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08)
형제의 축구-108화(108/251)
형제의 축구 108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정우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네요.”
“그러네……가 아니라, 혹시 주소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설마!”
그녀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럼 우리 집에는 무슨 볼일인데요?”
“심부름이요.”
“그러니까 무슨……?”
정우의 물음에 그녀는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하고는 경계 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근데 정말로 그 집 주소가 그쪽 주소 맞아요? 혹시 저를…….”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정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잖아요. 이런 우연이 쉽게 일어날 일도 아니고……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낯이 익단 말이죠. 이게 말이 될 리가…….”
“낯이 익을 수밖에요…… 한국 사람이라면서요. 저 몰라요?”
정우는 자신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에서 자신을 모르는 일은 거의 드물 것이다. 클럽은 몰라도 국가 대표로 꾸준히 출전하는 데다가 뉴스에서 연일 보도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확히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를지 몰라도,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기사를 둘러보는 사람이라면 봤을 법하다.
“제가 그쪽을 어떻…… 게……. 어머?”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인다.
“어머? 어머머!”
그녀는 정우를 향해 삿대질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축구 선수…… 그…… 한정우! 맞죠? 맞아요? 정말? 진짜 한정우에요?”
“네, 그런데도 수상합니까, 제가?”
“음, 미안해요. 공인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 없겠죠. 어머, 그런데 정말 신기하네요?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요즘 그쪽 꽤나 핫하잖아요? 뉴스에서 매일 나오던데. 모를 수가 없죠.”
정우는 머리를 짚었다.
생긴 것은 미인이긴 하지만, 여우상인 데다가 어딘가 날카롭게 생긴 양반이 하는 짓은 완전히 수다쟁이 아줌마였다.
“그래, 그래서 아무튼, 우리 집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정우의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목적이 기억난 듯 말했다.
“그럼…… 혹시 성함이 여정 자, 례 자, 되시는 분이 그쪽…… 한정우 씨, 할머님 되세요?”
“우리 할머니를 아세요?”
“아뇨, 저는 모르죠. 할머님을 알았다면 그쪽하고도 알고 지내는 사이이지 않았을까요?”
“그런가? 그럼 우리 할머니는 왜요?”
그녀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조그마한 박스와 앨범, 그리고 편지 봉투가 있었다.
“우리 할머니 심부름이에요. 굳이 제가 이곳까지 와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꼭 반드시 저더러 전해 달라고 하셔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고용한 가이드랑 길이 엇갈려서 연락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라이프치히까지 왔는데 할머니가 부탁한 일은 마무리해야 할 것 같고…… 휴우, 우연이긴 해도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이죠. 그죠?”
정말 수다로 일가를 이룬 여인 같았다.
정우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복순이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가시죠.”
“네? 어딜요?”
“어디긴요, 집으로 가야죠. 우리 할머니 봐야 한다면서요?”
“아, 맞아요. 와, 정말 우리 할머니 심부름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건데 참…… 국가 대표 축구 선수를 다 만나고, 와…… 실제로 보니 진짜 잘생겼네요. 그거 알아요? 중국전이 국가 대표 데뷔셨죠? 나 그때 호프집에서 치맥 먹으면서 봤는데, 치킨 공짜로 먹은 거 알아요? 고마워 죽을 뻔했는데, 헤헤.”
“아, 네…….”
“근데 진짜 스무 살 맞아요? 저보다 두 살이나 어리신데, 우와…… 축구하는 거 보니까……. 그러고 보니 동기가 그러던데 축구하면 돈도 많이 번다면서요? 얼마나 버는 거예요?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겠죠?”
“뭐…… 그럭저럭?”
“유럽은 우리나라랑 다르네요. 거리 자체가 예술 작품 같아요. 멍하니 거리 구경하다가 가이드를 잃어버렸는데 이 사람이 연락도 안 받고 잠수를 타더라고요……. 돈도 아직 안 드렸는데, 선수금 빼고…….”
‘왜 가이드가 연락 안 받고 잠수 타는지 알 것 같구먼.’
정우는 그리 생각하며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걸어가다 무언가를 보고는 멈춰 섰다.
“잠깐 우리 복순이 좀 봐주실래요?”
“네?”
정우는 그녀를 뒤로하고 상점으로 들어갔다.
독일의 흔한 마켓이었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정우는 마켓 안에서 여름이 제철인 각종 과일들을 샀다. 블루베리부터 시작해서 라즈베리, 블랙베리 등등.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형제들 때문에 집에 과일이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할머니는 과일을 정말 좋아했다.
본인만 사 먹기에는 그 과일살 돈도 아까워서 사 드시지 않는 할머니가 생각나 정우는 한가득 과일을 샀다.
“가죠.”
“어머, 그게 뭐예요?”
“과일이요.”
정우는 그리 말하고 수다를 시동 걸려는 그녀를 뒤로하고 서둘러 걸음을 걸었다. 그러자 복순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서둘러 정우를 따라나섰다.
