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98
096. 증명 (2)
캉!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검과 검의 충돌로 발생한 충격이 손끝을 타고 흐른다.
파지직!
나는 섬전검기를 발동한 채 칼날을 밀어붙였고 제인은 그에 크게 당황했다.
“오러……!?”
아레스 차원에서 검기는 곧 오러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일까?
예전에 만났던 검은 기사가 썼던 오러도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검기의 일종이었다.
‘유일하게 지구 차원만이 검기나 오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거겠지.’
그 사실에 나는 씁쓸함을 느꼈지만, 제인은 나랑은 다르게 더 큰 경악을 느끼는 거 같았다.
채애앵!
일합(一合)을 서로 겨루고 나서 물러선 후에야 제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설마 일개 모험가가 오러를 다룰 줄이야…….”
그러더니 이내 멋대로 내가 쓴 검기를 보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몰락 귀족 출신의 모험가였나……. 과연, 그러니 증명의 신이 내리는 시련을 받겠다고 했었던 거네. 재밌어졌어.”
몰락 귀족도 뭣도 아니긴 한데 일단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상대가 멋대로 오해해 주니 나도 입 아프게 떠들 것 없기도 하고.
“당신도 오러를 쓰면서 제가 오러를 쓰는 게 신기합니까?”
“그거야 너는 모험가고 나는 고위 사제니 그렇지.”
흡사 둘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신분의 장벽이라도 있다는 듯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엄밀히 말해서 오러를 다루는 것이 아니야.”
“……?”
“증명의 신께서 내려준 신성력을 권능을 통해서 발현했을 뿐이지.”
“정식으로 쓰는 오러는 아니라는 거군요.”
“뭐, 그렇지. 편법의 일종이야.”
한마디로 말해서 스스로 검기를 구현하기 이전의 내가 쓰는 검기와 같다는 뜻이다.
“아아…….”
그에 나는 격한 아쉬움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배울 것이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녀가 가진 검기가 스킬이 아니라 흡수할 가능성조차도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마치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는 와중에 떨어진 한 줄기의 물방울이 바로 땅에 스며든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사실에 좌절하는 대신에 나는 아쉬움을 양분으로 삼아서 검을 고쳐서 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호흡을 가다듬는 제인을 바라보며 나는 물음을 건넸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육체의 증명은 이게 끝이 되는 겁니까?”
“……벌써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정식 오러 유저가 아니라고는 해도 실력만큼은 정식 오러 유저만큼은 되는데?”
“그래서 알려주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글쎄에……. 나도 잘 모르겠네. 알고 싶으면 정식 오러 유저답게 정면에서 나를 꺾어 보라고. 그럼 알려줄지도 모르지.”
살짝 삐진 거 같은 말투를 보니 내가 그녀를 우습게 여겼다고 생각한 모양.
심지어 정식으로 오러를 쓰는 유저가 아니라고 괄시했다고도 여겼나 보다.
물론 이겼다고 생각한 점은 틀리지 않았으나 나는 그녀를 정식 오러 유저가 아니라고 괄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화를 내는 것보다는 그 뒤에 붙은 조건에 눈을 빛냈다.
“그걸로는 부족하겠는데요. 이기면 이후에 있을 증명들도 어떤 내용인지 말해 주시죠.”
“하! 이기면 그렇게 해 줄게. 모험가, 그런데 아직 이겼다고 생각하기에는 이른 거 아니야?”
이내 제인의 고운 이마에 솟은 핏줄을 보며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죠.”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제인에게 쇄도했다.
***
챙! 채앵! 채애앵!
본래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제인과의 결전은 점점 길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 장기전의 원인은 바로 제인이 몸에 품고 있는 신성력에서 비롯됐다.
사제라더니 그게 틀리지는 않았는지 신성력을 통해서 꾸준히 체력을 보충하고 상처를 회복하며 내게서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신체 능력도 높아서 손해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곧 제인과의 전투에서 나는 그녀가 생각보다 전투 경험이 적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렇게까지 강한 상대와 장기전을 이어 본 적이 별로 없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나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을 수 있는 적에게도 검을 겨눠 본 적이 없는 모양새였다.
‘그럼 나도 그 점을 이용해 줘야지.’
그에 나는 혈천마검을 쥔 오른손의 힘을 슬쩍 풀며 일부러 살짝 지친 척하기 시작했다.
