오고.
사라진 왼손은 손목에서부터 살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손의 형상을 재현했다.
정말로 예전에 대기실에서 잿빛 선혈 스킬을 합성한 것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손을 움직였다.
오른손은 멀쩡했던 덕분에 착용한 채 왔던 혈천마검은 무사히 쥐고 있었고.
흡혈 백작의 낡은 연미복도 그다지 크게 손상된 기색은 없었다.
그에 나는 서서히 온몸을 감싸고 있는 강철의 날개를 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두둑.
건물의 잔해에서 일어선 나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잔해의 바깥으로 나섰다.
그 와중에 나는 입에 고였던 핏물을 다 모아서 퉤 뱉고는 한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진짜 하늘에서 추락하는 건 두 번은 못 해 먹을 짓이네.”
그 순간이었다.
“너는 누구지?”
그 말이 들려온 방향으로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았고.
이내 그 자리에 서 있는 청의무복을 입은 청년을 보며 경악했다.
“…….”
창천검룡 남궁혁은 내가 상정한 것이랑은 다르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나처럼 외견상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
‘어째서…….’
방금 그 추락과 함께 행해진 돌진은 솔직히 말해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살상력을 지닌 공격이었다.
검기(劍氣)처럼 무궁무진한 활용성은 없어도 살상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확실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상처는 하나도 없다시피 하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그의 퉁퉁 부어오른 오른손이랑 그 손에 쥐어진 검을 보는 찰나에.
나는 어째서 남궁혁이 멀쩡한지를 상상하기도 싫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쳐 냈구나, 나를.”
강철의 날개로 감싸고 추락한 나를 그 찰나에 검으로 쳐 낸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검으로 나를 흘려낸 거겠지만.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체내에 있는 모든 마력을 싹싹 긁어모아서 그대로 남궁혁에게 들이받은 것이 아까의 돌진이다.
그런데 불시에 행해진 그 기습을 남궁혁은 제대로 인지하고 바로 검으로 쳐 내듯 흘려보냈다.
그러나―.
“―본 공자가 네놈에게 묻지 않았더냐. 네놈은 누구냐고.”
그에 경악을 느끼고 있을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카아앙!
“…….”
순식간에 쇄도한 검을 나는 혈천마검으로 막으며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강했다.
남궁혁은 검의 기술만이 아니라 그 본연의 신체 능력도 상당했다.
그저 일합(一合)을 겨뤘을 뿐일진대 손이 떨리고 팔이 아예 부러질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허세를 부리며 남궁혁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애타게 찾더니 정작 만나서는 누구인지도 모르네.”
거의 이죽거리듯 내뱉은 말에 남궁혁이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여는 순간.
“……그게 무슨―.”
“이렇게 하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는 바로 신체 내에 있는 마력을 검에 주입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파지직―!
칼날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뇌전의 격류를 목도한 찰나에.
남궁혁의 눈빛이 달라지며 그가 경악하듯 입을 열었다.
“검기(劍氣)……!?”
그리고―.
“내가 바로 도전자 한성윤이다.”
그 찰나에 나는 폭풍처럼 남궁혁의 검을 몰아붙이며 포효했다.
***
절대로 이길 수 없을 상대를 마주하며 나는 온몸의 힘을 다 짜냈다.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에 근골이 삐걱거리며 신체가 손상되고.
스킬의 효과로 온몸에 흐르는 마력이 성난 듯 날뛰며 혈도가 찢긴다.
불시에 격양된 움직임을 펼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계를 진즉에 넘어서 그런 것인지.
신체가 경종을 울리며 더 선을 넘을 시 돌아올 수 없다고 외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건네진 생명 본연의 경고를…….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7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7/7」
잠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무시했다.
꽈아아아아아앙―!
서로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순수한 힘의 격돌로 인해서 아스팔트로 된 도로가 부서진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남궁혁은 놀랐다는 듯 그저 눈썹만을 살짝 치켜 올릴 뿐.
“섬전검기?”
나처럼 입에서 피를 흘리거나 팔이 부들거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어느새 남궁혁의 손에 들린 칼에는 검기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설마 백선학의 검을 훔쳤…….”
어느새 격양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남궁혁을 무시하고.
그 찰나의 빈틈을 찌르듯 나는 바로 맞대고 있던 검을 비틀어서 남궁혁의 목을 노렸다.
뱀처럼 유유히 빠져나가는 칼날을 남궁혁은 상체를 뒤로 젖혀서 피하더니 혀를 찼다.
“쓸데없이 싸울 생각만 가득해서는. 이래서 군소 차원의 도전자는…….”
이어서 조금도 쉬지 않고 나는 남궁혁에게 이리저리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채채챙!
그러나 남궁혁은 그 검격을 오른손이 퉁퉁 부은 상태로도 다 맞받아쳤다.
“형편없는 검술 솜씨로군.”
그 말대로였다.
현재 철혈의 군주가 추측한 남궁혁의 검술 스킬의 등급은 A급이었다.
그런데 내가 쓰는 검술 스킬의 등급은 고작 C급이니 성에 차지 않을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 모자란 검술 실력을 보충할 스킬들이 존재했다.
「스킬 ‘광란의 검극(C+)’이 활성화됩니다.」
「도검류 공격 속도가 2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10/10」
하지만 부족했다.
흡사 검극(劍劇)처럼 서로 대본을 짜고 합을 맞추듯.
남궁혁은 내가 내지르는 모든 검을 가소롭다는 것처럼 다 막았다.
