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s Soccer RAW novel - Chapter (114)
형제의 축구-114화(114/251)
형제의 축구 114화
심기일전(心機一轉)
“이제 갈게.”
정우는 베를린 공항에서 주희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 조심히 가.”
고민이 많아 보이던 주희의 표정은 많이 밝아 보였다.
“그래도 네 덕분에 우리 아빠랑 오해를 풀었어, 고마워, 정우야.”
“내가 뭘 했다고.”
아빠를 마주한 그녀는 아빠와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주희가 모르던 가족사의 문제는 엄마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주희에게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엄마이긴 하지만, 부부 사이는 최악이었던 모양이다. 원래 독일에서 생활을 시작한 부부였다. 주희가 태어날 무렵까지는 할머니인 김복자 여사와 함께 독일에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부부 사이가 심하게 악화되면서 성격이 괄괄하니 매정한 면까지 있는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딸인 주희를 데리고 말도 없이 한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주희의 아빠는 지역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성공한 기술자였지만, 아무것도 없던 시절 김복자 여사에게서 독립해서 얻은 지금의 아파트에서 행여나 딸이라도 자신을 찾아올지 몰라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면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주희는 엄마의 독한 성격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아빠와 오해가 풀리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비록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녀였지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였다.
“막상 가자니 좀 아쉽네.”
주희는 그리 말하면서 정우를 바라봤다.
티격태격 다투기는 했지만 그래도 독일에서 정우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미운 정이라도 들어서 그런지 가슴 한편이 허전하니 아쉽다.
“아쉽기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 비행기 떠나겠다.”
“치, 가는데 말을 그렇게 하냐. 넌 안 섭섭해?”
정우는 그녀의 말에 잠시 멈칫하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섭섭하기는 얼어 죽을.”
“너무해!”
주희가 역정을 내자 정우는 웃었다. 화내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이럴 때는 누나가 아니라 동생같이 느껴지는 그녀였다.
“앞으로 안 볼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런데 뭘 너무해야, 너무해가. 다음에 또 볼 수 있는데.”
“그런가…….”
“그렇지. 아무튼, 그러니까 잘 가. 나도 여기까지 나오느라 무리했어.”
주희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다, 너도 얼른 가서 훈련해야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응, 조심히 가!”
그렇게 주희가 한국으로 떠나간다.
캐리어 가방을 끌고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정우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가슴 한가득 숨이 들어갔다 빠져나가는데, 그 이상으로 허전하다.
“음…….”
섭섭하고 아쉽지 않냐고?
사실 미친 듯이 아쉽고 섭섭했다.
조금 더 있다가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저렇게 한국에 가고 싶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무언가 마음속에서 쑥 하고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허전하네.”
정우는 그리 말하면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허전해.”
정말로 허전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 * *
유벤투스를 이겼다.
그것도 원정에서 말이다.
RB 라이프치히가 유벤투스를 이긴 것은 라이프치히 팬들을 열광케 했다.
분데스리가 2년 차, 신생 팀이 어느새 유벤투스를 이길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리그에서도 7연승을 달리고, 최소 실점과 최다 득점까지 기록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라이프치히가 이렇게 단숨에 강팀으로 급부상할 줄은 아무도 몰랐는데, 그런 걱정을 언제 했냐는 듯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지역 주민들은 콧대가 높아졌다.
우리 팀은 강하다.
연고지 팬들에게 자부심이 되었다.
RB 라이프치히 선수단들도 기세가 등등했다.
설마 했던 자신들이 연승 행진에 이어 세계적인 강팀까지 이겼으니 사기가 바짝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선수단의 분위기에 하센휘틀이나 랑닉 단장은 만족스러워했고, 그건 구단 프론트도 마찬가지였다.
레드불이 이 팀을 만들면서 그토록 바라 왔던 순간이 벌써부터 찾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펼쳐진 8라운드
RB 라이프치히의 상대는 레버쿠젠이었다.
지난 시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중하위권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던 레버쿠젠은 이번 시즌에도 4승 3패로 승점 12점으로 리그 7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우승도 없었지만, 언제나 우승에 도전하던 강팀의 면모는 이제 더 이상 없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도, 선수들도 RB 라이프치히의 승리를 점쳤다.