이게 연기라고 제인이 생각하지 못하게 일부러 눈의 초점을 살짝 흐리고 이를 악문 채 어거지로 검을 휘둘렀다.
바로 그 찰나에 제인은 미끼를 덥석 물었다.
채애앵!
일부러 허술하게 휘두른 혈천마검을 제인은 큰 동작을 써서 손에서 검을 날렸고.
곧 그녀의 얼굴에는 흡사 이제야 이겼다는 듯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권능 ‘철혈의 검’이 활성화됩니다.」
그게 내가 주도한 결과라는 것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채로.
“……!?”
혈천마검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곧바로 오른손에 철혈의 검을 소환했다.
이어서 서릿빛을 머금은 고풍스러운 철혈의 검은 허전했던 오른손에 착 달라붙었고.
동시에 승리를 장담했던 제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큰 동작으로 검을 쳐 낸 제인에게는 아직 행동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
나는 그 점을 이용해서 바로 역으로 제인이 손에 쥔 세검을 강하게 쳐 냈다.
캉!
“…….”
“이겼네요.”
“아, 아니……. 이게 왜 이렇게…….”
“실전 경험의 부족이라고 생각하시죠.”
그 말에 제인은 울컥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실전 경험의 부족은 무슨……! 신성력으로 몇 번을 회복하는데 지치지 않고 따라오는 모험가가 이상한 거지!”
「관리자 ‘신을 죽이는 검객’이 모르고 있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고 합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틀린 말은 아니지 라며 사제의 말을 긍정합니다.」
「관리자 ‘일곱 신의 사제’가 사제 제인의 울분에 공감하며 당신이 이상한 거라 합니다.」
“그런 상대랑 겨뤄본 적이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실전 경험의 부족이 맞지 않을까요.”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우쭐거리며 이게 자신의 계약자라고 합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왜 두 번째로 계약한 관리자가 제일 우쭐거리냐고 어떤 여자를 비웃습니다.」
「관리자 ‘신성의 구도자’가 당신의 궤변에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며 만족스러워합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어쨌든 간에 제가 이겼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이제 약속한 내용은 다 알려주시죠.”
물론 제인이 싫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그럴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니라고 해도 그냥 죽이고 다음 관문으로 넘어가면 끝인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제인은 굳이 싫다고 하지 않고 바로 한숨을 푹 내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육체의 증명은 이제 두 번 남았고, 신념의 증명은 다섯 번째 관문에 시작된 후 여섯 번째 관문에서 끝날 거야.”
“그럼 정신의 증명은 일곱 번째 관문에만 있는 겁니까?”
“하지만 일곱 번째 관문에 도전하기 이전에 한 번 포기하는 것도 고려해 보는 게 좋을걸.”
“……?”
“일곱 번째 관문은 그 누구도 통과한 적이 없거든. 거기에 들어선 사람은 다 미치거나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며 죽었어.”
“…….”
정말로 그런지 나는 바로 화룡안을 발동해서 알아보았지만.
「스킬 ‘화룡안’이 상대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간파합니다.」
제인은 내게 있는 그대로의 말만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그럼 이후에 있을 증명이 무슨 내용인지는…….”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스킬 ‘화룡안’이 상대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간파합니다.」
“…….”
화룡안을 통해서 제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각각의 증명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끼리는 거의 교류가 없고 자기가 맡은 증명에 대해서만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그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에 떨어진 혈천마검을 주운 후 철혈의 검을 해제했다.
그러고 보니 철혈의 검도 얻은 지 꽤 됐을진대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를 못했다.
‘혈천마검의 성능이 꽤 좋아서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네.’
본래는 곧 쓰고 있을 검이 파괴되거나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혈천마검이 상상 이상으로 좋은 검인지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아예 권능의 빛도 제대로 못 볼 거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11층 시련을 끝낸 뒤에는 따로 쌍검술이라도 배워 둘까 생각하며 나는 이내 제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끝나겠네. 유언은……. 뭐, 오랜만에 재밌게 잘 싸웠다, 그 정도겠네.”
도저히 그녀는 곧 죽을 것을 아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죽는 게 두렵지 않습니까?”
나는 제인을 죽인 후에 그 사령을 흡수할 것이다.
그런데도 제인은 그다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내가 의문을 품으며 물어보니 제인은 담담히 대답했다.
“고위 사제의 영혼은 신에 귀속되어 있거든.”
