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99
097. 증명 (3)
일곱 관문 중 세 번째 관문에 다다르니 수준이 급격히 올라갔다.
첫 번째 관문에서는 권기(拳氣)도 발현하지 못한 사제와의 싸움이었고.
두 번째 관문에서는 검기(劍氣)를 그저 권능으로 꾸역꾸역 쓸 뿐인 사제와의 결투였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내게는 두 번째 관문마저도 그다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 관문의 고위 사제, 레실리안은 벌써 다른 사제와는 그 수준이 달랐다.
“…….”
검염(劍炎).
오로지 검기밖에 쓸 줄 모르는 내게는 쥐약과 다를 바 없는 기술이다.
그 경지는 검기보다 더 높으며 철저히 자기보다 약한 검기를 파훼하는 것에 중점을 둔 채 개발된 기술이었다.
검염 자체는 그다지 물리력이 올라가는 기술은 아니지만 검기 자체를 이루는 마력 자체가 파쇄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제대로 모르겠지만 까다로운 상대인 것은 확실했다.
그 순간이었다.
“검의 불꽃이라……. 그대는 이 경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군.”
방금 내가 중얼거린 것을 들었는지 레실리안이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한 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이내 혈천마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더 세게 불어넣었다.
검염지경(劍炎之境)까지 다다른 레실리안이 어느 시점에 공격해 와도 반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거 좋은 경험이었겠군. 그 덕분에 보이지 않는 법칙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테니.”
보이지 않는 법칙이라니?
그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나는 눈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법칙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제야 레실리안은 스스로 무언가를 착각했음을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착각했군. 자네는 아직 검의 불꽃을 쓸 수 없는 거 같군.”
그 말에 내가 그에게 보이지 않는 법칙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무예(武藝)는 곧 삶의 증명이요 그 자체로 신에게 도달할 수 유일한 길일지니.”
레실리안은 천천히 검염이 깃든 검을 들어서 올리며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는 스스로가 걷고 있는 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우쳐야 할 것이다.”
이내 웅혼함이 담긴 목소리로 내게 경고하는 동시에 눈빛을 번뜩였다.
그리고―.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세 번째 관문에서 죽을 테니.”
동시에 레실리안이 검염을 마치 번개처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7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7/7」
그에 나는 바로 쓸 수 있는 모든 가속 능력을 사용하며 같은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세 번째 관문의 시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카가가강!
검기와 검염이 맞붙으며 새하얀 검의 불꽃에 의해서 검기가 파괴된다.
그에 나는 내심 정말로 검염은 사기적인 능력이 아닐 수가 없다고 여겼다.
물리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검기를 이렇게 쉽게 파괴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불완전한 검염인지라 잠깐이라도 버티며 서로 합을 겨룰 수 있을 뿐이고.
레실리안이 완전한 검염을 쓸 수 있었다면 제대로 싸우지조차도 못했을 것이다.
카가강!
한 차례 서로 합을 겨룬 채 소강상태로 진입했다.
바람의 은총을 사용하는 나는 현재 검염을 다루는 레실리안도 따라올 수 없는 영역까지 가속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로 결판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마력을 가다듬으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뤄서 삼라만상(參羅萬像)을 베는 검을 만든다.”
레실리안은 뜬금없이 내게 도움을 주겠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럼으로써 절대적인 물리력을 지닌 오러라는 가공의 칼날이 탄생한다.”
그 말에 내가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레실리안이 대뜸 검을 휘둘렀고.
나는 거기에 맞춰서 본능적으로 섬전검기의 스킬을 통해서 참격을 발산했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앙!
“화려한 오러로군. 번개를 사용하는 오러는 오랜만에 겪어서 눈이 호강하는군.”
레실리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참격을 발산한 자세를 유지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
상상 이상으로 강한 상대였다.
나는 섬전검기의 스킬을 통해서 힘들게 검기를 방출하고 있는데.
레실리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듯 검기를 원거리로 날렸다.
‘서로 인지하고 있는 세계 자체가 다른 거겠지.’
심지어 그가 전투 중에 툭툭 내던지는 말들은 더 심각하게 내게 영향을 일으켰다.