동작을 최소한으로 펼치며 몸을 위협하는 칼날은 모조리 막고 간간이 칼날을 흘리기까지.
“백선학에게서 훔친 것은 검기(劍氣)밖에 없는 거 같군.”
그곳에는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벽이 존재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남궁혁을 검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덤벼드는 것은 오로지 단 한 순간을 위해서.
화르륵!
“……!?”
불시에 남궁혁의 등 뒤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그의 주변으로 불꽃이 번진다.
「권능 ‘불의 억압’에 의해서 불꽃에 닿은 이의 능력이 크게 하락합니다.」
「권능 ‘불의 억압’의 사용자에 의해서 당신은 이 불꽃에 일시적으로 면역 상태가 됩니다.」
이어서 떠오르는 두 개의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나는 눈길을 돌렸고.
“권능은 발동됐어요……! 다른 도전자가 도착할 때까지 죽지 마세요!”
이내 건물의 잔해를 헤치고 온 내게 더 무리하지 말라는 듯 소리치는 캐서린이 눈에 띄었다.
그제야 남궁혁도 내가 생각 없이 자신에게 덤벼든 것이 아님을 깨달은 듯 크게 짜증을 냈다.
“고작 벌레 주제에 본 공자의 싸움을 방해한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남궁혁은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서 캐서린을 죽이겠다는 듯 바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모든 스킬을 발동하며 초월적인 기동력을 갖춘 내게는 미치지 못했다.
카아앙!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고 서로의 격차를 새롭게 가늠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남궁혁이 쇠약해졌음을 확신하며 이죽거리듯 말했다.
“백선학의 검을 훔쳤냐고 물어봤던가?”
“…….”
“곧 당신의 검기도 내가 쓰게 될 거야.”
“한낱 군소 차원의 도전자가 감히 거짓된 무(武)로 본 공자를 기만하는가……!!”
그 순간이었다.
“그 한낱 군소 차원의 도전자에게 뒈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나 보군.”
콰아아아아앙―!
온몸에 뇌전을 휘감은 채 나타난 김승훈이 바로 오함마를 남궁혁에게 휘둘렀고.
그 공격에 남궁혁은 눈을 찌푸리면서도 바로 내게서 물러나며 바로 방어를 취했다.
까아앙!
꽤 충격이 컸는지 남궁혁은 뒤로 밀려나며 급히 중심을 잡아야 했지만…….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이어서 남궁혁에게 얼음으로 된 말뚝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콰콰쾅!
“저도 거들겠습니다.”
어느새 한 손에 마도서를 펼쳐둔 오춘석이 발동한 스킬이었다.
남궁혁은 얼음의 폭격까지 막아 낸 후 거슬린다는 듯 이를 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죽여도 죽여도 줄어들지 않는 게 참으로 짜증이 나는군.”
순식간에 남궁혁의 눈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쩍 갈라지며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 순간.
알 수 없는 오한이 온몸을 덮치며 나는 위기가 다가옴을 직감했다.
감(感).
오로지 순전한 본능에 의해서 도달한 결론이 내게 속삭였다.
이제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창천의 지배자가 깨어났노라고.
그러나―.
“가면을 쓰고 있기도 답답할 테니 미리 보내주도록 하지.”
그 직감에 제대로 대응하기도 이전에 남궁혁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남궁혁이 발을 내뻗는 찰나에 공간이 접히듯 그의 신형(身形)이 김승훈의 눈앞에 나타났고.
정확하게 남궁혁은 왼손의 주먹으로 김승훈의 검은 가면을 부수겠다는 듯 그대로 타격했다.
그 상황에서도 김승훈은 바로 반격하려고 했으나 그 전에 그의 몸이 더 빠르게 날아갔다.
꽈아아아아앙!
건물의 잔해로 날아간 김승훈을 뒤로 한 채 남궁혁은 바로 목표를 변경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에게 제약을 걸고 있는 캐서린에게로.
물론 오춘석이 급하게 마법계 스킬을 발동하며 얼음의 장벽을 펼쳤지만…….
제대로 된 제약이 걸린 상태에서도 김승훈은 단숨에 날릴 실력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콰장창!
얼음의 장벽이 붕괴되는 동시에 남궁혁은 오춘석을 죽이겠다는 듯 그에게 검을 뻗었지만.
바로 거기까지 이동한 나는 남궁혁의 검을 쳐 내며 그에게 검기를 참격의 형태로 쏘았다.
챙!
“그래, 이렇게 된 김에 네놈부터 처리해 주마.”
남궁혁은 번개 속성이 깃든 섬전검기를 가볍게 막더니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내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며 흡사 나를 잡았다는 것처럼 허공을 움켜쥐었다.
“강제 결투.”
그리고―.
「고유 특성 ‘강제 결투’에 의해서 반경 30m 이내에 결투 영역이 형성됩니다.」
그 찰나에 덫이 펼쳐지듯 남궁혁의 손아귀에서부터 새하얀 빛의 장막이 퍼져 나갔다.
「도전자 한성윤 그리고 도전자 남궁혁을 제외한 이들은 결투 영역 출입이 금지됩니다.」
「결투 영역은 10분 동안 유지되며 이 영역은 절대로 파괴할 수 없습니다.」
“…….”
이어서 빛의 장막에 의해서 ‘결투 영역’이 형성되고 주변에 나랑 남궁혁만이 남게 된 순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나도 제약을 짊어졌으니 서로 똑같은 제약이라고 치지.”
그는 불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네놈이 쓰는 모든 건 무공의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 주도록 하지.”
답도 없는 전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