“…….”
“어차피 죽게 되어도 신의 곁으로 돌아갈 뿐.”
“그러니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다는 거군요.”
“이렇게 보여도 나름대로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친 사제라서 사사로운 번뇌에서는 해방됐거든.”
정말로 후회는 없느냐고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냐고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어쨌든 간에 나는 성장을 갈망하고 있었고 그녀는 죽어도 상심이 크지 않았다.
이대로 더 물어봐야 구역질 나는 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사제 ‘제인’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8.8% 상승합니다.」
오랜만에 정신이 살짝 무뎌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서로 죽을 것을 알고 제대로 싸웠고 제인은 그 결과에서 패배하여 죽었다.
내가 더 약했다면 죽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내가 되었을 목숨을 건 전투였다.
그저 그뿐이며 실제로는 시련을 돌파하면 더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인데.
그런데도 현재 나는 그녀를 죽인 것에 일말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
순간적으로 나는 오싹함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예전에 스스로에게 맹세했던 적이 있었다.
탑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를 죽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이들은 모조리 죽이겠다고.
그럼으로써 나는 싸움을 피하지 않고 인간성을 버리지 않으며 이 탑을 올라가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곧 최소한의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며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을 지니지 않았다.
“…….”
이제까지 만나온 이들처럼 내게 악의를 가지지 않아서 이렇게 감정이 어지러워진 것일까?
하지만 그건 첫 번째 관문에서 마주쳤던 요한 또한 비슷했다.
그는 내게 그다지 큰 악의를 지니지 않았고 그저 시련에나 응하라며 이죽거렸을 뿐이다.
그를 죽이고 그의 품에서 아이템을 강탈했던 시점에서도 나는 약간의 미안함을 제외하면 그다지 다른 감정이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감정이 단순한 변덕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모순까지 겹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남궁혁에게 패배했다는 감정이 장작처럼 성장 갈망이라는 불을 더 크게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태롭기 그지없는 감정이 갈망을 가로막으며 내게 의지를 앗아가면 최악이다.
그 생각까지 다다르니 나는 내심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정신의 증명이라더니만……. 진짜로 시련 주제답게 생각하게 되네.”
어쩌면 이 시련 자체가 이러한 성향을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공간은 탑이 마련했으며 동시에 신의 시련이라고도 했다.
항마력이나 강제 돌파에는 걸리지 않는 무슨 영향을 주는 요소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하듯 때려 박으며 이내 방을 나서서 다음 관문으로 걸어갔다.
방과 방을 잇는 복도에도 이전이랑은 다르게 깨진 유리 조각이 붙여져 있었는데.
그것이 다음 관문으로 갈수록 점점 많아지며 하나의 깨진 유리창처럼 집약되었다.
흡사 유리 조각에서부터 새롭게 거울을 완성해 가듯 이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 감상은 바로 세 번째 관문이 존재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확실해졌다.
벽은 물론이고 천장이나 바닥에도 깨진 거울처럼 유리 조각이 모여 있었다.
그 이질적인 방의 중심에는 눈을 감은 채 칼집을 왼손에 든 사제가 있었다.
나풀거리는 수도복의 바깥으로도 그 다부진 체격이 눈에 띌 정도로 몸집이 큰 사내였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칙을 진정으로 다룰 수 있는 모험가라니.”
그는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오른손을 들어서 칼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과연, 그대는 오러 블레이드의 길까지도 다다를 수 있겠군.”
그리고 동시에.
「관리자 ‘신을 죽이는 검객’이 당신에게 이제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진짜 검사가 나타났으니 자만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거짓된 검기가 아니라 진정한 검기를 쓰는 이라고 합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역시나 증명의 신을 섬기는 사제라며 작게 감탄합니다.」
관리자들에게서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지는 와중에 사내가 칼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고.
“나는 증명의 신께서 다루실 하나의 검이 될 자, 레실리안.”
이내 그는 천천히 칼집에서 올곧은 형태의 검을 꺼내며 서서히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러며 레실리안이 오른손에 온전히 그 검을 쥐자 칼날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흡사 훅 부는 바람에도 꺼질 듯한 불완전한 불길이었다.
하지만.
“그대의 무예(武藝)를 여기에서 증명하라.”
그것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검염(劍炎)…….”
오로지 검기를 잡아먹기 위해서 존재하는 최악의 기술이 또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