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93
091. 갈망 (1)
검염(劍炎).
흡사 화염의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검기를 남궁혁은 검염이라고 칭했다.
더불어 검기를 넘어선 경지이며 가짜 검기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도 말했다.
고작 검기가 화염처럼 일렁인다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싶었지만…….
구부러지듯 쇄도한 남궁혁의 곡도를 검기로 막은 후에야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키이이잉―!
검기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지란 그다지 다른 의미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검기가 잡아먹히고 있어……!?’
흡사 검염은 포식자라도 되듯 내가 형성하는 검기를 탐스럽게 잡아먹기 시작했다.
검기의 물리력이 약해서 밀리는 게 아니라 마치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성의 적을 만난 것처럼 검염이 검기를 압도한다.
칼날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검기를 쓰는 게 무의미해졌다.
결전기(決戰技).
한순간에 나는 이 검염은 검기를 꺾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술이며.
단순히 검기만을 쓸 줄 아는 내게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임을 눈치챘다.
“거짓된 검기와 함께 끝내주도록 하마.”
남궁혁은 싸늘하게 종막을 예고하며 이내 완벽하게 검기를 파괴했다.
챙그랑!
흡사 유리창이 깨지듯 검기가 박살 나며 남궁혁이 내가 지닌 검까지 통째로 벨 기세로 곡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혈천마검(血天魔劍)의 전용 효과로 칼날에 혈기(血氣)가 깃듭니다.」
순식간에 휘둘러진 남궁혁의 곡도는 결과적으로 내가 쥔 검을 베지 못했다.
“……!?”
손에 쥔 혈천마검에서 검기가 사라지는 동시에 칼날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검술 스킬을 지닌 이가 사용할 시 칼날에 혈기(血氣)가 감돌며 혈도를 타고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원활해진다.」
예전에는 혈기(血氣)가 칼날에 감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혈천마검에 덧씌워진 검기가 사라지며 그 진면목이 이 순간에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칼날에 감도는 혈기(血氣)는 남궁혁의 검염에 살짝 밀릴 뿐이고 파괴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혈기는 검염에 먹히지 않는 부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나이스……!!’
그에 내가 내심 쾌재를 부르며 바로 뒤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고유 특성 ‘강제 결투’의 지속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반경 30m 이내에 펼쳐진 결투 영역이 해제되며 외부 간섭이 가능해집니다.」
“화력 조절은 못 하니 알아서 피해요……!”
바깥에서 캐서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오른쪽에서 불꽃이 폭발하듯 쇄도한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재빠르게 남궁혁과의 거리를 더 벌렸지만…….
“또 이런 사술에 당할 줄 아는가?”
그 불꽃을 본 남궁혁은 나와 반대로 오히려 그 자리에 멈추더니 기세를 끌어올렸다.
“창천비검(蒼天飛劍).”
흡사 남궁혁은 일검(一劍)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순간적으로 나는 남궁혁이 스킬 혹은 권능을 발동한 것이라 여겼으나 곧 생각을 바꿨다.
그렇게까지 스킬이니 특성이니 하는 걸 혐오하던 놈이 저렇게 당당하게 중얼거린다니?
스킬이나 권능일 리가 없다고 바로 본능적으로 판단한 나는 놈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이내 남궁혁은 검염(劍炎)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마치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광……!!
흡사 석양에 타오르는 하늘처럼 검염(劍炎)이 어느새 불꽃의 권능을 압도한다.
그 찰나에 나는 남궁혁이 이대로 간다면 더 날뛰리라 예상하여 발을 박찼다.
막아야 했다.
아직 이 정도의 선에서 그쳤을 때 놈을 반쯤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무리하게 움직였다.
그 강렬한 직감은 비단 나만이 받은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
파아앙!
어느새 건물의 잔해에서 빠져나온 김승훈도 오함마를 든 채 미친 듯 남궁혁에게 달려갔다.
능력치 하락은 물론이고 스킬 봉인까지 풀렸는데 더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거겠지.
아직은 남궁혁도 검염을 불꽃을 지우는 것에 쓰고 있으니 기회는 존재한다.
촤아앙!
그 일념 아래에 나는 무작정 남궁혁에게 섬전검기를 최대 출력으로 격발하듯 쏘았다.
그러나…….
“창천윤검(蒼天輪劍).”
어느새 불꽃을 다 지워 낸 남궁혁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회전하듯 검을 긋는 순간.
쩌어어어어어어엉!
섬전검기의 참격은 물론이고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검염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
지평선(地平線).
그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킬 ‘잿빛 선혈’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60% 감소합니다.」
“…….”