심지어 레버쿠젠의 팬들도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레버쿠젠은 RB 라이프치히와 치열한 승부를 벌이면서 1 대 1 무승부를 거둔 것이다.
패배가 점쳐지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레버쿠젠의 선수단은 한숨 놓을 수 있었지만, 연승 행진이 깨진 RB 라이프치히 선수단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8라운드를 마무리 지었다.
승점 2점 차이로 2위에 있던 바이에른 뮌헨이 이번 라운드에서 승리하면서 승점 동률을 이루게 된 데다가 5 대 0 대승을 거둔 덕분에 득실차에서 앞서 1위를 탈환하게 되었다.
선수단의 분위기는 최악은 아니더라도, 오늘 경기로 흉흉해졌다.
RB 라이프치히의 이번 시즌 목표는 무조건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 올리는 거였다. 이제 겨우 8경기를 치른 것뿐이지만, 단숨에 바이에른 뮌헨이 자신들을 추격해 오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이 선수단을 휩쓸고 그 결과는 9라운드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맙소사! 프랑크푸르트가 오늘 폭발합니다! 굴라치가 세 번째 골을 허락하면서 스코어는 1 대 3! 라이프치히가 프랑크푸르트에게 2점 차로 뒤지게 되었습니다.
-아, 홈에서 무너지는 라이프치히! 예상외 결과입니다! 유벤투스를 격파하던 그 위력적인 모습은 어디로 간 거죠? 최악입니다!
-레버쿠젠에 이어서 프랑크푸르트가 라이프치히를 제대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전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상대적 약팀들에게 이리 수세에 몰리게 된 걸까요?
-글쎄요, 그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팀 선수단이 대부분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쉽게 멘탈이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그 멘탈적인 부분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네요, 저는.
-그렇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끝납니다. 라이프치히! 졸전 끝에 홈에서 프랑크푸르트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로커 룸으로 들어선 선수들은 하센휘틀에게 벼락같은 호통을 들어야 했다.
[이게 뭐냐! 벌써 마이스터 샬레라도 들어 올렸나? 아니면 빅이어라도? 나는 오늘 전투적인 모습을 요구했지만, 너희들은 나태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 주더군! 유벤투스라도 이기니 너희들이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강자들로 보였나? 정신 차려! 너희들 대부분은 애송이에 불과하고, 여전히 도전자의 입장이라는 걸 말이다!]선수단은 말이 없었다.
져서는 안 되는 경기에서 졌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시각 바이에른 뮌헨도 볼프스부르크에게 패배하면서 승점을 동률로 유지했다는 점 정도랄까? 사실 그것도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그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며 3위를 차지하고 있던 볼프스부르크와 4위인 마인츠가 승점 21점 동률로 라이프치히를 승점 1점 차로 바짝 추격해 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위기 아닌 위기가 찾아왔지만, 팀 분위기는 수습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챔피언스리그에서 AS 모나코에게도 패배하고 말았다.
한때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다 지난 시즌부터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팔카오에게 2골이나 허용하면서 2 대 1로 패배하게 된 것이다.
이쯤 되자 팀 분위기는 물론이고 전술적으로도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잇단 패배에 하센휘틀은 팀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수도 없이 경기 영상을 리플레이해야 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일단은 젤케, 베라르디, 베르너와 같은 선수들이 득점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득점 1위를 달리는 정우도 AS 모나코전까지 세 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3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은 로벤과 윤석이 전부였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공격적으로 기용한 윤석으로 인해서 수비 라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리뒤거와 조나단 타는 분명 독일 국가 대표에서 포 백을 형성할 정도로 뛰어난 수비 라인임은 분명했다. 리그에서 두고 보면 이 두 조합보다 뛰어난 센터백을 보유한 곳은 뮌헨 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현대 전술에서 두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점을 막기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타를 전방에 배치해 그들을 보호하게 한 것이고, 풀백들은 왕성한 활동량으로 그들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좌측 풀백 주전이 된 헥토르는 이를 잘 수행하고 있었지만, 수비적인 롤을 수행하는 케이타는 윤석이 공격적으로 나서자 수비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우측에서 고루 기용되던 클로스터만이나 베르나르두는 공수 전환이 빠르지 못했다.