“으음…….”
한참 걸음을 옮기던 정우의 눈이 또다시 빛났다.
정우는 이번에도 그녀에게 복순이를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레즐 좀 주세요.] [오, 정우! 오늘 훈련이 없나 보군?]이곳은 형제가 단골이 된 빵집이었다.
RB 라이프치히, 아니, 그 이전 팀의 전신인 마르크란슈태트 당시부터 팀을 좋아하던 빵집 주인아저씨는 비록 완전히 다른 역사를 쓰게 된 RB 라이프치히라고 하지만 동독에서 유일하게 분데스리가에 입성한 RB 라이프치히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팀에서 미친 활약을 보여 주는 형제를 좋아하기도 했다.
[오늘도 식빵이 필요한가?] [아니요, 오늘은 프레즐 좀 사 가려구요. 한 다섯 명 먹을 정도?] [오, 프레즐. 기다려 보게.]주인아저씨가 종이봉투에 프레즐을 담으면서 정우에게 물었다.
[다음 경기가 유벤투스지?] [넵.] [이길 수 있겠나?]정우는 빵집 아저씨의 물음에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반응은 뭔가, 불안하게.] [해봐야 알죠, 저도 유벤투스는 처음이란 말예요. 얼마나 강한지, 아님 약한지 알아야지!] [그게 그런가? 아니야, 자네라면 골을 넣을 수 있을걸세!] [뭐, 저한테 토토라도 거셨어요? 기대감이 장난 아니신데?] [허험, 험, 꼭 이기라고 프레즐 좀 더 담았네. 가지고 가게나.] [오, 감사합니다.]정누는 말을 돌리는 빵집 아저씨를 보고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건을 받고 가게를 나왔다. 그녀, 주희는 복순이와 놀고 있었다.
“아, 나왔어요?”
“네. 이제 진짜 가요.”
정우는 그리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빵집에서 조금 걸어가니 라이프치히에서 드물게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가시죠.”
정우는 그리 말하고 주희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주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면서 직접 본 적이 없는 으리으리한 저택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우와, 집이 정말 좋네요?”
“뭐, 그렇죠. 들어와요.”
정우가 앞서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 나 왔어!”
언제 싸웠냐는 듯 태연한 정우의 목소리에 맞춰 할머니도 태연하게 거실에서 일어나 정우를 반겼다.
“왔누?”
“으응, 이거.”
“이게 뭐여?”
“과일이랑 프레즐. 프레즐 먹고 싶다고 했잖아, 할무이가.”
“에잉, 뭘 그리 자꾸 사오는 겨! 돈 헤프게!”
“또 시작한다, 또! 그냥 잡숴! 그리고 손님도 왔어.”
“손님?”
그리 말하면서 할머니는 현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관에서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주희를 본 할머니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주희가 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눈을 끔뻑 뜨면서 말했다.
“뉘슈? 젊은 아가씨가 나한티 무슨 볼일이…….”
할머니의 말에 주희가 입을 열었다.
“김복 자, 자 자, 아세요?”
“김복……자! 아이고, 잘 알지, 김복자. 모를 수 있겄소. 혹시 복자의…….”
“외손녀예요!”
주희의 말에 할머니는 박수를 짝 하고 치면서 환하게 웃으며 주희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시상에! 복자가 이리 큰 손녀를 두었소? 잘 왔네, 잘 왔어!”
할머니는 주희를 거실 소파로 데리고 와 앉혔다.
“그려, 복자가 손녀를 다 보내고. 무슨 일이우? 복자한테 연락하긴 내가 했지만서두.”
할머니의 말에 주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불길한 느낌에 할머니가 멈칫하는 사이 주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할머니가 건강이 좀 안 좋으세요…….”
“잉? 그리 많이 불편한가?”
“아니요, 특별히 병은 없으신데 기력이 쇠하셔서 거동이 좀 많이 불편하세요……. 그래서 제가 대신 이렇게 온 거구요.”
“아이고, 건강이 최고인디, 쯧쯧. 그리 고생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건가.”
할머니가 코끝이 시큰해져 절로 눈물이 나 눈을 스윽 닦아내는 사이, 정희는 가방에서 할머니에게 전달해 줄 것들을 꺼내 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박스, 그리고 앨범과 새하얀 편지 봉투였다.
“이게 뭐요?”
“우리 할머니가 전해 드리라고 하신 거예요. 이건 그 당시 앨범…… 할머님께서 사진이 다 없어졌다고 하셨다면서요? 우리 할머니가 그 당시 사진들 가지고 계신 것 중에 할머님이 나온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든 거예요.”
“잉, 불나서 간호사 일 하면서 찍은 건 다 없어졌지…….”
남은 거라고는 독일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전부였고, 따로 보관했던 간호사 시절 앨범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당시 함께 고생하던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족과도 같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소중한 앨범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할머니가 주희가 가져온 앨범을 들었다.