잔잔한 수면(水面)에 돌을 풍덩 빠트려서 큰 파문을 일으키듯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지는 설명을 들을 때마다 마력이 꿈틀거리며 역동했다.
그것도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의 변화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에 나는 강렬한 의문을 느끼며 레실리안에게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깨달음을 줄 만한 말들을 툭툭 던지는 겁니까.”
세 번째 관문은 육체의 증명이며 패배는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레실리안은 내가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듯 좋은 말을 건넸다.
그 사실에 내가 강한 의문을 품고 물어보니 곧 레실리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대가 증명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지.”
“……?”
“무예의 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순수히 서로의 무예를 증명하며 교류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나는 그대가 증명하는 무예를 보고 싶다. 그저 그뿐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도……. 그럴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이 무예의 길이며 증명이라는 것이다.”
레실리안의 눈빛에 불꽃이 깃든 것처럼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육체를 증명하고, 신념을 증명하고, 정신을 증명한다.”
싫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것은 결국은 무예의 증명이니라.”
검 끝이 흔들린다.
“그대는 아직 스스로의 무예를 제대로 증명할 수 없다.”
차라리 악의로 나를 대하면 이것보다는 좀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스스로의 모든 것을 제대로 증명하도록 해 주지.”
어째서 내가 두 번째 관문에서 제인을 죽이며 죄책감을 느꼈는지 알겠다.
그녀는 내게 악의로 다가오지 않았고 오로지 이 시련을 내게 제공하기 위해서 다가왔다.
레실리안 또한 그러했다.
그는 내가 제대로 무예를 증명하기를 바라며 성장을 유도하고 있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계약자의 검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낍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의 떨리는 검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공감합니다.」
「관리자 ‘신성의 구도자’가 당신의 정신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느낍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아직 당신이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관리자들의 말처럼 나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악의를 지닌 사람을 스스로 죽일 각오는 충분히 되어 있었지만…….
한 명의 무사로서 순수히 무예를 겨룰 각오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손을 떨었다.
“사람은 언제나 다 죽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이었다.
“하물며 같은 무인끼리의 대결에서는 더 그 죽는 순간이 가깝지.”
레실리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무예의 증명에 실패하고 누군가는 무예의 증명에 성공한다.”
그는 그게 흡사 이 세상의 진리라는 듯 어울리지 않게 의연한 얼굴로 말했다.
“증명은 곧 투쟁이며 생존이다. 망설임은 사치다.”
그 한마디에 나는 무너지던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 싸움은 그저 서로 악의 없는 싸움이 아니라 투쟁이며 곧 생존을 향하는 발악이었다.
언제부터 나처럼 약한 놈이 망설임을 지닌 채 선악을 가르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일까?
“…….”
인정했다.
방금 나는 어설픈 각오로 탑을 오른 대가를 제대로 치를 뻔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지한 찰나에 나는 바로 같잖은 마음가짐을 버렸다.
“무인으로서의 증명을 같잖은 살인 따위로 치부하지 마라.”
서로 싸워서 이기는 것은 당연하며 곧 스스로의 삶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그것을 내가 선악의 흐름으로 구분 지을 자격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스스로가 나아가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던 검이 그대로 떨리는 것을 멈췄다.
레실리안은 그런 나를 흡족하다는 듯 바라보며 이내 크게 웃음을 띠었다.
“그래……. 그렇게, 천천히 신념을 쌓으면 되는 것이다.”
어느새 마음은 도대체 언제 흔들렸냐는 듯 강철로 바뀌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당신의 정신이 성장했음을 느끼며 크게 웃습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이 무예의 길에 들어섰음을 느끼며 헤실헤실 웃습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당신이 새롭게 성장 방향을 잡았음을 확신하며 기대감을 품습니다.」
「관리자 ‘일곱 신의 사제’가 새로운 신념의 탄생을 기꺼워하며 지켜봅니다.」
이게 바로 무예의 길을 걷는 이가 지니는 신념이라는 것일까.
“이제 증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모험가여.”