그 덕에 수비에 구멍이 생겼다.
여기에 압박적인 부분도 어딘가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수치로만 봐도 나태해진 선수들의 활동량이 유벤투스와 경기 이후로 3~4킬로미터 줄어들었다. 왕성한 활동량이 팀의 중심이 되는 라이프치히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후우, 결국 팀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군.]분명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기에 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태해진 정신을 바짝 조이고 나니 조급해지고, 실수가 잦아졌다. 그 실수를 다른 팀들이 놓치지 않았다.
[흐음…….]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하센휘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문제를 미처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팀은 10라운드를 치르게 되었다.
상대는 뉘른베르크.
그 잘나가는 볼프스부르크까지 잡으면서 리그 중위권에 머물고 있는 팀이었다. 이번 시즌 승격한 팀이 중위권에 머물고 있느니 다크호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세가 좋은 팀은 시즌 초반에 만나면 위험하다.
게다가 지금 멘탈이 마구 흔들리고 있는 RB 라이프치히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결과는 1 대 0 진땀 승.
간신히 승리를 거두면서 한숨 돌리게 되었지만, 압도적인 공격력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후반전 베라르디의 천금 같은 골이 아니었으면 무승부로 끝나도 할 말이 없는 경기였다.
그래도 승리를 거두면서 팀 분위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 기세를 몰아 포칼컵 2라운드를 치르게 되었다.
분데스리가 2부 팀인 그로이터 퓌르트와 경기.
하센휘틀은 3경기 연속으로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한 정우를 과감하게 제외하고 젤케와 베르너, 그리고 베라르디의 스리 톱으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상대적 약팀인 퓌르트를 상대로 1군 선수를 모두 기용한 것이 의외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센휘틀은 이번 경기에서 어떻게든 대승을 거둬 팀이 기세를 올리고, 다시 한번 자신감을 찾기를 바랐다.
그런 하센휘틀의 바람대로 팀은 5 대 0 대승을 거뒀다.
베라르디의 2골, 베르너와 젤케, 율리안 브란트의 1골로 이룬 결과였다.
팀 분위기가 서서히 올라오는 것 같아 하센휘틀은 만족스럽게 이날 경기에서 선수단을 독려할 수 있었다.
[좋아! 이제 다시 집중할 때다. 다음 경기 상대가 어디인지 다들 알고 있지? 비록 어려운 상대라고 하지만 지금 같은 기세라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처럼!]11라운드.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선수단의 얼굴이 결연해졌다.
그런 선수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하센휘틀의 시선에 문득 정우가 들어온다.
[으음.]시즌 초반 상승세를 이어 가며 엄청난 득점력을 과시했고,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4골을 몰아넣은 천재가 좋지 못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선수단 전체가 심리적으로 흔들렸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기복을 보여 준 것은 역시 정우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지난 경기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센휘틀은 직접 이야기를 해 보려다가, 때마침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윤석을 보고는 그를 붙잡고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이 요즘 무슨 문제라도 있나?] [흠, 안 그래도 저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하긴 하는데, 내색하진 않네요.] [내가 보기엔 뭔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정도 기복이라니.] [제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부탁하마.]하센휘틀의 당부를 들으면서 윤석은 흘끔 동생을 바라봤다.
정우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쓸쓸해 보인다. 뒤늦게 사춘기라도 찾아온 건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지만, 사실 윤석에겐 이보네보다 정우의 속마음이 더 어려웠다.
어려서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던 성격은 커서는 완전 백 년 묵은 구미호가 되어 버린 탓이다.
“그래도 이야기는 해 봐야겠지.”
윤석은 그리 마음을 먹고서 게르트의 운전 하에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연신 흘끔 정우를 바라봤다.
정우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냐?”
“응? 아아, 그냥 뭐.”