새하얀 간호사 복장을 하고 나란히 사진을 찍은 젊은 아가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빛이 바래고 누레지긴 했지만, 그 사진 하나하나에는 할머니, 그리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이거, 할머니 아냐?”
정우는 뒤에서 그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이런 사진이라도 있었음 우리가 알고 있었을 텐데, 신기하네. 간호사복 입은 할무이라니.”
정우의 말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추억에 잠긴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앨범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을 앨범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시선을 돌려 박스를 바라봤다.
“이건 뭐여?”
주희는 박스를 스윽 내밀면서 말했다.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할머니.”
“잉.”
할머니는 주희에게서 박스를 받아서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수북이 편지가 쌓여 있었다. 단둘이 나누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주고받은 편지들이 모두 그 박스 안에 들어 있었다.
“그려, 그때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복자가 관리혔지. 다 흩어져서 돌려받지도 못혔는디 아직도 가지고 있었구먼.”
할머니는 그리 말하면서 편지 하나를 짚었다.
우연일까?
그 당시 펜팔처럼 여러 간호사들끼리 편지를 돌려썼는데, 그 무리가 흩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김복자 할머니에게 보냈던 편지가 잡혔다.
“참…….”
할머니는 편지 봉투를 열어 그것을 읽어 보았다.
너무 오래되어서 자신이 어떤 내용을 복자 할머니에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복자에게.
복자야, 밤이 깊어간다.
나는 지금 쉬고 있지만, 너는 지금 3층 환자를 돌보고 있겠지.
그 환자 발작하면 참으로 고역인데 말이야.
늦은 밤에 지켜 줄 사람도 없이 혼자 있는 네가 참으로 걱정이야.
별일 없어야 하는데.
지금 침대에 누웠는데 위에 있는 미자가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린다.
고국에 있는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고 하더라.
돈 벌어서 스스로 혼수를 준비해서 결혼할 거라던 미자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미어진다.
다들 이렇게 고생하는데, 돌아오는 게 없구나.
우리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리 꼭 행복해지자.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손자도 보고.
그렇게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자.
그때까지 우리 우정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
“글씨 참 못 썼네.”
할머니는 자신의 글씨를 그렇게 평가하면서 웃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주희가 새하얀 편지 봉투를 보냈다.
“우리 할머니께서 그때 미처 답장을 하지 못했다고……. 이거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수십 년 만에 받는 답장이네.”
할머니는 웃으면서 그 편지를 받아들었다.
웃고 있지만 편지를 받는 손은 매우 떨리고 있었다.
정례에게.
정례야, 답장이 너무 늦었구나.
나는 일신의 거동이 힘들어 이 편지도 손녀딸에게 부탁해 쓰게 되었다.
잘 지내고 있니?
나는 한국으로 들어와서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지난 시절 고생하면서 함께 울던 시절이 끔찍하다가도,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니 그립더구나.
그 힘든 나날이 아니라, 동무들이 말이다.
동무들 다들 잘 살아 있는지 궁금하구나.
들었니?
미자는 독일에서 독일 사람을 만나서 거기 정착했단다.
너는 조금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 모르고 있을 것 같아 기억해 뒀다 답장하려 했는데, 이제야 답장하게 되었구나.
늦은 밤 시체를 닦고, 환자 똥이나 치우던 우리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
너는 자식 복이 있어 잘 살고 있냐.
나는 사위 복은 없는데, 딸년이 그래도 잘 먹고 잘살아 날 돌봐 주고 있다.
우리 손녀 예쁘지?
사위가 독일인이라, 혼혈이라 그런가 우리 손녀는 참으로 예쁘다.
먼 훗날을 생각하면 너에게 손녀를 보여 주고 싶더라.
이런 이쁜 손녀가 할미한테 그리 잘한다.
늙어 빠진 우리가 제일 행복한 게 손주 자식 자랑밖에 더 있겠냐.
네 손주는 어떤지 모르겠다만, 너도 손주 자랑 좀 해 보아라.
보고 싶지만, 보러 갈 수 없어 아쉽구나.
정례야, 보고 싶다.
너도, 미자도, 모두들.
언젠가 함부르크 근교에서 다 같이 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펍에서 맥주를 들자던 그 약속…… 지키지 못해 너무 아쉽다.
복자 할머니의 편지를 다 읽은 할머니는 어느새 눈가를 가득 메우는 눈물을 쓰윽 닦아내며 주희를 바라봤다.
“복자 말대로 참으로 이쁘네.”
“헤헤, 감사합니다.”
“한국이 시간이 되거든 복자에게 전화 좀 하자. 나두 내 손주 자랑 좀 혀야지.”
할머니는 그리 말하면서 주희의 손을 굳게 잡았다.
지난 시절, 둘도 없던 친구인 복자의 손을 대신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