아예 왼팔이 어깻죽지까지 싹 날아가고 오른쪽 눈이 완전히 실명된 나는 새롭게 만들어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이 일대의 모든 건물이 일자로 싹 부러지고 화려했던 신주쿠의 모습이 사라지며 생긴 지평선이었다.
오로지 이 광경이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허탈함을 느꼈다.
사실상 남궁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식 밖의 괴물이었다.
창천비검이니 창천윤검이니 떠들었던 것은 스킬도, 권능도 아니고 순수 기술이었을 뿐인데.
그런데도 나는 남궁혁을 막지 못한 채 이렇게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
「스킬 ‘반격의 방패’가 부서지며 누적된 피해량의 반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아직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오로지 잿빛 선혈과 반격의 방패 덕분이었다.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서 반격의 방패로 나를 중심으로 다른 이들을 감싸서 검격을 막았다.
‘……아니, 이래서야 제대로 막았다고 할 수 없겠네.’
내가 한 것은 그저 모든 마력을 소진해서 한 번의 공격을 상쇄한 것뿐이다.
반격의 방패의 진정한 효과인 누적된 피해량의 반사도 쓸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상쇄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인지 결과물이 처참했다.
아까 막 건물의 잔해를 빠져 나왔던 김승훈은 또 건물에 처박힌 채였고.
캐서린이나 오춘석은 방패를 뚫고 지나간 충격파만으로 기절한 채 쓰러졌다.
“썩을…….”
완벽한 패배였다.
반면에 이 참상을 자아낸 장본인 남궁혁은 나처럼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체력이 크게 떨어졌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이제 곡도를 쥔 두 손이 격하게 떨리고 있다지만…….
나처럼 신체의 어딘가가 완전히 훼손되었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잿빛 선혈을 통해서 손실된 신체를 회복하고 있으나 제대로 회복될 리가 없었다.
이제 체력이 다 빠져서 그런 것인지 신체가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궁혁도 이제 남은 내공도 없는 거 같으니 당장은 서로 상황이 비슷했다.
나는 왼팔과 오른쪽 눈을 잃었지만, 남궁혁은 검을 들고 있기도 힘든 상황이니.
참 지랄 맞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내 오른손의 혈천마검을 꽉 쥐었다.
검의 손잡이를 꽉 잡으니 바로 칼날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서린다.
물론 마력을 흘려서 혈기(血氣)를 크게 활성화했을 때보다는 약하지만.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서로 같이 치명상을 입을 수는 있겠네.’
적어도 남궁혁이랑 더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패 정도는 마련된 것이다.
이대로 남궁혁이 더 싸우겠답시고 달려들면 나도 죽을 각오로 맞서 싸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에 내가 혈천마검을 남궁혁에게 겨누며 그대로 다시 싸우려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서로 결판을 내도 될 시점이 아닌 거 같군.”
남궁혁은 조용히 눈빛을 형형히 불태우며 내게 쥐어짜듯 말을 건넸다.
“……이번만은, 본 공자의 패배를 인정하겠다. 그러나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내뱉어진 남궁혁의 말에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눈을 찌푸렸지만.
곧 남궁혁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다 타오른 청의무복에서 푸른색의 돌을 꺼내자 그 진의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차원 이동…….”
“막을 것인가?”
“…….”
“그리된다면 둘 중 한 명은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그 말대로였다.
남궁혁이 지쳤다고는 해도 나도 왼팔을 잃고 오른쪽 눈까지 실명한 상태였다.
왼팔이 없어서 균형 감각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한쪽 눈이 보이지를 않으니 거리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죽을 거야.’
서로 쉽게 목을 내 주지야 않겠다만 제대로 부딪히면 나도 무사할 수는 없다.
물론 남궁혁도 무사할 수 없겠지만, 그다지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본 공자의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겠지만, 네놈이랑 본 공자는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남궁혁은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푸른색의 돌을 꽉 쥐었고.
우우웅!
“잘 있거라, 검귀(劍鬼)여.”
바로 남궁혁은 자신의 뒤로 나타난 푸른 포탈로 발걸음을 옮기며 사라졌다.
“…….”
이내 그대로 픽 꺼지듯 포탈이 닫히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눈길을 돌렸다.
남궁혁의 검에 신주쿠의 건물이 일제히 반으로 쩍 갈라진 채 붕괴해 있었다.
“패배를 인정하기는……. 이래서야, 내 패배랑 다를 게 없는데.”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7년 전, 던전 브레이크로 쏟아지는 괴수 무리에 부모님을 잃었듯.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남궁혁을 죽이고 신주쿠를 지키겠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이룬 것은 남궁혁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 사실에 나는 심장이 뒤틀리는 듯 고통이 물씬 올라왔다.
그러나…….
심적인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온몸에서 전투의 후유증이 올라왔다.