잘 모르겠지만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바로 레실리안과의 싸움을 통해서 검염이라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
나는 검을 쥔 채 숨을 고르고 이내 온몸에 마력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가 지닌 무예를 통해서 삶을 증명하라.”
이내 나는 강철처럼 기세를 바꾼 채 그대로 발을 내뻗었다.
***
온몸의 감각이 물에 푹 잠긴 것처럼 몽롱하다.
―진짜 무공도 모르는 주제에 검기를 온전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으냐.
순간적으로 남궁혁이 내뱉은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째서 남궁혁은 권능과 스킬 혹은 특성은 무공에 미치지 않는다고 했을까.
무공이란 그저 스킬과 다를 바가 없는 능력을 지닌 것에 불과하다.
온몸에 마력을 돌리고 검에 기운을 담으며 그것이 체계적인 구조를 갖춘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남궁혁은 스킬을 멸시하며 거짓된 능력이라고 불렀다.
―거짓된 검기로는 진정한 검기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권능으로 쓰는 검기는 진짜 깨달음으로 익히게 된 검기보다 못하다고도 했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옳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궁혁이 내뱉은 말들이 아예 의미 없는 건 아니다.
그가 스킬을 멸시할 만큼의 무언가가 무공에 있기에 그랬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다뤄서 삼라만상(參羅萬像)을 베는 검을 만든다.
레실리안은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이 곧 검기를 형성한다고 말했다.
그럼 그 보이지 않는 것은 마력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저 마력을 소유하고 있고 그걸 평범하게 다루는 수준이라면 남궁혁도 레실리안도 내게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절대적인 물리력을 지닌 오러라는 가공의 칼날이 탄생한다.
신검합일을 이루게 되며 사용하게 되는 검기(劍氣)를 레실리안은 절대적인 물리력이라고 했다.
그저 검을 몸처럼 다루게 되며 신체를 마력으로 강화하는 것처럼 쓰는 게 검기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레실리안은 내게 검기의 본질을 깨달으라는 듯 말했을까.
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자니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의 가설이 생겨났다.
―그거 좋은 경험이었겠군. 그 덕분에 보이지 않는 법칙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테니.
바로 그가 초면에 내뱉은 보이지 않는 법칙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쓰는 검기가 정말로 평범한 칼날의 강화가 아니라…….
일종의 절대적인 물리력을 생기게 하는 법칙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이었다.
그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칙을 곧 마력이라고 칭한다면 검염(劍炎)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나는 강제적으로 마력에게 검이 곧 몸이나 다름없다고 인지시키며 신검합일을 이루었다.
결론이 바로 도출되었다.
‘의지였어.’
소유주의 뜻을 따라서 마력은 그 형태를 시시각각 다르게 한다.
검기를 형성할 정도로 강력한 의지력을 그저 신검합일의 경지에만 쏟는 게 아니라 다른 부분에 쏟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의지력을 다른 부분에 쏟으면 신검합일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검염에서는 검기보다 더 강한 물리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구나.’
물리력은 높이지 않되 그저 검기를 파괴하는 성질을 의지력으로 생성하는 것에 치중했다.
그 순간에 나는 어째서 레실리안이 무예가 곧 신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했는지 알아챘다.
마력에 의지력을 전달하니 바로 마력이 현실 세계의 법칙을 비틀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의 끝에 다다르는 것을 신이 되는 거라 칭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화르륵!
「……업적 ‘무사의 길’을 달성했습니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이 권능 ‘검염지경劍炎之境’으로 성장합니다.」
흡사 신이 된 듯한 황홀감이 몸을 감싸는 것도 잠시였다.
바로 검에 깨달음을 통해서 불꽃을 두른 찰나에 몽롱했던 감각은 순식간에 깨어났고.
레실리안이 불완전한 검염을 두른 채 달려드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꽈지지직!
그 찰나에 레실리안의 불완전한 검염이 내게 잡아먹히며 칼날까지 파괴되었고.
촤아악!
이내 내가 휘두른 검의 경로에 있는 레실리안이 검에 맞으며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에 내가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잠시 뒤에 나는 스스로의 경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검염지경(劍炎之境).
그렇게나 갈망했던 지고의 경지에 내가 발을 내디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