정우는 그리 말하고 다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런 정우의 모습을 바라보던 윤석은 순간 무언가 번뜩였다.
“야.”
“응?”
“너 혹시 말이야…….”
“으응? 뭔데 말끝을 흐려. 할 말 있음 해, 형!”
윤석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희 누나 연락 기다리냐?”
“……으으응?”
평소와 달리 표정 관리 하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정우를 바라보며 윤석은 자세를 바로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맞네.”
“뭐, 뭐가.”
“이야, 진짜 내가 살다가 별꼴을 다 보네. 내 동생이 여자 하나 그리워서 허우적거리는 꼴을 다 보고.”
“아, 아니야.”
“아니기는. 형제끼리 그런 거 숨기는 거 아니다.”
윤석의 말에 정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정우를 바라보고 윤석이 말했다.
“그것 때문에 요즘 그렇게 경기가 개판이었냐?”
“…….그것 때문만은 아냐.”
“아니긴 뭘 아냐, 자식아. 기다리지 말고 네가 연락을 하던지 해야지! 여자가 기다리겠냐?”
정우는 형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여자 친구 생겼다고 다 아는 것처럼 그러지 마. 누가 보면 연애 한 1백 번은 해 본 사람인 줄 알겠어.”
“아무튼! 너도 어지간하다.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축구하냐?”
“아,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니깐?”
“그럼?”
형의 말에 정우는 입을 닫았다.
순간 정우의 표정이 우울해진다. 윤석은 그런 동생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저런 모습의 동생은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래, 다른 문제라도 있어?”
“……아빠.”
“응?”
정우는 울먹이며 말했다.
“요즘 들어서 아빠가 자꾸 생각난다? 아빠가 왜 이리 보고 싶지?”
정우의 말을 들은 윤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동생을 바라봤다.
아빠.
이제는 말하기도 어색한 그 말이 윤석의 가슴을 쿡 하니 찌르고 들어왔다.
너무 오래되어서, 아니, 너무 아픈 이별이어서 일부러 기억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힘겨워도, 절뚝거리는 다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과 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말이다.
“아빠라…….”
윤석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게르트에게 말했다.
“게르트, 근처 펍에 세워 주시겠어요?”
“펍? 펍은 갑자기 왜?”
“오늘은…… 동생이랑 이야기 좀 나눠야 할 것 같아서요.”
“음, 그럴게.”
시즌 중인 선수가 음주를 할 것 같은데, 평소라면 어떻게든 막았겠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게르트는 별다른 말 없이 펍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낡고 허름한 손님이 없는 펍이었다.
게르트가 외롭고 쓸쓸할 때 가끔씩 이용하던 펍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는 그런 펍이었다.
“고마워요.”
“너무 무리하진 마.”
게르트는 형제를 내려 두고 떠났다.
떠나가는 차를 잠시 바라보던 윤석은 정우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동생을 데리고 펍 안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맥주 하나만을 시켰다.
그리고 말없이 정우에게 잔을 내밀어 건배하고는 벌컥벌컥 들이켜 단숨에 한 잔을 비운 윤석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빠…… 이제 아빠라는 말도 어색하네.”
윤석은 그리 말하고 정우를 바라봤다.
“시즌이 끝나면…… 아버지 유골 뿌린 곳에 들르자.”
“으응.”
“그러니 기운 내, 자식아. 그런 걸 숨기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너랑 내가.”
“그러게.”
사실 정우는 형마저 우울해하고 그리워할까 두려워 형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힘든 건 자신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정우를 바라보며 윤석은 말없이 맥주를 더 시켰다.
또다시 말없이 맥주를 들이켠 윤석은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슬퍼하지 마라.”
“응?”
“그럼 아버지도 슬퍼할 거야. 지켜보고 계실 테니까.”
“……그러게.”
정우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 아빠가 지켜볼 텐데.”
정우는 눈을 빛냈다.
그립다고 해서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 아버지는…….
“우리를 지켜보실 거야.”
그럴 거다.
그리 생각하며 뿌옇게 습기가 차는 눈을 스윽 닦아 냈다. 윤석은 말없이 그런 동생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