왼팔의 부재, 오른쪽 눈의 실명,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부상들이 의식을 서서히 잠재웠고.
쿵.
“…….”
나는 그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서 눈을 감았다.
***
“……드디어 일어났네요.”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 캐서린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흡사 중증 환자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것처럼 감격한 얼굴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중증 환자였겠지.’
아예 왼팔이 어깻죽지까지 날아가고 오른쪽 눈은 실명했었으니…….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바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움직여서 감각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이내 왼쪽에서 손가락의 감각은 물론이고 팔이 들썩이는 것까지 느꼈다.
더불어서 실명했던 오른쪽 눈도 제대로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해 있었다.
‘잿빛 선혈이 제대로 작동했나 보네.’
그렇지 않아도 재생력은 확실했던 잿빛 선혈 스킬이 이번 전투에서 등급까지 상승했다.
본래도 훼손된 신체까지 회복하게 해 주던 스킬이 이 정도를 고치지 못할 리 없었다.
그에 내가 안도감을 느끼며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서 주변을 살피자 캐서린이 입을 열었다.
“도쿄 인근의 병원이에요.”
“……캐서린 씨는 치료받지 않으셔도 되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 자기 꼴이 어땠는지 알고도 그러는 거예요……?”
“…….”
“왼팔이 아예 날아갔고, 오른쪽 눈은 실명이 됐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잿빛 선혈 스킬로 회복될 테니 그다지 개의치 않았던 문제였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렇지 않았는지 눈가에 물기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방패로 막아준 덕분에 저희는 다 무사하지만, 당신만이 이 모양이라고요.”
“…….”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아니었으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그 점은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아, 예…….”
“그렇지만 당신은 좀 스스로를 아낄 줄 알아야 해요. 그런 식으로 싸워서는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할 거예요.”
“…….”
그 감정이 섞인 말에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호의로 듣는 충고에 나는 씁쓸히 웃었다.
그제야 그녀도 자기가 감정이 격해졌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무튼, 일단은 의사도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당분간 회복에 전념하세요. 당신은, 아니, 당신만이, 그럴 자격이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캐서린은 품에서 작은 물병을 세 개 꺼내서 내게 건넸다.
“일본 헌터 협회에서 보수로 지급한 스킬 숙련도 상승 물약이에요.”
하나에 스킬의 숙련도를 10% 올려주는 누구나 탐낼 만한 보수였다.
“……그런데 왜 세 개인 겁니까?”
“한 개는 기본적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당신의 몫이고, 한 개는 제가 받은 물약이고, 한 개는 제가 가지고 있던 거예요.”
“……예?”
“손에 들고 있기 힘드니, 얼른 받으세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 정도는 해 두지 않으면 생명의 은인한테 고개 못 들어요.”
“…….”
솔직히 말해서 내게 이렇게까지 해 주면 그녀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싶었지만…….
귓불까지 붉게 물들인 그녀를 보고 있자니 받지 않는 것도 뭐했기에 이내 세 개의 스킬 숙련도 상승 물약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캐서린도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 테니, 나중에 봬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재빠르게 병실에서 나갔고.
나는 그대로 손에 쥔 세 개의 물약을 탁자에 올려놓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윽…….”
분명히 부상은 다 회복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온몸이 쿡쿡 쑤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째서 의사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는지 저절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대로 병원에서 지급해 준 거 같은 슬리퍼까지 신고 병실의 창가로 걸어갔다.
끼이익―.
“후우우.”
창문을 열고 나니 바깥에서 차가운 겨울 공기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
그러나 차가운 바람과는 반대로 심장의 고동은 더 뜨거워졌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도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갈망(渴望).
현재 나는 남궁혁을 이기지 못한 것에 분해하며 더 강렬한 힘을 원하고 있었다.
마치 절대로 멈출 수 없는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처럼 몸의 뜨거움이 가라앉지 않는다.
심장의 고동은 한 번 뛸 때마다 그 감정이 교차하듯 달라졌다.
남궁혁과의 격전에서 이뤘던 격렬한 성장을 한 번 더 겪고 싶다는 듯이 날뛰기도.
7년 전, 모든 것을 잃었던 것처럼 또 이번에도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날뛰기도.
순수히 남궁혁이 지닌 검염(劍炎)의 경지까지 나도 다다르고 싶다는 성장 욕구에 날뛰기도.
심장은 몇 번이고 날뛰었지만, 나는 그저 이 심장의 열기를 달래듯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
아직은 봄이 되지 않았지만, 곧 지나가게 될 이 도쿄의 겨울처럼.
곧 내게도 이 갈망이 해소될 때가 머지않아서 찾아올 테니.
아직은 이 갈망을 장작으로 삼아서 성장을 준비할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